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건설기계의 중장비는 10년 넘게 팔레스타인인들의 집과 올리브밭을 비롯한 농토를 파괴하는 데 사용됐다.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 이후 라파와 자발리아를 포함한 가자지구 도심을 파괴하는 데 이 기업의 장비 사용을 늘렸다. 이후 이스라엘군은 (장비의) 기업 로고를 가렸다. 이들 기업은 이스라엘의 범죄적 장비 사용의 증거가 넘쳐나고, 거래를 중단하라는 인권 단체들의 반복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스라엘 시장에 장비를 공급해 왔다. 수동적인 공급자들은 (팔레스타인 주민) 이주 시스템에 주도면밀하게 기여해 왔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파괴와 식민지 재건에 사용되는 건설장비 제조업체들에 유엔이 직접 경고하고 나섰다. '유엔 기업-인권 기본 원칙(UNGP)'에 따른 수사와 기소 및 처벌의 적법성을 역설했다. 프란체스카 알바네제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 특별보고관이 제59차 유엔인권이사회(HRC) 총회 중인 지난 6월 30일 배포한 것. 이후 HRC 기자회견과 각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팔레스타인과 아랍 영토의 인권상황을 고발한 보고서 제목은 '점령 경제에서 제노사이드 경제로'이다.
건설장비 부문에서 '두산'과 스웨덴 볼보그룹, 미국 캐터필드도 대표적인 제노사이드 협력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보고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착민 식민지화 사업을 지탱하는 각국 기업의 공모 실태를 적시하며 "너무도 많은 기업이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제노사이드(대량학살) 경제로부터 이익을 취해 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의 폭로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기업 경영진을 포함한 민간 부문의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끝낼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이어 "국제법은 다양한 수준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으며 한 민족의 자결권과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한 사안의 경우 더 면밀한 조사와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가 기업의 공모 사실을 적시한 까닭은 팔레스타인 점령지를 '포로 경제'로 전환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착취의 경제적 효과를 얻는 반면, 팔레스타인 경제는 최소 국내총생산(GDP) 35%의 손실을 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스라엘은 식민지(점령지) 확대로 팔레스타인의 무역과 투자, 나무 심기, 어업, 물 공급 제한 등 가혹한 제한 탓에 팔레스타인의 노동력과 자원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 점령지에 전력을 공급하고 이스라엘의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 마케팅하는 행위가 동시에 진행됐다. 자원이 풍부한 요르단강 서안(C 지역)의 경우 그 61%를 착취하는 구조를 제도화했다."
은행, 자산운용사, 국부펀드, 보험 등 금융 주체와 대학을 비롯한 학술기관들도 착취의 공모자로 지목됐다. 글로벌 연구 협력이 '학문적 중립성'이라는 베일에 숨어 이스라엘의 식민지화를 지탱해 왔다는 이유에서다. 1967년 중동전 이후 진행된 '점령 경제'는 2023년 10.7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제노사이드 경제'로 변모하고 있다. 통제, 착취, 박탈 시스템이 대규모 폭력과 막대한 파괴를 자행하는 데 동원되는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 인프라로 변모했다는 것. 각국 기업은 바로 이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제노사이드 경제'에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추방(displacement) △대체(replacement) △조력자들(Enablers)로 나누어 구체적인 협력 행위를 고발했다. 방위산업, 건설장비, 정보통신(IT), 금융분야 등 총 48개 글로벌 기업을 각각 △인권 침해 책임이 있는 직간접적 연루 기업 △제품 및 서비스가 인권 침해에 활용된 기여 기업 △정착촌 건설을 비롯해 인권 침해를 유발한 기업 등으로 나눠 분류했다.
이탈리아 법학자 출신인 알바네제(48)는 2022년 5월 임기 3년의 팔레스타인 점령지 특별보고관에 임명된 뒤 올해 재임명 됐다. 2023년 10.7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이스라엘군의 제노사이드 행위를 고발해 왔다. 지난 3월 24일에는 유엔 HRC에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은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라고 보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일부 글로벌 기업들의 강한 반발을 사 왔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9일 알바네제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지도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 발급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의 없이 해당 국가 국민에 대한 조사, 체포, 구금, 기소 등을 하려는 ICC의 노력에 직접 관여해 왔다"라면서 "알바네제는 뻔뻔한 반유대주의를 분출하고, 테러를 지지하며 미국과 이스라엘, 서방을 공개적으로 경멸해 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 20일 유엔 사무총장에 보낸 서한에서 테러와 반유대주의를 지지하고 있는 그를 직위에서 면직시킬 것을 촉구했다.
알바네제의 이번 보고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 파괴와 건설이 글로벌기업들의 직간접적인 협력의 도움으로 가능했다는 점을 적시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C) 경영이 글로벌 기준이 되면서 기업마다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제노사이드 책임을 회피하고 있음을 입증한 것.
HD현대건설기계는 '친환경, 스마트, 안전'을 모토로 ESC 경영 성과를 강조해 왔다. 지난 1일 HD현대인프라코어와 합병, 내년 1월 1일부터 'HD건설기계(가칭)'로 재탄생한다고 발표했다. 합병 보도자료에서 "이번 합병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ESG 행복경제연구소의 국내 시총 200대 기업 ESG 평가에서 종합 A 등급을 받았다.
역시 알바네제 보고서에 언급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체 조사 결과 잘못된 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HD현대건설기계는 알바네제 보고서와 관련한 시민언론 민들레의 질의에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는 컴플라이언스(규정 준수) 규정을 계약서에 명기해 불법적인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라면서 "언급된 분쟁지역 행위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또 "표준계약서에 '인권보호' 관련 규정을 추가해 명문화했다"면서 "현장에서 사용된 장비는 중고장비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가자지구에서는 10.7.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또는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이후 최소 5만 7575명(어린이 1만 7400명)이 사망하고 13만 6879명이 다쳤다. 실종자 1만 4000여 명은 파괴된 건물 잔해 밑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규모를 갱신하는 알자지라의 '라이브 트래커'가 전한 지난 8일 현재 수치다.
알바네제 보고서가 발표된 제59차 HRC 총회는 지난 6월 16일부터 7월 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청사에서 열렸다. 인권이사회(HRC)는 인권위원회(committee)와 함께 유엔의 인권 관련 양대 기구이다.
인권위원회가 18명의 독립적인 인권 전문가로 구성되는 반면 유엔 총회에서 3년마다 선출하는 47개 유엔 회원국으로 구성되는 정부 간 기구다. HRC 이사국 임기는 3년. 아시아태평양(13국)과 아프리카(13국), 동유럽(6국),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8국), 서유럽 등 기타국가(7국)들로 나누어 선출한다. 대한민국은 2025~2027년 이사국이다. 미국은 서유럽 등 기타 국가의 하나로 2022~2024년 이사국이었다. 비이사국들은 옵서버로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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