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발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가 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양대 교역국,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이틀 만에 유예했다. 3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각각 통화한 뒤 내놓은 결정이다. 관세 부과 발표도, 유예 발표도 전격적이었다.
토요일 관세 부과를 발표하고 월요일에 뒤집는 방식으로 주말 동안 '충격과 공포' 효과를 극대화했다. 적과 아군을 다 속였다. 유럽과 아시아 증시뿐 아니라 뉴욕 증시도 춤을 췄다. 그러나 두 건의 통화 뒤 전격 발표된 '휴전'은 관세전쟁의 1단계일 뿐이다.
멕시코와 캐나다를 뒤흔들어놓은 뒤 "알아서 기라"는 신호를 준 것에 불과하다. 30일의 유예기간이 끝난 뒤 두 나라의 '숙제'를 평가할 권한은 온전히 트럼프에게만 있다. 트럼프는 '초기 수익'을 챙겼다고 떠벌렸다. 셰인바움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멕시코가 펜타닐을 비롯한 마약 밀매 차단을 위해 1만 명의 국가방위군을 국경에 투입하기로 했음을 성과로 내세웠다. 미국과 멕시코는 30일 동안 마약 밀매와 불법이민에 관해 협상할 예정이다. 미국은 국경을 통해 멕시코로 고위력 무기가 밀매되는 것을 차단하기로 했다.
트뤼도 총리가 두 차례의 통화 뒤 제시한 잠정 해법 또는 성의 표시의 내용도 비슷하다. 트뤼도는 자신의 X 계정에 "캐나다 정부에 (미국식으로) 펜타닐 담당관(czar)을 임명하고, 멕시코 마약 카르텔들을 테러 단체 명단에 올리며, 캐-미 양국 합동군이 조직범죄와 펜타닐, 돈세탁과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 계정에 "이러한 초기 성과에 매우 만족한다. 1일 발표한 관세 부과는 30일 동안 중단한다. 캐나다와의 최종적인 경제 담판이 확정될 것인지 보기 위해서다. '모두를 위한 공정!"이라고 썼다.
캐나다의 조치를 확인한 뒤 추가관세 25% 확정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말이다. 얼핏 "상대가 적국이든 우방이든 관세가 확실한 외교적 무기"라는 트럼프의 신조가 확인된 걸로 보인다. 트럼프는 "이것은 마약 전쟁이다.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으로 마약이 유입되면서 미국인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지난 주말에 벌어진 일은 100% 마약 전쟁에 관한 것"이라며 외려 "캐나다가 무역전쟁으로 오판했다"고 거들었다.
관세 유예 결정이 '작전상 후퇴'인 것은 관세 부과를 발표하면서 '국가 비상사태'라고까지 호들갑을 떨었던 것에 비해 멕시코, 캐나다와 합의 내용이 소박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3일 자 사설에서 관세 유예가 '눈 깜빡임'에 불과하다고 표현한 이유일 터다. "관세 휴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훨씬 더 많다"는 말이다.
우선 멕시코가 불법이민자 단속과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약속한 건 처음이 아니다. 셰인바움은 새삼 이민자를 미국에 보내지 않고 멕시코에 잔류시킨다는 정책을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 문제 역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멕시코는 펠리페 칼데론과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 재임 당시에도 노력할 것을 다짐한 바 있다. 캐나다의 마약류 단속 강화 약속 역시 실효를 낙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소소한 성과에 관세 부과를 30일 연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겨냥한 탄착점은 여전히 선명하지 않다.
트럼프 주장대로 '마약 전쟁'일수도 있고, 1기 행정부 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수정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의 재수정일 수도 있다. 멕시코, 캐나다에 내준 숙제를 평가하는 것 역시 오롯이 트럼프의 재량이다. 시원치 않으면 관세를 다시 부과한 뒤 또다시 숙제를 내줄 게 분명하다. 어느 쪽이건 트럼프 관점에선 잃을 게 없다. '골대'를 옮길 수도 있다. 트럼프가 쏟아내는 장광설에 그 단서가 있다.
펜타닐과 불법이민 문제가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없는 만큼 본격적으로 무역 적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미국 총수입액의 각각 16.2%, 14.5%를 차지하는 멕시코, 캐나다와의 무역적자를 해소하지 않는 한 트럼프가 약속한 화석연료 기반의 제조업 강국으로 복귀는 요원하다. 유예기간 동안 1994년 NAFTA 출범 이후 미국으로의 우회 수출을 위해 캐나다, 멕시코로 공장을 옮겼던 각국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미국 내로 공장이 많이 오면 바로 제조업 강국의 꿈에 다가갈 수도 있다. 변죽을 울려 핵심 목표를 챙기기. 트럼프의 식 협상 또는 협박의 또 다른 원칙이다. 그는 관세 부과 대상으로 호명된 국가들이 "미국과 합의를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며, 의기양양했다.
30일 동안의 휴전은 트럼프에게 10%의 추가관세 부과를 발표한 중국과 아직 관세율을 밝히지 않은 유럽연합(EU)을 상대할 제2, 제3의 협박에 집중하기 좋은 기간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3일 중국에 대해 "아마 24시간 내로 대화할 것"이라며 "(10%)는 개시 사격으로 타협에 이르지 못하면 중국 관세는 더 올라간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만만한 멕시코, 캐나다에 대뜸 25% 관세 부과를 발표한 데 비해 중국에 '호가'를 낮게 부른 이유를 자복한 것. EU에 대해서는 지난 31일 "이달 중순쯤 컴퓨터 칩과 의약품, 철강, 알루미늄, 동, 원유, 가스에 대한 관세를 올릴 것이라고 공표했다. 멕시코, 캐나다에 비해 트럼프의 위협에 대응할 지렛대를 보유한 중국과 EU를 상대로 한 관세 게임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충격과 공포'는 본래 군사작전 용어다.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의 인식을 마비시키고, 전의를 상실케 하기 위한 전격전이다. 트럼프가 다른 점은 군사력이 아닌 경제적 강압만으로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파나마 운하 문제가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2일 "중국의 파나마 운하 소유를 막겠다"면서도 "군대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해 군사력 동원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는 트럼프가 '정신승리'에 그칠지, 실제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목표 달성에 근접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의 화법을 빌면 "두고 볼 일(we will se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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