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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오 실행메모 "한국이 주한미군 역할 변경 지지성명 내게 하라"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8. 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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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이 대북 억제와 함께 대중국 억제를 더 잘하도록 유연성을 갖추는 것을 지지한다는 정치적 성명을 발표(하게)한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이 16일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있다. 2025.ㅣ78.16. 로이터 연합뉴스

루비오 '실행 메모'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임무 변경(전략적 유연성)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봄 한국과의 무역 협상을 앞두고 설정한 목표의 하나다. 9일 자 '트럼프는 관세의 쓰임새를 국가안보 목표 달성으로 확대한다'는 제목의 WP 보도에서 한국 관련 내용은 8쪽 분량의 나라별 '보충적인 협상 목적'에 수록됐다. 크게 △ 주한미군 임무 변경을 지지하는 한국 정부의 '자발적' 정치 성명 발표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6%였던 국방비를 3.8%로 증액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방위비분담금)을 '100억 달러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 등 세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정치 성명은 미국 측이 미리 협상 초 작성한 '미·한 무역(관세)협정 초안'에 적혀 있었다고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을 비롯해 트럼프 행정부는 문건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문건 내용과 작성 시기, 실제 협상에서 다뤄졌는지를 따로 떼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당한 신빙성이 있지만 작성 시기와 협의 여부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역할 변경과 관련해서는 내용과 형식이 모두 문제다. 주한미군 역할 변경을 공동성명이 아니라 한국 측의 '지지 성명' 형식으로 발표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 간 기존 합의를 뒤엎는 것이기도 하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9일 미국 워싱턴의 미 국무부 청사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한미 전략대화를 갖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6.1.19. 연합뉴스

주한미군 주둔비는 정리한 사안

한미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2006년 1월 19일 양국 외교장관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했다.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한미 전략대화에서 발표한 성명은 두 개 항이다. 제1항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rationale)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는 것이고, 제2항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이행하면서 한국(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 미측 협정 초안은 이 중 '한국민의 의지'를 배제했다. 발표 주체로 한국 정부를 지목한 게 더 고약하다. 한국 정부 스스로 '국민적 우려'를 부인하라는 압력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발적' 지지 성명 발표는 WP가 소개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실행 메모(action memo)' 초안에 담겨 있다. 루비오 장관은 싱가포르(컨테이너 선박 온실가스 배출 제한 반대)와 이스라엘(중국기업의 하이파항 항만운영권 파기)과 함께 한국을 거론했다. 직접적인 안보 문제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 포함된 한국이 유일했다.

국방비 'GDP 3.8%' 인상 요구는 구체적인 숫자가 처음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에 관철한 3.5%보다 0.3%가 높다. 나토는 지난 6월 25일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5%를 결의했지만 이중 "전통적인 국방비는 3.5%(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임"을 분명히 했다. 나토의 인상 결의 이전인 만큼 목표가 유지될 것인지 분명치 않다. 다만 현재 32개 회원국의 3분의 1 정도가 2%에 못 미치는 나토에 비해 한국은 여유가 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및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에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4월 2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왼쪽부터) 안 산업부 장관, 최 부총리,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2025.4.24. 연합뉴스

김태효 '의문의 방미'

나토처럼 향후 10년 동안 인상한다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주둔비 100억 달러 요구는 정부가 선을 긋고 있는 대목이다. 내용 못지않게 작성 시기 및 한국 측 협의 대상도 살펴야 한다.

WP에 따르면 미 행정부가 무역 협상 초기에 부처별 의견을 취합한 시기는 지난 4월 9일 트럼프가 각국에 관세부과를 90일 늦추기로 한 다음 주, 즉 4월 중순이다. 초안 형식으로 메모가 완성된 시점은 5월 1일. 공교롭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더 큰 책임을 맡겠다"며 사의를 밝힌 날이다. 그의 재임 마지막 기간에 미 측이 취합, 작성한 리스트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의문의 마지막 방미'를 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미 '2+2(경제+통상)' 협의 참석을 명분으로 방미했지만, 미국이 안보 관련 요구 또는 협의를 했다면 김 차장이 창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측은 대행 체제와의 협의에 만족감을 표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4월 24일 한미 '2+2' 협의 뒤 "(한국을 비롯한) 정부들이 선거로 가기 전 무역협상의 틀을 만들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밝혔다. "한국 측이 '최상의 제안(a game)'을 들고 왔다"라고도 했다. 베센트의 관찰대로 한 대행 체제가 조기 성과에 애면글면했다면 '자발적' 지지 성명 발표안을 덥석 받았을 공산이 크다. 권한대행 체제의 주요 인사들은 퇴임 전 한미 간 협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관한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평양 무인기 침범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2024.10.22. 연합뉴스

새정부 외교안보팀의 의중은?

문제는 한미 간 경제·안보 패키지 협의의 '틀'이 우리의 정권교체 이후에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2차 방미를 마치고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7월 24일 "미국과 관세뿐 아니라 안보·투자·동맹까지 포함된 패키지딜(묶음타결)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28일 브리핑에서 국방 이슈들이 협상 리스트에 있음을 확인했다. 이재명 정부 외교안보팀이 만지작거리고 있을 우리 측 제안 또는 역제안의 내용은 오리무중이다.

그나마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 SMA) 문제는 무역 협상과 분리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7월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부는 유효하게 타결, 발효된 (지난해) 제12차 SMA를 이행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위 실장을 비롯한 외교안보 라인은 그동안의 안보 협의 내용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지난 30일 공개한 한미 관세협상 타결 내용에 안보는 담기지 않았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기될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트럼프 임기(2029년 1월 20일)까지 양국 관계의 틀을 마련하는 자리다. 주요 의제로 △ 북핵 및 북미 관계와 △ 미국의 한반도 방위 공약 확인 △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계획 발표 △ 동북아 안보환경 변화 및 주한미군 역할 등이 예상된다. 트럼프의 스타일로 미루어 주한미군 관련 구체적인 협의를 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남은 10여 일 동안 양국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들이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어떤 논의를 주고받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트럼프는 협의보다 일방적인 통보를 즐기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한미 간 안보 현안에는 국가 주권과 국민적 자존감이 걸려 있다. 혹여 주한미군 역할 변경과 관련해 한국의 '자발적' 지지 성명 압박이 실제로 들어 온다면 한미 관계는 극심한 혼란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 새 정부 외교안보팀은 적어도 윤석열 정부나 대행 체제와 다름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주권정부의 '머슴' 자격을 얻는다. 진실의 순간이 시나브로 다가온다.

미국에서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방미 결과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5.7.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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