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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족할 때까지" 트럼프, 멕시코-캐나다-중국과 '관세전쟁'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2. 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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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코끼리'가 돌아왔다. 세계를 상대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이 더 일찍, 더 광폭의, 더 빠른 속도로 시작됐다. 관세 부과의 명분과 목적도 달라졌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제한적으로 동원했던 관세전쟁과는 궤를 달리한다. 경제, 통상 전문가들이 '모두가 잃는 게임'이라고 경고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국이 만족할 때까지" 높은 관세를 유지한다는 협박 또는 진심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주말을 보낸 뒤 2일 밤 백악관에 돌아와 취재진에 손은 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부터 캐나다-멕시코-중국산 상품에 대한 추가 관세가 적용된다. 2025.2.5.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는 1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별장에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라 캐나다와 멕시코에 각각 25%,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매긴다고 자신의 트루스 소셜에 발표했다. 미국 철강 및 정유 업계 노조가 반대한 캐나다산 원유에는 10%를 부과했다. 캐나다(4296억 달러, 14.5%)-멕시코(4800억 달러, 16.2%)-중국(4480억 달러, 15.1%)를 합하면 전체 미국 수입물량의 45.8%에 달한다. (2023년, 트레이딩 이코노믹스 집계) 같은 해 미국의 최대 교역 상대인 유럽연합(EU)으로부터의 수입 5899억 달러를 합하면 60%에 달한다. 

더 일찍, 더 광폭의, 더 빠른 속도

1기 행정부에선 취임 첫 달인 2017년 1월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전지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를 발동하고, 3월에나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 10%의 관세폭탄을 투척했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미 행정부 내부(국방부)에서 반박성명을 낼 정도로 역풍이 불었다. 2기 행정부는 이 점에서 일사불란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충성파로 채운 덕이다.

이번에도 국가안보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1기에 비해선 정교해졌다. 불법이민과 펜타닐(마약성 진통제)를 비롯한 마약류 유입 등 실제로 미국 사회를 뒤흔드는 위협을 근거로 제시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12개월 동안 미국 내에서 펜타닐 중독으로 8만 9740명이 사망했다. 그 이전 12개월과 비교하면 22%가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상황. 오피오이드의 일종인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50배 강력하다. 2022년 미국 18~49세 사망 원인 1위(11만 명 사망)를 기록했다.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에도 대낮에 펜타닐에 중독돼 좀비처럼 배회하는 사람이 쉽게 목격된다. 백악관은 "베트남전 사망자보다 많은 미국민이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죽어간다"고 밝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청사 앞에서 31일 주민들이 대니얼 루리 시장의 펜타닐 비상사태 선포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2025.1.31. AP 연합뉴스

미 세관국경보호국(CPB)는 펜타닐 억지 빌미로 지난 회계연도 멕시코 국경에서 압수한 펜타닐은 2만 1149파운드(9.6t)인 데 비해 캐나다는 43파운드(19.5㎏)였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에서 "캐나다에서 펜타닐과 마약성 진통제 합성 실험실을 운영하는 멕시코 범죄 카르텔의 존재가 증가하고 있다"라면서 공중보건 비상사태임을 한껏 강조했다. 캐나다를 겨냥한 '북부 국경 넘어 불법 마약'에 관한 행정명령이다. 중국은 이중 펜타닐 원료를 수출하는 나라로 지목돼 왔다. 그러나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중 갈등 속에서도 펜타닐 원료 수출통제에 상당 부분 합의하고, 개선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억지스럽다. 관세 부과의 명분은 필요에 따라 바뀐다.

"미국이 만족할  때까지" 경제적 강압의 결정판

미국과의 교역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캐나다 67%, 멕시코 73%, 중국 24%. 미국 GDP의 24%에 달한다. 백악관은 2023년 1조 달러의 세계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했음을 들어 관세 부과의 다른 목적이 무역적자 해소임을 공개했다. "미국 시장 접근은 특권"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민의 안전과 국가안보를 우선한다"고 강조했다. 펜타닐로 인한 국민 안전과 국가안보, 무역적자를 하나로 꿰뚫는 논리는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트럼프가 제시하는 개선 방안 역시 일방적으로 '경제적 강압'의 전형이다.

백악관은 "캐나다 정부가 협력적 법 집행을 통해 공중보건 위기를 완화할 협력을 보장해야할 것"이라며 관세 철회 조건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을 들었다. 백악관 당국자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밝힌 기준은 더 자의적이다. "진전을 이뤘다는 최상의 측정치는 미국인이 불법 펜타닐로 더 이상 죽어가지 않고, 국경의 광범위한 범죄 활동이 극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일 오타와의 의사당에서 이날 미국의 자국 상품에 대한 추가관세 25% 부과에 항의하며 "캐나다는 스스로 선정한 미국 상품에 대해 똑같이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의 조치에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방침이다. 2025.2.1. AFP 연합뉴스

이에 따라 지경학적으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국가는 캐나다와 멕시코이다. 1994년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미국으로 우회 수출을 위해 두 나라에 공장을 지은 한국 기업에도 피해가 미친다.

트럼프와의 협상과 합의는 물론 미국 국내법도 쓸모가 없었다. 트럼프는 NAFTA가 미국 노동자들의 피해를 줄인다는 이유로 재협상에 나서 2020년 1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체결하고 법제화했다. 노동 관련 조항을 대폭 강화했지만, 이후 캐나다, 멕시코의 대미 흑자는 되레 더 늘었다. 펜타닐과 불법이민을 빌미로 캐나다와 멕시코가 가장 먼저 '매'를 맞은 이유다.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를, 중국 제품에 60%의 고율 관세를 매긴다는 방침은 미뤄졌지만 트럼프 관세의 칼날은 전 세계를 향하고 있다.

1기 때의 '제한적 관세전쟁' 범위 넘어

트럼프는 31일 "그동안 우리를 너무 끔찍하게 대했던 EU에 대해서도 관세를 올릴 것"이라며 수입 컴퓨터칩과 의약품, 철강, 알루미늄, 동, 원유, 가스 등에 대한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단기적으로 일시 혼란이 있겠지만 관세는 우리를 더 부유하고 더 강하게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 1기 행정부에서 중국과 주요 7개국(G7)들이 겪었던 제한적 관세전쟁의 범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는 관세가 미국 소비자 물가를 자극해 가파른 인플레로 이어지고, 교역 감소로 미국 경제 역시 피해를 볼 거라는 과학적 분석에 귀를 닫고 있다.

그가 일시적 혼란에도 결과를 장담하는 근거의 하나는 이번에 설립한 '대외수입청(ERS, External Revenue Services)이다. 관세뿐 아니라 수입세를 포함, 외국의 원천으로부터 거둬들이겠다는 추가 수입으로 관세인상으로 인한 물가 불안을 다독이겠다는 포석이다. 법인세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분을 메운다는 계획이다. 어떤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수입을 징수할지 역시 트럼프가 만족할 때까지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31일 수도 멕시코시티의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 중 웃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부과 조치에 3일 대미 관세 방침을 발표한다. 2025.1.31. EPA 연합뉴스

이번 관세 부과로 분명해진 사실은 '제한적인 낙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대선 이후 한국을 비롯한 세계는 트럼프 1기 당시의 제한적인 관세전쟁을 들어 각국 기업이 적응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특히 중국과 관세전쟁을 벌이다가 중국의 미국 농산물 수입과 미국의 중국 금융시장 진출을 맞바꾼 2019년 10월 '1단계(Phase I) 합의'는 대표적인 낙관의 근거였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더라도 트럼프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까지 갈 수 있다"는 현실론(이혜정 중앙대 교수)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달러화 대비 환율과 국내 상품 대체효과 등으로 일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무색해 보인다. 뚜껑이 열린 트럼프 관세는 충격 완화 장치를 무력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 안의 코끼리'는 이제 '방'을 넓히겠다는 결기까지 보인다.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는 물론, 캐나다에 대해 "미국의 51번째 주로 들어오면 관세도 없고, 방위도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 이를 암시한다. 결국 국가를 헌납할 정도의 강도 높은 조치를 내놓을 때까지 가겠다는 말이다. 돌아온 트럼프는 더 이상 포퓰리즘 지도자에 머물지 않는다. 자유무역(FTA)에 대한 혐오도 표출하지 않는다, '성난 백인'도 블루칼라 노동자도 강조하지 않는다. ‘성난 미국’만 보인다. 미국이 아니라, 세계가 비상사태에 처했다. 코끼리가 멈출 즈음, 세계가 어떤 상태일지 가늠하는 것은 지금으로선 '신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기 행정부 당시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도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2일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함께 상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9.6.29.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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