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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휴전] 안팎 궁지 몰린 이란, 적극적 외교로 '출구' 찾았다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6. 2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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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 봉쇄?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시도했지만 미국 해군의 개입으로 물거품이 됐다. 봉쇄는커녕 기뢰를 설치한 정도였지만 즉각 제거됐다. 이란은 이후에도 위협은 했지만, 단 한 번도 봉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못 한 거다. 드론과 미사일은 잘 만들지만, 오랜 제재 탓에 해·공군력이 심각하게 낙후돼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대사가 22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했다. 2025. 06. 22 [로이터=연합뉴스]

어김없이 튀어나온 '호르무즈 봉쇄'

이란 사정에 정통한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의 분석이다. 장 센터장은 23일 시민언론 민들레에 이같이 전하며 "그래도 해협 봉쇄를 시도한다면 '보여주기식 시위'에 그칠 것 같다. 실제 해협을 봉쇄할 수단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고 짚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지난 13일 이스라엘-이란 전쟁 발발 뒤 글로벌 차원에서 가장 큰 우려다. 이란의 핵개발과 핵확산, 중동 불안 상황의 장기화 등도 걱정거리다. 그러나 세계 유조선 4척 중 1척과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당장 각국의 나라 살림에 타격을 입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모두가 자국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에 먼저 눈길을 돌렸다. 호르무즈를 통해 운송되는 원유만 하루 2000만 배럴에 달한다. 이란이 쓸 방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드론과 단거리 미사일은 물론 대포만 쏘아도 선박운행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2023년 10.7 가자 전쟁 뒤 예멘 후티 반군의 소규모 군사작전만으로 홍해 운항이 타격을 입었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과 조 바이든 행정부가 시작하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승계한 '거부 전략'은 모두 핵심 수단이 미사일이다. 소규모 해병 또는 육군 병력으로 가능하다. 주로 단거리 미사일을 활용해 특정 해역에 선박 출입을 거부하는 작전이다. 그러나 이는 중동 주둔 미군의 즉각적인 반격에 직면함으로써 이란이 절대 회피해야 할 미국 및 서방과의 '확전'이 된다.

각국 언론은 중동이 시끄러워질라치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는다. 이번엔 22일 이란 국회가 해협 봉쇄를 결의, 우려를 키웠다. 그러나 이란의 비장의 카드이되, 쉽게 내놓기 어려운 카드이다.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협 봉쇄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이란최고국가안보협의회(SNSC)가 나서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메시지'에 그쳤다.

미국 U-2 전폭기가 벙커버스터를 투하한 이란 포르도 지하핵시설의 22일 위성사진. 2025.6.22. 로이터 연합뉴스

'절제된 반응'의 속뜻

지난 21일 미국의 자국 핵시설을 공습한 뒤에도 이란은 '절제된 반응'으로 일관했다. 트럼프가 22일 X 계정 게시글로 '정권교체'를 떠벌인 뒤에도 '시오니즘 불량국가(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 트럼프는 "정권교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건 정치적으로 옳지 않지만, 만약 현 이란 정권이 '이란을 다시 위대하게' 하지 못한다면 정권교체가 있지 않겠나??? MIGA!!!"라고 적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다음날 X 계정에 "시오니스트 적이 심각한 실수와 범죄를 저질렀다. 응징당해야 하며 지금 응징 당하고 있다"고 썼다. 트럼프가 지난 17일 자신의 암살 가능성을 공개한 뒤 "우리는 시온주의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라면서 적을 네타냐후 정권으로 제한, 동문서답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20년 1월 카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폭살 때만 해도 트럼프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라크 미군기지 2곳에 미사일 보복공격을 했다. 트럼프는 보복하지 않음으로써 '약속 대련'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란은 왜 절제된 반응에 머물렀을까? 이란 안팎의 사정이 모두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앙시앙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린 혁명정부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앙시앙레짐이 된다. 곳곳에서 시민의 불복종 운동이 확산되고 권력은 통제력을 잃는다. 강력한 공권력에 대규모 시위는 잦아들더라도 저항은 더 넓게 퍼져 일상이 된다. 이란 이슬람 정부가 최근 몇 년 동안 걸어온 길이다. 히잡 강제착용법에 저항한 전국적인 시위는 2022~2023년 정점을 찍은 뒤 줄었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오랜 제재 탓에 악화된 생활난이 불을 붙였다.

2022년 12월 13일(현지시각)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란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 연대 집회에서 한 여성 참가자가 울부짖고 있다. 이 집회는 튀르키예 거주 이란인들이 개최했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한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됐다가 사흘 만에 의문사한 뒤 3개월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2022.12.14. 로이터 연합뉴스

비등점 근접한 이란 민심

여기에 이스라엘의 공습을 사전 탐지는 물론 공습사이렌조차 울리지 않은 정부의 무능은 내부 불만에 기름을 끼얹었다. 주민 대피 안내도 없었다. 지난 16일 인터넷이 6시간 만에 연결돼 들어가 보니 아이로니컬하게 트럼프가 테헤란 시민 즉각 대피를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교통 체증이 심한 테헤란은 거대한 주차장이 됐다. 집권세력의 부패에 대한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22일 최고국가안보협의회 성명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에 이어 국민적 단합을 호소한 까닭이다. 장 센터장은 "5년 전 솔레이마니 피살 때만 해도 반미여론이 높았지만, 지금은 민심이 너무 안 좋다. 혁명수비대 수뇌부 20명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죽은 것보다 주민 피해에 더 관심을 둔다"고 말했다.

외부적으로도 고립무원 상태다.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이 지원한 팔레스타인(하마스), 시리아-레바논(헤즈볼라), 이라크, 예멘 등지의 대리 무장세력은 궤멸된 상태다. 가자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조직적인 공격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도 외교적으론 이란을 두둔하지만, 직접적인 지원을 망설였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미국은 물론 서방의 실질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고 있다. 주요 7개국(G7)은 지난 16일 캐나다 정상회의에서 △이스라엘 자위권 인정 △이란은 지역 불안정 및 테러의 주요 원천 △이란 핵개발에 대한 분명한 반대 등을 담은 공동성명을 냈다.

결국 안팎으로 몰린 이란 정부가 손에 쥔 카드는 많지 않았다. 마수드 페제스키안 대통령의 온건개혁파 정부는 화전 양면의 대응을 해 왔다. 이스라엘에 군사적 보복을 하는 한편,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온 것. 압바스 아락치 외교장관의 양자, 다자 외교가 숨가쁘게 진행됐다. 지난 20일 제네바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외교장관 및 카자 카라스 유럽연합(EU) 외교대표 등과 회동한 뒤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날아가 이슬람국가연합(OIC) 외교장관 회의에 참가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지난 3월 21일 그의 집무실에서 제공한 유인물 사진. 그가 테헤란에서 열린 연례 노루즈 연설에서 군중에게 연설하는 모습. 2025. 3.21. AFP 연합뉴스

온건개혁파 정부의 화전양면

"이란 국민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에 핵협상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선언, 미국의 이스라엘 설득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특사와도 여러 차례 통화한 것으로 보도됐다. 카타르와 튀르키예를 통한 중재 외교도 가동됐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이 유엔헌장 51조(자위권) 위반이라면서 국제적인 우호 여론 조성에서 힘쓰고 있다. 23일엔 크렘린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예방, 하메네이의 친서를 전달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사정도 녹록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트럼프는 연일 허풍을 떨었지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민중의 반발을 사고 있다. "더 이상 쓸데 없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라는 트럼프의 다짐도 자칫 무색해질 위기에 처했다. J.D. 밴스 부통령이 일회성 정밀타격(surgical strike)이었다고 강조한 까닭이다.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재고도 줄어들지만,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무기한 가동하는 게 불가능하다. 여전히 최고의 방패임을 자랑하지만 이란이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했던 작년 4월 13일, 람 아미나흐 이스라엘 예비역 준장은 와이넷 인터뷰에서 밝힌 아이언돔 방공체계 운영비는 하룻밤에 40억 셰켈(1조 4694억 원)을 상회한다.

트럼프가 23일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 휴전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란의 핵개발 저지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진짜 목적이었다면 이번 공격으로 개발을 지연시켰다는 데 만족하고 일단락 짓는 게 유일한 출구였다. 여기의 거친 입과 이란 직접 공격이라는 '작은 불'로 '큰 불'을 끄려는 트럼프의 의도가 적중했다. 어차피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어느 한 나라가 지도에서 삭제되지 않는 한, 항구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란은 계속 핵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이고, 이스라엘이 다시 공격할 수도 있다. 문제는 갈수록 불길이 커진다는 점. 중동 불안의 여진은 디폴트, 내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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