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타임 인 모스코우! (다음엔 모스크바에서)"
요란한 행사에 '밥'이 없었다.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 컨벤션센터에서 마주 앉은 미·러 정상은 오찬을 취소한 채 3시간 가까이 머리를 맞댔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합의문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공개되지 않았을 뿐 합의는 많았다, 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요한 한두 가지만 남겨 놓고 대부분 의견이 접근했다"고 말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초기 진전'이 있었고, 우크라이나 평화는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우크라이나 정부의 반응 및 후속 회담 결과를 봐야 이번 미·러 정상회담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은 18일 워싱턴을 방문한다. "합의가 나올 때까지 합의된 게 아니다"라면서도 "결국 그들(나토, 젤렌스키)에 달렸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당초 예상됐던 트럼프-푸틴 대통령 간 단독회담 뒤 확대회담 대신 처음부터 3 대 3회의로 진행됐다. 핵심의제 논의로 직행한 것. 미국 측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 러시아 측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과 주미 대사를 지낸 유리 우샤코프 외교정책 보좌관이 참석했다. 현지시간 오후 1시 30분쯤 언론에 공지된 공동 기자회견은 30분쯤 뒤에나 열렸다. 역시 회담이 막판까지 산고를 겪었다는 방증이다.
현지 시각 2시쯤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다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상대적으로 푸틴의 표정이 더 밝아 보였다. 미·러 간 현안은 우크라 전쟁만 있는 게 아니다. 미·러 관계 정상화와 경제협력도 걸려 있다. 푸틴은 주요 현안을 두루 언급했고, 트럼프는 우크라 종전 방안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오늘 협상은 상호 존중의 건설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우리는 유럽과 세계에 러시아의 모든 안보상의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고 되풀이 말해 왔다. 물론 오늘 트럼프 대통령에 동의했듯이 우크라의 안보도 보장돼야 한다. 우리는 우크라에서 평화로 가는 길을 닦을 것이다. 다만 우크라와 유럽 국가들이 이를 건설적으로 인식, 훼방 놓지 않기를 기대한다. '초기 진전'에 타격을 주려는 밀실 거래를 시도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크라 분쟁의 종식에 도달할 수 있다. 빠를수록 좋다." (푸틴) ☞ 회견문 전문
"우리는 오늘 극도로 생산적인 회담을 했다. 많은 점에서 합의에 이르렀고 몇 가지만 남았다. 그중 일부는 중요하지 않은 거다. 큰 문제 두어 개는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한 가지가 아마도 가장 큰 데 합의에 이를 매우 좋은 기회가 있다. 곧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하겠지만, (합의는)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달렸다. 우리는 일주일에 5000~7000명이 죽어가는 것을 멈출 거다. 푸틴 대통령도 나만큼 그걸 원한다." (트럼프)
우크라 평화협정을 맺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영토 문제와 우크라의 안보 보장 문제로 정리할 수 있다. 바로 트럼프가 언급한 아직 합의하지 못한 '한두 가지' 큰 문제들과 관련돼 보인다. 이중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 안전보장에 관한 합의만 거론됐다. 특히 푸틴이 '불가분의 안보' 차원에서 우크라의 안보를 인정한 발언이 주목된다. 한 나라의 안보가 다른 나라의 안보를 해치면 안 된다는 불가분의 안보(Indivisible security)는 러시아가 우크라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면서 제기하는 명분으로 1975년 헬싱키 조약의 근간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영토 교환(land swaps)과 미국의 대우크라 안전보장 제공 여부에 대해 "우리가 (오늘) 협상한 것이고, 큰 틀에서 동의한 사안들"이라고 확인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에 평화를 위한 영토 양보를 압박해 왔다. 러시아군은 헤르손, 자포리자, 도네츠크 일부와 루한스크 등 우크라 영토의 20%가량을 점령하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 안보를 보장해 주는 방식을 놓고 미·러 간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트럼프는 지난 4월 30일 우크라와 재건투자기금(USURIF) 설립 협정을 체결하면서 "미국 기업과 비즈니스 하는 것 자체가 우크라의 안보 보장"이라고 주장했었다. 또 우크라 방어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은 유럽이 맡으라는 입장이다.
푸틴이 2022년 2월 24일 특별군사작전을 시작하면서 내건 전쟁의 명분은 우크라의 중립화(나토 불가입)-비무장화-탈 나치화 등 세 가지였다. 트럼프는 우크라의 나토 가입은 '비현실적'이라며 '중립화'에 사실상 동의하고 있다.
알래스카 정상회담 결과를 전해 들은 유럽 지도자들은 평화를 위한 트럼프의 평화 노력을 평가하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핀란드, 폴란드 정상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16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다. 성명은 △ 우크라의 주권과 영토적 통합성을 효과적으로 방위할 강철같은 안보 보장 △ 우크라 군사력 제한 반대 △ 우크라의 EU 및 나토 가입에 대한 러시아의 거부권 불인정 △ 우크라 영토 결정권 △ 대러 제재 강화 등의 입장을 밝혔다.
공동성명 서명국과 EU 집행위원회는 우크라에 대한 군사 지원을 표방하는 '의지의 연합' 참가국들이다. '의지의 연합'은 그러나 자체적인 종전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 파병은 언감생심. 트럼프-푸틴이 합의하고, 우크라가 동의한다면 유럽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상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18일 다시 백악관을 찾는 젤렌스키와 트럼프의 회담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다.
트럼프는 작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취임하면 24시간 안에 우크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했다. 지난 1월에는 해결 시점을 6개월 뒤로 늦췄다.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선 "분쟁 중에서 가장 해결이 쉽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평화가 도래할 시점을 묻는 말에 "곧(fairly short)"이라고 단언했다.
우크라 관련 정상회담에서 '점심밥'이 제공되지 않은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28일 워싱턴을 찾은 젤렌스키도 J.D. 밴스 부통령, 트럼프와의 공개 설전 끝에 준비된 오찬도 들지 못하고 퇴장해야 했다.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밥때를 넘기면서 회담에 열중한 트럼프-푸틴의 공동 기자회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트럼프는 푸틴에게 "곧 다시 이야기 하자, 아니 어쩌면 곧 다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푸틴은 영어로 "다음엔 모스크바에서(Next time in Moscow)"라고 화답하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젤렌스키 빠진' 회담에서 미러 정상 간 밀착을 상징하는 말로 들렸다. 두 정상은 언론의 질문을 일절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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