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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없는 대미협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8. 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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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31일 한미 관세협상의 타결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31일 페이스북 소감문처럼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일부 걷어냈고,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관세를 맞춤으로써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그러나 협상이 끝나지 않았기에 평가 역시 미룰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이 타결된 3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관련 뉴스가 나오는 TV 앞을 지나고 있다. 2025.7.31 연합뉴스

"큰 고비 '하나' 넘겼다"

관세·비관세 부문에 집중된 통상 협상이었다. 협상 상대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에 집중된 것도 그 때문이다. 향후 다른 부문 협상 결과에 따라 성과가 부채가 되거나, 부채가 성과가 될 가능성이 있다. 타결 내용이 수정되거나 엉뚱한 돌출 제안이 들어올 공산도 남아 있다. 이점,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는 이 대통령의 진단이 맞다. 이제 시작인 셈이고, 그런 점에서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중간평가'에 그치는 이유다.

평가에 앞서 이번 협상에서 드러난 위기의 장면들을 되돌아보는 게 최종 결과 예측에 더 유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상궤를 벗어난 미국의 협상 스타일이 불확실성을 높인다. 미국과 상대국 정부의 협상 타결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작 협정문이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한미 양국도 아직 합의문서를 공시하지 않고 있다. 최대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다. 특히 관세율과 대미 투자 규모·이익 배분에 대해 막판 개입, 협상 결과를 흔드는 '변칙 플레이'를 종종 구사했다.

대표적으로 뒤통수를 맞은 나라는 베트남. 협상 단계에서 11%로 잠정 정해졌던 관세율이 다짜고짜 20%로 수정됐다. 대미 투자 규모가 4000억→5000억→5500억 달러로 바뀐 일본과 5000억→6000억 달러로 바뀐 유럽연합(EU)도 마찬가지. 한국 협상단도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가장 우려할 수밖에 없었던 대목이다. 다행히 한미 협상에서는 불확실성이 최소화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브리핑에서 "(트럼프 면담에서 투자 규모가) 러트닉 상무장관과 잠정 합의한 안보다 '다소' 늘었지만, 우려했던 정도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합의했던 투자 규모가 얼마였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 경우보다 질서 있게 진행됐다"는 전언이다.

한화그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21일 밝혔다. 사진은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 조선소 전경. 2024.6.21. 연합뉴스

미국측 입 다물게 한 '신의 한수'

협상 절차와 방식도 통상적으로 국가 간 협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 측은 댓바람에 과도한 요구안을 내밀거나, 우리 측에 최종안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대미 투자 압력에서는 우리 측의 창의적인 역제안이 물꼬를 텄다. 애초 우리 협상단은 기업들이 예고한 투자와 구매 약속을 모아 안을 던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본이 5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김 실장은 "미국 측은 초기에 우리가 도저히 받기 어려운 안을 제시해왔다"고 털어놓았다. 우리 측은 지난 25일 러트닉 장관의 사택 협상에서 '미국 조선(shipbuilding)을 다시 위대하게(MASGA)'를 깜짝 제안했다. 트럼프의 주문(呪文)과도 같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변용한 것.

용어 선택에서부터 지지층에게 성공을 과장하는 트럼프의 '허영'을 정확히 저격했다. 한국이 강점인 조선 분야를 활용할 것이라는 점은 예상됐지만 '마스가'는 컬럼버스의 달걀이었다. 총 3500억 달러의 투자 펀드 가운데 마스가의 덩치가 커질수록 일반 투자는 줄어드는 법.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항목에서 조선 투자를 활용할지 결정하지 못한 미국 측은 되레 "(우리 측의 마스가 투자 규모 제안에)그 정도까지는 안 나온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번 협상의 백미였다고 본다. 물론 상궤를 벗어난 트럼프 스타일 탓에 불안의 씨앗은 남아 있었다.

트럼프는 미일 협상 타결 뒤 "5500억 달러의 일본 측 투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 투자되며, 이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갈 것"이라고 떠벌였다. 미국시간 30일 한미 협상 결과를 자랑한 X 계정 게시글에서도 "한국이 제공할 투자금 3500억 달러는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며 대통령인 나 자신이 (투자대상을)선택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협상팀은 먼저 일본측의 타결 내용을 공부했다. 때마침 워싱턴을 방문한 조현 외교부장관도 팀플레이에 합류했다.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의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일본 측의 경험을 확인했다. 그 결과 고안한 안전장치가 '비망록'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사진은 경기도 평택항 인근에 세워져 있는 수출용 자동차들. 2025.2.11. 연합뉴스

아픈 손가락 '2.5%'

마스가 펀드를 제외하고 2000억 달러의 대미 투자펀드와 관련, △미국이 구매를 보증하고 △안전한 분야에 투자하며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분야여야 한다는 세 개의 메모를 비망록에 적었다. "저도 한 펀드합니다"라며 전문가를 자처한 김 실장이 통상 변호사들과 협의해 고안한 문구. 그러나 한미 관세 협정 문서가 공개되지 않았듯이 비망록 역시 미국측이 서명한 건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엉뚱하게 굴러갈 때 다툴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트럼프와의 협상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가 늘 있다.

미국 상무부는 타결 뒤 소셜미디어(SNS)에 한국 측 펀드의 투자수익의 90%는 "미국에 남는다(retain)"고 적었다. 김 실장은 이와 관련 상식을 내세웠다. 돈을 내는 국가가 있는데 이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간다는 건 "정상적인 문명국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은 자신들이 사업을 선별하고, 보증하며,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면서 "이익금이 한 번에 (한국에)빠져나가는 대신, 미국 계정에 남는다(retain)는 뜻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실제 투자 이행 단계에서 명확히 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의 대미 투자와 관련한 최종 협의는 2주 뒤쯤 백악관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종 결정된다.

한국은 일본이나 EU와 달리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국이다. 대미 수출의 30% 가까이 점유하는 자동차의 경우 일본과 EU는 대미 수출품에 2.5%의 관세를 부담해 왔지만, 한국은 제로(0)관세였다. 똑같이 15% 관세라도 일본과 EU의 추가부담이 12.5%인 반면에 한국은 15%다. 김 실장은 끝까지 12.5%를 주장했지만 관철하지 못한 점을 '아픈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미측은 "우리도 이해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에 대해 15%를 말한다"라면서 끝내 외면했다. 역시 기존 합의문과 법을 무시하는 트럼프 스타일에 부딪힌 것. 한미 FTA 협정은 한국에선 국회 비준을 받는 조약이고, 미국에선 일종의 행정협정이지만 양국 모두에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우병 위험 美쇠고기 전면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미친소싫소, 협정무효' 등 문구와 촛불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숫자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쌀과 쇠고기 수입 개방 압력을 물리친 건 의미 있는 성과다. 특히 우리가 수입용 미국산 쇠고기의 월령을 30개월로 정한 걸 두고 양측 간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우리 측은 한국의 농산물 수입개방률(99.7%)이 높고, 유보항목이 10개 안팎에 불과하며, 미국산 쇠고기의 최대 수입국이라는 점을 들어 물러서지 않았다. 트럼프는 X 계정 게시글에 "한국은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 등을 포함해 미국 상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썼지만, 김 실장은 "정치 지도자의 표현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관세협상을 타결한 모든 나라에 대해 미국산 농산물 수입개방을 '트로피'로 자랑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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