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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협상의 기술' 트럼프의 술수를 감당하다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8. 2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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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전 막후. 정상회담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는 사전 브리핑(22일)과 사후 브리핑(26일)을 겹쳐 읽는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공동성명이 없이 끝난 회담은 더욱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 함께 읽으면 대강의 윤곽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향하는 공군1호기에서 즉석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50분 동안 진행된 간담회에서 언론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국민에게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구상을 소상히 밝혔다. 왼쪽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막전막후  

양국 대통령의 협상 기술도 관전 포인트다. 상대를 댓바람에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뒤 슬그머니 경제적 이익의 빨대를 꽂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돈'이 걸린 구체적인 사안에는 눈을 반짝이지만, '가치'나 '동맹'은 그에게 덜 중요하다. 언론이 질문해도 많은 경우 동문서답, 횡설수설로 일관한다.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은 까탈스러운 트럼프를 상대로 처음 선보인 것. 트럼프와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 맞붙은 첫 대좌였다.

관료들의 설명은 복잡다단했지만,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의 양대 의제였던 경제·통상과 안보 문제, 특히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일거에 해소하거나, 담판을 일단 미루는 데 성공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미리 읽었지만, 트럼프는 '이재명 스타일'을 읽지 못한 채 회담에 임했다.

한미 정상회담 전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정부의 목표와 성과를 언론에 도맡아 설명한 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다. 위 실장은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3대 목표를 △ 경제·통상의 안정화 △한미 동맹의 현대화 △ 새로운 협력 분야의 개척으로 제시했다. 경제·통상은 7.30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어느 정도 안정화를 위한 진전을 이뤘다는 게 그의 진단. 이를 정상 차원의 의지로 격상시켜서 합의를 공고화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7.30 합의는 쌀과 쇠고기 등 농축산물을 제외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한 수입 개방 확대를 요구해 왔다. 관세 합의 당일 X 계정 게시글을 통해 "한국이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 상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힌 장본인이 트럼프였다. 위 실장은 "미 측의 제기로 협의하고 있다"라고 확인하면서 "우리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작 뚜껑이 열리자, 트럼프는 추가 협상을 요구한 건 한국이라고 우겼다. 25일 회담 전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첫마디였다. "내가 듣기에 그들(한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라면서 "한국이 얻을 건 없겠지만 협상은 좋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심각한 토론'을 해야 할 의제로 '무역'을 꼽았다.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일본, 미국 순방을 마치고 28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5.8.28.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통상합의 불확실성 제거 

기실, 트럼프가 댓바람에 7.30 합의 재협상을 거론한 건 전날 이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우리 입장을 천명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협상 결과에 대해 한국에 유리하게 된 것 아니냐는 미국 측의 시각이 분명히 있다. 미국 부처 단위에서는 (합의를) 조금 바꾸자는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국익을 위해)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거나, (기존 합의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일단 합의가 된 것을 쉽게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측의 수정 요구에 "우리도 수정할 게 있다"고 맞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정 여지를 제거한 것.

트럼프는 회담 뒤 "합의와 관련해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가 입장을 고수한 끝에 그들(한국)이 동의했던 합의를 (그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치적으로 돌렸지만, 농축산물 수입 개방 등에 대한 미 측의 재협상 요구에 '대항마'를 내세워 한목에 상쇄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곧이어 1기 행정부 때 한반도 평화 노력을 극구 치하하며 김정은과의 재회를 독려함으로써 트럼프를 무장 해제시켰다.

우리 입장에서 7.30 합의의 문제는 많았다. 무엇보다 자동차 품목관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15%가 된 게 '아픈 손가락'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합의 뒤 한국이 조성할 3500억 달러의 투자펀드와 관련, "수익의 90%는 미국에 남는다(retain)"고 주장한 진의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7.30 합의 뒤 10여 차례 진행된 한미 장관급 추가 협의에서 우리 측이 수정 또는 해명을 요구했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물론 7.30 합의를 문서화하기 전까지 협의는 계속될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가 추가될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명록에 글을 남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에 관심을 보이자 선물하고 있다. 2025.8.26.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위 실장의 사전 브리핑에서 내외신의 질문이 집중됐던 의제는 단연 '동맹의 현대화'였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 있어서 동맹 현대화는 '더 많은 기여'와 '전략적 유연성'이 핵심이다. 더 많은 기여는 미국 무기 구매도 포함하지만, 미·중 간 유사시 한국의 역할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가 있다. 그는 역내 정세의 변화를 예시하며 "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국익에 맞게,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맹) 현대화는 한미 연합을 더 강화하고, 우리 안보를 더 튼튼해지는 방향으로의 현대화"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그러면서 술어를 병렬 배치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한 문장에 넣었다.

'숨은 2%'는 전략적 유연성 논의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기여를 함으로써 우리의 군사적 역량을 키우고, 동맹 현대화로 인해 역내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는 게 아니라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 겹쳐 읽으면 한국의 '더 많은 기여'로 한미동맹과 우리 안보(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게 1차 목표다. 이로 인해 중국과 북한 등이 포함된 역내 긴장을 심화시키지 않겠다는 게 2차 목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전략'이 안 보인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다. 바로 미·중 분쟁에 우리가 연루될 가능성이다. 이 대통령은 역시 기내 간담회에서 "(미 측으로부터 주한미군의)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논의는 우리로서도 필요하다"는 말로 초점을 이동했다. 그 끝에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도 하나의 주권국가이고, 주권국가에서 주권자들,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실망하게 해드리진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민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메시지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책 '거래의 기술'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 앞서 숙독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위 실장의 설명은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간 공동성명의 두 개 항을 풀어서 말한 것일 뿐이다. 먼저 성명 내용을 보면 이렇다. 한미 공동성명 1항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rationale)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이다. 2항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그것(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respects)한다." 여기서 'it'을 두고 혼선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임을 되풀이 확인했었다.

위 실장은 "2006년 합의에 의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존중하는 점이 있다. 기본 입장은 거기에 있다. 기존 자세에 따라 한미 간 공조를 늘려가되 전체 결과물이 한국 안보를 손상하지 않게, '한미 국민'을 저해하지 않게 꾸려나가려 하고, 그 전략에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했다. 말을 복잡하게 하면 어폐가 드러난다. 외교문서는 물론, 외교적 언사도 뉘앙스의 차이가 종종 거대한 차이로 드러난다. 일단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미국민(의 안보)을 저해한다는 말이 걸린다.

관료의 언어, 대통령의 언어

미국은 2017년 한반도 위기 때도 "전쟁은 거기서 벌어지지, 여기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했었다. 상원 군사위 소속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트럼프 지지자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2017년 4월 19일 NBC 방송 '투데이쇼'에서 한 말이다. 미국민의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 성명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위 실장의 설명이다. 2006년 합의가 논의의 출발점이라면서 기존 합의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은 역으로, 기존 합의에서 벗어난 논의가 있음을 시사한다. 논의는 시작했지만 어떠한 진전도 없음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멱록에 남긴 글.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적었다. 2025.8.25.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위 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도 논의되고 있느냐'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논의는 하고 있지만 정상회담 준비 차원에서 논의의 큰 줄기를 논의하는 것"이라면서 "그리 디테일한(상세한)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순환 배치 문제는 지엽적인 디테일이 아니다. 제이미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 측 인사들이 여러 번 강조한 '동맹 현대화'의 핵심이다.

전략적 유연성 논의는 조현 외교장관이 정상회담 사흘 전 미국을 찾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정상회담 의제를 새삼 조율을 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런데 정작 백악관 오벌오피스(트럼프 집무실) 언론행사와 오찬 확대회의에서는 한국의 대미 투자가 핵심의제였다. 안보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최대 미스테리다.

이 대통령의 사전 한 수가 먹혔고, 미측이 이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을 뒤집을 만한 명분을 찾지 못했다고 보는 게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 같다. 미국엔 어차피 한국으로부터 넘치도록 '현찰'을 챙긴 뒤에 대면하는 자리. 굳이 얼굴을 붉히려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때문인지 트럼프는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도중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의 임무 변경과 관련한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한미)는 친구였고,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한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미 '국방전략' 확정 뒤 태클 들어올 듯

위 실장의 26일 결과 브리핑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아예 없었다. 그는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 "동맹의 발전 방향, 우리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협의가 있었고, 공감대를 이뤘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회담 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의 한 대목인 "국방비 증액 등 우리가 더 많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라는 말을 소개했다. 사라진 전략적 유연성 논의가 결국 이번 정상회담의 '숨은 2%'인 셈. 동시에 정상회담 이후 우리 외교·국방 당국자들이 미 측과 무릎을 맞댈 의제이기도 하다.

첫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한국 방위공약 확인을 포함하는 어떠한 발표문도 없이 회담을 마친 이유일 수 있다. 미국은 아직 국방전략(NDS)을 확정하지 않은 데다가 사뭇 결이 다른 한국 대통령을 설득할 논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처럼 한국 국방, 외교 관료들의 팔을 먼저 비튼 뒤 대통령실로 올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면전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한국민의 우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누차 전했다. 이 대통령도 간접 메시지는 전했다. 그러나 적절한 계기에 2006년 공동성명이 논의의 출발선이자, 마지노선임을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이재명-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의 '첫 장'이 쓰인다.

안보 문제에서 큰 흐름을 비켜 갔더라도 이재명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는 많다. 경제·통상 문제는 사전 목표대로 "기존 (7.30) 합의를 뒤집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말을 받아낸 만큼 불확실성을 일부 제거했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보면 분명한 성과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은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특히 방미 전 어떠한 미국 또는 서방 언론과 일방향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게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한국 대통령의 구상을 매번 영어로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이번엔 없었다.

직전 대통령이자 12.3 내란 수괴 피의자는 2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관해 미국 입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해 얼마나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가. 이와 대비됐다. 대통령은 자신의 구상을 누구에게 먼저 전달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취임 30일 첫 기자회견의 주제였던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한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에 먼저 다가가는 디테일의 변화가 바로 미국의 고민을 깊게 하는 협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민 패닉 일소한 위기관리 모델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이나, 북한에 '트럼프 월드' 건설 제안 및 "저도 그곳에서 골프칠 수 있게 해달라"는 대통령의 말도 돋보이는 디테일이었다. 트럼프의 심중을 뚫었다. 여러 명의 아이디어를 모았겠지만 홍보 부문의 성공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피스메이커가 움직이지 않으면, 페이스메이커는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발걸음을 뗄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한미 관계는 어차피 기울어진 마루판이다. 한국 대통령이 선 자리는 늘 미끄러지기 쉽다. 게다가 이번엔 상대가 트럼프였다. 정상회담을 두세 시간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진 마루판에 기름을 뿌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인 것 같다"는 X 계정 '가짜뉴스'가 그것. 밤늦게 정상회담을 기다리던 한국민을 패닉상태에 빠뜨린 작태였다.

이러한 우려를 일거에 해소하고 준비한 디테일로 트럼프를 무장 해제할 수 있는 지도자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다. 이 대통령 1인이 이뤄낸 '위기 관리'의 모델이었다. 또 하나의 고비를 넘겼다. 이제 한미 관계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는 과제가 온전히 남았다.

막전 막후. 정상회담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는 사전 브리핑(22일)과 사후 브리핑(26일)을 겹쳐 읽는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공동성명이 없이 끝난 회담은 더욱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 함께 읽으면 대강의 윤곽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명록에 글을 남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에 관심을 보이자 선물하고 있다. 2025.8.26.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막전막후  

양국 대통령의 협상 기술도 관전 포인트다. 상대를 댓바람에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뒤 슬그머니 경제적 이익의 빨대를 꽂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돈'이 걸린 구체적인 사안에는 눈을 반짝이지만, '가치'나 '동맹'은 그에게 덜 중요하다. 언론이 질문해도 많은 경우 동문서답, 횡설수설로 일관한다.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은 까탈스러운 트럼프를 상대로 처음 선보인 것. 트럼프와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 맞붙은 첫 대좌였다.

관료들의 설명은 복잡다단했지만,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의 양대 의제였던 경제·통상과 안보 문제, 특히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일거에 해소하거나, 담판을 일단 미루는 데 성공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미리 읽었지만, 트럼프는 '이재명 스타일'을 읽지 못한 채 회담에 임했다.

한미 정상회담 전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정부의 목표와 성과를 언론에 도맡아 설명한 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다. 위 실장은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3대 목표를 △ 경제·통상의 안정화 △한미 동맹의 현대화 △ 새로운 협력 분야의 개척으로 제시했다. 경제·통상은 7.30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어느 정도 안정화를 위한 진전을 이뤘다는 게 그의 진단. 이를 정상 차원의 의지로 격상시켜서 합의를 공고화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7.30 합의는 쌀과 쇠고기 등 농축산물을 제외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한 수입 개방 확대를 요구해 왔다. 관세 합의 당일 X 계정 게시글을 통해 "한국이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 상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힌 장본인이 트럼프였다. 위 실장은 "미 측의 제기로 협의하고 있다"라고 확인하면서 "우리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작 뚜껑이 열리자, 트럼프는 추가 협상을 요구한 건 한국이라고 우겼다. 25일 회담 전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첫마디였다. "내가 듣기에 그들(한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라면서 "한국이 얻을 건 없겠지만 협상은 좋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심각한 토론'을 해야 할 의제로 '무역'을 꼽았다.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일본, 미국 순방을 마치고 28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공군1호기에서 내리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5.8.28.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통상합의 불확실성 제거 

기실, 트럼프가 댓바람에 7.30 합의 재협상을 거론한 건 전날 이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우리 입장을 천명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협상 결과에 대해 한국에 유리하게 된 것 아니냐는 미국 측의 시각이 분명히 있다. 미국 부처 단위에서는 (합의를) 조금 바꾸자는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국익을 위해)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거나, (기존 합의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일단 합의가 된 것을 쉽게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측의 수정 요구에 "우리도 수정할 게 있다"고 맞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정 여지를 제거한 것.

트럼프는 회담 뒤 "합의와 관련해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가 입장을 고수한 끝에 그들(한국)이 동의했던 합의를 (그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치적으로 돌렸지만, 농축산물 수입 개방 등에 대한 미 측의 재협상 요구에 '대항마'를 내세워 한목에 상쇄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곧이어 1기 행정부 때 한반도 평화 노력을 극구 치하하며 김정은과의 재회를 독려함으로써 트럼프를 무장 해제시켰다.

우리 입장에서 7.30 합의의 문제는 많았다. 무엇보다 자동차 품목관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15%가 된 게 '아픈 손가락'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합의 뒤 한국이 조성할 3500억 달러의 투자펀드와 관련, "수익의 90%는 미국에 남는다(retain)"고 주장한 진의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7.30 합의 뒤 10여 차례 진행된 한미 장관급 추가 협의에서 우리 측이 수정 또는 해명을 요구했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7.30 합의를 문서화하기 전까지 협의는 계속될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가 추가될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공군1호기 안에서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예고가 없었던 이날 간담회는 50분 동안 진행되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구상을 밝히는 자리였다. 대통령 왼쪽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서 있다. 2025.8.24.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위 실장의 사전 브리핑에서 내외신의 질문이 집중됐던 의제는 단연 '동맹의 현대화'였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 있어서 동맹 현대화는 '더 많은 기여'와 '전략적 유연성'이 핵심이다. 더 많은 기여는 미국 무기 구매도 포함하지만, 미·중 간 유사시 한국의 역할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가 있다. 그는 역내 정세의 변화를 예시하며 "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국익에 맞게,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맹) 현대화는 한미 연합을 더 강화하고, 우리 안보를 더 튼튼해지는 방향으로의 현대화"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그러면서 술어를 병렬 배치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한 문장에 넣었다.

'숨은 2%'는 전략적 유연성 논의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기여를 함으로써 우리의 군사적 역량을 키우고, 동맹 현대화로 인해 역내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는 게 아니라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 겹쳐 읽으면 한국의 '더 많은 기여'로 한미동맹과 우리 안보(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게 1차 목표다. 이로 인해 중국과 북한 등이 포함된 역내 긴장을 심화시키지 않겠다는 게 2차 목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전략'이 안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책 '거래의 기술'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 앞서 숙독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다. 바로 미·중 분쟁에 우리가 연루될 가능성이다. 이 대통령은 역시 기내 간담회에서 "(미 측으로부터 주한미군의)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논의는 우리로서도 필요하다"는 말로 초점을 이동했다. 그 끝에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도 하나의 주권국가이고, 주권국가에서 주권자들,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실망하게 해드리진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민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메시지였다.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위 실장의 설명은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간 공동성명의 두 개 항을 풀어서 말한 것일 뿐이다. 먼저 성명 내용을 보면 이렇다. 한미 공동성명 1항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rationale)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이다. 2항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그것(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respects)한다." 여기서 'it'을 두고 혼선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임을 되풀이 확인했었다.

위 실장은 "2006년 합의에 의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존중하는 점이 있다. 기본 입장은 거기에 있다. 기존 자세에 따라 한미 간 공조를 늘려가되 전체 결과물이 한국 안보를 손상하지 않게, '한미 국민'을 저해하지 않게 꾸려나가려 하고, 그 전략에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했다. 말을 복잡하게 하면 어폐가 드러난다. 외교문서는 물론, 외교적 언사도 뉘앙스의 차이가 종종 거대한 차이로 드러난다. 일단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미국민(의 안보)을 저해한다는 말이 걸린다.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탑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2025.8.27 연합뉴스

관료의 언어, 대통령의 언어

미국은 2017년 한반도 위기 때도 "전쟁은 거기서 벌어지지, 여기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했었다. 상원 군사위 소속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트럼프 지지자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2017년 4월 19일 NBC 방송 '투데이쇼'에서 한 말이다. 미국민의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 성명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위 실장의 설명이다. 2006년 합의가 논의의 출발점이라면서 기존 합의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은 역으로, 기존 합의에서 벗어난 논의가 있음을 시사한다. 논의는 시작했지만 어떠한 진전도 없음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위 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도 논의되고 있느냐'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논의는 하고 있지만 정상회담 준비 차원에서 논의의 큰 줄기를 논의하는 것"이라면서 "그리 디테일한(상세한)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순환 배치 문제는 지엽적인 디테일이 아니다. 제이미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 측 인사들이 여러 번 강조한 '동맹 현대화'의 핵심이다.

전략적 유연성 논의는 조현 외교장관이 정상회담 사흘 전 미국을 찾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정상회담 의제를 새삼 조율을 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런데 정작 백악관 오벌오피스(트럼프 집무실) 언론행사와 오찬 확대회의에서는 한국의 대미 투자가 핵심의제였다. 안보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최대 미스테리다.

이 대통령의 사전 한 수가 먹혔고, 미측이 이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을 뒤집을 만한 명분을 찾지 못했다고 보는 게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 같다. 미국엔 어차피 한국으로부터 넘치도록 '현찰'을 챙긴 뒤에 대면하는 자리. 굳이 얼굴을 붉히려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때문인지 트럼프는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도중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의 임무 변경과 관련한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한미)는 친구였고,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한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치켜세우면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장면. (Public Domain)

미 '국방전략' 확정 뒤 태클 들어올 듯

위 실장의 26일 결과 브리핑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아예 없었다. 그는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 "동맹의 발전 방향, 우리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협의가 있었고, 공감대를 이뤘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회담 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의 한 대목인 "국방비 증액 등 우리가 더 많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라는 말을 소개했다. 사라진 전략적 유연성 논의가 결국 이번 정상회담의 '숨은 2%'인 셈. 동시에 정상회담 이후 우리 외교·국방 당국자들이 미 측과 무릎을 맞댈 의제이기도 하다.

첫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한국 방위공약 확인을 포함하는 어떠한 발표문도 없이 회담을 마친 이유일 수 있다. 미국은 아직 국방전략(NDS)을 확정하지 않은 데다가 사뭇 결이 다른 한국 대통령을 설득할 논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처럼 한국 국방, 외교 관료들의 팔을 먼저 비튼 뒤 대통령실로 올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면전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한국민의 우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누차 전했다. 이 대통령도 간접 메시지는 전했다. 그러나 적절한 계기에 2006년 공동성명이 논의의 출발선이자, 마지노선임을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이재명-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의 '첫 장'이 쓰인다.

안보 문제에서 큰 흐름을 비켜 갔더라도 이재명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는 많다. 경제·통상 문제는 사전 목표대로 "기존 (7.30) 합의를 뒤집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말을 받아낸 만큼 불확실성을 일부 제거했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보면 분명한 성과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은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특히 방미 전 어떠한 미국 또는 서방 언론과 일방향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게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한국 대통령의 구상을 매번 영어로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이번엔 없었다.

직전 대통령이자 12.3 내란 수괴 피의자는 2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관해 미국 입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해 얼마나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가. 이와 대비됐다. 대통령은 자신의 구상을 누구에게 먼저 전달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취임 30일 첫 기자회견의 주제였던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한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에 먼저 다가가는 디테일의 변화가 바로 미국의 고민을 깊게 하는 협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멱록에 남긴 글.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적었다. 2025.8.25.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패닉상태 일소한 대처의 비결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이나, 북한에 '트럼프 월드' 건설 제안 및 "저도 그곳에서 골프칠 수 있게 해달라"는 대통령의 말도 돋보이는 디테일이었다. 트럼프의 심중을 뚫었다. 여러 명의 아이디어를 모았겠지만 홍보 부문의 성공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피스메이커가 움직이지 않으면, 페이스메이커는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발걸음을 뗄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한미 관계는 어차피 기울어진 마루판이다. 한국 대통령이 선 자리는 늘 미끄러지기 쉽다. 게다가 이번엔 상대가 트럼프였다. 정상회담을 두세 시간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진 마루판에 기름을 뿌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인 것 같다"는 X 계정 '가짜뉴스'가 그것. 밤늦게 정상회담을 기다리던 한국민을 패닉상태에 빠뜨린 작태였다.

이러한 우려를 일거에 해소하고 준비한 디테일로 트럼프를 무장 해제할 수 있는 지도자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다. 이 대통령 1인이 이뤄낸 '위기 관리'의 모델이었다. 또 하나의 고비를 넘겼다. 이제 한미 관계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는 과제가 온전히 남았다.

막전 막후. 정상회담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는 사전 브리핑(22일)과 사후 브리핑(26일)을 겹쳐 읽는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공동성명이 없이 끝난 회담은 더욱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 함께 읽으면 대강의 윤곽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명록에 글을 남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에 관심을 보이자 선물하고 있다. 2025.8.26.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막전막후  

양국 대통령의 협상 기술도 관전 포인트다. 상대를 댓바람에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뒤 슬그머니 경제적 이익의 빨대를 꽂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돈'이 걸린 구체적인 사안에는 눈을 반짝이지만, '가치'나 '동맹'은 그에게 덜 중요하다. 언론이 질문해도 많은 경우 동문서답, 횡설수설로 일관한다.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은 까탈스러운 트럼프를 상대로 처음 선보인 것. 트럼프와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 맞붙은 첫 대좌였다.

관료들의 설명은 복잡다단했지만,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의 양대 의제였던 경제·통상과 안보 문제, 특히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일거에 해소하거나, 담판을 일단 미루는 데 성공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미리 읽었지만, 트럼프는 '이재명 스타일'을 읽지 못한 채 회담에 임했다.

한미 정상회담 전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정부의 목표와 성과를 언론에 도맡아 설명한 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다. 위 실장은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3대 목표를 △ 경제·통상의 안정화 △한미 동맹의 현대화 △ 새로운 협력 분야의 개척으로 제시했다. 경제·통상은 7.30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어느 정도 안정화를 위한 진전을 이뤘다는 게 그의 진단. 이를 정상 차원의 의지로 격상시켜서 합의를 공고화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7.30 합의는 쌀과 쇠고기 등 농축산물을 제외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한 수입 개방 확대를 요구해 왔다. 관세 합의 당일 X 계정 게시글을 통해 "한국이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 상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힌 장본인이 트럼프였다. 위 실장은 "미 측의 제기로 협의하고 있다"라고 확인하면서 "우리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작 뚜껑이 열리자, 트럼프는 추가 협상을 요구한 건 한국이라고 우겼다. 25일 회담 전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첫마디였다. "내가 듣기에 그들(한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라면서 "한국이 얻을 건 없겠지만 협상은 좋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심각한 토론'을 해야 할 의제로 '무역'을 꼽았다.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일본, 미국 순방을 마치고 28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공군1호기에서 내리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5.8.28.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통상합의 불확실성 제거 

기실, 트럼프가 댓바람에 7.30 합의 재협상을 거론한 건 전날 이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우리 입장을 천명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협상 결과에 대해 한국에 유리하게 된 것 아니냐는 미국 측의 시각이 분명히 있다. 미국 부처 단위에서는 (합의를) 조금 바꾸자는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국익을 위해)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거나, (기존 합의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일단 합의가 된 것을 쉽게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측의 수정 요구에 "우리도 수정할 게 있다"고 맞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정 여지를 제거한 것.

트럼프는 회담 뒤 "합의와 관련해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가 입장을 고수한 끝에 그들(한국)이 동의했던 합의를 (그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치적으로 돌렸지만, 농축산물 수입 개방 등에 대한 미 측의 재협상 요구에 '대항마'를 내세워 한목에 상쇄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곧이어 1기 행정부 때 한반도 평화 노력을 극구 치하하며 김정은과의 재회를 독려함으로써 트럼프를 무장 해제시켰다.

우리 입장에서 7.30 합의의 문제는 많았다. 무엇보다 자동차 품목관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15%가 된 게 '아픈 손가락'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합의 뒤 한국이 조성할 3500억 달러의 투자펀드와 관련, "수익의 90%는 미국에 남는다(retain)"고 주장한 진의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7.30 합의 뒤 10여 차례 진행된 한미 장관급 추가 협의에서 우리 측이 수정 또는 해명을 요구했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7.30 합의를 문서화하기 전까지 협의는 계속될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가 추가될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공군1호기 안에서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예고가 없었던 이날 간담회는 50분 동안 진행되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구상을 밝히는 자리였다. 대통령 왼쪽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서 있다. 2025.8.24.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위 실장의 사전 브리핑에서 내외신의 질문이 집중됐던 의제는 단연 '동맹의 현대화'였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 있어서 동맹 현대화는 '더 많은 기여'와 '전략적 유연성'이 핵심이다. 더 많은 기여는 미국 무기 구매도 포함하지만, 미·중 간 유사시 한국의 역할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가 있다. 그는 역내 정세의 변화를 예시하며 "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국익에 맞게,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맹) 현대화는 한미 연합을 더 강화하고, 우리 안보를 더 튼튼해지는 방향으로의 현대화"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그러면서 술어를 병렬 배치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한 문장에 넣었다.

'숨은 2%'는 전략적 유연성 논의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기여를 함으로써 우리의 군사적 역량을 키우고, 동맹 현대화로 인해 역내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는 게 아니라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 겹쳐 읽으면 한국의 '더 많은 기여'로 한미동맹과 우리 안보(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게 1차 목표다. 이로 인해 중국과 북한 등이 포함된 역내 긴장을 심화시키지 않겠다는 게 2차 목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전략'이 안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책 '거래의 기술'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 앞서 숙독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다. 바로 미·중 분쟁에 우리가 연루될 가능성이다. 이 대통령은 역시 기내 간담회에서 "(미 측으로부터 주한미군의)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논의는 우리로서도 필요하다"는 말로 초점을 이동했다. 그 끝에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도 하나의 주권국가이고, 주권국가에서 주권자들,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실망하게 해드리진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민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메시지였다.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위 실장의 설명은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간 공동성명의 두 개 항을 풀어서 말한 것일 뿐이다. 먼저 성명 내용을 보면 이렇다. 한미 공동성명 1항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rationale)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이다. 2항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그것(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respects)한다." 여기서 'it'을 두고 혼선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임을 되풀이 확인했었다.

위 실장은 "2006년 합의에 의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존중하는 점이 있다. 기본 입장은 거기에 있다. 기존 자세에 따라 한미 간 공조를 늘려가되 전체 결과물이 한국 안보를 손상하지 않게, '한미 국민'을 저해하지 않게 꾸려나가려 하고, 그 전략에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했다. 말을 복잡하게 하면 어폐가 드러난다. 외교문서는 물론, 외교적 언사도 뉘앙스의 차이가 종종 거대한 차이로 드러난다. 일단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미국민(의 안보)을 저해한다는 말이 걸린다.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탑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2025.8.27 연합뉴스

관료의 언어, 대통령의 언어

미국은 2017년 한반도 위기 때도 "전쟁은 거기서 벌어지지, 여기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했었다. 상원 군사위 소속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트럼프 지지자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2017년 4월 19일 NBC 방송 '투데이쇼'에서 한 말이다. 미국민의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 성명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위 실장의 설명이다. 2006년 합의가 논의의 출발점이라면서 기존 합의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은 역으로, 기존 합의에서 벗어난 논의가 있음을 시사한다. 논의는 시작했지만 어떠한 진전도 없음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위 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도 논의되고 있느냐'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논의는 하고 있지만 정상회담 준비 차원에서 논의의 큰 줄기를 논의하는 것"이라면서 "그리 디테일한(상세한)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순환 배치 문제는 지엽적인 디테일이 아니다. 제이미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 측 인사들이 여러 번 강조한 '동맹 현대화'의 핵심이다.

전략적 유연성 논의는 조현 외교장관이 정상회담 사흘 전 미국을 찾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정상회담 의제를 새삼 조율을 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런데 정작 백악관 오벌오피스(트럼프 집무실) 언론행사와 오찬 확대회의에서는 한국의 대미 투자가 핵심의제였다. 안보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최대 미스테리다.

이 대통령의 사전 한 수가 먹혔고, 미측이 이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을 뒤집을 만한 명분을 찾지 못했다고 보는 게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 같다. 미국엔 어차피 한국으로부터 넘치도록 '현찰'을 챙긴 뒤에 대면하는 자리. 굳이 얼굴을 붉히려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때문인지 트럼프는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도중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의 임무 변경과 관련한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한미)는 친구였고,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한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치켜세우면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장면. (Public Domain)

미 '국방전략' 확정 뒤 태클 들어올 듯

위 실장의 26일 결과 브리핑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아예 없었다. 그는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 "동맹의 발전 방향, 우리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협의가 있었고, 공감대를 이뤘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회담 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의 한 대목인 "국방비 증액 등 우리가 더 많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라는 말을 소개했다. 사라진 전략적 유연성 논의가 결국 이번 정상회담의 '숨은 2%'인 셈. 동시에 정상회담 이후 우리 외교·국방 당국자들이 미 측과 무릎을 맞댈 의제이기도 하다.

첫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한국 방위공약 확인을 포함하는 어떠한 발표문도 없이 회담을 마친 이유일 수 있다. 미국은 아직 국방전략(NDS)을 확정하지 않은 데다가 사뭇 결이 다른 한국 대통령을 설득할 논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처럼 한국 국방, 외교 관료들의 팔을 먼저 비튼 뒤 대통령실로 올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면전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한국민의 우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누차 전했다. 이 대통령도 간접 메시지는 전했다. 그러나 적절한 계기에 2006년 공동성명이 논의의 출발선이자, 마지노선임을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이재명-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의 '첫 장'이 쓰인다.

안보 문제에서 큰 흐름을 비켜 갔더라도 이재명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는 많다. 경제·통상 문제는 사전 목표대로 "기존 (7.30) 합의를 뒤집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말을 받아낸 만큼 불확실성을 일부 제거했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보면 분명한 성과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은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특히 방미 전 어떠한 미국 또는 서방 언론과 일방향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게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한국 대통령의 구상을 매번 영어로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이번엔 없었다.

직전 대통령이자 12.3 내란 수괴 피의자는 2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관해 미국 입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해 얼마나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가. 이와 대비됐다. 대통령은 자신의 구상을 누구에게 먼저 전달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취임 30일 첫 기자회견의 주제였던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한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에 먼저 다가가는 디테일의 변화가 바로 미국의 고민을 깊게 하는 협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멱록에 남긴 글.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적었다. 2025.8.25.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패닉상태 일소한 대처의 비결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이나, 북한에 '트럼프 월드' 건설 제안 및 "저도 그곳에서 골프칠 수 있게 해달라"는 대통령의 말도 돋보이는 디테일이었다. 트럼프의 심중을 뚫었다. 여러 명의 아이디어를 모았겠지만 홍보 부문의 성공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피스메이커가 움직이지 않으면, 페이스메이커는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발걸음을 뗄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한미 관계는 어차피 기울어진 마루판이다. 한국 대통령이 선 자리는 늘 미끄러지기 쉽다. 게다가 이번엔 상대가 트럼프였다. 정상회담을 두세 시간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진 마루판에 기름을 뿌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인 것 같다"는 X 계정 '가짜뉴스'가 그것. 밤늦게 정상회담을 기다리던 한국민을 패닉상태에 빠뜨린 작태였다.

이러한 우려를 일거에 해소하고 준비한 디테일로 트럼프를 무장 해제할 수 있는 지도자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다. 이 대통령 1인이 이뤄낸 '위기 관리'의 모델이었다. 또 하나의 고비를 넘겼다. 이제 한미 관계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는 과제가 온전히 남았다.

막전 막후. 정상회담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는 사전 브리핑(22일)과 사후 브리핑(26일)을 겹쳐 읽는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공동성명이 없이 끝난 회담은 더욱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 함께 읽으면 대강의 윤곽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명록에 글을 남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에 관심을 보이자 선물하고 있다. 2025.8.26.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막전막후  

양국 대통령의 협상 기술도 관전 포인트다. 상대를 댓바람에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뒤 슬그머니 경제적 이익의 빨대를 꽂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돈'이 걸린 구체적인 사안에는 눈을 반짝이지만, '가치'나 '동맹'은 그에게 덜 중요하다. 언론이 질문해도 많은 경우 동문서답, 횡설수설로 일관한다.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은 까탈스러운 트럼프를 상대로 처음 선보인 것. 트럼프와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 맞붙은 첫 대좌였다.

관료들의 설명은 복잡다단했지만,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의 양대 의제였던 경제·통상과 안보 문제, 특히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일거에 해소하거나, 담판을 일단 미루는 데 성공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미리 읽었지만, 트럼프는 '이재명 스타일'을 읽지 못한 채 회담에 임했다.

한미 정상회담 전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정부의 목표와 성과를 언론에 도맡아 설명한 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다. 위 실장은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3대 목표를 △ 경제·통상의 안정화 △한미 동맹의 현대화 △ 새로운 협력 분야의 개척으로 제시했다. 경제·통상은 7.30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어느 정도 안정화를 위한 진전을 이뤘다는 게 그의 진단. 이를 정상 차원의 의지로 격상시켜서 합의를 공고화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7.30 합의는 쌀과 쇠고기 등 농축산물을 제외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한 수입 개방 확대를 요구해 왔다. 관세 합의 당일 X 계정 게시글을 통해 "한국이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 상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힌 장본인이 트럼프였다. 위 실장은 "미 측의 제기로 협의하고 있다"라고 확인하면서 "우리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작 뚜껑이 열리자, 트럼프는 추가 협상을 요구한 건 한국이라고 우겼다. 25일 회담 전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첫마디였다. "내가 듣기에 그들(한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라면서 "한국이 얻을 건 없겠지만 협상은 좋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심각한 토론'을 해야 할 의제로 '무역'을 꼽았다.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일본, 미국 순방을 마치고 28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공군1호기에서 내리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5.8.28.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통상합의 불확실성 제거 

기실, 트럼프가 댓바람에 7.30 합의 재협상을 거론한 건 전날 이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우리 입장을 천명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협상 결과에 대해 한국에 유리하게 된 것 아니냐는 미국 측의 시각이 분명히 있다. 미국 부처 단위에서는 (합의를) 조금 바꾸자는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국익을 위해)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거나, (기존 합의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일단 합의가 된 것을 쉽게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측의 수정 요구에 "우리도 수정할 게 있다"고 맞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정 여지를 제거한 것.

트럼프는 회담 뒤 "합의와 관련해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가 입장을 고수한 끝에 그들(한국)이 동의했던 합의를 (그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치적으로 돌렸지만, 농축산물 수입 개방 등에 대한 미 측의 재협상 요구에 '대항마'를 내세워 한목에 상쇄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곧이어 1기 행정부 때 한반도 평화 노력을 극구 치하하며 김정은과의 재회를 독려함으로써 트럼프를 무장 해제시켰다.

우리 입장에서 7.30 합의의 문제는 많았다. 무엇보다 자동차 품목관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15%가 된 게 '아픈 손가락'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합의 뒤 한국이 조성할 3500억 달러의 투자펀드와 관련, "수익의 90%는 미국에 남는다(retain)"고 주장한 진의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7.30 합의 뒤 10여 차례 진행된 한미 장관급 추가 협의에서 우리 측이 수정 또는 해명을 요구했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7.30 합의를 문서화하기 전까지 협의는 계속될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가 추가될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공군1호기 안에서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예고가 없었던 이날 간담회는 50분 동안 진행되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구상을 밝히는 자리였다. 대통령 왼쪽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서 있다. 2025.8.24.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위 실장의 사전 브리핑에서 내외신의 질문이 집중됐던 의제는 단연 '동맹의 현대화'였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 있어서 동맹 현대화는 '더 많은 기여'와 '전략적 유연성'이 핵심이다. 더 많은 기여는 미국 무기 구매도 포함하지만, 미·중 간 유사시 한국의 역할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가 있다. 그는 역내 정세의 변화를 예시하며 "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국익에 맞게,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맹) 현대화는 한미 연합을 더 강화하고, 우리 안보를 더 튼튼해지는 방향으로의 현대화"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그러면서 술어를 병렬 배치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한 문장에 넣었다.

'숨은 2%'는 전략적 유연성 논의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기여를 함으로써 우리의 군사적 역량을 키우고, 동맹 현대화로 인해 역내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는 게 아니라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 겹쳐 읽으면 한국의 '더 많은 기여'로 한미동맹과 우리 안보(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게 1차 목표다. 이로 인해 중국과 북한 등이 포함된 역내 긴장을 심화시키지 않겠다는 게 2차 목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전략'이 안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책 '거래의 기술'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 앞서 숙독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다. 바로 미·중 분쟁에 우리가 연루될 가능성이다. 이 대통령은 역시 기내 간담회에서 "(미 측으로부터 주한미군의)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논의는 우리로서도 필요하다"는 말로 초점을 이동했다. 그 끝에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도 하나의 주권국가이고, 주권국가에서 주권자들,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실망하게 해드리진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민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메시지였다.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위 실장의 설명은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간 공동성명의 두 개 항을 풀어서 말한 것일 뿐이다. 먼저 성명 내용을 보면 이렇다. 한미 공동성명 1항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rationale)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이다. 2항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그것(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respects)한다." 여기서 'it'을 두고 혼선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임을 되풀이 확인했었다.

위 실장은 "2006년 합의에 의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존중하는 점이 있다. 기본 입장은 거기에 있다. 기존 자세에 따라 한미 간 공조를 늘려가되 전체 결과물이 한국 안보를 손상하지 않게, '한미 국민'을 저해하지 않게 꾸려나가려 하고, 그 전략에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했다. 말을 복잡하게 하면 어폐가 드러난다. 외교문서는 물론, 외교적 언사도 뉘앙스의 차이가 종종 거대한 차이로 드러난다. 일단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미국민(의 안보)을 저해한다는 말이 걸린다.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탑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2025.8.27 연합뉴스

관료의 언어, 대통령의 언어

미국은 2017년 한반도 위기 때도 "전쟁은 거기서 벌어지지, 여기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했었다. 상원 군사위 소속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트럼프 지지자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2017년 4월 19일 NBC 방송 '투데이쇼'에서 한 말이다. 미국민의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 성명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위 실장의 설명이다. 2006년 합의가 논의의 출발점이라면서 기존 합의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은 역으로, 기존 합의에서 벗어난 논의가 있음을 시사한다. 논의는 시작했지만 어떠한 진전도 없음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위 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도 논의되고 있느냐'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논의는 하고 있지만 정상회담 준비 차원에서 논의의 큰 줄기를 논의하는 것"이라면서 "그리 디테일한(상세한)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순환 배치 문제는 지엽적인 디테일이 아니다. 제이미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 측 인사들이 여러 번 강조한 '동맹 현대화'의 핵심이다.

전략적 유연성 논의는 조현 외교장관이 정상회담 사흘 전 미국을 찾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정상회담 의제를 새삼 조율을 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런데 정작 백악관 오벌오피스(트럼프 집무실) 언론행사와 오찬 확대회의에서는 한국의 대미 투자가 핵심의제였다. 안보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최대 미스테리다.

이 대통령의 사전 한 수가 먹혔고, 미측이 이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을 뒤집을 만한 명분을 찾지 못했다고 보는 게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 같다. 미국엔 어차피 한국으로부터 넘치도록 '현찰'을 챙긴 뒤에 대면하는 자리. 굳이 얼굴을 붉히려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때문인지 트럼프는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도중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의 임무 변경과 관련한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한미)는 친구였고,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한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치켜세우면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장면. (Public Domain)

미 '국방전략' 확정 뒤 태클 들어올 듯

위 실장의 26일 결과 브리핑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아예 없었다. 그는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 "동맹의 발전 방향, 우리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협의가 있었고, 공감대를 이뤘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회담 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의 한 대목인 "국방비 증액 등 우리가 더 많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라는 말을 소개했다. 사라진 전략적 유연성 논의가 결국 이번 정상회담의 '숨은 2%'인 셈. 동시에 정상회담 이후 우리 외교·국방 당국자들이 미 측과 무릎을 맞댈 의제이기도 하다.

첫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한국 방위공약 확인을 포함하는 어떠한 발표문도 없이 회담을 마친 이유일 수 있다. 미국은 아직 국방전략(NDS)을 확정하지 않은 데다가 사뭇 결이 다른 한국 대통령을 설득할 논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처럼 한국 국방, 외교 관료들의 팔을 먼저 비튼 뒤 대통령실로 올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면전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한국민의 우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누차 전했다. 이 대통령도 간접 메시지는 전했다. 그러나 적절한 계기에 2006년 공동성명이 논의의 출발선이자, 마지노선임을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이재명-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의 '첫 장'이 쓰인다.

안보 문제에서 큰 흐름을 비켜 갔더라도 이재명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는 많다. 경제·통상 문제는 사전 목표대로 "기존 (7.30) 합의를 뒤집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말을 받아낸 만큼 불확실성을 일부 제거했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보면 분명한 성과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은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특히 방미 전 어떠한 미국 또는 서방 언론과 일방향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게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한국 대통령의 구상을 매번 영어로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이번엔 없었다.

직전 대통령이자 12.3 내란 수괴 피의자는 2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관해 미국 입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해 얼마나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가. 이와 대비됐다. 대통령은 자신의 구상을 누구에게 먼저 전달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취임 30일 첫 기자회견의 주제였던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한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에 먼저 다가가는 디테일의 변화가 바로 미국의 고민을 깊게 하는 협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멱록에 남긴 글.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적었다. 2025.8.25.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패닉상태 일소한 대처의 비결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이나, 북한에 '트럼프 월드' 건설 제안 및 "저도 그곳에서 골프칠 수 있게 해달라"는 대통령의 말도 돋보이는 디테일이었다. 트럼프의 심중을 뚫었다. 여러 명의 아이디어를 모았겠지만 홍보 부문의 성공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피스메이커가 움직이지 않으면, 페이스메이커는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발걸음을 뗄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한미 관계는 어차피 기울어진 마루판이다. 한국 대통령이 선 자리는 늘 미끄러지기 쉽다. 게다가 이번엔 상대가 트럼프였다. 정상회담을 두세 시간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진 마루판에 기름을 뿌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인 것 같다"는 X 계정 '가짜뉴스'가 그것. 밤늦게 정상회담을 기다리던 한국민을 패닉상태에 빠뜨린 작태였다.

이러한 우려를 일거에 해소하고 준비한 디테일로 트럼프를 무장 해제할 수 있는 지도자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다. 이 대통령 1인이 이뤄낸 '위기 관리'의 모델이었다. 또 하나의 고비를 넘겼다. 이제 한미 관계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는 과제가 온전히 남았다.

막전 막후. 정상회담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는 사전 브리핑(22일)과 사후 브리핑(26일)을 겹쳐 읽는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공동성명이 없이 끝난 회담은 더욱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 함께 읽으면 대강의 윤곽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명록에 글을 남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에 관심을 보이자 선물하고 있다. 2025.8.26.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막전막후  

양국 대통령의 협상 기술도 관전 포인트다. 상대를 댓바람에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뒤 슬그머니 경제적 이익의 빨대를 꽂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돈'이 걸린 구체적인 사안에는 눈을 반짝이지만, '가치'나 '동맹'은 그에게 덜 중요하다. 언론이 질문해도 많은 경우 동문서답, 횡설수설로 일관한다.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은 까탈스러운 트럼프를 상대로 처음 선보인 것. 트럼프와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 맞붙은 첫 대좌였다.

관료들의 설명은 복잡다단했지만,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의 양대 의제였던 경제·통상과 안보 문제, 특히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일거에 해소하거나, 담판을 일단 미루는 데 성공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미리 읽었지만, 트럼프는 '이재명 스타일'을 읽지 못한 채 회담에 임했다.

한미 정상회담 전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정부의 목표와 성과를 언론에 도맡아 설명한 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다. 위 실장은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3대 목표를 △ 경제·통상의 안정화 △한미 동맹의 현대화 △ 새로운 협력 분야의 개척으로 제시했다. 경제·통상은 7.30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어느 정도 안정화를 위한 진전을 이뤘다는 게 그의 진단. 이를 정상 차원의 의지로 격상시켜서 합의를 공고화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7.30 합의는 쌀과 쇠고기 등 농축산물을 제외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한 수입 개방 확대를 요구해 왔다. 관세 합의 당일 X 계정 게시글을 통해 "한국이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 상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힌 장본인이 트럼프였다. 위 실장은 "미 측의 제기로 협의하고 있다"라고 확인하면서 "우리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작 뚜껑이 열리자, 트럼프는 추가 협상을 요구한 건 한국이라고 우겼다. 25일 회담 전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첫마디였다. "내가 듣기에 그들(한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라면서 "한국이 얻을 건 없겠지만 협상은 좋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심각한 토론'을 해야 할 의제로 '무역'을 꼽았다.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일본, 미국 순방을 마치고 28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공군1호기에서 내리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5.8.28.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통상합의 불확실성 제거 

기실, 트럼프가 댓바람에 7.30 합의 재협상을 거론한 건 전날 이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우리 입장을 천명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협상 결과에 대해 한국에 유리하게 된 것 아니냐는 미국 측의 시각이 분명히 있다. 미국 부처 단위에서는 (합의를) 조금 바꾸자는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국익을 위해)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거나, (기존 합의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일단 합의가 된 것을 쉽게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측의 수정 요구에 "우리도 수정할 게 있다"고 맞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정 여지를 제거한 것.

트럼프는 회담 뒤 "합의와 관련해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가 입장을 고수한 끝에 그들(한국)이 동의했던 합의를 (그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치적으로 돌렸지만, 농축산물 수입 개방 등에 대한 미 측의 재협상 요구에 '대항마'를 내세워 한목에 상쇄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곧이어 1기 행정부 때 한반도 평화 노력을 극구 치하하며 김정은과의 재회를 독려함으로써 트럼프를 무장 해제시켰다.

우리 입장에서 7.30 합의의 문제는 많았다. 무엇보다 자동차 품목관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15%가 된 게 '아픈 손가락'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합의 뒤 한국이 조성할 3500억 달러의 투자펀드와 관련, "수익의 90%는 미국에 남는다(retain)"고 주장한 진의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7.30 합의 뒤 10여 차례 진행된 한미 장관급 추가 협의에서 우리 측이 수정 또는 해명을 요구했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7.30 합의를 문서화하기 전까지 협의는 계속될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가 추가될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공군1호기 안에서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예고가 없었던 이날 간담회는 50분 동안 진행되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구상을 밝히는 자리였다. 대통령 왼쪽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서 있다. 2025.8.24.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위 실장의 사전 브리핑에서 내외신의 질문이 집중됐던 의제는 단연 '동맹의 현대화'였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 있어서 동맹 현대화는 '더 많은 기여'와 '전략적 유연성'이 핵심이다. 더 많은 기여는 미국 무기 구매도 포함하지만, 미·중 간 유사시 한국의 역할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가 있다. 그는 역내 정세의 변화를 예시하며 "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국익에 맞게,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맹) 현대화는 한미 연합을 더 강화하고, 우리 안보를 더 튼튼해지는 방향으로의 현대화"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그러면서 술어를 병렬 배치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한 문장에 넣었다.

'숨은 2%'는 전략적 유연성 논의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기여를 함으로써 우리의 군사적 역량을 키우고, 동맹 현대화로 인해 역내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는 게 아니라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 겹쳐 읽으면 한국의 '더 많은 기여'로 한미동맹과 우리 안보(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게 1차 목표다. 이로 인해 중국과 북한 등이 포함된 역내 긴장을 심화시키지 않겠다는 게 2차 목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전략'이 안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책 '거래의 기술'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 앞서 숙독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다. 바로 미·중 분쟁에 우리가 연루될 가능성이다. 이 대통령은 역시 기내 간담회에서 "(미 측으로부터 주한미군의)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논의는 우리로서도 필요하다"는 말로 초점을 이동했다. 그 끝에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도 하나의 주권국가이고, 주권국가에서 주권자들,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실망하게 해드리진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민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메시지였다.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위 실장의 설명은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간 공동성명의 두 개 항을 풀어서 말한 것일 뿐이다. 먼저 성명 내용을 보면 이렇다. 한미 공동성명 1항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rationale)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이다. 2항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그것(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respects)한다." 여기서 'it'을 두고 혼선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임을 되풀이 확인했었다.

위 실장은 "2006년 합의에 의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존중하는 점이 있다. 기본 입장은 거기에 있다. 기존 자세에 따라 한미 간 공조를 늘려가되 전체 결과물이 한국 안보를 손상하지 않게, '한미 국민'을 저해하지 않게 꾸려나가려 하고, 그 전략에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했다. 말을 복잡하게 하면 어폐가 드러난다. 외교문서는 물론, 외교적 언사도 뉘앙스의 차이가 종종 거대한 차이로 드러난다. 일단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미국민(의 안보)을 저해한다는 말이 걸린다.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탑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2025.8.27 연합뉴스

관료의 언어, 대통령의 언어

미국은 2017년 한반도 위기 때도 "전쟁은 거기서 벌어지지, 여기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했었다. 상원 군사위 소속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트럼프 지지자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2017년 4월 19일 NBC 방송 '투데이쇼'에서 한 말이다. 미국민의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 성명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위 실장의 설명이다. 2006년 합의가 논의의 출발점이라면서 기존 합의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은 역으로, 기존 합의에서 벗어난 논의가 있음을 시사한다. 논의는 시작했지만 어떠한 진전도 없음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위 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도 논의되고 있느냐'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논의는 하고 있지만 정상회담 준비 차원에서 논의의 큰 줄기를 논의하는 것"이라면서 "그리 디테일한(상세한)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순환 배치 문제는 지엽적인 디테일이 아니다. 제이미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 측 인사들이 여러 번 강조한 '동맹 현대화'의 핵심이다.

전략적 유연성 논의는 조현 외교장관이 정상회담 사흘 전 미국을 찾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정상회담 의제를 새삼 조율을 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런데 정작 백악관 오벌오피스(트럼프 집무실) 언론행사와 오찬 확대회의에서는 한국의 대미 투자가 핵심의제였다. 안보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최대 미스테리다.

이 대통령의 사전 한 수가 먹혔고, 미측이 이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을 뒤집을 만한 명분을 찾지 못했다고 보는 게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 같다. 미국엔 어차피 한국으로부터 넘치도록 '현찰'을 챙긴 뒤에 대면하는 자리. 굳이 얼굴을 붉히려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때문인지 트럼프는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도중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의 임무 변경과 관련한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한미)는 친구였고,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한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치켜세우면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장면. (Public Domain)

미 '국방전략' 확정 뒤 태클 들어올 듯

위 실장의 26일 결과 브리핑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아예 없었다. 그는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 "동맹의 발전 방향, 우리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협의가 있었고, 공감대를 이뤘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회담 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의 한 대목인 "국방비 증액 등 우리가 더 많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라는 말을 소개했다. 사라진 전략적 유연성 논의가 결국 이번 정상회담의 '숨은 2%'인 셈. 동시에 정상회담 이후 우리 외교·국방 당국자들이 미 측과 무릎을 맞댈 의제이기도 하다.

첫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한국 방위공약 확인을 포함하는 어떠한 발표문도 없이 회담을 마친 이유일 수 있다. 미국은 아직 국방전략(NDS)을 확정하지 않은 데다가 사뭇 결이 다른 한국 대통령을 설득할 논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처럼 한국 국방, 외교 관료들의 팔을 먼저 비튼 뒤 대통령실로 올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면전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한국민의 우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누차 전했다. 이 대통령도 간접 메시지는 전했다. 그러나 적절한 계기에 2006년 공동성명이 논의의 출발선이자, 마지노선임을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이재명-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의 '첫 장'이 쓰인다.

안보 문제에서 큰 흐름을 비켜 갔더라도 이재명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는 많다. 경제·통상 문제는 사전 목표대로 "기존 (7.30) 합의를 뒤집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말을 받아낸 만큼 불확실성을 일부 제거했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보면 분명한 성과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은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특히 방미 전 어떠한 미국 또는 서방 언론과 일방향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게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한국 대통령의 구상을 매번 영어로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이번엔 없었다.

직전 대통령이자 12.3 내란 수괴 피의자는 2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관해 미국 입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해 얼마나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가. 이와 대비됐다. 대통령은 자신의 구상을 누구에게 먼저 전달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취임 30일 첫 기자회견의 주제였던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한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에 먼저 다가가는 디테일의 변화가 바로 미국의 고민을 깊게 하는 협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멱록에 남긴 글.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적었다. 2025.8.25.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패닉상태 일소한 대처의 비결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이나, 북한에 '트럼프 월드' 건설 제안 및 "저도 그곳에서 골프칠 수 있게 해달라"는 대통령의 말도 돋보이는 디테일이었다. 트럼프의 심중을 뚫었다. 여러 명의 아이디어를 모았겠지만 홍보 부문의 성공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피스메이커가 움직이지 않으면, 페이스메이커는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발걸음을 뗄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한미 관계는 어차피 기울어진 마루판이다. 한국 대통령이 선 자리는 늘 미끄러지기 쉽다. 게다가 이번엔 상대가 트럼프였다. 정상회담을 두세 시간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진 마루판에 기름을 뿌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인 것 같다"는 X 계정 '가짜뉴스'가 그것. 밤늦게 정상회담을 기다리던 한국민을 패닉상태에 빠뜨린 작태였다.

이러한 우려를 일거에 해소하고 준비한 디테일로 트럼프를 무장 해제할 수 있는 지도자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다. 이 대통령 1인이 이뤄낸 '위기 관리'의 모델이었다. 또 하나의 고비를 넘겼다. 이제 한미 관계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는 과제가 온전히 남았다.

막전 막후. 정상회담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는 사전 브리핑(22일)과 사후 브리핑(26일)을 겹쳐 읽는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공동성명이 없이 끝난 회담은 더욱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 함께 읽으면 대강의 윤곽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명록에 글을 남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에 관심을 보이자 선물하고 있다. 2025.8.26.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막전막후  

양국 대통령의 협상 기술도 관전 포인트다. 상대를 댓바람에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뒤 슬그머니 경제적 이익의 빨대를 꽂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돈'이 걸린 구체적인 사안에는 눈을 반짝이지만, '가치'나 '동맹'은 그에게 덜 중요하다. 언론이 질문해도 많은 경우 동문서답, 횡설수설로 일관한다.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은 까탈스러운 트럼프를 상대로 처음 선보인 것. 트럼프와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 맞붙은 첫 대좌였다.

관료들의 설명은 복잡다단했지만,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의 양대 의제였던 경제·통상과 안보 문제, 특히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일거에 해소하거나, 담판을 일단 미루는 데 성공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미리 읽었지만, 트럼프는 '이재명 스타일'을 읽지 못한 채 회담에 임했다.

한미 정상회담 전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정부의 목표와 성과를 언론에 도맡아 설명한 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다. 위 실장은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3대 목표를 △ 경제·통상의 안정화 △한미 동맹의 현대화 △ 새로운 협력 분야의 개척으로 제시했다. 경제·통상은 7.30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어느 정도 안정화를 위한 진전을 이뤘다는 게 그의 진단. 이를 정상 차원의 의지로 격상시켜서 합의를 공고화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7.30 합의는 쌀과 쇠고기 등 농축산물을 제외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한 수입 개방 확대를 요구해 왔다. 관세 합의 당일 X 계정 게시글을 통해 "한국이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 상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힌 장본인이 트럼프였다. 위 실장은 "미 측의 제기로 협의하고 있다"라고 확인하면서 "우리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작 뚜껑이 열리자, 트럼프는 추가 협상을 요구한 건 한국이라고 우겼다. 25일 회담 전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첫마디였다. "내가 듣기에 그들(한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라면서 "한국이 얻을 건 없겠지만 협상은 좋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심각한 토론'을 해야 할 의제로 '무역'을 꼽았다.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일본, 미국 순방을 마치고 28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공군1호기에서 내리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5.8.28.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통상합의 불확실성 제거 

기실, 트럼프가 댓바람에 7.30 합의 재협상을 거론한 건 전날 이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우리 입장을 천명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협상 결과에 대해 한국에 유리하게 된 것 아니냐는 미국 측의 시각이 분명히 있다. 미국 부처 단위에서는 (합의를) 조금 바꾸자는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국익을 위해)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거나, (기존 합의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일단 합의가 된 것을 쉽게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측의 수정 요구에 "우리도 수정할 게 있다"고 맞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정 여지를 제거한 것.

트럼프는 회담 뒤 "합의와 관련해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가 입장을 고수한 끝에 그들(한국)이 동의했던 합의를 (그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치적으로 돌렸지만, 농축산물 수입 개방 등에 대한 미 측의 재협상 요구에 '대항마'를 내세워 한목에 상쇄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곧이어 1기 행정부 때 한반도 평화 노력을 극구 치하하며 김정은과의 재회를 독려함으로써 트럼프를 무장 해제시켰다.

우리 입장에서 7.30 합의의 문제는 많았다. 무엇보다 자동차 품목관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15%가 된 게 '아픈 손가락'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합의 뒤 한국이 조성할 3500억 달러의 투자펀드와 관련, "수익의 90%는 미국에 남는다(retain)"고 주장한 진의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7.30 합의 뒤 10여 차례 진행된 한미 장관급 추가 협의에서 우리 측이 수정 또는 해명을 요구했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7.30 합의를 문서화하기 전까지 협의는 계속될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가 추가될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공군1호기 안에서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예고가 없었던 이날 간담회는 50분 동안 진행되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구상을 밝히는 자리였다. 대통령 왼쪽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서 있다. 2025.8.24.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위 실장의 사전 브리핑에서 내외신의 질문이 집중됐던 의제는 단연 '동맹의 현대화'였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 있어서 동맹 현대화는 '더 많은 기여'와 '전략적 유연성'이 핵심이다. 더 많은 기여는 미국 무기 구매도 포함하지만, 미·중 간 유사시 한국의 역할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가 있다. 그는 역내 정세의 변화를 예시하며 "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국익에 맞게,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맹) 현대화는 한미 연합을 더 강화하고, 우리 안보를 더 튼튼해지는 방향으로의 현대화"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그러면서 술어를 병렬 배치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한 문장에 넣었다.

'숨은 2%'는 전략적 유연성 논의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기여를 함으로써 우리의 군사적 역량을 키우고, 동맹 현대화로 인해 역내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는 게 아니라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 겹쳐 읽으면 한국의 '더 많은 기여'로 한미동맹과 우리 안보(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게 1차 목표다. 이로 인해 중국과 북한 등이 포함된 역내 긴장을 심화시키지 않겠다는 게 2차 목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전략'이 안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책 '거래의 기술'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 앞서 숙독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다. 바로 미·중 분쟁에 우리가 연루될 가능성이다. 이 대통령은 역시 기내 간담회에서 "(미 측으로부터 주한미군의)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논의는 우리로서도 필요하다"는 말로 초점을 이동했다. 그 끝에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도 하나의 주권국가이고, 주권국가에서 주권자들,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실망하게 해드리진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민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메시지였다.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위 실장의 설명은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간 공동성명의 두 개 항을 풀어서 말한 것일 뿐이다. 먼저 성명 내용을 보면 이렇다. 한미 공동성명 1항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rationale)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이다. 2항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그것(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respects)한다." 여기서 'it'을 두고 혼선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임을 되풀이 확인했었다.

위 실장은 "2006년 합의에 의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존중하는 점이 있다. 기본 입장은 거기에 있다. 기존 자세에 따라 한미 간 공조를 늘려가되 전체 결과물이 한국 안보를 손상하지 않게, '한미 국민'을 저해하지 않게 꾸려나가려 하고, 그 전략에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했다. 말을 복잡하게 하면 어폐가 드러난다. 외교문서는 물론, 외교적 언사도 뉘앙스의 차이가 종종 거대한 차이로 드러난다. 일단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미국민(의 안보)을 저해한다는 말이 걸린다.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탑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2025.8.27 연합뉴스

관료의 언어, 대통령의 언어

미국은 2017년 한반도 위기 때도 "전쟁은 거기서 벌어지지, 여기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했었다. 상원 군사위 소속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트럼프 지지자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2017년 4월 19일 NBC 방송 '투데이쇼'에서 한 말이다. 미국민의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 성명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위 실장의 설명이다. 2006년 합의가 논의의 출발점이라면서 기존 합의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은 역으로, 기존 합의에서 벗어난 논의가 있음을 시사한다. 논의는 시작했지만 어떠한 진전도 없음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위 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도 논의되고 있느냐'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논의는 하고 있지만 정상회담 준비 차원에서 논의의 큰 줄기를 논의하는 것"이라면서 "그리 디테일한(상세한)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순환 배치 문제는 지엽적인 디테일이 아니다. 제이미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 측 인사들이 여러 번 강조한 '동맹 현대화'의 핵심이다.

전략적 유연성 논의는 조현 외교장관이 정상회담 사흘 전 미국을 찾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정상회담 의제를 새삼 조율을 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런데 정작 백악관 오벌오피스(트럼프 집무실) 언론행사와 오찬 확대회의에서는 한국의 대미 투자가 핵심의제였다. 안보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최대 미스테리다.

이 대통령의 사전 한 수가 먹혔고, 미측이 이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을 뒤집을 만한 명분을 찾지 못했다고 보는 게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 같다. 미국엔 어차피 한국으로부터 넘치도록 '현찰'을 챙긴 뒤에 대면하는 자리. 굳이 얼굴을 붉히려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때문인지 트럼프는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도중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의 임무 변경과 관련한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한미)는 친구였고,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한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치켜세우면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장면. (Public Domain)

미 '국방전략' 확정 뒤 태클 들어올 듯

위 실장의 26일 결과 브리핑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아예 없었다. 그는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 "동맹의 발전 방향, 우리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협의가 있었고, 공감대를 이뤘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회담 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의 한 대목인 "국방비 증액 등 우리가 더 많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라는 말을 소개했다. 사라진 전략적 유연성 논의가 결국 이번 정상회담의 '숨은 2%'인 셈. 동시에 정상회담 이후 우리 외교·국방 당국자들이 미 측과 무릎을 맞댈 의제이기도 하다.

첫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한국 방위공약 확인을 포함하는 어떠한 발표문도 없이 회담을 마친 이유일 수 있다. 미국은 아직 국방전략(NDS)을 확정하지 않은 데다가 사뭇 결이 다른 한국 대통령을 설득할 논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처럼 한국 국방, 외교 관료들의 팔을 먼저 비튼 뒤 대통령실로 올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면전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한국민의 우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누차 전했다. 이 대통령도 간접 메시지는 전했다. 그러나 적절한 계기에 2006년 공동성명이 논의의 출발선이자, 마지노선임을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이재명-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의 '첫 장'이 쓰인다.

안보 문제에서 큰 흐름을 비켜 갔더라도 이재명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는 많다. 경제·통상 문제는 사전 목표대로 "기존 (7.30) 합의를 뒤집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말을 받아낸 만큼 불확실성을 일부 제거했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보면 분명한 성과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은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특히 방미 전 어떠한 미국 또는 서방 언론과 일방향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게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한국 대통령의 구상을 매번 영어로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이번엔 없었다.

직전 대통령이자 12.3 내란 수괴 피의자는 2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관해 미국 입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해 얼마나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가. 이와 대비됐다. 대통령은 자신의 구상을 누구에게 먼저 전달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취임 30일 첫 기자회견의 주제였던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한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에 먼저 다가가는 디테일의 변화가 바로 미국의 고민을 깊게 하는 협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멱록에 남긴 글.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적었다. 2025.8.25.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패닉상태 일소한 대처의 비결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이나, 북한에 '트럼프 월드' 건설 제안 및 "저도 그곳에서 골프칠 수 있게 해달라"는 대통령의 말도 돋보이는 디테일이었다. 트럼프의 심중을 뚫었다. 여러 명의 아이디어를 모았겠지만 홍보 부문의 성공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피스메이커가 움직이지 않으면, 페이스메이커는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발걸음을 뗄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한미 관계는 어차피 기울어진 마루판이다. 한국 대통령이 선 자리는 늘 미끄러지기 쉽다. 게다가 이번엔 상대가 트럼프였다. 정상회담을 두세 시간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진 마루판에 기름을 뿌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인 것 같다"는 X 계정 '가짜뉴스'가 그것. 밤늦게 정상회담을 기다리던 한국민을 패닉상태에 빠뜨린 작태였다.

이러한 우려를 일거에 해소하고 준비한 디테일로 트럼프를 무장 해제할 수 있는 지도자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다. 이 대통령 1인이 이뤄낸 '위기 관리'의 모델이었다. 또 하나의 고비를 넘겼다. 이제 한미 관계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는 과제가 온전히 남았다.

막전 막후. 정상회담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는 사전 브리핑(22일)과 사후 브리핑(26일)을 겹쳐 읽는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공동성명이 없이 끝난 회담은 더욱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 함께 읽으면 대강의 윤곽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명록에 글을 남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에 관심을 보이자 선물하고 있다. 2025.8.26.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막전막후  

양국 대통령의 협상 기술도 관전 포인트다. 상대를 댓바람에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뒤 슬그머니 경제적 이익의 빨대를 꽂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돈'이 걸린 구체적인 사안에는 눈을 반짝이지만, '가치'나 '동맹'은 그에게 덜 중요하다. 언론이 질문해도 많은 경우 동문서답, 횡설수설로 일관한다.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은 까탈스러운 트럼프를 상대로 처음 선보인 것. 트럼프와 이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 맞붙은 첫 대좌였다.

관료들의 설명은 복잡다단했지만,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의 양대 의제였던 경제·통상과 안보 문제, 특히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일거에 해소하거나, 담판을 일단 미루는 데 성공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미리 읽었지만, 트럼프는 '이재명 스타일'을 읽지 못한 채 회담에 임했다.

한미 정상회담 전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정부의 목표와 성과를 언론에 도맡아 설명한 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다. 위 실장은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3대 목표를 △ 경제·통상의 안정화 △한미 동맹의 현대화 △ 새로운 협력 분야의 개척으로 제시했다. 경제·통상은 7.30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어느 정도 안정화를 위한 진전을 이뤘다는 게 그의 진단. 이를 정상 차원의 의지로 격상시켜서 합의를 공고화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7.30 합의는 쌀과 쇠고기 등 농축산물을 제외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한 수입 개방 확대를 요구해 왔다. 관세 합의 당일 X 계정 게시글을 통해 "한국이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 상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힌 장본인이 트럼프였다. 위 실장은 "미 측의 제기로 협의하고 있다"라고 확인하면서 "우리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작 뚜껑이 열리자, 트럼프는 추가 협상을 요구한 건 한국이라고 우겼다. 25일 회담 전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첫마디였다. "내가 듣기에 그들(한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라면서 "한국이 얻을 건 없겠지만 협상은 좋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심각한 토론'을 해야 할 의제로 '무역'을 꼽았다.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일본, 미국 순방을 마치고 28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공군1호기에서 내리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5.8.28.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통상합의 불확실성 제거 

기실, 트럼프가 댓바람에 7.30 합의 재협상을 거론한 건 전날 이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우리 입장을 천명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협상 결과에 대해 한국에 유리하게 된 것 아니냐는 미국 측의 시각이 분명히 있다. 미국 부처 단위에서는 (합의를) 조금 바꾸자는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국익을 위해)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거나, (기존 합의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일단 합의가 된 것을 쉽게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측의 수정 요구에 "우리도 수정할 게 있다"고 맞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정 여지를 제거한 것.

트럼프는 회담 뒤 "합의와 관련해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가 입장을 고수한 끝에 그들(한국)이 동의했던 합의를 (그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치적으로 돌렸지만, 농축산물 수입 개방 등에 대한 미 측의 재협상 요구에 '대항마'를 내세워 한목에 상쇄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곧이어 1기 행정부 때 한반도 평화 노력을 극구 치하하며 김정은과의 재회를 독려함으로써 트럼프를 무장 해제시켰다.

우리 입장에서 7.30 합의의 문제는 많았다. 무엇보다 자동차 품목관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15%가 된 게 '아픈 손가락'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합의 뒤 한국이 조성할 3500억 달러의 투자펀드와 관련, "수익의 90%는 미국에 남는다(retain)"고 주장한 진의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7.30 합의 뒤 10여 차례 진행된 한미 장관급 추가 협의에서 우리 측이 수정 또는 해명을 요구했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7.30 합의를 문서화하기 전까지 협의는 계속될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가 추가될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공군1호기 안에서 기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예고가 없었던 이날 간담회는 50분 동안 진행되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구상을 밝히는 자리였다. 대통령 왼쪽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서 있다. 2025.8.24.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위 실장의 사전 브리핑에서 내외신의 질문이 집중됐던 의제는 단연 '동맹의 현대화'였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 있어서 동맹 현대화는 '더 많은 기여'와 '전략적 유연성'이 핵심이다. 더 많은 기여는 미국 무기 구매도 포함하지만, 미·중 간 유사시 한국의 역할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가 있다. 그는 역내 정세의 변화를 예시하며 "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국익에 맞게,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맹) 현대화는 한미 연합을 더 강화하고, 우리 안보를 더 튼튼해지는 방향으로의 현대화"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그러면서 술어를 병렬 배치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한 문장에 넣었다.

'숨은 2%'는 전략적 유연성 논의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기여를 함으로써 우리의 군사적 역량을 키우고, 동맹 현대화로 인해 역내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는 게 아니라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 한다." 겹쳐 읽으면 한국의 '더 많은 기여'로 한미동맹과 우리 안보(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게 1차 목표다. 이로 인해 중국과 북한 등이 포함된 역내 긴장을 심화시키지 않겠다는 게 2차 목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전략'이 안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책 '거래의 기술'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 앞서 숙독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다. 바로 미·중 분쟁에 우리가 연루될 가능성이다. 이 대통령은 역시 기내 간담회에서 "(미 측으로부터 주한미군의)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 논의는 우리로서도 필요하다"는 말로 초점을 이동했다. 그 끝에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도 하나의 주권국가이고, 주권국가에서 주권자들,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실망하게 해드리진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민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메시지였다.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위 실장의 설명은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간 공동성명의 두 개 항을 풀어서 말한 것일 뿐이다. 먼저 성명 내용을 보면 이렇다. 한미 공동성명 1항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글로벌 군사전략 변화의 이유(rationale)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를 존중한다"이다. 2항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그것(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respects)한다." 여기서 'it'을 두고 혼선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임을 되풀이 확인했었다.

위 실장은 "2006년 합의에 의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존중하는 점이 있다. 기본 입장은 거기에 있다. 기존 자세에 따라 한미 간 공조를 늘려가되 전체 결과물이 한국 안보를 손상하지 않게, '한미 국민'을 저해하지 않게 꾸려나가려 하고, 그 전략에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했다. 말을 복잡하게 하면 어폐가 드러난다. 외교문서는 물론, 외교적 언사도 뉘앙스의 차이가 종종 거대한 차이로 드러난다. 일단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미국민(의 안보)을 저해한다는 말이 걸린다.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탑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2025.8.27 연합뉴스

관료의 언어, 대통령의 언어

미국은 2017년 한반도 위기 때도 "전쟁은 거기서 벌어지지, 여기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했었다. 상원 군사위 소속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트럼프 지지자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2017년 4월 19일 NBC 방송 '투데이쇼'에서 한 말이다. 미국민의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 성명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위 실장의 설명이다. 2006년 합의가 논의의 출발점이라면서 기존 합의대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은 역으로, 기존 합의에서 벗어난 논의가 있음을 시사한다. 논의는 시작했지만 어떠한 진전도 없음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위 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도 논의되고 있느냐'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논의는 하고 있지만 정상회담 준비 차원에서 논의의 큰 줄기를 논의하는 것"이라면서 "그리 디테일한(상세한)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순환 배치 문제는 지엽적인 디테일이 아니다. 제이미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 측 인사들이 여러 번 강조한 '동맹 현대화'의 핵심이다.

전략적 유연성 논의는 조현 외교장관이 정상회담 사흘 전 미국을 찾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정상회담 의제를 새삼 조율을 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런데 정작 백악관 오벌오피스(트럼프 집무실) 언론행사와 오찬 확대회의에서는 한국의 대미 투자가 핵심의제였다. 안보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최대 미스테리다.

이 대통령의 사전 한 수가 먹혔고, 미측이 이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을 뒤집을 만한 명분을 찾지 못했다고 보는 게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 같다. 미국엔 어차피 한국으로부터 넘치도록 '현찰'을 챙긴 뒤에 대면하는 자리. 굳이 얼굴을 붉히려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때문인지 트럼프는 오벌오피스 언론행사 도중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의 임무 변경과 관련한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한미)는 친구였고,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한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치켜세우면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장면. (Public Domain)

미 '국방전략' 확정 뒤 태클 들어올 듯

위 실장의 26일 결과 브리핑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아예 없었다. 그는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 "동맹의 발전 방향, 우리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협의가 있었고, 공감대를 이뤘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회담 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의 한 대목인 "국방비 증액 등 우리가 더 많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라는 말을 소개했다. 사라진 전략적 유연성 논의가 결국 이번 정상회담의 '숨은 2%'인 셈. 동시에 정상회담 이후 우리 외교·국방 당국자들이 미 측과 무릎을 맞댈 의제이기도 하다.

첫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한국 방위공약 확인을 포함하는 어떠한 발표문도 없이 회담을 마친 이유일 수 있다. 미국은 아직 국방전략(NDS)을 확정하지 않은 데다가 사뭇 결이 다른 한국 대통령을 설득할 논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처럼 한국 국방, 외교 관료들의 팔을 먼저 비튼 뒤 대통령실로 올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면전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한국민의 우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누차 전했다. 이 대통령도 간접 메시지는 전했다. 그러나 적절한 계기에 2006년 공동성명이 논의의 출발선이자, 마지노선임을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로소 이재명-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의 '첫 장'이 쓰인다.

안보 문제에서 큰 흐름을 비켜 갔더라도 이재명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는 많다. 경제·통상 문제는 사전 목표대로 "기존 (7.30) 합의를 뒤집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말을 받아낸 만큼 불확실성을 일부 제거했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보면 분명한 성과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은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특히 방미 전 어떠한 미국 또는 서방 언론과 일방향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게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한국 대통령의 구상을 매번 영어로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이번엔 없었다.

직전 대통령이자 12.3 내란 수괴 피의자는 2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관해 미국 입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해 얼마나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했던가. 이와 대비됐다. 대통령은 자신의 구상을 누구에게 먼저 전달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취임 30일 첫 기자회견의 주제였던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한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에 먼저 다가가는 디테일의 변화가 바로 미국의 고민을 깊게 하는 협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방멱록에 남긴 글.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적었다. 2025.8.25. [대통령실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패닉상태 일소한 대처의 비결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이나, 북한에 '트럼프 월드' 건설 제안 및 "저도 그곳에서 골프칠 수 있게 해달라"는 대통령의 말도 돋보이는 디테일이었다. 트럼프의 심중을 뚫었다. 여러 명의 아이디어를 모았겠지만 홍보 부문의 성공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피스메이커가 움직이지 않으면, 페이스메이커는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발걸음을 뗄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한미 관계는 어차피 기울어진 마루판이다. 한국 대통령이 선 자리는 늘 미끄러지기 쉽다. 게다가 이번엔 상대가 트럼프였다. 정상회담을 두세 시간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진 마루판에 기름을 뿌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인 것 같다"는 X 계정 '가짜뉴스'가 그것. 밤늦게 정상회담을 기다리던 한국민을 패닉상태에 빠뜨린 작태였다.

이러한 우려를 일거에 해소하고 준비한 디테일로 트럼프를 무장 해제할 수 있는 지도자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다. 이 대통령 1인이 이뤄낸 '위기 관리'의 모델이었다. 또 하나의 고비를 넘겼다. 이제 한미 관계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는 과제가 온전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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