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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읽기170

동아시아 군비경쟁,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연 '오커스(AUKUS)' 역사는 반복된다. 주먹에 관한 한 자신 있는 거구의 헤비급 권투선수가 있다고 치자. 갈수록 주먹이 세지는 동급의 상대가 있지만,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왔다. 어느 순간, 상대의 주먹이 만만치 않음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챔피언 자리를 내줄 수 없는 법. 어르고 달래보지만 당최 여의치 않으면, 모종의 결단을 해야 한다. 거인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에서 미국의 선택은 ‘주먹’을 한개 더 늘리는 것이었다. 1957년 10월4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발사기지1에서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그때까지 록히드 U-2 정찰기를 소련 상공에 띄워 동태를 파악해왔던 미국은 충격에 빠진다. 소련의 인공위성이 미국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상상에 일반 국민들에까지 공포가 .. 2021. 10. 7.
아프간은 한국에 무엇이었나 지난 4월14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2층의 트리티룸에 들어섰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계획을 공식 발표하는 자리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뜸 그곳이 2001년 10월7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군의 아프간 침공 사실을 발표한 자리임을 상기시켰다. 9·11테러로 2977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사실도 되새겼다. 회견 전 부시 전 대통령과 통화했음을 공개하면서 아프간에서 복무한 미국 청년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였다고 소개했다. 바이든은 이 자리에서 올해 9·11테러 20주년 전까지 미군이 전원 아프간에서 떠날 것이라고 공표하면서 개인적 소회를 감추지 않았다. 그만큼 9·11테러와 아프간 침공이 미국민들에게 주는 감상이 유별났기 때문일 게다. 자신이 부통령이 된 이후 지금까지 1.. 2021. 8. 26.
도쿄 올림픽 랩소디(狂詩曲) “올림픽은 계속돼야 한다(The Games must go on)”고? 지난해 1월20일 요코하마에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한 80대 홍콩 노인이 닷새 만에 병원을 찾아갈 때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않았다. 배가 홍콩에 정박한 뒤 몸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는 병원을 찾았고, 2월1일 코로나19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불행의 전조였다. 영국 선적 크루즈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거대한 배양접시가 됐다. 사흘 뒤 승객 10명이 확진을 받자 일본 영해에 있던 배는 요코하마항에 선상 격리됐다. 코로나19가 미증유의 대확산으로 급속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3월16일까지 712명의 각국 승객들이 확진을 받자 일본 정부가 머뭇거리는 사이 각국 정부가 나서 자국 승객을 본국으로 실어날랐다. 확진자 중 14명이 .. 2021. 8. 2.
쿠바가 '미국의 품'에 안길 거라고? 아직은 아닌 것 같다... “폭풍우가 사과를 나무에서 떨구면 사과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북미동맹에 올 수밖에 없다.” 존 퀸시 애덤스 제6대 미국 대통령(1825~1829)에게 쿠바는 ‘사과’와 같은 존재였다. 국무장관 시절 애덤스는 스페인 외교장관에게 이런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아이작 뉴턴이 중력을 설명하면서 예를 들었던 사과에 비유한 것이다.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50년 내 쿠바는 미국에 병합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미국은 그러나 사과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제임스 녹스 포크 제11대 대통령(1845~1849)은 스페인으로부터 1억달러에 쿠바를 매입하겠다고 공식 제안했다. 스페인의 답은 “미국에 파느니 바다에 빠뜨리겠다”는 것이었다. 50만명 정도의 흑인노예를 확보할 수 있는 쿠바는 미국에도.. 2021. 7. 19.
"러시아는 강대국", 미-러 관계 리셋(reset)한 바이든의 한마디 ‘서로 이견이 있음을 인정하기(agree to disagree).’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이뤄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지난 16일 제네바 미·러 정상회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상대를 인정하며 공존할 것인가, 계속 갈등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일단 ‘공존’ 쪽으로 선회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정치도, 외교도 결국은 중간쯤에서 접점을 찾는 노력일 터. 당장 점을 찾기 어려우면, 선(red line)을 긋고 각각의 DNA를 인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야 비로소 긍정의 영역을 더불어 탐사할 조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취임한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 관련해 내놓은 공식 입장은 ‘경쟁’과 협력의 병행이었지만, 지난 .. 2021. 6. 25.
'메르켈의 동방정책', 벽에 부딪히는가 “소련과의 냉전은 베를린에서 싸워 이겼다. 다가오는 중국과의 냉전 역시 베를린에서 싸워 이기게 될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지난해 여름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내놓은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분명하던 그즈음 다소 생뚱맞게 읽혔다. 독일, 특히 올가을 총선에서 16년째 유지해온 총리직을 내놓겠다고 선언한 앙겔라 메르켈(67)의 독일은 조 바이든 행정부 취임을 전후해 국제정세의 변화를 가늠하는 이정표가 된 것 같다. ‘메르켈 이후’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변화는 물론, 덤으로 독일 국내 정치의 변화 방향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어쩌면 ‘큰 스위스’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금기를 깨고 ‘존더베크(Sonderweg·특별한 길)’를 선택,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를.. 2021. 5. 14.
바이든 시대 더욱 악화된 미-러 관계, '거대한 체스판'을 누가 흔드는가 ‘나발니는 러시아의 진정한 지도자다.’ 지난 28일자 뉴욕타임스 1면에 게재된 기고문 제목이다. 필자는 저명한 러시아 저널리스트로 런던에 체류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는 올레그 카신(40)이다. 카신은 칼럼에서 “러시아에는 두 명의 지도자가 있다. 한 명은 크렘린궁에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고, 다른 한 명은 감옥에 갇힌 알렉세이 나발니”라고 썼다. 민주주의를 촉구하며 투쟁을 한 여느 야당 정치인들과 달리 나발니는 반부패운동을 벌임으로써 수백명에 불과하던 반푸틴 시위군중을 수천명으로 늘렸다는 상찬도 늘어놓았다. 그런데 나발니는 과연 러시아의 진정한 지도자일까. 서방 언론은 러시아를 중국과 터키, 헝가리 등과 함께 대표적인 ‘권위주의(authoritarian) 국가’로 분.. 2021.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