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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기망, 되풀이해선 안 된다" 이경렬 대사 인터뷰 2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9. 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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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렬(63) 전 주앙골라 대사. '창천(蒼天)'이라는 필명으로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다. 8월 초 <브라보 한미동맹(진인진, 2025)>을 내놓았다.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라는 부제가 예사롭지 않다. 한미 관계의 실제와 이를 다루는 관료들의 가식과 위선, 한계를 파헤쳤다.

지난 3월엔 <명품외교의 길>을 펴내 "대한민국에 외교는 없다. 유사 외교 행위가 있을 뿐이다"라고 일갈했다. 지난 14일 서울 공덕동 <시민언론 민들레>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여러 차례 내용을 다듬었다. △ 미국의 변화, 한국의 변화. 브라보 한미동맹! △ 노무현에서 출발해 노무현 넘어서기 △ '외무부' 개혁 제언 등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인물사진은 게재하지 않는다.

이경렬 전 주앙골라 대사가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올해 잇달아 펴낸 저서의 표지. 2025.8.21. 시민언론 민들레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얼마가 돈이 들던지 추진해야 한다. 국회와 국민이 문제 삼지 않는 수준에서 합의의 형식과 문장의 표현을 바꾸는 것을 협상의 목표로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NSC 인사들은 반미주의자들이므로 이 문제의 개입은 최소화시킨다. 용산기지 이전을 신속히 그리고 조용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며 법률가적인 지엽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조약국의 이견은 무시한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2003년 11월 18일 자로 작성한 '용산기지 이전 협상 평가 결과 보고'에 수록된 외교통상부 북미국 북미3과 외무관 진술의 일부다. 북미3과는 용산기지 이전 한미 협상의 외교 창구. 일개 '과' 따위가 대통령과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를 '반미주의자'로 낙인찍고 멋대로 협상을 진행했던 것. 보고서는 괄호 속 메모로 "실제로는 아이러니하게 NSC 인사들은 협상 과정의 대부분을 추인해 주었다"고 적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검사의 난은 알려졌지만, 외교안보 관료들의 난은 묻혔다. 노 대통령이 묻었다.

"대통령과 NSC는 반미주의자, 개입 최소화하라"
미국과 따로 움직인 북미국…세금 10조 원 지불

공직기강비서실의 평가보고서 표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멋대로 '반미'로 지목하고 미국에 최대한 유리한 협상을 해온 이들이 대통령을 속인 사건이었다.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이석태 비서관이 주재한 두 차례 회의에는 서주석 NSC 실장, 위성락 외교부 북미국장,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등이 참석해 관련 내용을 확인했다. <브라보 한미동맹(진인진, 2025)>은 나중에 헌법재판관이 된 이석태 공직기강비서관의 보고서를 풀어 용산기지 이전 협상의 전말을 8개 장 중 제1장에 소개했다.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명백하게 드러난 인물을 제외하곤 가명을 썼다.

-가명이 너무 많아 중간중간 실명으로 전환하며 읽게 된다. 가명을 지으면서 원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을 '박성준'으로, 북미국장을 '하성필', '민용식'으로, NSC 핵심 당국자를 '이석준'이라고 했다.

"내 논의의 초점은 특정인에 대한 비난보다 우리 사회의 숭미적인 구조에 있기에 가명을 사용했다. 당시 직책을 검색하면 실명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가명의 원칙은 없었다. 지금도 현직에서 활동하는 관료는 젊었을 때는 가명으로, 요새 나오는 이름은 본명을 썼다."

-협상팀 개편 및 원점 재검토, 관련자 문책 인사를 제안한 이석태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용산기지 이전 협상은 2004년 10월 26일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 간에 서명, 확정됐다. 그 결과, 평택 캠프 험프리스를 거의 국민 혈세 10조 원으로 지어줬다.어찌 된 영문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이후 일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어떻게 된 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통령은 처음부터 용산기지 이전의 당위성만 보고받았을 뿐 상세한 조건이나 비용 부담에 대해 제대로 보고받은 적이 없다. 취임 후 거의 9개월 동안 자세한 내막을 모르면서 조속한 기지 이전의 원칙만을 되뇌었다. 몰랐더라도 어차피 자기가 벌인 일이라고 자책하며 더 이상 간여를 피한 게 아닌가 싶다. 문제 삼는다고 미국과 이미 합의한 걸 되돌릴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은 미국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걸 꺼렸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9일 미국 워싱턴의 미 국무부 청사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한미 전략대화를 갖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6.1.19.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들어 다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다. 책에선 2000년대 초 한미 간 전략적 유연성 협의 과정에서 드러난 또 다른 대통령 기망 사건을 소개했다.

"전략적 유연성은 기본적으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고쳐야 할 문제다. 조약상 주한미군은 한반도 붙박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조약 2항에도 상대방의 영토가 공격을 받아야 도와주게 돼 있다. 대만이 무슨 미국 영토인가? 미국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조약 개정 대신 외교 각서 형태로 추진하길 원하면서 우리 측에 초안 작업을 맡겼다. 2003년 10월 한미 미래동맹 정책회의(FOTA) 제5차 회의에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이 미국 측에 전달한 초안은 대통령은 물론, NSC에도 보고하지 않은 정황이 발견됐다. NSC는 국정상황실이 조사에 착수하자 2004년 3월에 가서야 북미국장으로부터 보고받았다면서 책임을 미뤘다."

-외교통상부 북미국이 미국 측과 주고받은 각서에 관해 설명해달라.

"첫째 주한미군의 유연성을 인정한다. 둘째 그로 인해 한반도 안보 공백이 생기면 안 된다. 셋째가 미군이 들락날락(in and out) 할 때 한미 간에 사전 협의한다고 돼 있었다. 2004년 1월 미국이 보낸 수정안에는 2항이 삭제되고 3항의 사전협의가 단순 협의로 수정된 것이었다.(책 97쪽) 나는 공개된 내용과 상관없이 '유사시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국군도 함께 간다'는 내용의 비밀각서가 존재한다고 본다. 노 대통령의 입장과 달랐다. 노 대통령은 2005년 3월 공사 졸업식 연설에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해 6월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확인을 요청하자 기죽지 않고 반복했다. 부시는 동의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알았다(I will take note of it)'라고만 말하고 얘기를 끝냈다. 노 대통령이 이 문제를 끝까지 막았다고 생각한 이유다. 당시 청와대에는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레드팀(일종의 암행어사팀)'이 있었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외무부와 국방부가 미국과 뭘 협상하는데 이게 심상치 않아 보인다."

"우리 의지 관계없이 '그것' 역내분쟁에 포함 안 돼"
'그것' 두고 대통령 '주한미군' 외교장관은 '한국군'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디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발표한 전략적 유연성 관련 공동성명에도 그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나. 1항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는 것이고 2항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그것(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이다. 여기서 '그것(it)'의 해석이 분분했다. 반 장관은 2006년 9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한국군'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시종일관 '주한미군'이라고 했다.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에서 노무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2024.5.23

"그렇다. 주한미군은 한국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군이 지역분쟁에 휘말리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게 됐다. 콘디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성명을 발표한 외교통상부 장관(반기문)은 '그것'을 한국군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을 '주한미군'으로 봤다. 한국군만 빠지는 전략적 유연성에 자신은 동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 2007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되풀이 강조한 내용이다. 공동성명은 한글본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와 이재명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둘러싼 안보 현안은 물론 주요 당국자도 겹친다.

"몇 사람이 겹친다. 책에선 가명으로 처리했지만, 특히 두 명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썼다. 기본적으로 용산기지 이전과 전략적 유연성 협상을 하면서 대통령을 속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모가 같더라도 그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은 서민적이고, 민중 지향적인 성향은 같을지 모르지만 노 대통령은 숭미 정신의 회오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비록 한미동맹이 우리 외교의 축이라고 얘기하지만, 속으로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객관적인, 또 국민의 뜻에 따라 보려고 한다고 본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9월 1일 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미 간 진행 중인 전략적 유연성 논의에 대해 말했다. "아직 구체적인 조정이 있지는 않다. 원론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과거 한국에서는 그것을 인정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2006년 (한미 합의로) 인정이 됐다. (전략적 유연성의 수준이) 어느 정도냐 하는 문제만 남은 것"이라고 했다.

"사안의 본질을 호도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 전후에, 이면에서 묵시적으로 동의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측면도 있다. 2006년 한미 외교장관 간 공동선언이 있었지만, 핵심은 주한미군이 예컨대 대만사태와 같은 역내 분쟁에 참전하는 경우 우리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이 본질이다."

-노무현 정부가 2002년 효순-미선 양 추모 촛불시위에 힘입어 임기를 열었다면, 이재명 정부는 12.3 내란을 맨손으로 막은 '빛의 혁명'에 빚을 졌다.

제이비어 브런슨 사령관이 20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주한미군 사령관, 한미연합사 사령관, 유엔사 사령관 이취임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24.12.20. AP 연합뉴스

"숭미에 포획된 당시, 국민주권 정부는 다를 것"
미국 대북 압력 약화…안보 환경은 지금이 낫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 아니면 '미국을 다시 봐야 한다'는 냉철한 분위기에서 당선됐다. 그럼에도 당시는 숭미의 정신, 조·중·동의 정신이 아주 막강하게 살아 있었다. 그래선지 취임 뒤 미국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우선 이라크 파병을 했고, 실무자들의 기망이 있었지만, 용산기지 이전에 백지수표를 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했다. 그런 과정에 지지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다고 본다. 당시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그때는 숭미의 기반이 아주 두터웠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숭미의 기반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게 첫 번째 측면이고, 두 번째는 객관적인 안보 측면에선 노무현 정부 때가 훨씬 나빴다."

-이재명 정부의 안보 환경이 당시보다 더 낫다는 말인가.

"새 정부 들어서도 북한이 김여정 담화를 통해 '친하게 지낼 생각이 전혀 없다'라며 조금 험한 말을 내놓지만, 그렇다고 안보 환경이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무엇보다 미국이 북한에 압력을 세게 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북한 문제는 한국이 맡고 대신 주한미군이 역외 문제에 신경 쓰게 해달라는 게 전략적 유연성 아닌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은 상당히 약해져 있다. 그 긴장 상태가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 ① "미국도, 한국도 변했다…이제 '멋진' 동맹으로 가자"

☞ ③ "외교부도 검찰처럼 '해체 수준' 개혁해야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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