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북은 적이자 동포인가 동포이자 적인가 '냉전 잔당'의 부조리극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7. 20. 10:18

본문

정동영 인사 청문회 '북한 대변인' 논란 

"(후보자의 말을 들어보니) 북한 대변인 같다. 북한 편만 들고 있다. 북한의 대변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편향적인 생각을 갖고 북한 대변인 같은 역할을 계속한다면 통일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없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북한 대변인, 그러는 것은 인격에 대한 규정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민주당과 시민사회를, 야당을 종북세력이라고 말했다. 반국가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나. 말로가 어떻게 됐나. 척결 대상, 처단 대상으로 본 거다. 색깔론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말하고 있다. 바로 옆부터 김기웅 의원, 김건 의원. 2025.7.14. [국회TV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5.7.14. 연합뉴스

염천에, 장마에 짜증 나는 이념 논쟁을 복기하려는 게 아니다. 지난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불거진 논란은 우리 사회의 단면과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톺아보게 한다. 여야 의원들이 의사진행발언 형식으로 주고받은 말을 소개하는 까닭이다.

보충 질의를 앞두고 '북한 대변인' 발언자 대한 엄중한 경고와 사과를 요구한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간사의 발언 뒤 격론이 벌어졌다. 곧바로 당사자인 김기현 의원의 반박이 뒤따랐다.

"후보자에 대해 북한 대변인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발언했다. 명확한 의견이고 국회의원 김기현의 소신이다. 후보자가 계속 북한 편만 들고, 북한의 인권 참상에는 일절 입을 열면 안 되고,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하면 (우리나라가) 사상의 자유가 없는 나란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장관 후보자의 신상발언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김석기 위원장(국민의힘)은 "북한 문제에 대해 여야의 생각은 현저하게 다르지 않나. 서로 입장이 다른 이야기를 다르다고 해서 그게 잘못됐다. 그런 발언을 할 때 어떤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서로가 그런 태도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서로의 발언을 서로 존중하면서 듣는 게 좋겠다." 먼저 소개한 정동영 후보자의 발언은 이후 나왔다. 말이 끝나자마자 김 위원장은 다소 흥분한 말투로 엄중 경고를 내놓았다.

"후보님 말이 너무 좀 지나치다. 위원장으로서 엄중히 경고한다. 북한 대변인 같다는 말을 왜 못하나. 여당 전체를 부정하는 발언도 아니었다. 저도 정동영 후보자 말을 유심히 들으면 북한 측에 경도돼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김기현 의원이 그런 말을 왜 못하나. 우리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 북한 수석대변인이라는 말도 했다."

김석기 국회 위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2025.7.14. 연합뉴스

외교부 관료로 밥을 벌었던 국민의힘 김건 의원이 거들었다.

"오늘 의원으로 나온 게 아니라 청문 대상으로 나온 후보자가 생각을 표현한 국회의원의 발언을 취소하라고 한 건 너무 나갔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협정 체제다. 남북관계는 두 개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북한은) 화해와 협력을 추구해야 하는 상대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우리의 적이기도 하다. '적이 아니라 위협'이라는 (후보자의) 발언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김기현 의원의 '북한 대변인' 발언 당시 실소를 참지 못했던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질의를 하더라도 좀 품격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뒤이은 이재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은 김석기 위원장과의 날 선 언쟁으로 변모했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에게 원만하게 회의 진행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후보자가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북을 상대해야 할 국무위원 후보자임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국민의힘이 '북한 대변인'이라고 한 건 '적의 대변인'이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일침을 놨다.

김상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북한 사회 모습을 봤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반동으로 몰아세우는 북한이 떠올랐다. 욕하면서 배우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다행히 여야 의원들의 어조는 선을 넘지 않았다. 말꼬리를 잡고 판을 망치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지 않은 것. 통일부에서 30여 년 봉직한 김기웅 국민의힘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사실관계의 문제다. 나중에 제가 회의록을 보고 (후보자가) 그동안 북한이 한 말을, 유사한 말을 한 걸로 보여서 '북한 발언과 비슷하다'고 말하면 '그렇게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실 건가. 그것도 사람을 이상하게 디파인(규정)하는 말이다, 인격모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제 결론은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회의를 다시 진행하자는 거다."

차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7.14. [국회TV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여기까지가 이날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말의 대강이다. 개인적으로 이날 토론의 백미는 차지호(45)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말이었다. 무용한 논란을 깔끔하게 아퀴지었다고 본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종북으로 몰려서, 북에서는 반동으로 몰려서 고통을 받고 돌아가신, 학살당한 분들이 없었으면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개인사, 컨텍스트(맥락)가 다양한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말 한마디, 반동이라는 말 한마디로 죽어갔다. 그 말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하고, 북한 대변인 같다고 단정 짓는 게 과연 우리 역사를 공부한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들리겠나. 적어도 매카시즘 같이 특정 사람을 특정 부류로 단정 지어 공격하는 것을 가볍게 넘어갈 건 아닌 것 같다."

국민의힘 김기웅, 김건 의원의 말에도 '답'은 들어 있었다. 본인들이 인지했는지 모르겠지만. 김기웅 의원은 단순히 느낌을 표현한 것도 "사람을 이상하게 디파인하는 말이라고, 인격모독이라고 할 수 있다"고 수긍했다. "남북관계에 동전의 양면이 있다"는 김건 의원의 말 역시 여당과 큰 차이가 없다. 그의 말 대로 정전협정 체제에서 북한은 "화해협력의 대상인 동시에 적"이다. "북한은 적으로 변할 수 있는 급박하고 실존적인 위협이다. 동시에 평화와 한반도 안정을 만들어가야 하는 대화의 상대"라는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17일 인사청문회 발언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걸 갖고 국민 앞에서 다투는 모습을 연출하는 게 과연 제대로 된 밥벌이인지 묻고 싶다. 스스로 의미 없음을 인식하면서도 짐짓 토론에 몰두하는 부조리극을 연상케 한다. 다만 그의 말에도 어폐는 있다. 남북관계의 이중성을 인정하면서도 "북한이 '적이 아니라 위협'이라는 후보자의 말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생뚱맞았다. 평생 외교관으로,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까지 지낸 그가 정말 '적'과 '위협'의 차이를 몰라서 한 말일까.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7.17. 연합뉴스

남북이 최근들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건 사실이다. 북은 2022년 12월 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우리를 '명백한 적'이라고 했고, 남은 국방백서(2022, 2023)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우리의 적'으로 기술했다. 모두 윤석열 정부하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끝에 국민과 시민사회를 싸잡아 반국가세력, 처단해야 할 세력으로 몰았다. 그런데 작금에 세계를 흔들고 있는 미·중, 미·러는 왜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을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2022년 전략개념에서 러시아를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규정했다. 지난 6월 25일 정상회의 선언문에는 '장기적인 위협'으로 적었다. 미국은 어떤가. 지난 3월 연례위협평가 보고서에서 중국을 '가장 강력한 전략적 경쟁자'로, 중국 공산당은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물론 서로를 철천지 원수로으로 규정하는 관계도 있긴 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이란이 그렇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주 인사청문회에서 통일, 외교, 국방부 장관 후보자뿐 아니라 법무, 고용노동부, 보훈부 장관 후보자들에게 까지 '북한은 적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냉전 잔당'임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다.  2019년 3월 국회 연설 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했던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말본새를 잇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평양에서 수거했다면서 공개한 무인기 사진. 한국군 드론작전사령부가 운용하는 무인기와 동일기종이라고 주장했다. 2024.10.19.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스라엘 군인들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텔아비브의 한 건물을 둘러 보고 있다. 2025. 6. 22 AP  연합뉴스

'적'과 '위협'의 차이는 엄청나다. 상대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결론은 전쟁밖에 없다. '위협'은 그걸 해소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미·러는 관계 정상화를 논의하고 있고, 미·중은 다투는 와중에도 각각 국익을 추구한다. 이점, "외교는 희망을 위한 노력과 워스트 시나리오(최악의 상황) 대비, 두 가지를 모두 다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는 조현 후보자의 말은 울림이 있다. 세계가 당장 3차 대전에 직면하지 않은 이유다.

거꾸로 "북한은 위협이 아니고 적"이라는 규정이 굳어지면 제2의 한국전쟁이라는 외통수에 부딪힌다. 정녕 남북관계가 이스라엘-하마스 관계가 되길 원하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노력은 정부만의 의무가 아니다. 국회의원 역시 의무가 있다. 대통령 선서(헌법 제69조)와 국회의원 선서(국회법 제24조)는 모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노력'을 의무로 명시한다. 무슨 소신이니, 사상의 자유니 떠들기 전에 법대로 살길 바란다. 또 공개 청문회에서 여건, 야건, 후보자건, 영어단어 사용을 최소화했으면 한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