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것은 대한민국도 하나의 주권국가이고, 주권국가에서 주권자들,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실망하게 해드리진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트럼프와의) 대화도 그리 무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고, 그렇게 예상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시각 24일, 이재명 대통령 기내 간담회)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의 관심은 경제·통상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른바 '동맹의 현대화'란 이름으로 전개될 안보 환경의 변화와 이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원칙적인 입장이 미국에 전달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동맹의 오랜 역사나, 함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사고 속에서는 이 역시 현찰로 환산되는 문제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간담회에서 '주권'을 강조한 게 주목되는 것은 안보 문제와 관련, 일종의 '마지노선'을 암시하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안보 문제에 관한 한 '돈'과 '힘'의 결합 방식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2006년 1월 한미 전략적 유연성 공동성명 제2항)
"한국은 부자나라, 더 이상 공짜 안보 없다"
안보 문제에 관한 한 트럼프의 아젠다와 미국 외교안보팀의 아젠다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돈에서 출발, 돈에서 만족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미 외교안보 관료들은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을 중심에 둔다. 전략 변화를 설계도로 한국의 수락 또는 적응을 요구하는 구도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동맹과 관련해 내놓은 말은 모두 '돈'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동맹과 우방이 그동안 "미국을 벗겨 먹었다(ripped off)"고 우기면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지각을 흔들었다. 관세 문제는 아직 추가 협의가 남아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맺은 합의로 일단락지었다. 남은 게 국방비 문제이고, 한국에는 국방비에 더해 특히 주한미군 주둔비(방위비 분담금) 인상안을 집요하게 내밀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경우 지난 6월, 국방비를 향후 1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5%로 올리기로 한 뒤 유럽연합(EU)과 관세협상을 매듭지었다. 한국은 역순이다. 지난 7월 30일 관세를 먼저 매듭짓고 이번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안보를 논의한다. 경제·안보의 분리 징수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주한미군 주둔비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이미 입장을 정해놓았다. 작년 11월 바이든 행정부와 맺은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결과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한미는 제12차 SAM 협정 결과 2026년 1조 5192억 원을 시작으로 향후 5년(2026~2030)간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에 따라 인상하기로 했다. CPI는 2%대. 트럼프는 100억 달러(13조 8636억 원)로 인상을 요구하지만, 우리가 대응할 논리는 충분하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7월 15일 인사청문회에서 "제12차 SMA는 재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국방비 인상 역시 나토와 달리 난제가 아니다.
한미 간 오래된 합의 '한국 방위의 한국화'
나토는 GDP 대비 5%를 목표로 설정했지만, 실제 군사비는 3.5%에 불과하다.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 9일 입수, 보도한 미 행정부 내부 문서는 한국의 국방비 목표를 3.8%로 잡았다. 이재명 정부 임기(2025~2030) 중 매년 국방비 증가율을 7.9%만 유지해도 달성할 수 있다. 한국의 필요와도 맞아 떨어진다. 이재명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임기 내 환수'라는 국정과제를 이루려면 정보·감시·정찰(ISR) 관련 자산을 미국으로부터 매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2일 언론 간담회에서 "비용을 수반하더라도 전작권 전환 과정을 공백없이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라면서 국방비도 늘리는 방향으로 한미 간 협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트럼프의 말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무한 반복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은 부자나라"라는 논리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서는 답이 정해져 있다. 20년 전 노무현 정부 때 한미가 합의했던 '한국 방위의 한국화'를 들어 "필요한 미국 무기를 더 사들여 우리 손으로 국방을 하겠다"고 다짐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한국이 미·중 분쟁에 연루될 위험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동맹 현대화와 관련해 (주한미군)의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논의는 우리로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 실장은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 "한미 간 연합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 안보를 더욱 튼튼해지는 방향으로 현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악마는 디테일(세부내용)에 있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추상적인 개념 용어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복귀 감사 표해도 좋을 듯
북한 문제는 아이러니하게 우리로서 가장 접근이 용이한 대목이다. 트럼프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하며 재회를 희망한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가 1기 행정부에서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적을 평가하면서 북미 대화의 촉진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위협을 줄이면 그만큼 안보 수요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주선으로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3명이 풀려난 데 대한 감사를 전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정상회담에서 한미 정상이 전략적 유연성 논의를 자세하게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큰 틀에서 방향만 잡고, 구체적인 논의는 실무진에 돌릴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행정부도 아직 국방전략(NDS)을 확정하지 않았다. 이달 31일에나 NDS 초안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 전달된다. 우려되는 대목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추상적인 용어로 정리하더라도 추후 실무협상에서 미국 측이 우리 국방·외교 관료들의 팔을 비틀어 대만 유사시 한국이 연루될 여지를 남기게 되는 결과다. 정상회담보다 '정상회담 이후'가 중요한 것. 대한민국 외교·국방 관료들은 미국 측이 강하게 나올 때 슬그머니 밀실합의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용산기지 이전 협상과 전략적 유연성 합의 과정에서 대통령을 기망하는(속이는) 사례가 드러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두고 지휘, 감독, 관리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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