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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푸틴, 군사협력의 '여지'만 남겼다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9. 1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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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극동지방 방문이 17일 종료됐다. 지난 12일 새벽 러시아 하산역에 도착한 뒤 6일 동안 이어진 행보였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뉴욕 타임스에 관련 정보 및 첩보를 선제적으로 흘린 지난 4일을 기준으로 하면 13일 만이다. 국가 간의 외교 관행에서 정상회담의 당사국이 아닌 제3국 언론과 정부가 총동원돼 정보를 유포하는 지극히 이례적인 신호로 온갖 추측과 예상이 난무했다.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가 총동원돼 지난 5일 선제 경고했던 북·러 간 군사협력의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 북한과 러시아 정부는 정상회담을 포함해 구체적인 협의 및 합의 내용을 일절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동안 계속됐던 각국 당국과 언론의 분석 및 추측이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공개된 사실을 토대로 김 위원장의 방러 6일을 요약하면, 러시아와 군사협력의 '여지'를 남겼다.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13일)와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 유리 가가린 수호이 전투기 공장(15일),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공군기지·태평양함대 사령부(16일) 등 김 위원장의 방문지는 이러한 여지를 남기기에 충분했다. 목적을 갖고 방문했는지, 방문지 선정 자체가 목적이었는지 분명치 않을 뿐이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상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푸틴과 함께 우주기지를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9.14. 연합뉴스

북·러가 공식적으로 밝힌 협의내용에는 무기 거래를 포함한 군사협력이 없다. 조선중앙통신은 13일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세계 평화와 안전, 국제적 정의를 수호하는 데서 당면한 협조사항을 허심탄회하게 토의하고 만족한 합의와 견해 일치를 보였다"고 밝혔지만 '당면한 협조사항'은 괄호 속에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양국이 모든 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면서 "북한은 특히 우주·항공·운송·인프라 재건 분야에서의 협력 가능성에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7‧27 방북 당시 제안한 것으로 국가정보원이 전한 북한의 러‧중 연합훈련 참가도 확인되지 않았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방러 기간 군사 관련을 포함해 어떠한 협의에도 서명하지 않았으며, 그럴 계획도 없다"는 말로 군사협력에 관한 추측에 쐐기를 박았다. 김 위원장의 방러 일정을 함께 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는 17일 로씨야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누군가에 대항해 북한과 협력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의제를 갖고 있다"면서 일관되게 군사협력과 거리를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의 방러가 종료된 시점에서 미국 측이 밝힌 정보‧첩보와 현재까지 드러난 사항을 통해 팩트를 추려낼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5일 밝힌 정보는 북·러 간 무기 거래를 위한 '지도자급 직접 외교'가 9월 중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13일 북·러 정상회담이 열린 만큼 절반은 맞았다. 미국 측은 정상회담 장소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목했고, 방문 예상 장소로 보스토치니 기지와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함대와 함께 모스크바를 들었다. 정상회담 개최 사실 및 모스크바를 제외한 방문지는 적중했다.

뉴욕 타임스가 미국과 동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한 첩보 내용은 당장 확인이 불가능하다. 북한이 러시아에 지원할 무기로 포탄이나 대 탱크 미사일을 거론했고, 러시아가 제공할 군사기술은 인공위성 및 핵 추진 잠수함 기술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한다면, 시간이 걸릴 뿐 확인이 어렵지 않은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산' 포탄이나 미사일이 발견되면 분명한 물증이 되기 때문이다. 포탄이나 무기의 원산지를 법의학적(forensic)으로 밝히는 것은 고난도의 기술이 아니다.

북·러는 철도로 연결돼 있지만, 미국과 동맹이 보유한 군사첩보위성과 휴민트(인간정보)를 동원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선에 도달하기 전에도 포착할 수 있다. 동맹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실 전화까지 버젓이 도·감청하는 미국 정보기관의 시긴트(신호정보) 능력으로 충분한 일이다. 다시 말해 물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일이지 앞당겨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상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2023.9.14. 연합뉴스

미국은 지난해 11월부터 북한이 포탄을 건네고 있다고 공식·비공식적으로 주장해왔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 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이러한 선제적 정보 흘리기는 실제로 포탄이 건네졌다는 말이 아니었다. 선제적 경고 덕에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발견된 북한 무기는 "거의 없었다(few if any)"는 미 행정부 관계자들의 말로 미루어보건대 사실이기보다 경고를 위한 경고였다.

미국은 지난 5일에도 백악관·국무부·국방부가 모두 나서 북·러 간 무기 거래가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인 점을 들어 대가를 지급하게 하겠다고 선제 경고했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5일 브리핑에서 '사실'이 아닌, '견해(view)'를 말했다. 그는 "(김정은의 러시아)방문 전이나 북한의 대러 무기 공급 관련 대화가 진전돼 왔으며 계속 진전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이 없다는 크렘린궁의 발표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어떤 일로 귀결되는지 볼 것"이라는 게 미국의 견해이다. "오늘은 (북·러 간)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짚어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매우 신중하게 진위를 가려 보고 있다"고도 말했다.

북·러 간 무기 거래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겨냥해 안보리 제재를 논의하는 것은 순서가 틀린다. 논의하더라도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통과되지도 않는다.

한국 정부 역시 유감을 표하고 상황을 주시하는 것 외에 딱히 방도가 없어 보인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북·러 정상회담에서 위성 개발을 포함한 군사협력 문제가 논의된 데 대한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행동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태다. '러시아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방북 일정이 끝난 만큼 러시아가 한국 정부에 공유해줄 정보를 기대하고 있다.

북·러가 김 위원장의 극동 방문 5박6일 동안 무기 거래 및 군사협력의 '여지'만 보여주었다면, 여지를 완성하는 것은 한·미의 다음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대러, 대북 추가 독자 제재의 칼을 꺼내 든다면 역으로 북·러 군사협력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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