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정상이 알래스카 회담에서 사실상 합의한 우크라이나 평화 방안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18일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과의 단독 대화 및 이어진 유럽 지도자들과의 다자 정상회의에서다.
최대 쟁점인 우크라 안전 보장과 영토 문제 해법은 아직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백악관 회의에서는 '유럽이 주도하되, 미국이 돕는 방식'으로 안전 보장 방안을 논의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자 회의 도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러-우 정상회담에 합의했다면서 곧이어 자신이 포함된 3자 정상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로 가는 세 번째 일정인 셈. 트럼프는 회의 뒤 X 계정 게시글에 "거의 4년째 계속되는 전쟁(의 종식)에 매우 좋은 '초기 행보(early step')"라고 강조했다. 우크라 안전 보장과 관련해서는 "여러 유럽 국가가 미국과 협의해 제공할 방안"이라고 적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회의에 참석한 프랑스, 핀란드, 이탈리아, 영국, 독일, 네덜란드 정상 및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트럼프의 노력에 여러 차례 "땡큐"를 연발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트럼프-푸틴의 '알래스카 구상'에 젤렌스키와 유럽 지도자들이 따르는 분위기를 전한 것. 젤렌스키는 회의 뒤 백악관 앞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과 어떤 형식에서건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면서 회담 결과에 따라 3자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아무 조건 없이 (푸틴과) 만나 종전으로 가는 길의 향후 전개에 대해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백악관 다자 정상회의 전 트럼프와의 단독 대화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가 러시아에 납치된 아이들에 관해 푸틴에게 편지를 전해준 데 감사를 표했다. 알래스카 정상회담에 참가했던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푸틴-트럼프가 "40분 동안 솔직하고 매우 건설적인 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푸틴이 통화에서 향후 2주 안에 젤렌스키와 만나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 정상회담은 잘 준비될 필요가 있지만, 푸틴 대통령이 참석할 용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푸틴과 젤렌스키가 2022년 2월 24일 개전 이후 처음 무릎을 맞대는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젤렌스키는 트럼프의 압력에 지난 3월 초에도 푸틴과의 대화 용의를 공개 표명했지만,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를 금지한 자신의 대통령 포고령부터 없애야 할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회의 뒤 "우크라 안전 보장에 대해 '진정한 진전'을 거둔 우호적이고 건설적인 회의였다"고 평했다. 그는 "중요한 결과의 하나로 '의지의 연합'에 참여하는 30여 개국이 우크라 안보를 위해 노력하고 미국과 협의를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우리는 며칠 또는 몇 주 전만 해도 불확실했던 몇 가지 중요한 점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처음으로 안보 계획을 더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우리(유럽)는 미국과 함께 노력하고, 각자가 제공할 협력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젤렌스키는 "안전 보장 세부 방안이 열흘 이내에 마련돼 문서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가지 논의 내용이 확인됐다. 우선 우크라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나토조약 제5항의 집단방위와 유사한 보장을 하는 방안이 다뤄졌다. 우크라가 침공당하면 다른 나라들이 공동 대응한다는 데 잠정적인 합의가 이뤄진 것. 유럽 지도자들은 특히 트럼프가 유사시 미군 파병 가능성을 즉각 배제하지 않은 점에 반색했다고 CNN이 전했다. 트럼프는 어떤 안전 보장도 유럽이 앞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이 있을 것"이라면서 파병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날 회의 전 댄 케인 미 합참의장에게 우크라에 대한 안보 보장 방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의 분쟁에 더 이상 미군을 보내지 않겠다고 강조해 온 트럼프가 아직 입장을 바꾼 건 아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크라 안전 보장을 위해 미국은 유럽 동맹국 및 비유럽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이 선호하던 나토 평화유지군 파병이 러시아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는 만큼 비유럽, 비나토 국가의 참가를 시사하는 발언으로 주목된다.
논의된 또 다른 방안은 일단 현찰부터 챙기는 트럼프식 해법이다. 젤렌스키는 9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무기를 구매키로 했다면서 자금은 유럽 국가들이 지원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미국은 최근에도 패트리엇 시스템을 우크라에 제공하면서 유럽이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을 취했다. 우크라는 또 드론 일부를 자국 내에서 제조하고 일부는 미국에서 구매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영토 문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젤렌스키는 트럼프와의 단독 대화 중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 지도를 보면서 "따뜻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전하면서도 논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이와 관련, 유럽 지도자들이 우크라가 일정한 영토를 양보하는 게 현실적인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마크롱 대통령 등 유럽 지도자들은 "우크라의 영토 양보 문제는 공식 의제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의 주권과 영토 통합을 지지한다는 기존 방침을 강조했다.
"러시아는 강력한 군사 강국"이라고 강조해 온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크림반도와 동부 지역(돈바스) 양보를 종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토 문제에 관한 구체적 해법은 안전 보장 문제가 정리된 뒤 구체성을 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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