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동맹이 위협받거나 공격받으면 군은 압도적인 힘과 파괴적인 위력으로 적을 섬멸할 거다. 우리가 전례 없이 큰 규모로 미군 증강에 착수한 이유다. (…) 여러분은 싸우고 싶겠지만, 나는 싸울 필요가 없게 되도록 싸우겠다." (5월 24일 미 육사 졸업 연설)
"우리는 이기는 전투가 아니라 끝낼 전쟁으로 성공을 측정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거다. 나는 피스메이커이자 통합자가 되는 걸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여기겠다." (1월 20일 취임 연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은 자주 바뀐다. X 계정 메시지와 공식 발표가 다르고,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충돌되는 메시지를 내놓는다. 잦은 충돌과 혼선 속에서 일관성을 찾아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안보 문제에 관해 트럼프의 속내를 오독하면, 돌이키기 힘든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한반도 거주민에게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일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졸업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동맹'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2017년 취임사는 물론 2025년 취임사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미국이나 동맹이 위협 또는 공격을 받으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적을 섬멸하겠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이전에는 '동맹'을 언급하지 않은 채 '미국을 약탈하는 존재' 정도로 말했다. 한미동맹에 포획된 관점에서 들으면 듬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미군의 최전선은 한반도나 인도·태평양 지역이 아니다. 이날도 미국의 국경이 미군이 지켜야 할 보루임을 되풀이 강조했다. "미국이 다른 모든 나라의 국경을 지켜주는 동안 정작 미국 국경이 침공당하던 시대는 끝났기 때문"이다.
졸업 연설에서 그가 거듭 확인한 자신의 양대 목표는 미국의 '재건'과 '방어'였다. 국방의 재건은 사상 최강의 군을 만드는 것. 1조 달러의 예산을 투자해 스텔스 항공기에서 미사일, 드론, 탱크, 함정까지 "미국 기술로 미국이 설계해서 미국 땅에서 생산하겠다"고 다짐했다.
"무력으로 민주주의 확산 안 하겠다"
미국 방위 의지는 반복됐지만, 동맹 방위 의지는 단 한 차례 나왔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승리하겠다"는 원칙이 더 강조됐다. "양당 정치인들은 미군을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먼 곳의 지도자들이 이끄는 나라의 국가건설(nation-building)이라는 십자군 전쟁에 몰아넣었다"라고 비난했다. "미군의 임무는 지겨운 (정치적) 쇼를 하고 외국 문화를 바꾸거나, 총을 겨누고 전 세계에 모두에게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게 아니다"라면서 "나는 늘 평화를 이룩하면서 심지어 우리와 차이가 꽤 큰 나라들과도 협력을 추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협력 대상을 '생각이 비슷한 국가들(LMNs)로 제한했던 바이든과 다른 점이다. 4년 전 백악관을 떠날 때 어떠한 전쟁이 없었던 것처럼 4년 후에도 그리될 것임을 시사했다.
공화당의 대선 정강의 하나인 동시에 트럼프 국방공약의 핵심인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는 윤석열 정부가 노래했던 '힘에 의한 평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힘에 의한 평화가 미국의 힘을 무작정 믿고 '자유의 북진'을 하겠다는 공세적 성격이었다면, 힘을 통한 평화는 막강한 군사력을 갖되 싸우지 않고 이기겠다는 방어 또는 예방적 구상이다. 선제공격을 의미하는 '예방전쟁'의 대척점에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에서 나온 '골든돔 미사일 방패(the Golden Dome Missile Defense Shield)'가 대표적.
트럼프는 지난 20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골든돔 프로젝트 책임자로 지명한 마이클 게틀라인 우주군 참모차장과 함께 골든돔 설계가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1750억 달러(244조 원)의 예산을 들여 임기 중 완전히 가동할 예정이다. 초기 비용으로 설정한 250억 달러(35조 원)의 예산은 이미 확보해 놓은 상태. 골든돔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0년대 미사일 방어 체계를 처음 발표하면서 꿈꿨던 '별들의 전쟁(Star wars)'의 21세기 버전이다. 적의 미사일 발사 전(left of launch)-초기 비행-비행 중-목표물을 향한 하강 단계 등 4단계에 걸쳐 탐지, 요격한다는 개념. 우주에서 탐지, 타격한다는 점이 골든돔의 특징이다. 기존의 지상 레이더에 더해 인공위성에 탑재된 우주 센서로 탐지하고, 우주 공간의 요격기로 타격한다는 것. 레이건의 스타워즈가 그랬듯이 성공 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미국 방어를 최우선으로 하는 트럼프 국방 전략의 핵심이다.
골든돔, 러시아-중국의 같지만 다른 반응
러·중 정상은 지난 9일 '글로벌 전략적 안정 공동성명'에서 글로벌 전략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원칙인 전략(핵) 공격무기와 전략 방어무기의 구분할 수 없는 관련성을 거부하는 데다가, 미사일의 '발사 전 파괴'와 미사일 기반시설에 대한 운동(kinetic) 및 비운동 공격 수단의 추가 개발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안정을 흔든다는 두 가지 우려를 표명했다. 정작 백악관이 골든돔의 설계 확정 사실을 발표한 뒤 러·중의 반응은 다소 달랐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21일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공동성명에 근거해 글로벌 반미사일시스템 개발 및 배치의 조속한 포기를 촉구한 반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미국의 주권 문제"라며 반응을 제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미·러 관계 정상화 협상이 진행 중인 것을 감안한 외교적 수사로 보인다. 한반도 안보와 무관치 않은 미·중·러 삼각관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미국 공화당 2024년 대선 정강은 '힘을 통한 평화'의 내용으로 골든돔을 포함한 첨단 군사기술 투자 등의 △군 현대화와 △방위산업 기반 복원 △동맹 네트워크 강화 △경제-군사-외교능력의 강화 등을 담고 있다. 동맹 강화 대상으로 유럽과의 '공동 국방'과 이스라엘을 앞세운 중동, 인도·태평양 등 3곳을 들었지만, 이미 어긋나기 시작했다. '동맹 관계 강화'는 동맹의 방위비 분담과 동맹국 군대의 역할을 늘리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트럼프 국방전략(NDS) 8월 공개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이 만든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되레 미국을 공격하는 부메랑이 됐다고 진단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말에 단서가 있다. "'미국의 힘'은 적에 대한 억제력이자 외교의 지렛대"이기에 강화해야 한다는 것. (1월 15일 상원 인준청문회) 관세와 군사 문제를 한목에 협상(one stop shopping)하겠다는 트럼프의 말과도 일치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전략(NDS)은 아직 작성 중이다.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 1일 NDS의 작성 방향과 관련해 "국방부는 '아메리카 퍼스트'와 '힘을 통한 평화' 등 트럼프의 의도와 일치하는, 뚜렷한 방향을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국방의 최우선 과제로 △미국 본토 방위와 △인도·태평양에서의 중국 억제 △세계 곳곳에서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과의 방위비 분담 등 세 가지를 강조했다. 세 가지 목표는 헤그세스 장관이 지난 3월 비공개로 하달한 '임시국방전략지침'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는 동맹 및 우방과 그러한 관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평화의 조건들을 설정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2025 NDS' 초안은 늦어도 8월 31일까지 헤그세스에게 제출된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2022 NDS와 가장 큰 차이는 중국 견제가 주요 목표이지만, 적어도 대통령 선에서 아직 대만전쟁에 대한 직접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 군대의 기여를 실질적으로 확대했지만, 방위비 증액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은 점도 다르다. 트럼프가 전쟁보다 협력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을 계속 내놓는 반면, 바이든이 임기 내내 외교적 노력을 외면한 채 연합훈련 및 군사력 강화라는 군사주의로 일관했던 것도 다른 점이다.
트럼프의 머릿속에서 지정학적 고려는 동맹의 안보가 아니라, 미국의 안보를 위해 필요한 수준에서만 의미가 있다. 한반도는 고사하고 인도·태평양이 중요한 이유 역시 중국을 먼 거리에서 억제, 미국 본토 방위를 하겠다는 맥락에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쯤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반복해서 내놓는 국방 전략 관련 메시지에 대한민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톺아 봐야 한다. 비슷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냉·온탕을 오가는 반응만으론 평화도, 번영도 공염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억제를 언급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잇단 발언으로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경각심이 높아진 상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의 대북 억제 임무와 한미 간 주한미군 전략적유연성에 관한 합의 등 두 개의 문건을 한쪽에 놓고, 국군 및 주한미군의 전력을 다른 쪽에 놓고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 미 국방전략 전환, 한국의 선택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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