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일본과의 무역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라면 그 승리의 비용은 무엇일까. 월스트리트 저널이 23일 사설에서 미·일 관세협상 타결을 논평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은 협상 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정작 미국이 치를 비용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는 것.
눈앞의 승패에 연연하는 대신 타결이 미칠 영향을 들여다보는 저널의 관점을 참고할 만하다. 안보 문제를 제외한 미일 관세협상이 한국에 주는 함의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환영한 협상 결과는 일본이 5500억 달러의 '사상 최대' 투자를 약속했다는 것. 그 대가로 트럼프는 자동차를 포함한 일본 상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췄다. 그러나 15%로 줄었다고 해도 트럼프 취임 전 2.5%에 비하면 여전히 적지 않은 부담이다. 백악관은 일본 수출기업들이 이를 부담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상품과 경쟁에 따라 일부 부담을 흡수하겠지만 미국 재계와 소비자들 역시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그 결과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소비자들은 더 낮은 생활 수준을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 트럼프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낮춘 것은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 증가로 인해 정치적으로 승리가 되기 어려움을 깨달은 덕분일 수도 있다는 게 저널의 해석이다. 자동차가 2024년 대미 수출의 27.2%를 점유한 한국도 참고할 대목이다.
일본은 대미 수출의 30%가 자동차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대미 무역흑자 국가 중 가장 큰 폭의 관세 인하를 얻어낸 게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선 관세 후 협상' 방식은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자동차나 부품에 대해 25% 관세를 지불해야 하는 디트로이트의 미국 자동차 업계는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관세 특혜를 누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5500억 달러 투자도 미국에 낭보만은 아니다.
시게루 총리는 주요 부문의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이러한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의 대출 및 보증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는 투자금이 일본 산업정책에 영향받을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대미 투자를 자신의 지시대로 할 것이며, 미국이 이익의 90%를 환수할 것이라는 트럼프의 장담에 비추어보면 미국 산업정책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월가의 자본을 대변하는 매체답게 기업활동이 정부의 입김에 놓이는 데 거부감을 드러낸 것.
저널은 미국의 무역수지에서 더 많은 투자 유입은 더 큰 무역적자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누군가 트럼프에게 말해주었는지 물었다. 또 미국은 일본 기업들의 더 많은 투자를 유도할 수도 있었지만 이를 막은 건 바로 트럼프 자신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6월 일본제철의 유에스(US) 스틸 인수를 허용하면서 온갖 조건을 붙였던 트럼프의 행태를 꼬집은 것. 일본 기업들이 미국에서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확인이 있었다면 일본 정부의 대출과 보증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나라마다 다른 결과를 낳는다. 베트남은 외국인 투자로 생산기지를 확충, 수출과 무역흑자를 늘렸지만, 미국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소비와 수입을 늘리면서 되레 무역수지 적자로 이어진 것. 이러한 관성을 벗어나지 않는 한 트럼프가 그토록 줄이려던 적자가 되레 늘어나는 결과를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무역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승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저널은 지적한다. 거대한 미국 시장을 협상 지렛대로 삼아 전 세계 여러 국가로부터 더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은 맞다. 대부분의 무역 상대국들은 아직 보복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 마음대로 자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각국은 미국을 배제한 새로운 양자 및 다자 협정을 체결했듯이 무역 관계의 다각화를 할 것이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지난 6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국가들과의 '구조적 협력'을 제안했다.)
중국이 미국을 제물로 상업적 영향력을 확대할 것도 예상된다. 중국은 또 미·중 두 나라가 힘을 앞세워 상대를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트럼프의 관세 145%에 맞서 필수 광물의 수출 제한으로 보복, 결국 트럼프로부터 휴전 합의를 끌어냈다.
저널은 일본과의 협상이 어떤 면에서는 더 쉬운 협상이었다면서 다른 무역상대국, 특히 유럽연합(EU)과의 협상에 미칠 영향에 의문을 던졌다. EU의 기술 및 제약 부문의 초과 이익세와 미국의 금융 규제에 대한 유럽의 오랜 불만 등 더 까다로운 문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협상은 거론하지 않았다.
미일 관세협상 결과에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요구했던 국방비 인상을 비롯한 안보 문제가 섞이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6월 7일 트럼프-시게루 첫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일본제철의 US 스틸 인수 합의를 겹쳐 읽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안보 문제를 그때 이미 일부 '거래'했다. 일본제철의 149억 달러 투자와 일본의 대미 투자 확대 약속을 받아내면서 중·일 간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에 대한 미일 동맹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미일 동맹과 한미일 준동맹, 이를 토대로 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의 유지도 다짐했다. 2027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2%로 올리려는 일본의 계획을 무시한 채 5%(실제 국방비는 3.5%)로 올리라는 압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뒤 한미 정상회담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또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전략(NDS)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과 국방비 인상,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및 한국의 역할 확대, 주한미군 역할 조정(전략적 유연성) 등의 논의가 남아 있다. 이번에 안보를 제외하더라도 트럼프가 청구서를 내밀 기회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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