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러시아가 북·러 정상회담이 수일 내 열릴 것이라고 11일 공식 발표했다. 지난 4일 뉴욕타임스 보도로 처음 유포한 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선제적으로 흘린 정보 중 적어도 '절반'은 적중하게 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곧' 러시아를 방문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방문 기간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한다고 전했다. 크렘린궁도 이날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수일 내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또 "(정상을 포함한) 양국 대표단의 회담이 있을 것이며, 필요하다면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단독회담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그러나 오는 13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서 두 정상이 만날 계획은 없다고 밝혀 회담 장소가 꼭 블라디보스토크가 아닐 수 있음을 시사했다. 푸틴은 12일 동방경제포럼 본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로써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가 지난 5일 일제히 '이달 중 북·러 정상회담'을 예상한다고 발표한 부분은 들어맞게 됐다. 하지만 미 행정부 및 동맹국 관계자들이 익명으로 전한 높은 수준의 군사협력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미국 언론과 이를 받아 전한 한국 언론은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과 대전차 미사일 등을 제공하고, 러시아가 북한에 핵 추진 잠수함 및 군사위성 기술 등을 제공할 것이라는 등 구체적인 의제를 전했다.
북한이 러시아와 연합훈련을 하게 될지도 관심이다. 국가정보원은 앞서 지난 4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북·중·러 연합군사훈련에 참가할 것을 권했다고 전한 바 있다. 북한의 7·27 전승절(정전협정기념일)에 푸틴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했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지난 4일 북한의 합훈 참가와 관련해 "안 할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반문하며 "북한은 러시아의 이웃국이고, 같은 이웃국인 중국은 러시아와 합훈은 물론, 함께 순찰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러시아 및 중국과의 연합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8·18 한·미·일 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합의 이후 동북아 안보에 또 다른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정상회담을 이리 긴박하게 발표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201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뤄진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의 경우 회담(25일) 1주일 전인 18일 장소를 특정하지 않은 채 정상회담 예정을 밝힌 바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세 번의 방러 역시 며칠 시차를 두고 미리 발표됐었다.
이와 관련 주러시아 공사를 역임한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은 "실무선에서 공동발표 문안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아직 그 시기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서방 언론은 일단 13일을 정상회담 일로 예상한다고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김 위원장의 방러 시점과 관련해 조선중앙통신은 '곧'이라고 했고, 크렘린궁은 '수일 내로(in coming days)'라고 밝혔다. 이는 장소도 블라디보스토크가 아닌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경유하는 제3의 도시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페스코프는 12일 리아 노보스티 통신에 회담 장소로 '극동지방'이라고 밝혔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1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9일 동안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이르쿠츠크~노보시비르스크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9200여㎞를 주파했다. 다음 해에는 러시아 극동지방 하바롭스크의 산업시설을 시찰한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했다. 2011년 마지막 방문 때는 북·러 접경의 하산 역에서 환영행사를 했지만, 바이칼호 인근 울란우데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중국 만주리를 거쳐 귀국했다.
앞서 푸틴은 북한의 정권 창건 75주년 기념일인 지난 9·9절 축전을 통해 양국이 "모든 방면에서 쌍무적 연계를 계획적으로 확대해나가게 될 것을 확인한다"면서 "이것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과 안정을 보장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8월 24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와 관련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블록 대 블록의 대결 구조를 촉진하는 (한·미·일) 삼각관계"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긴박한 문제들'을 포함해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완화하고 제재와 (군사적) 완력을 동원해 대치하려는 사고를 포기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오랫동안 한반도 문제의 항구적인 해결을 위해 동북아 안보 체제 구축을 제안해왔던 러시아가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책을 바꿀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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