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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정상회담, 백악관 '언론 프레임'에 갇힌 한국 언론의 고민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9. 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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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북·러 정상회담은 여전히 미국 조야의 추측 속에 머물러 있다. '중심'이 일단 여론을 휘저어놓은 뒤 '주변'이 호들갑을 떠는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다. 동아시아 분단국 언론에선 온갖 추측과 단정, 미확인 사실들이 '팩트의 옷'을 빌려 입고 춤을 추고 있다.

오는 1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하는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의 극동대학. 7일 현지 경찰들이 배치돼 있다. 2023.9.7. 연합뉴스

지난 4일 김 위원장이 오는 10~13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에서 예정된 동방경제포럼에 참가, 북·러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라는 '첩보'를 전한 뉴욕타임스는 차분한 반면에 바통을 이어받은 한국 언론은 온갖 가능성을 뒤져내 보도를 확산하고 있다. 한·미 언론의 익숙한 '시간차 공조'이다.

정작 뉴스의 발원지인 뉴욕타임스는 5일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새로운 지렛대를 발견하고 있다'는 제목의 서울발 분석기사를 게재한 것 외에 추가 보도를 내놓지 않고 있다. 4일 특종 보도에서도 정보와 첩보, 실명 당국자와 익명 관계자의 경계를 정직하게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북·러 정상회담 및 군사협력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세세한 협력 내용까지 소개하고 있다. 놀라운 예지력이다.

중요한 것은 늘 사실 여부이다. 북한과 러시아 언론은 일제히 침묵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북한 매체는 당의 선전도구인 만큼 '최고 존엄'의 동선을 앞당겨 전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보도를 내놓는 러시아 주요 언론조차 추측 기사를 내보내지 않고 있는 점은 이례적이다. 확인된 사실이 없어서일 게다. 북·러 당국에서 나온 반응 아닌 반응은 "우리는 그 주제에 관해서 아무것도 말할 게 없다"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의 5일 발언이 전부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 국방부는 5일 브리핑에서 일제히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면 안보리 결의 위반인 만큼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그러나 누구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8월 18일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23.8.18. 로이터 연합뉴스

누가 어떤 의도로 설계했건, 일단 프레임에 갇히면 쉽게 풀려날 수 없는 게 언론의 숙명이다. 언제라도 북·러 정상회담이 열릴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무작정 믿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다만, 구체적인 의제로 넘어가 미확인 팩트를 끌어모아 보도를 남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첩보가 정보가 아닌 것은 근거가 불충분하고 최소한의 확인이 안 됐기 때문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과 대전차 미사일을 공급하고 러시아가 그 대가로 핵 추진 잠수함과 위성 기술을 제공한다는 보도는 '첩보'를 옮긴 것에 불과하다.

'사실'이 묘연할 때 자연스레 '배경'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경우 뒤져봐야 할 진실은 미국과 한국 언론으로 하여금 보도에 뛰어들게 틀을 설계한 자의 의도일 것이다. 미국은 과연 어떤 의도에서 프레임을 짰을까.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미국은 한바탕 쏟아낸 정보와 첩보의 정확성을 떠나 잃을 게 별로 없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과 중국, 이란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할지도 모른다는 '선제적 정보 및 첩보 흘리기(preemptive leak)'로 재미를 보고 있다. 사실이건 아니건 중요치 않다. 이번 역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할 것 같다"는 선제적 공개로 북한의 의도를 좌절시킬 것을 노리고 있다. 익명에 숨었을지언정 미 당국자들이 숨기지 않는 진실이다. 미국은 1년 전부터 북한의 대러 무기 공급설을 선제적으로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최소한 현재까지 북한산 무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성과로 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 흑해변 휴양도시 소치에서 극동지방 도시 개발 프로그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3.9.5. 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이 무기 공급을 하지 않으면, 미국은 '선제적 흘리기'의 효과가 입증됐다고 자평할 것이 분명하다. 북한과 러시아에 미국의 말이 먹혀들었다고 과시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북·러 정상회담이 이달에 열리건 6개월 뒤에 열리건 미국은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게 된다. 혹여 열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은 이유를 또 언론에 흘리면 그만이다.

반대로 무기 공급을 한다면 자신들의 주장이 맞았다고 말할 게 분명하다. 대리전으로 수행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악재다. 그럼에도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반북, 반러 여론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내에서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윤석열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협력체제를 의심하는 이를 '반국가세력'으로 지목하지 않았나. (1일 국립외교원 연설) 반면에 미·일 어디에서도 합의가 안보 상황을 더 위협에 빠뜨릴 것으로 의심한다고 해서 "반국가세력"이라는 윽박은 받지 않고 있다.

미국으로선 한국 정부가 러시아와 헤어질 결심을 하도록 유도하는, 망외의 성과도 기대할 만하다. 결코 무리한 추정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뒤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한·미·일 관계를 제고하는 데 있어 늘 기대 이상의 활약상을 보여왔다. 미국 주도 대러시아 제재에 더해 강력한 독자제재를 해온 관성으로 보아도 그렇다. 관계 단절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러 추가제재로 한·러 관계를 더 벌리고, 이를 통해 한국 여론이 동요하지 않게 하는 효과를 예상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마지막 정상회담. 2019년 4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회담을 갖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러나 반국가세력을 상대로 한 '윤석열의 전쟁'에서 빠진 게 있다. 한국의 대러시아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입장이 없다. 국민을 추종세력과 반국가세력으로 양분한 생각 패턴으로 보면, 진작 뚜렷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했다. 말과 행동은 명백하게 러시아에 비우호적이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려는 듯한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주러시아 공사를 지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은 이와 관련, "러시아가 한반도 전략을 전환했다는 조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면서 그럼에도 "북·러 군사협력 설은 미국 입장에서 잃을 게 없는 꽃놀이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초강대국 미국이 설계한 프레임은 늘 강력하다. 왜 아니겠는가. 불과 몇 달 전에도 미국 정보기관이 대한민국 대통령실을 비롯해 동맹과 우방국 지도자들의 사무실을 불법 도·감청한 사실이 백일하에 밝혀지지 않았나. 지난 4월 주 방위군 잭 테세이라 일병(21)이 검거됨으로써 실체가 드러났지만, 대통령실은 뭉개고 지나갔다.

거듭 강조하지만, 시민언론 <민들레> 역시 그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만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행 전용열차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작심하고 퍼뜨린 정보 또는 첩보를 무시하지 못한다. 한반도 거주민으로서는 어쩌면 이마저 실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차가운 현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구조의 '선제적 경고'를 계속 접하다 보면 학습효과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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