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미군)가 한반도에 주둔하지 않으면 김정은이 남침할 거라고 보나?" (킹 상원의원)
"남침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다만 김정은은 재래식 전력의 이점을 이용해 남한이 지난 75년 동안 이룩한 위대한 성장을 제한하려 할 것 같다." (브런슨 사령관)
"(브런슨) 사령관은 김정은이 (군사분계선의) 경계를 인정했다고 했다. 또 (남한을) 침공하지 않을 거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우리(미군)는 대체 거기(남한)에 왜 있나?" (킹)
"…." (브런슨)
지난 4월 10일 미국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앵거스 킹 의원(무소속·메인·81)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주고받은 말이다.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의 경계를 강화하고 더 이상 통일을 말하지 않는 최근 상황에 대한 브런슨의 증언 끝에 나온 문답이다. 브런슨은 답변을 머뭇거렸다. 대장이라고 같은 대장이 아니었다. 새뮤엘 파파로 인도태평양사령관이 마이크를 잡고 슬그머니 초점을 이동했다.
"김정은이 침공할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가 북한을 (남한으로부터) 격리하는 노력은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확률을 말하고 있다. 병력(주한미군)이 줄어든다면 김정은이 침공할 확률이 더 높다." 많은 국내 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한 파파로 사령관의 말이다.
무소속으로 주지사 연임(8년), 상원의원 3선을 한 팔순의 킹 의원은 송곳질문 하나로 주한미군의 본질을 꿰뚫었다. 브런슨의 말은 얼떨결에 갖다 붙인 수준. 북한의 재래식 전력 도발은 서해 교전, DMZ 침투 등을 말하는 것일 터. 북한은 핵무기가 없을 때도 숱한 도발을 해왔다. 2023년 무인기 서울 상공 침범도 있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위대한 성장을 멈춘 적은 없다. '코리아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우뚝 섰다. 지금 한국 경제의 걸림돌은 북한이 아니다. 되레 방위 분담금과 관세를 들고 달려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긴박하고 직접적인 위협이다.
파파로가 끼어들어 한 말 역시 사실과 거리가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이 집중된 주제는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가 아닌 감축이었다. 완전 철수라면 전 세계 49개국에 배치한 128개 미군기지 가운데 가장 완벽하고, 가장 중요한 캠프 험프리스를 내놓아야 한다. 파파로의 말을 정리하면 "주한미군 2만 8500명의 일부가 줄어들면,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최소 세 개의 가정이 동시에 충족돼야 말이 된다.
주한미군이 수천 명에서 1만 명 이상 줄어든다고 치자. 그것이 남북한 178만 명이 대치하고 있는 전선의 균형을 흔들 만큼 절대적인 전력일까? 국군은 주한미군 없이 재래식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가? 북한이 주한미군의 부재를 침공의 호재로 판단해도 전쟁할 만한 군사적, 경제적 준비가 돼 있을까? 이러한 가정이 동시에 들어맞아야 제2의 한국전쟁이 벌어진다. 특히 국군이 북한의 재래식 침공을 막아낼 역량이 없거나, 적어도 없다고 북한이 인식해야 전쟁을 결정할 수 있다.
유사시 주한미군의 전력
주한미군의 역할이 실질적인 군사적 필요에서 상징적, 심리적, 정치적 필요로 바뀐 지는 오래됐다. 부지불식간에 대북 억제력으로 주한미군이 맡았던 역할과 기능이 줄었다.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 반환을 전후해 30여 년 동안 국군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하나하나 접수했기 때문이다. 국군은 고고도 정찰기 글로벌 호크와 백두사업(신호정보), 금강사업(영상정보), 북한 장사정포에 대응할 다연장로켓시스템(MLRS)에서 공군의 해상탐색 구조 역할 등 10개 기능을 대체했다. 하나같이 우리 국민의 혈세로 미국산 무기와 체계를 사들인 덕분이다. 주한미군의 임무는 초전(初戰)에 집중된다. 전시 증원군이 올 때까지 북한의 침공에 대비하는 것. 그 핵심 기능이 100% 가까이 국군에 넘어왔다. 노무현 정부와 조지 부시 행정부가 2012년까지 전작권 환수에 합의(2007년 2월 한미 국방장관 회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상원 군사위 청문회 동영상 및 전문)
2025년 현재 주한미군의 전력을 보자. 육군과 공군 중심이다. 규모를 2만 8500명으로 정한 2008년 이후 지상군 핵심 전력 6500여 명은 스트라이커 기동여단으로 순환배치하고 있다. 공군은 1개의 전투비행단(오산)을 두고 있다. F-15K, KF-16, F-35A 등 다양한 기종을 갖춘 우리 공군과 달리 공대공 전투에 적합한 F-16을 주력으로 한다. 기종마다 임무는 다르지만, 산술적으로 10개 비행단을 둔 우리 공군의 10% 정도. 초전에 북한 전투기와 공중전 수행이 임무다. 해군은 단 1척의 함정도 없다. 유사시 함정을 맞아들이기 위한 지상 인원만 있다. 육해공 모두 결정적인 전력이 아니다. 해병대는 전무. 해군, 해병대, 공군 중심으로 편성된 주일미군과 역할과 기능이 판이하다.
브런슨은 주한미군이 "동해에서 러시아를, 서해에서 중국에 대한 잠재적 억제력"이라고 주장하지만, 기실 주한미군은 해상, 공중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을 막을 수단이 없다. 주한 미국 지상군의 주둔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방점을 놓았을 뿐이다. 주한미군이 한국민에 주던 심리적 안정 효과도 달라졌다.
미군 수뇌부는 더 이상 서울에 없다. 2019년 주한미군사령관-한미 연합사(CFC) 사령관-유엔사 사령관 집무실은 모두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옮겼다. 우리 군 수뇌부는 CFC 사령관 집무실만이라도 서울에 두었으면 했지만, 미군의 결정을 뒤집지 못했다. 국민의 정서적 안정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 것.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CFC 사령관 집무실의 위치에 관심을 두는 이가 얼마나 될까? 군 수뇌부와 언론이 되레 국민의 인식에 못 미치는 경우가 종종 노출된다. 냉전 사고 또는 대미 의존심리가 강할수록 변화에 둔감하다.
어떠한 군사적 위협도 이에 대한 대응도 갑작스러운 게 없다. 서서히 뚜렷해졌다가(fade-in), 서서히 사라진다(fade-out). 전혀 새로운 것도 드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 발표한 '골든돔 미사일방패'가 40년 전 스타워즈를 기획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연속이라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은 2000년대 초 부시 행정부의 연속이다. 위협 인식과 대응 정도가 다를 뿐이다. 미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지상군의 기동군화를 일관되게 지향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양안 전쟁 가능성을 한껏 강조하면서 4곳이었던 필리핀의 임대기지를 8곳으로 늘린 것 역시 육해공, 해병대의 기동력을 감안해서다. 중국의 위협이 크다면서 주한미군을 증강하지 않았고, 트럼프 역시 증강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되레 감축하겠다고 종종 떠벌린다.
지난 23일 월스트리트 저널이 주한미군 4500명을 빼내서 괌을 비롯한 인도·태평양에 배치하는 방안이 논의된다고 보도하자 많은 국내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중요한 건 순환배치가 아니라 영구 이동배치라는 점이다. 주한미군 스트라이커 여단을 과거 이라크에 순환배치한 것과 괌이나 필리핀에 순환배치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한미 전략적유연성 합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상당한 정치적, 외교적 부담을 안아야 한다. 그야말로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되는 수준이지만 미국의 고민이 엿보인다. 한반도를 포함한 서태평양 지도를 놓고 전략을 구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확정된 것도 아니지만, 확정돼도 한반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선거판의 일부 정치인들까지 부나비처럼 뛰어들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소셜미디어에 "대한민국 안보와 직결된 중차대한 사안"이라면서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주한미군 철수가 현실이 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 섞인 전망이 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주한미군 몇천 명이 줄어든다고 한반도가 위험해지는 건 아니다. 트럼프가 그걸 내세워 방위 분담금 인상이나 관세 인상을 협박할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김 후보의 넘치는 걱정에 비춰보면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려주고 관세에서 큰 손해를 보더라도 주한미군 숫자를 유지해달라고 통사정할 판이다. '짖는 트럼프'와 '무는 트럼프'는 다르다. 트럼프의 한마디에 덜렁 꼬리를 내리고 피해는 국민에게 넘기기에 가장 적합한 입장이 아닐 수 없다.
작금에 동아시아의 안보 환경 변화는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를 한 축으로, "더는 쓸데없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트럼프의 등장을 다른 축으로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전에 적합한 '좌표'를 설정한바 있다. '트럼프 변수'가 등장한 지금 더 유효한 좌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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