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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게임의 규칙, 트럼프 관세의 대안이 될 수 있나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2. 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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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트럼프'와 함께 미·중 무역전쟁도 돌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치킨게임'이 시작된 것. 휴전 또는 타협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목표가 불투명한 데다가 시 주석의 결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수평선 너머에 등장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중국 톈진 빈하이 경제구역의 량강 다구 항구의 전경. 중국은 자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해 "단호한 반대"를 표명하고 무역 분쟁 해결을 위한 "대화"를 촉구했다. 2025.2.5. AFP 연합뉴스

10일로 예고된 '중국의 반격'

미국은 4일부터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관세 10%를 부과하는 '전면전'을 시작했다. 중국 국무원은 10일부터 미국산 석탄 및 액화천연가스(LNG)에 15% 관세를 추가하고, 원유와 농기계, 대배기량 자동차와 픽업트럭에 10%를 부과하는, '제한전'으로 맞선다. 텅스텐과 텔루륨, 비스무트, 몰리브덴, 인듐 등 25개 금속 물질의 수출통제와 같은 비관세 조치도 예고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5일 중국의 제소에 따라 분쟁조정 절차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특징 중 하나는 한가지 원인을 여러 분야에 적용한다는 점.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추가관세의 빌미로 든 펜타닐을 거론한다. 중국이 오피오이드계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의 원료를 공급, 미국민의 안전과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것. 미·중은 바이든 행정부 때인 2023년 1월 펜타닐 생산과 판매를 대폭 제한하기로 합의한 것은 안중에 없다. 무역전쟁의 진짜 원인은 미국의 막대한 대중 교역 적자다.

중국은 추가관세 적용을 미국보다 늦춤으로써 6일 동안 타협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4일 "(양국 정상 간) 통화는 곧(very soon)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 트럼프-시진핑의 첫 관세 대화가 이뤄질 것을 예고했다.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밝힌 대중국 관세 부과 목표는 60%. 협상 전 댓바람에 호가를 세게 부르는 트럼프 스타일을 감안하면 그 이하일 수도 있다. 트럼프-시진핑 통화가 이뤄지더라도 합의가 무르익기까지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경험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3년에 접어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장기전,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1기 트럼프 행정부는 일부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 2018년 3월부터 '1단계 합의(2019.12.13)'에 이르기까지 무역전쟁을 벌였다. 1년 6개월 동안 미·중은 서로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미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관세, 비관세 난타전을 벌였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무역전쟁은 그러나 별다른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대중 무역 적자는 2017년 3756억 달러에서 4192억 달러(2018), 3456억 달러(2019), 3101억 달러(2020)였다. 최근엔 상황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

1조 달러에 육박한 미국 무역적자. 2025.2.6. 연합뉴스 그래픽

30년 동안 해법 찾지 못한 미국의 무역 적자

트럼프의 협박이 중국에 먹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의 협박이 살아 있는 한 미·중은 물론 세계가 출렁인다. 무역전쟁을 피하면서도 트럼프의 목적을 달성할 묘안은 없을까? 관세전쟁의 서막을 보면서 피터 해럴 전 백악관 국가경제협의회(NEC) 국장의 아이디어가 눈길을 끈다. 트럼프의 사고 속에 들어가 트럼프의 목표를 다른 방식으로 달성하는 방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목표는 중국 견제 또는 타도이다.

해럴은 트럼프에게 관세는 경제와 안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일석이조의 도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2024년 1조 달러에 육박하는 무역 적자를 해소하는 동시에 미국 제조업을 복원하는 게 먼저다. 또 멕시코를 상대로 불법이민과 펜타닐 단속을 요구하는 것에서부터 세계 경제 장악력을 높이는 중국을 견제하는 지정학적 목표다. 워싱턴 정계에서 대표적인 대중 매파인 마코 루비오를 국무장관 자리에 앉힌 이유다. 해럴 전 국장이 지난 12월 19일 자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내놓은 논지는 이렇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트럼프가 유세 과정에서 장담한 대로 관세를 부과한다면 평범한 미국 가정 당 매년 2600~3900달러의 생활비 부담이 커진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이자율 인상으로 소비자 물가 압박 요인을 일부 덜겠지만, 달러화 가치 상승으로 미국 수출기업이 타격을 입는다. 트럼프의 '최초 호가'는 모든 수입품에 최고 20%의 보편관세를, 중국에는 60%를 부과한다는 것.

중국과도 플라자 합의?

각각 1조 달러 안팎인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는 미국의 오랜 고민이다. 달러화 발권 국가로 소비를 만끽해 온 미국 내부가 아닌 밖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관성도 변하지 않았다. 당연히 여러 방법이 시도됐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1980년대 초 대일 무역 적자 개선을 위해 무역 장벽을 높이 세웠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국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인위적으로 달러화 가치를 낮춘 뒤에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1991년 미국의 총 무역 적자는 80%가 줄었다.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중국이 플라자 합의에 동의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달러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내리는 '플라자 합의'에 서명한 각국 재무장관들. 왼쪽부터 게르하르트 스톨텐베르크(서독), 피에르 베레고부아(프랑스), 제임스 베이커(미국), 니겔 로슨(영국), 다케시다 노보루(일본) 장관이다. [위키페디아] 시민언론 민들레

대중 관세를 높여도 중국의 세계 경제 장악력을 약화할 가능성 역시 작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물론 트럼프 관세를 유지한 바이든 행정부가 경험한 사실이다. 2018년 이후 급격히 늘어난 중국의 무역 흑자 규모는 1980년대 일본을 비롯한 제조업 대국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유엔산업개발기구에 따르면, 2030년 세계 산업 생산에서 중국은 45%를 점할 것으로 관측된다. 2000년 6%에서 괄목할 성장세다. 미국의 몫은 25%에서 11%로 쪼그라든다. 트럼프가 국가비상사태를 운운하는 진짜 이유일 터.

중국이 미국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 해럴은 미국이 나머지 85% 국가에 전방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기보다 이들 국가와 새로운 거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처럼 대중 무역 적자를 고민하는 나라들과 연합하자는 제안이다. 그렇지 않아도 브라질과 칠레, 남아공 등 신흥 경제국들은 독자적인 대중 관세 부과와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각국에 기회이자, 위협이다. 캐나다는 2023년 10월 중국의 불공정 교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산 전기자동차와 철강 제품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했다. 해럴은 미국이 이 과정에서 캐나다가 대중 무역 장벽을 높일 것을 권했지만, 치밀한 전략에 따른 접근이 아니라 임시방편적인 외교였다고 평가했다.

해럴은 미국이 제3국들과 함께 대중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장벽을 높이자고 제안한다. 자동차와 광물 등 중국으로부터의 특정 수입품에 '공동 관세'를 함께 부과하는 대신, 그 대가로 각국에 대한 추가 관세를 면제해 주자는 거다. '원산지 규정'을 바꿔 중국 원료나 부품이 들어간 것에도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율을 적용하자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이들 국가가 꺼릴 수도 있지만, 트럼프가 나서 중국 밖으로의 공급망 다양화에 따른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다.

백악관 누리집의 시작 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미국의 귀환'을 적어놓았다. 2025.1.31. [백악관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중국과 미국 사이, 각국의 고민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냉전시대 다자간 수출통제 조정위원회(CCMEC)와 같은 메커니즘이다. 교역과 안보를 통합, 각국이 대중국 수출통제나 해외직접투자 검토에 '미국 기준'을 적용하고 그 대신 이들 국가와 미국의 교역에서 수출통제나 투자 검토 단순화를 교환하자는 말이다. 이를 위해 미국이 1990년대 이후 외국 시장을 개방하고 그 대신 미국 시장 접근을 허용하는 것을 무역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던 패러다임을 깨자고 제안했다.

중국의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교역 파트너로서 매력이 줄어드는 반면,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현시점이 패러다임 전환의 적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트럼프는 "동맹과 우방이 미국을 갈취해 왔다"고 과장하지만, 미국 경제는 2019년 말부터 유럽연합(EU)보다 3배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방침에 협조하는 국가들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최첨단 칩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도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트럼프의 막무가내 협박에 직면한 각국의 선택지가 궁한 건 사실이다. 트럼프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무역전쟁의 소용돌이에 들어가거나 양자택일 외엔 대안이 마땅치 않다. 해럴의 제안이 적어도 제3의 선택지가 될 수는 있겠다. 일부 국가가 이미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파나마는 "파나마 운하를 회수하겠다"는 트럼프의 으름장에 이미 중국 기업과의 항구 이용 계약의 철회 가능성을 내놓고 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를 상대로 보복관세를 언급하는 한편,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관세 전쟁 시나리오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 연합뉴스

시효 끝난 세계화의 미국식 대안

그런데 각국이 대중국 교역을 줄이는 게 과연 미국 제조업에 이득이 될까. 이 대목에서 그는 중국이 자동차를 비롯한 하이엔드 상품 수출을 늘리면서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들이 대미 상품 수출에 더 치열한 경쟁을 벌임에 따라 결국 미국 제조업이 타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각국이 대중 무역 장벽을 구축하는 데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그 대가를 미국이 제공할 것이라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또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 과정에서 걸핏하면 격정적으로 흐르는 트럼프가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세계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트럼프의 입이 위협의 원천이라는 학습효과를 얻은 터다.

해럴의 관점은 지극히 미국 중심의 사고이다. 중국 견제와 미국 제조업 부양에 역점을 두느라 각국이 대중 무역 갈등에서 직면한 곤란을 과소평가했다. 미국이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대중 교역 감소분을 상쇄할지도 의문이다. 냉전시대의 대소련 봉쇄 정책의 분위기도 풍긴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 내에서 이런 고민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도, 자유무역도 이미 시효가 끝났다. 비상한 상황에는 비상한 아이디어가 긴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소개한다.

바이든이나 트럼프나 각각 방법이 달랐을 뿐 미국 국익의 확대와 중국 국익의 축소를 노린다는 점에서는 도긴개긴이다. 바이든이 트럼프의 대중 관세를 유지했듯이 트럼프 역시 바이든식 '비슷한 생각의 나라들(LMNs)'과의 연합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든의 미국과 트럼프의 미국은 별개가 아니다. 미국은 하나다.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트럼프의 선언은 4년 전 바이든의 취임 일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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