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는 언론의 비야냥에도 A에 아부와 찬사를 퍼붓는 한편, C를 맹비난했다.그런데 B로부터 찬사를 받은 A는 시종일관 C를 두둔했다. 이번 달 두 차례 서방권 정상회의에서 세계가 목도한 아이러니다. A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B는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 C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네덜란드 나토 정상회의(24~25일)와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16~17일). 나토는 '역사적인 합의'를 이뤘고, G7은 공동코뮈니케를 채택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뒤 처음 참석한 양대 다자회의였다.
자리에 없는 '푸틴'이 주인공?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림길에서 헤어졌다가 가까스로 다시 만났지만, 트럼프는 까탈스러운 상대다. 여전히 오락가락한다. 유럽은 안보에서 미국에 편승했지만, 무역에선 결기를 내보이는 두 갈래 대응을 하고 있다.
나토 정상회의는 이례적으로 달랑 5항의 '헤이그 선언'을 도출했다. 대서양 군사동맹의 원칙을 강조한 1항과 내년 정상회의 의장국(튀르키예)을 발표한 5항을 제외하면 3개 항뿐이다. 국방비 인상과 우크라이나 지원, 방위산업 육성의 3가지 목표를 적시했다. 뤼터 사무총장이 '역사적인 합의'라고 되풀이 강조한 대목은 국방비 인상이다. 러시아를 장기적인 위협으로 규정하고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올리는 데 합의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국방비 3.5%와 비전통적인 국방 관련 투자비 1.5%를 합한 수치. △핵심 인프라 보호와 △네트워크 방위 △국민의 준비와 회복력 △혁신 실현 및 △방위산업 기반 강화 등을 예시했다. 우크라에 대한 직접적인 안보 지원과 우크라 국방산업 지원액을 각국 국방비에 포함해 계산하기로 했다.
2014년 웨일스 정상회의 이후 처음 제시된 것이다. 당시에도 향후 10년 안에 GDP 2%로 올리기로 합의했지만 2024년 말 현재 32개 회원국의 3분의 1이 목표에 미달했다. 이번엔 2029년 이행 상황을 중간 평가하기로 했다. 트럼프의 임기 4년은 2028년 끝난다. 5%는 다소 부풀려진 수치. 뤼터는 웨일스 가이드라인 2%에 해당하는 국방비 가이드라인는 3.5%라고 설명했다.
과도한 아부, 왜?
국방비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는 데다가 이견이 있음을 인정한 합의(agree to disagree)이다. 지난해 국방비가 GDP의 1.24%였던 스페인은 목표를 2.1%로 제시, '헤이그 국방투자 계획'에 서명하지 않았다. 향후 5년 동안 매년 8%씩 국방비를 줄이겠다고 공언한 미국은 정작 이러한 흐름에 역행할 것을 내놓고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 20일 언론에 "우리는 나토를 너무 오랫동안 지원해 왔다"라는 이유로 "그들은 5%로 올려야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나토 차원의 방위산업 육성과 관련해서는 방산 교역의 장벽을 제거하기로 합의했다. 뤼터는 "이번 합의로 나토가 더 강하고, 더 공정하며, 더 치명적인 동맹이 됐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지위와 우크라 지원 문제는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의 반대 탓에 공동코뮈니케를 도출하지 못한 원인이었다. 트럼프는 러시아를 '침략자'로 규정한 코뮈니케 초안을 승인하지 않았다. 되레 러시아를 다시 G7에 초청해 G8 복원을 주장해 유럽의 반대에 부딪혔다. 헤이그 선언에선 "심대한 안보 위협과 도전들에 직면해, 특히 러시아가 유로-대서양 안보에 제기하는 '장기적인 위협' 등"의 문구에 합의했다. 뤼터는 폐막 기자회견에서 각국이 올해 상반기까지 우크라에 350억 유로(약 4조 750억 원)의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지만, 국가별 지원액은 소개하지 않았다.
25일 폐막 기자회견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각국 언론의 불신과 불만이 여실히 드러났다. 시종일관 트럼프 찬가를 부른 뤼터는 유탄을 맞았다. 첫 질문자로 나선 영국 스카이뉴스 기자는 "도널드 트럼프를 '아빠'라고 부르는 등 아부와 찬사가 심했다. 체면 빠지고 자신을 스스로 약하게 보이게 한 것 아니냐"며 직격탄을 퍼부었다. 뤼터는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라면서도 2030년대에나 달성했을 GDP 2%를 트럼프가 5%로 상향 달성했고, 이란-이스라엘 전쟁의 휴전 성사를 들어 "그는 그 모든 찬사를 받을만하다"고 답했다.
우크라 이견 '봉합'
'아빠 논란'은 이란과 이스라엘을 두고 '학교 운동장에서 싸우는 아이들'이라는 트럼프의 말에 뤼터가 "아빠(daddy)는 가끔 강하게 말할 때도 있다"고 맞장구치면서 나온 것. 뤼터는 트럼프의 중동 휴전 도출을 거듭 칭찬, "국제법적으로 올바른 행동이었냐"는 힐난을 받았다. 뤼터의 과도한 트럼프 찬사는 회견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됐다. "1기 행정부 당시 나토 탈퇴를 위협했던 트럼프를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거의 10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트럼프는 좋은 친구다. 그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트럼프를 두고 '힘의 남자(man of strength)'이자 '평화의 남자(man of peace)'라고도 했다.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을 잘 내놓는 데 익숙한 정치인이라도 심하다는 인상을 줄 정도. 네덜란드 총리를 지낸 뤼터는 태생적인 아첨꾼이 아닐 것이다. 그의 현란한 트럼프 찬가는 미국과 유럽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회의 성과를 최대한 강조하려는 절실한 노력으로 읽힌다. 국방비 5% 목표를 세웠지만, 어차피 2029년 중간점검 전에 트럼프는 임기를 끝낸다. 마음껏 칭찬해도 아깝지 않았을 것.
트럼프는 나토 회의에서도 러시아의 지위와 우크라전쟁 의도에 대해 유럽 지도자들과 사뭇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뤼터는 "나토가 국방 투자에 실패한다면 러시아가 3년, 5년 내로 회원국들을 침공할 수 있다"고 역설했지만, 트럼프의 생각은 달랐다. 트럼프는 별도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은 자신이 만든 진창에서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휴전 의도가 없다고 보는 유럽과 의견을 달리한 것. 되레 외교 복원을 명분으로 러시아의 G7 복귀를 거듭 강조했다.
G7 정상회의에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저스틴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가 2014년 푸틴을 G7에서 내쫓았다고 비난하면서 "러시아가 정상회의 탁자에 있었다면 우크라 전쟁을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방위를 약속한 워싱턴조약 제5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2017년부터 강조해 온 나토 국방비 가이드라인이 의도대로 됐음에도 여전히 겉도는 트럼프가 유럽 지도자들에게는 불안하게 보였을 것 같다.
"WTO 대안은 CPTPP"
유럽은 7월 9일로 종료 시한이 다가오는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대해 단호한 결의를 내보였다. 26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미국의 최근 제안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우리는 타협 준비가 돼 있다. 동시에 만족할 만한 합의가 없을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모든 선택지가 탁자 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EU에 10%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50%로 올릴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EU는 미국이 부당한 관세 부과에 보복관세로 맞대응할 것을 다짐해 왔다. 사실상 무력화한 세계무역기구(WTO)의 대안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과의 '구조적 협력'을 깜짝 제안했다. CPTPP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주도로 결성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자,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12개국이 만든 협정이다. 유럽-아시아의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트럼프에 반하는 제안. 한국은 CPTPP 협정국이 아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은 균형 잡히지 않은 합의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조현 후보자 "미 제조업 르네상스 도우며 관세 예봉 피해간다" (7) | 2025.07.20 |
---|---|
유엔 인권이사회, "HD현대 건설장비 가자지구 파괴에 동원" (4) | 2025.07.20 |
[중동 휴전] 이란-이스라엘 전쟁 봉합한 트럼프의 '광인 전략' (8) | 2025.06.24 |
[중동 휴전] 안팎 궁지 몰린 이란, 적극적 외교로 '출구' 찾았다 (10) | 2025.06.24 |
이란, 하메네이 살해 협박에도 미국 핵시설 공습에도 '절제된 반응' (0) | 2025.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