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효율부(DOGE) 설립 목적은 연방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현대화함으로써 정부 효율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대통령실 직속 '미국 디지털 서비스국'은 미국 DOGE 서비스(USDS)로 공식 변경한다.' 20일 DOGE 설립 행정명령 섹션1, 섹션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기, 2기 행정부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기술의 지배 또는 기술 독재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외적으론 중국 제압을 구실로 기술 제국주의의 냄새를 풍긴다. 디지털 서비스국을 흡수한 대통령 직속 DOGE의 출범 역시 연방정부의 인력을 감축하고 효율을 높이는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는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기술 거물'들의 트럼프 정부 참여 또는 지지라는 현상만 바라보면 전체 그림을 놓칠 수 있다.
트럼프는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인치(人治)를 기술의 통치로 대체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끝내고 기술에 의한 기술을 위한 기술의 효율을 강조하는 게 대표적인 움직임이다. 과학·기술이 국가를 지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1930년대 대공황의 절망 끝에 미국과 캐나다에 등장했던 '기술통치주의(테크노크라시, Technocracy) 운동과 일정 부분 맥이 닿아 있다.
테크노크라시 운동은 정부 시스템으로 대의 민주주의 대신 기술 통치를 정부 시스템으로 하자는 주장이었다. 당파성에 매몰된 정치인과 기업인이 주도하는 체제를 탈피, 경제를 관리할 수 있는 기술적 전문성을 갖춘 과학자와 엔지니어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 것. 소비와 생산의 균형을 의미하는 모나드 문양을 공식 상징으로 사용한다. 변형된 태극 문양을 연상시킨다. 기술자와 과학자, 엔지니어로 '기술동맹'을 결성했던 하워드 스콧이 1940년 만든 아메리카 테그네이트 지도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그린란드 및 카리브해 국가들과 남미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가이아나를 아우르는 단일경제권을 추구했다.
트럼프가 테크노크라시 운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발언과 덴마크령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드러내면서 테크노크라시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의 구상과 근본적인 차이는 테크노크라시가 통합 대상으로 설정한 멕시코와 카리브해 및 일부 남미국가들을 분리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을 강화, 국경 너머 히스패닉 주민들을 철저히 타자화하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추진하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사실상 폐지하려는 움직임과도 배치된다.
1930년대의 기술과 21세기 기술은 같지 않다. 상품과 자본의 독점에 그치지 않고 첨단 기술이 국민의 일상 생활을 통제하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는 실리콘밸리의 기술 거물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기술 권위주의(Techno-authoritarianism)의 시대가 도래했다 (디 애틀랜틱)"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술 거물과 연방정부의 결탁은 단순히 기술개발과 산업 성장을 위한 각종 규제 철폐에 그치지 않는다. 기술 기업들이 미국민의 사적 데이타와 사적 디지탈 공간을 과도하게 통제하고, 심지어 여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연방정부의 디지탈 역량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DOGE를 설립에서 드러나듯이 기술 정책의 급격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 행정권한을 사용하겠다고 나섬으로써 이러한 우려를 부추긴다. 당장 머스크는 자신의 기업을 감독하는 정부기관을 감독하는 위치에 섰다.
맷 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전략기술프로그램 팀장은 DOGE 설립 행정명령 내용 중 미국의 AI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념적 편견과 사회적 의제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연방정부가 AI 기업의 모델의 세부 사항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펄 팀장은 "행정부는 미국이 핵심기술에서 경쟁국보다 우위를 확보하는 것과 기술에서 이념적 편견을 제거하겠다는 약속 간에 내재된 긴장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칫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민주적 제도를 훼손하고 개인의 자유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과 기술 거물의 결합이 디지털 시대 권위주의적 통제에 대한 불안감을 불러 일으킨다.
'기술 거물'들의 성향 역시 불안이 싹트는 지점이다. 페이스북(메타)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전세계에 허위정보를 퍼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고, 2021년 1·6 의사당 폭동을 계획, 실행하기 위한 장소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2년 페이스북이 사람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자 모르게 뉴스피드 게시 내용을 조작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남아공 출신인 머스크는 지난 25일 독일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화상연설에서 "AfD가 독일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강조, 극우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달 초에는 팔로워 2억1100만 명인 자신의 X 계정에 "미국은 영국을 폭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라면서 극우 '영국 개혁당' 지도자 대표 니겔 파라지 지지를 표명했다. 미국 기술 거물 중에서는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에게 5000만 달러(725억 원)를 쾌척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예외적인 인물. 그는 뉴욕타임스에 "실리콘 밸리는 중간에서 왼쪽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이번 대선을 계기로) 중도 우파 그룹이 늘어났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털어놓았다.
바이든이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회수'하고, 외국 공장을 미국에 끌어들여 꺼진 공장의 불을 밝히는 방식을 택했다면, 트럼프 2기의 화두는 기술, 기술, 기술이다. 중국발 딥시크(DeepSeek) 충격으로 다소 빛이 바랬지만 트럼프의 기술 야심은 AI에 머물지 않는다.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한 이유도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제조업국가 복원뿐 아니라 막대한 전기를 필요로 하는 AI 인프라 건설을 위해서였다.
23일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 발족 행정명령에서는 AI와 퀀텀 이니셔티브, 자율주행 시스템, 무인항공 시스템, 생명공학, 5G, 슈퍼 컴퓨팅 시스템 등에 대한 투자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다짐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에서도 실리콘 밸리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상당 부분 걷어냈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기술 거물들과 동맹을 통해 기술 권위주의, 기술 제국주의의 야심을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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