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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들이 설명 안 한 회색지대2 - '마스가 제안'으로 뭘 얻었나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8. 1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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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가 모자는 산업통상자원부 조선해양플랜트과의 아이디어였다. 6월 초 AI 챗 GPT로 디자인한 3~4개 시안 중 골프를 선호하고 빨간색 모자를 즐겨 쓰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해 결정했다. 동대문 섬유업체를 직접 찾아가 제작하고 대한항공에 밀봉된 모자를 전달, 직항편으로 다음날 무사히 협상팀에 전달할 수 있었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 '정책뉴스')

김용범 정책실장이 3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협상 막전막후를 전하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마스가 모자를 바라보고 있다. 2025.8.3. [KBS뉴스 화면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신의 한 수'는 일방의 평가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바둑 상대는 물론 관중이 인정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정부 관료들이 한미 관세협상 타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마스가)' 제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일 KBS 일요진단에 마스가 모자를 가져와 소개했다. "부처 전체 역량을 총동원해서 산업부 국장, 과장, 서기관들이 혼연일체가 돼서 (마스가) 방안을 만들었다. 마스가 모자를 10개 만들어 들고 갔다"고 말했다.

타결 1주일 전 간파한 '협상 주포'

그런데 마스가 제안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 관료들의 전언만 있을 뿐이다. 관중석에 앉아 협상을 지켜본 미국 주요 언론도 침묵하고 있다. 제안 열흘이 다 되도록 국내 언론만 주목하는 기괴한 현상이다. 왜 그럴까? 일단 김 실장의 설명 속에서 답을 찾아본다.

당초 한국 협상팀은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스콧 베센트 미 재무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제이미슨 그리어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 간 '2+2 통상협의'를 준비했다. 양국 재무장관 회담은 두 차례 취소됐다. 7월 25일 워싱턴 재무 회담 참석을 위해 24일 인천공항까지 나갔던 구 부총리는 베센트 장관의 급작스런 회담 연기 통고로 발길을 돌렸다. 1일로 조정한 한미 재무 회담도 관세협상이 이미 타결됐다는 이유로 취소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 협상단과 무역 합의를 타결한 이후 단체사진을 함께 찍고 있다. 2025.7.31 [백악관 엑스 계정] 연합뉴스

한국 측은 미일 관세협상 타결(22일)에 즈음해서야 미국 측 협상 채널이 거의 러트닉 장관임을 확인하고 급히 김정관 산자부 장관을 '주포'로 투입했다. 마스가 제안을 담은 가로세로 1m 크기의 패널을 들고 뉴욕 롱아일랜드의 러트닉 장관 자택을 찾아간 것도 김 장관이었다. 러트닉을 스코틀랜드까지 쫓아간 뒤에야 협상이 타결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의중. 시종일관 투자펀드의 규모에 관심을 집중한 것으로 관찰된다.

김 실장의 KBS 대담문을 뜯어 보면, 마스가 제안을 받은 러트닉의 첫 반응부터 "우리 트럼프 대통령은 사이즈 이런 거를 굉장히 중시하니까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라는 것이었다. 방점이 투자 펀드의 크기였던 것. 롱아일랜드 사저 협의에선 일본 측의 펀드와 관련해 일종의 '보완적인 역할'도 주문했다. 투자 항목으로 우리 측이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원전 중 특히 반도체를 조선과 함께 제안했지만, 미국은 끝까지 '사이즈'에 집중했다. 결국 30일 트럼프를 만난 자리에서 투자 펀드 규모는 "러트닉과 잠정 합의한 안보다 금액이 다소 늘어났다. (김 실장 7월 31일 언론 브리핑)"

협상 물꼬 텄다지만…

구 부총리는 7월 30일 협상 타결 뒤 주미대사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오늘 회담에서 한국의 조선업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미국 내에서 선박 건조가 최대한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같은 날 X 계정 게시글에는 '조선'도 '마스가'도 없었다. '3500억 달러'라는 총액만 돋을새김했다.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의 투자금를 줄 것이며 이는 미국이 소유, 통제하고, 미국 대통령인 나 자신이 (투자대상을) 선택한다"고 강조했다. 협상의 목표가 관세율을 미끼로 최대한 많은 투자펀드를 끌어들이는 것이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31일 미국 국무부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첫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2025.8.1. [외교부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31일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간의 첫 회담 결과 성명에서도 온도차가 노출됐다.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양 장관은 한미 관세 협상의 타결을 축하하고 (…) 특히 조선 협력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구체화해 나가기 위한 범정부 협력체계도 강화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의 31일 자 성명은 논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면서도 조선 협력이나 마스가는 적시하지 않았다. "두 장관은 충만하고 완전한(a full and complete) 무역협상 타결 발표를 환영했다"라면서 "공급망 강화와 다른 무엇보다 핵심·신규 기술 협력을 포함해 양국 공통의 번영을 진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3500억 달러의 투자 펀드는 조선과 반도체, 바이오기술, 에너지 부문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데 그쳤다.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는 한국 관료들의 브리핑을 소개한 로이터 통신 기사를 전재했다. 그나마 티모시 마틴 WSJ 한국 지부장이 31일 팟캐스트에서 "한국 관료들이 '마스가'라는 슬로건을 내놓았다"라고 드물게 언급했다. 미국은 왜 우리 정부와 언론이 그토록 강조하는 마스가의 상징적 효과를 거들떠보지 않을까? 역시 관료들이 설명하지 않고 있는 대목이다.

미 행정부나 미국 언론의 반응이 미지근한 것은 '마스가' 자체가 트럼프가 만든 구호인 데다 지난 4월 9일 백악관의 '해양 패권 복원을 위한 행정명령' 발표를 전후해 수없이 되풀이해서 접한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조선협력은 '기정사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트럼프, 마스가 모자 쓸까?

마스가가 '신의 한 수'가 되는 것은 아마도 트럼프가 한국 관료들이 건네준 빨간색 모자를 직접 쓰는 장면이 나오는 순간이 될 것 같다. 트럼프는 황금색도 좋아한다. 평생 돈을 추구한 그의 욕망이 투영된 색깔일 터. 2016년 11월 대선 직후 이를 간파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뉴욕의 개인 사무실로 트럼프를 찾아가 황금색 홈마 골프채(3755달러·당시 환율로 430만원 상당)를 선물했다. 이듬해 2월 10일 백악관 정상회담 뒤 두 사람은 함께 플로리다 마라라고로 날아가 27홀을 돌았다. 트럼프는 연습 스윙 때 선물받은 황금색 골프채를 휘둘러 보이며 만족감을 표했다. 아베 외교의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홈마 골프채가 중국 공장에서 제작한 사실이 알려진 뒤 일본에 되돌려줬다. 동대문시장에서 만든 마스가 모자가 그런 운명에 처할 우려는 없다. 다만 모자만 국산일 뿐 구호, 개념, 목표가 죄다 미제다. 

한화그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21일 밝혔다. 사진은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 조선소 전경. 2024.6.21. 연합뉴스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 착안한 MASGA 모자를 지지층에 보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모자를 써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마스가 제안 덕에 한국이 대미 관세협상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이점을 확보했느냐이다. 대미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에서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를 박탈당했다. 관료들은 집요하게 '상호관세' 15%를 받은 일본, 유럽연합(EU)과 같은 결과임을 강조한다. 마스가 제안에도 불구하고 일본, EU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하진 못했음을 자인하는 격이다. 비교 대상도 틀렸다.

일본-EU만 비교

대미 FTA 체결국인 캐나다, 멕시코와 비교해야 맞다. 두 나라는 미국의 횡포에도 평균 관세율을 5~8%로 보고 있다. 구 부총리는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 "한미 FTA는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캐나다, 멕시코처럼 FTA 적용품목이 어떤 것인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제 반도체 관세 100%를 떠벌이고 있다.

트럼프와의 협상은 녹록지 않다. 어느 나라도 대미 관세협상을 완결하지 못했다. 큰 틀에서만 합의했을 뿐 세부 논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걸핏하면 골대를 옮기기도 한다. 백악관은 일본과 달리 한국과의 타결 내용 설명자료(Fact Sheets)도 공시하지 않고 있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협상이 진전되면서 미국 측 공식 결과를 보아야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신의 한수'다. 그때까지 한국 관료들의 '마스가 홍보'는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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