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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하루 만에 중재한 러시아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9. 2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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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캅카스(코카서스)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다시 불거진 민족분쟁이 러시아의 중재로 20일 하루 만에 정상을 회복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인종 및 종교 갈등에 더해 인근 강대국들의 침략사가 겹쳐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분쟁지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지역 영향력이 약해진다면 대규모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지역으로 꼽혀왔다.

20일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 도심에서 아제르바이잔 국방부가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벌인 군사작전에 대해 항의하는 주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2023.9.20. AFP 연합뉴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을 통해 아르메니아계 방위군과의 무력 분쟁을 중단하고 휴전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아르메니아계 '아르차흐(Artsakh) 공화국' 대통령실도 성명을 내고 "불행히도 방위군이 수적으로 몇백이나 열세였다"면서 "양측이 이날 오후 1시부터 전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아르멘프레스가 전한 성명은 "현 상황에서 전쟁을 끝내고 문제를 해결할 국제사회의 행동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고려해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휴전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양측은 21일부터 예블락에서 만나 방위군의 무장해제 및 아제르바이잔 헌법에 따른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재통합 문제 등을 논의한다. 분쟁 발발(19일)-휴전(20일)-평화협상(21일)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협상도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중재한다. 그러나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영속적인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이번 사태는 19일 아르메니아계 방위군의 지뢰 탓에 아제르바이잔 공무원과 경찰 9명이 사망한 게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지난 6월에도 역시 최근 설치한 지뢰로 공무원 3명이 사망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대테러 작전'을 명분으로 양측간 전 전선에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르메니아계 점령지의 인권 옴부즈만 사무소는 민간인 10명을 포함, 최소 200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이후에도 아제르바이잔 측의 봉쇄와 아르차흐 측의 저항으로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계속됐다.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은 소비에트 지배가 느슨해진 1988년 2월 지역 의회가 아르메니아 귀속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양측의 인종학살(pogrom)과 게릴라전이 되풀이되다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1차 전면전(1992~1994)으로 번졌다. 아르메니아 측의 승리였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 지역은 물론, 아제르바이잔 영토 일부를 점령한 상태에서 휴전이 성립됐다. 2020년 9월부터 11월까지 벌어진 2차 전쟁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이 승리했다. 1차 전쟁에서 빼앗긴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일부와 주변 영토를 탈환하고, 아르메니아 영토 일부도 점령했다. 그러나 아르차흐 방위군이 여전히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1차, 2차 전쟁은 모두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협상이 합의됐다. 아제르바이잔은 이후에도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완전한 귀속을 위해 군사작전을 계속해왔다. 러시아는 2차 전쟁 뒤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르메니아로 잇는 라친 회랑 주변에 2000명의 평화유지군을 보내 양측의 충돌 방지 및 아르차흐에 대한 식량과 구호물 전달을 감독해왔다.

이번 나고르노-카라바흐 무력 충돌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립국가연합(CIS) 지역과 동유럽 등 러시아의 세력권에서 자칫 대규모 민족분규가 날 수 있다는 우려가 깊어진 가운데 첫 분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주로 영·미 언론을 중심으로 아제르바이잔 정부군에 의한 아르메니아인 인종청소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영내에 나고르노-카라바흐보다 약간 넓은 면적(5502㎢)의 역외영토, 나흐치반(Nakhchivan) 자치공화국을 갖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아르메니아를 잇는 라친 회랑처럼 메그리 회랑의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역사적, 인종적, 종교적, 경제적 이익으로 얽히고 설긴 CIS 및 동유럽에 민족분규가 발생하면 1990년대 보스니아 전쟁과 코소보 사태처럼 대규모 유혈이 불가피하다.

19일 나고르노-카라바흐의 한 아파트 건물이 아제르바이잔 군대와 아르메니아계 방위군의 충돌 과정에서 파괴된 모습. 현지의 인권 옴부즈만 사무소가 배포한 사진이다.  2023.9.19. AP 연합뉴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정교회)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해왔다. 소련 해체 뒤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와 유라시아경제동맹(EAEU) 회원국이다. 현재 러시아와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6개국이 가입한 CSTO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마찬가지로 자동군사개입 의무를 갖고 있다. 아제르바이잔(1999)과 조지아(1999), 우즈베키스탄(2012)은 당초 회원국이었다가 탈퇴했다. 지리적으로 이슬람권인 튀르키예·아제르바이잔·이란과 조지아(정교)에 둘러싸인 아르메니아는 내륙 국가다.

경제적으로도 러시아를 선택했다. 유럽연합(EU)과 EAEU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2013년 3월 예레반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EAEU 가입협정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국제 시세보다 낮게 공급하고, 아르메니아 내 러시아 군기지를 확대했다. 그러나 1, 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러시아와 CSTO가 아르메니아를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

러시아·아르메니아 관계는 국가 간의 관계가 이념이나 민족, 종교와 상관없이 철저히 국익 계산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러시아는 송유관으로 연결된 아제르바이잔과 경제적 이해가 두터워지면서 2008년 무기를 공급한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가 지난 6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평화유지 군사훈련인 '이글 파트너 2023'에 참여한다고 발표한 것도 러시아에 대해 쌓인 불만의 표출로 읽힌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최대 도시인 스테파나케르트의 한 건물 지하에 20일 주민들이 대피해 있다. 현지의 인권 옴부즈만이 배포한 사진이다. 2023.9.20. AFP 연합뉴스

역으로 미국이 2008년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 조지아와 함께 남부 캅카스 지역에 진출할 '교두보'로 떠오르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9일 성명을 통해 아제르바이잔 측이 즉각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대화 모색을 권했다. 미국이 촉구만 하는 사이에 중재를 실현한 것은 러시아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도 세력권 내 피스메이커 능력을 입증한 셈이다. 

크렘린궁은 20일 푸틴 대통령과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와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분쟁의 가장 심각한 국면이 지나고 양측이 협상에 나서기로 한 결정을 환영했다. 푸틴은 아제르바이잔군의 공격을 주권문제로 해석하는 한편,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아르메니아계 주민 보호에 만전을 기하지 않고 있다는 파시냔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기도 43% 면적(4400㎢)의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인구 14만 1000명(2010년 조사) 중 아르메니아계가 12만 명을 차지한다. 지명 자체에 강대국들이 번갈아 지배했던 흔적이 담겨 있다. 나고르노(Nagorno)는 러시아어로 산악지방을 뜻한다. 평균 고도가 해발 1100m이다. 카라바흐(Karabakh)는 튀르키예어 카라(kara, 검은)와 페르시아어 바흐(bagh, 정원)의 합성어로 전체적으로 '산이 많은 검은 정원'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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