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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가 '안보' 도울까? 두 번째 고비는 첫 한미정상회담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8. 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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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공산주의 악마들이 아시아에 남아 있지만, 미국과 한국은 지금까지 철통같은 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내 행정부의 '힘을 통한 평화' 외교정책으로 우리는 한반도를 수호하고 안전, 안정, 번영, 평화의 숭고한 대의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굳게 약속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70기 5급 신임관리자과정 교육생들에게 '국민주권시대, 공직자의 길'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2025.7.14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전 72주년 하루 뒤인 28일 발표한 메시지다. 한미 관세협상에 이어 2주 안에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확인할 안보 공약이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 첫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른 청구서를 내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정전 기념일 메시지에서 3만 2000여 명의 미군이 사망한 '잊힌 전쟁'의 의미를 엄숙하게 되짚었지만, 이틀 뒤 한미 관세협상 결과에 환호작약하며 한국으로부터 추가로 챙길 것을 떠벌였다. X계정 게시글에서 "한국은 미국이 소유, 통제하고 대통령으로서 나 자신이 선택할 투자(펀드)에 3500억 달러를 주고, 1000억 달러를 액화천연가스(LNG)나 다른 에너지 제품 구매에 쓸 것"이라고 자랑했다.

게서 끝이 아니다. 한국은 "자신들의 투자 목적에서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라면서 "2주 내로 백악관 양자회담에 올 이재명 대통령이 그 총액을 발표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정상회담의 의미를 이미 확보한 투자(3500억 달러)·구매(1000억 달러)에 더해 한국의 자발적 투자 총액 공개에 두었다. 끝없는 갈취와 이를 위한 끝없는 협상은 트럼프 시대의 '표준(normal)'이다. 무역협상이건 안보협상이건 그에겐 '쇼핑'일 뿐이다. 대미 투자와 관련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로선 안보 이슈에 더 큰 관심이 집중된다. 애초 우리 정부가 안보·무역을 한 바구니에 담으려던 것은 두 가지를 "한 목에 쇼핑(one stop shopping)하겠다"는 트럼프의 말에 따른 것. 그러나 지난 7월 7일 트럼프가 관세·비관세 협상에 초점을 둔 서한을 보냄에 따라 거기에 맞춰 다시 패키지를 구성, 협상했다. (25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트럼프의 우선순위를 좇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충동적으로 보이는 트럼프의 언행은 기존 질서를 뒤집으려는 철학적 배경에서 나온 지극히 전략적이고 계산된 행동(월터 러셀 미드 WSJ 칼럼니스트)"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협상의 우선순위를 바꾼 건 우리 측이 건넨 안보협상 제안을 읽어본 뒤였을 터. 먼저 패를 내보인 격이다. 

2025년 3월 4일 의회에서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의 종식을 알리는 연설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 (Public Domain)

위 실장이 마코 루비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과 처음 만난 건 지난 6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다. 이 자리에서 통상·안보·동맹의 발전방향과 당면 현안에 대해 폭넓은 협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폭 넓은 협의'는 외교 관료들이 논의 내용을 뭉갤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 7월 6~8일 1차 방미와 20~24일 2차 방미 때 루비오 장관과 대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7·7 급변침 전에 안보 문제와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가장 궁금한 대목이다. 7·7 이후에도 안보 대화를 계속했다.

관료들의 또 다른 습관은 특정 언론에 슬그머니 내용 일부를 흘려 반응을 떠 보는 것. 반응 확인 차원을 떠나 미구에 공개해야 할 부담되는 사안에 대해 미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도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8일 자 한국일보가 보도한 '주한미군 역할 확대, 관세협상 테이블에' 기사가 주목된다. '협상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정부 관계자'는 베일 속에 가려졌던 안보패키지의 내용을 흘렸다. "동맹 현대화 문제가 안보 패키지 틀 안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확인한 익명의 관계자는 동맹 현대화의 내용으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전략적 유연성), 국방비 증액, 방위산업 협력 등을 꼽았다. 흥미롭게도 여론에 민감한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문제는 '기밀누설'에서 제외했다.

지난 24일 2차 방미를 마치고 귀국한 위 실장도 인천공항 발언에서 "무역·통상·안보·동맹 등 한미관계 전반에 걸쳐 총론적 협의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미국을 가게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긴급 호출 탓에 루비오와 만나지 못했지만 "전화로 충분히 협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루비오로부터 "(나와) 이틀간 협의한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 및 관계장관과 충실히 공유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음을 강조했다. 현재로선 한국이 미국에 뭘 제안했는지, 트럼프가 어떤 생각을 갖고 정상회담에 임할지 알 길이 없다. 위 실장의 제안을 공유받은 트럼프의 입을 통해 윤곽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본 국기 이미지. 7월 23일 촬영.. 미국과 일본은 이날 관세협상을 타결했다.  2025.7.23.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열쇳말은 미국 우선주의. 무역에서는 관세를 수단으로 그동안 미국을 벗겨 먹어온 각국을 이번엔 미국이 벗겨 먹겠다는 것이고, 군사전략에선 다른 나라를 지켜주던 방점을 미국 본토 방위로 두겠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나 인권 수호를 위해서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도 강조했다. 동맹과 우방에는 두 가지를 주문하고 있다. 미국은 본토방위에 주력할 테니 러시아, 이란, 북한의 위협은 동맹과 우방이 대처하고, 가상 적국의 미사일이 아메리카 골든돔까지 오지 않도록 동맹·우방이 원거리 방어에 기여하라는 거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지난 3월 '잠정국방전략(NDS) 작성 지침'에서 강조한 대목들이다. 지침은 △중국과 군사적 충돌 대비와 △동맹·파트너의 역할 확대 △미국 방위산업 혁신 △지역통합전투사령부 조정·개편 등을 담았다. NDS의 작성 완료 시점은 8월 말이다.

한미 간에는 주한미군 역할 변경(전략적 유연성)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국방비 인상, 방위비분담금 100억 달러 등의 현안이 걸려 있다. 주한미군에 오랫동안 의존해온 한국에선 이 가운데 미군 감축설 또는 괌 등지로 이전배치설에 관심이 높다. 한미 간 안보 문제는 2주 뒤 정상회담→미국 NDS 발표→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를 통해 확정된다. 이번 정상회담에 각별한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다.

트럼프가 원칙적인 한반도 방위 공약을 강조하는 선에서 정상회담을 끝내고 안보 협의를 뒤로 미룰 수도 있다. 지난 6월 7일 백악관 미일 정상회담이 그랬다. 트럼프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첫 회담에서 대일 안보 공약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유럽 국가들과도 안보·관세를 다른 바구니에 담았다. 같은 달 25일 나토 정상회담에서는 향후 10년 내 회원국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전통적 군사비는 3.5%)로 올리는 합의를 먼저 이끌어 내고 유럽연합(EU) 및 캐나다와 관세협상에 박차를 가했다. 트럼프는 '일괄 쇼핑'이라는 말과 달리 안보-관세를 '분리 징수'해 왔다. 거꾸로 관세협상을 매듭 짓고 정상회담을 하게 된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이 타결된 3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관련 뉴스가 나오는 TV 앞을 지나고 있다. 2025.7.31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 뒤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은 두 번째 고비다. '안보 제안'으로 관세협상을 도우려던 계획은 트럼프의 변덕 탓에 보기 좋게 빗나갔다. 관세 협상 결과가 '안보'를 도울지 주목된다.

트럼프는 정전기념 메시지에서 1기 행정부 당시 공적을 강조했다.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비무장지대(DMZ)를 월경한 걸 자랑스레 회고하며 "대북 최대 압박을 유지하고,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비핵화 협상을 했고, 미국인 인질을 석방했으며, 미국인 영웅들의 유해를 돌려받았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명토박은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죄다 물 건너갔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우리의 국방 전략을 확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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