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과 함께하게 돼 영광이다. 우리는 서로 알아 왔고 매우 잘 지냈다. (…) 함께 이야기할 게 많다. 기대된다. 당선의 선거(승리)를 축하한다. 대단한 것(big one)이었다. 우리는 당신과 100% 함께 한다." (트럼프)
"우선 이렇게 시간을 내주어 오늘 회담을 갖게 된 데 대해 한국민을 대표해서 감사드린다. 오벌오피스를 새로 꾸미고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밝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게 보기 좋다. 품격과 함께 미국의 새로운 번영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재명)
기대와 우려 속에 25일 백악관 첫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다. 회담의 형식은 변칙적이었고, 논의 내용은 공동성명이나 공동기자회견 형태로 공개되지 않았다. 50분 간의 오벌오피스 회동은 사전 언론 행사다. 이후 캐비닛룸으로 옮겨 가진 오찬 확대 회의가 유일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대면'이라는 점에선 성공적이었지만, 특히 안보 현안에 대한 양국 간의 심도 있는 논의는 없었다. 앞으로도 실무진 간에 계속 협의와 협상이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두 대통령의 프레스 이벤트 공개 발언을 중심으로 대화 내용을 짚어 본다.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재명-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의 첫 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공식회담 전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소파에 앉아 언론에 공개하는 이벤트가 50분 동안 진행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종의 리얼리티쇼처럼 언론 앞에서 트럼프가 마음껏 치적을 자랑하는 무대로도 프레스 이벤트를 활용해 왔다. 그러나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처럼 논의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심사를 주고받는 데 그쳤다. 이벤트에서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비롯한 경제·통상 문제보다 트럼프-김정은의 각별한 관계 및 북미 관계 회고, 주한미군의 소유권 문제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북미 관계는 이 대통령이 첫 발언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할을 주문하면서 화제의 중심이 됐다. 이 대통령은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으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돌아오고 있다"라면서 피스메이커로 추켜세웠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김정은도 좀 만나고 북한에 트럼프 월드도 하나 지어 저도 골프 칠 수 있게 해달라"며 "김정은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트럼프의 김정은 관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나는 매우 좋은 관계를 맺었었고, 지금도 그렇다"면서 (2020 미국 대선서)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됐다면 재앙이 됐겠지만, 자신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서로 매우 친하게 됐고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뭔가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라면서 "당신은 내가 함께 일했던 한국 지도자 중 누구보다 그 일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안전상의 우려로 참석을 망설이던 2018년 초 상황과 자신이 김정은을 '작은 로켓맨'이라고 불렀던 것을 회고했다. 북한의 참가로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도 되돌아봤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대통령님 덕분에 한반도가 상당히 안정적이었지만, 이후 대통령께서 미국 정치에서 잠깐 물러선 동안 북한이 미사일과 핵폭탄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2020년 재선에 성공했다면 "북한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자신이 대통령이었으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의 연장. 이 대통령이 거듭 "북한이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의 새길을 꼭 열어주길 바란다"고 말하자 "그걸 하겠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장단을 맞췄다. "우리가 관계를 개선할 테니 당신(이 대통령)이 도와달라"고도 했다.
"내가 만난 한국 지도자들은 북한에 적절하게 접근하지 않았지만, 당신의 접근이 훨씬 나은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이 "나의 관여로 남북관계를 푸는 게 쉽지 않은데 이걸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나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돕겠다"고 말하자 트럼프는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면서 "좋다. 우리는 분명 북한과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라면서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맙다"라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꺼낸 데 대해 트럼프가 매우 만족했음을 말해준다.
이어진 언론 질의에서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회동 시기와 관련, 처음엔 "적절한 미래"라고 말했다가 '올해나 내년에 만날 수 있나'라는 추가 질문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어 (지금) 말하기 어렵지만 올해 만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김정은과 만났던 비무장지대(DMZ)로 돌아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자신이 경호팀이 극도로 긴장한 가운데 DMZ를 넘었던 일화와 경계선으로 걸어가면서 본 양쪽의 판문점 푸른 건물 안에 엄청나게 많은 소총이 있었던 기억을 되살렸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많은 자유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얘기해서는 안 될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라면서 "김정은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나라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역할 조정(전략적 유연성)과 주둔비 지원(방위비 분담금), 한국의 국방비 인상 등 안보 현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언론이 주한미군 감축과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 묻자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한미는) 친구였고 친구이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트럼프는 한반도 통일에 관한 질문에 자신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우리는 북한과 문제가 있다. 바로 잡아달라"고 요청하자 시 주석은 "중국은 지난 2000년 동안 한국과 51번의 전쟁을 했다고 하더라"고 전하면서 "그래도 당시에는 한국이 하나였다"고 말했다. "하나의 한국, 매우 크고 강력한 국가가 있었지만, 이제는 장벽을 사이에 둔 두 나라"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숫자를 2만 8500명이 아닌, 4만 명으로 틀리게 제시하면서 뜬금없이 주둔비 지원(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언급했다. 역시 반복이었다. 1기 행정부에서 한국은 주둔비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결정을 번복한 탓에 수십억 달러를 받지 못했다는 것. 다만 여러 차례 밝혔던 '100억 달러'는 입에 담지 않았다. 캠프 험프리스 소유권을 요청할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큰 요새가 있는 땅의 소유권을 이전을 요청하는 것"이라면서 역시 사실과 다른 얘기를 늘어놨다. 캠프 험프리스는 우리 국민 혈세 100억 달러로 확장, 건설한 것. 트럼프는 그러나 "어쩌면 한국이 기여한 것도 있지만 우리는 요새를 짓는 데 많은 돈을 썼다"라면서 "임대를 없애고 우리가 거대한 기지를 둔 땅의 소유권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법과 한미 상호방위조약, 주둔군지위협정(SOFA) 어디에도 한국이 제공한 토지를 미국에 넘길 근거는 없다.
트럼프의 동문서답은 프레스 이벤트 후반으로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한미 동맹을 더 위대하게 만들 핵심 방안'을 묻자 "동맹은 (지금도)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한국에 대해 매우 따뜻하게 느낀다"고 답했다. 자신이 만난 한국인 사업가들은 "내가 없었다면 (2017년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는데 내가 구해주었기 때문에 트럼프를 사랑한다"고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26일 현지 브리핑에서 "트럼프 시대 통상·안보 협상의 뉴노멀(새표준)은 끊임없이 논의하고, 논의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일반적인 트럼프 스타일은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은 우선 올해 두 차례 미일 정상회담과 결이 달랐다.
백악관은 지난 2월 7일 트럼프-이시바 시게루 총리 첫 정상회담 뒤 지도자의 공동성명을 공시했다. 지난 6월 4일 백악관 정상회담에선 공동성명을 내놓진 않았지만, 공동 기자회견으로 논의 내용을 정리했다.
공동성명에선 미일 동맹에 따른 미국의 대일 안보 공약을 확인하고 '평화를 위한 협력'과 '성장과 번영을 위한 협력'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조율' 등 방위전략의 대강을 맞췄다.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는 △ 안보리 제반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 북러 군사협력에 관한 우려 △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경제·기술 협력 △ 한국과의 3각 협력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두 차례의 한미 외교장관 회담 뒤 외교부와 국무부가 내놓은 성명 수준의 발표문도 없었다. 특히 정상회담 의제 논의가 중심이었던 8월 22일 회담 뒤 국무부는 성명에서 '한반도와 인도 태평양에서 평화·안보·번영의 핵심고리(linchpin)인 미·한 동맹의 지속적인 힘'을 강조했다. 또 △인태 지역 억제력 강화 △책임 분담을 확대 △ 미국 제조업 부흥 지원 △ 무역 관계의 공정성과 상호성 복원 등에 합의했다. 한미일 삼각 협력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한미 정상 간 대화에서 이러한 의제들이 논의됐지만, 특히 한국 새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확장 억제력' 제공을 포함, 미국의 대한국 안보 공약을 확인하지 않은 건 지극히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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