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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공범될 수 없다" 현역 미공군 사병의 분신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4. 3. 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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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때로 '내가 노예제도나 짐 크로 시대, 또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에 살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만일 내 나라가 제노사이드를 범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자문한다. 그 답은 지금 당장, 당신이 하는 행동이다." (애런 부시넬 24일 페이스북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 )

일요일인 지난 25일 오후 1시쯤,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 인화 촉진제를 뒤집어 쓴 한 미 공군 현역 병사가 이렇게 외친 뒤 불을 붙였다. 군복차림의 애런 부시넬(25)은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이날 밤 끝내 사망했다. 앤 스테파네크 미 공군 대변인은 그가 현역 복무 중인 병사임을 확인했다. 26일 역시 현역 공군 소장인 팻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분명 비극적인 사건"이라면서 유족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은 사건 발생 사실을 확인하면서 어떠한 대사관 직원도 다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부시넬은 소셜미디어 트위치(Twich)로 대사관 건물 앞으로 가는 순간부터 분신 장면을 생중계했다. 그는 생방송 중 "나는 더 이상 제노사이드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면서 "팔레스트인에 자유를"이라고 외쳤다. 그 직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분신했다. 분신 현장에 모인 일부 군중이 이스라엘의 국기를 불태우고 가자지구에서 자행되는 민간인 제노사이드(대량학살)를 멈추라고 외치고 있다.

애런 부시넬의 생전의 모습(왼쪽)과 지난 25일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정문 앞에서 군복차림으로 선채로 분신하는 장면. 시위에 참여했던 지인들이 페이스북 계정에 올려 놓은 사진을 뿌옇게 처리했다.

트위치는 사건 직후 동영상을 삭제하고 "해당 채널(동영상)이 트위치의 지침을 위반했다"는 글을 대신 올려놓았다. 신문, 공중파 방송, 통신사 등 거의 모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미국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1200여 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하고, 외국인을 포함해 253명이 인질로 잡힌 뒤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으로 지금까지 사망자는 3만여 명에 육박한다.

국제사법재판소(IFJ)는 지난 1월 26일 "이스라엘은 제노사이드를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하면서 "정부 당국자들이 제노사이드를 선동하는 것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의 군사작전은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IFJ의 명령과 국제사회의 비난, 촉구, 호소를 간단하게 무시하고 있다.

애런 부시텔이 분신한 미국 워싱턴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추모객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평온한 안식을(Rest in Peace)'이란 말 대신에 '힘 속에 안식을(Rest in Power)'이라고 적힌 피켓이 주목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이스라엘군에 의해 희생된 청년을 애도할 때 많이 등장해 온 피켓이다. 2024.2.26. AFP 연합뉴스

유엔 안보리에서 즉각 휴전 결의안을 몇 차례 봉쇄한 미국은 여전히 말로는 이스라엘의 자제를 당부하며, 팔레스타인 주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한 입에 발린 말을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지난 16일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겉으로는 이스라엘에 휴전을 압박하면서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사용할 수백억 원 상당의 MK-82 폭탄과 KMU-572 합동직격탄 각 1000여 발을 보낼 계획이다. 

21세기 한복판에 벌어지는 홀로코스트에 국제사회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대인들의 참극은 뒤에 밝혀졌지만, 유대 국가가 다섯 달 가까이 자행하는 제노사이드는 TV 화면으로, 소셜미디어로, 뉴스 사진으로 생중계되고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이른바 '자유세계의 지도자'라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1월 대선 준비에 코가 빠져있다. 상황이 심각해질라치면 한두 마디를 내놓고 다시 딴전을 피운다. 오죽하면 현역 미군 병사가 자신을 불태웠을까.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 민주·공화당 지도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사태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면서 "단 한 명의 미군 병사도 전장에 보내지 않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맞다.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합동기지에 근무해 온 부시넬 역시 두 개의 전쟁 어디에도 참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군복을 입은 채 분신을 한 것은 미군의 일원이라는 것 자체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에 참여했다는 죄책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미국 유대인 단체 네투레이 카르타(Neturei Karta)의 뉴욕 지부 회원들이 26일 전통복장을 한 채 전날 워싱턴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분신한 애런 부시넬을 추모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24.2.26. 로이터 연합뉴스

미 공영라디오(NPR)에 따르면 부시넬은 매사추세츠주 위트먼 출신으로 제531 첩보지원비행대(ISS)에서 사이버 업무를 담당했다. 계급은 기술병과 상병(스페셜리스트). 군 복무와 별도로 샌안토니오 무주택 주민들의 집단 치료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해왔다. 부시넬은 분신 전날 남긴 유서에서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이웃집에서 맡아 주라고 당부했다. 페이스북 계정에 남긴 마지막 글에서는 모두에 소개한 질문을 던졌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분신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친구는 텍사스공영라디오(TPR)에 "실제상황 같지 않았고, 보고 있던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부시넬의 죽음 상황을 기록한 비밀경호(SS)부대의 보고서는 무미건조했다. 뉴스위크가 입수해 보도한 SS 보고서는 '이스라엘 대사관 밖에서 정신적 고통의 신호를 보이는 개인과 관련한 신고 전화를 받았다. SS 요원이 관여하기 전에 그 개인은 스스로 미확인 액체로 몸을 적신 뒤 불을 질렀다"고 기술했다. 가자 학살에 항의하는 분신 사건이 미국 내에서 처음 일어난 건 아니다.

애런 부시넬의 죽음을 기록한 워싱턴 시 경찰국 보고서.

작년 12월 2일 정오쯤에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스라엘 영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몸에 두른 한 흑인 남성이 자기 몸에 불을 질러 병원으로 실려 갔다. AP 통신에 따르면 애틀랜타 경찰은 "시위자의 생명이 위중한 상태"라고 발표했지만, 후속 발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분신 당시 영사관 건물 앞에서 벌어졌던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그의 몸에 붙은 불을 끄려던 경비원도 다쳤다. 경찰 당국은 테러의 흔적이 없었고, 영사관 직원 누구도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애틀랜타 경찰 당국은 사건을 '극단적인 정치적 항의(an extreme act of political protest)'라고 규정했다.

평범한 미국인이 국제 이슈에 대한 정부 정책에 격렬하게 저항한 끝에 분신까지 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사건이자, 더 큰 반발을 예고하는 조짐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개시된 뒤 미국 내에서는 거의 매일 이에 항의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부시넬이 목숨으로 던진 메시지를 미국 사회가 어떻게 소화할지 주목된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알누세이라트 난민촌과 알부레이즈 난민촌에 머물던 이들이 4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피해 다른 곳으로 피난을 떠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전역에서 무장정파 하마스를 공격하고 있다. 2024.01.05.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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