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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 유사시 한-일 안보협의는 "의무 아닌 약속"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8. 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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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한미일 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회의는 새로운 합의 도출을 위한 회의가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조성한 한·일 협력 분위기를 제도화, 영속화하는 데 방점이 놓인 회의였다. 이미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차원에서 군사와 경제, 글로벌 사우스(제3세계) 지원 등 모든 분야에서 진행되어온 협력을 한미일 3자 단계에서 확인하려는 것이 회의 주최국인 미국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취임) 아주 초기부터 3국을 한 자리에 모으겠다는 개인적 의지는 진심이었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마디가 바로 별도의 3국 정상회의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준다. 핵심은 '상징적 공간'의 연출이었던 셈이다. 마침 바이든은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유세활동에 한창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로렐 로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3.8.19. 연합뉴스

3국 정상이 이날 '캠프 데이비드 정신(Spirit)'이라고 명명한 공동성명과 '캠프 데이비드 원칙(Principles)' 및 '한미일 협의 공약(Commitment to Consult)' 등 3개의 문건을 채택한 것 역시 이러한 회의 동기와 무관치 않다. 합의 내용은 공동성명에 모두 담겼다. '원칙'은 이러한 합의를 계속 지키겠다는 다짐에 불과하다. 단 5개의 문장으로 된 '협의 공약'은 이러한 다짐을 거듭 확인하는 동시에 한미일 3자 협의가 한미동맹이나 미일동맹을 대체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 3자 '협의'와 양자 '동맹'의 위계를 분명히 했다. 주요 내용을 톺아본다.

'협의 공약'에 담긴 3자 협의의 성격과 한계

'한미일 협의 공약'은 한미일 협력이 군사동맹이 아님을 확인하는 동시에 유사시 동맹에 준하는 체제임을 명시했다. 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단 두 가지 내용만 담겼다. 첫 번째는 "지역적 도전·도발·위협에 대한 한미일의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각국이 정보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동조화하며, 대응조치를 조율한다"는 내용이다. 유사시 한미, 미일 등 양자동맹 차원에서 협의하겠지만 이를 3차 차원으로 확대한다는 점을 담았다. 그러나 협의가 의무인지에 대해서는 한·미 간 시각차가 엿보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8일 워싱턴 콘래드 호텔에서 한 3자(사실상 한·일) 간 협의가 의무(duty)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세 나라 중 한 나라가 역내 정치, 경제, 사이버, 군사위협이 우리 나라에는 위협이 아니니까 정보공유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협의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협의의 의무화는 3국 협의를 군사적 위협 상황에서 사실상 자동개입하는 동맹 수준으로 격상한다는 점에서 쟁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 미국 매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약식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3.8.18. 공동취재 연합뉴스

반면에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17일 전화 회견에서 "3국 정상은 한 나라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상황이나 위기가 발생할 경우, 우리가 '협의할 의무(a duty to consult)'라고 부르는 것을 서약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또 다른 백악관 관계자는 '협의할 의무'에 대해 "만약 역내 비상상황(contingency)이나 위협이 발생하면 즉각 신속하게 협의하겠다는 약속"이라고 정의했다. '협의할 의무'는 백악관이 강조한 '공동안보의 틀(framework)'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최종 문건에는 '의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더라도, 미국 대통령 앞에서 한 '공약'이라는 점에서 차기 한국, 일본 지도자들에게 부담을 안긴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는 한미일 3자 협의의 한계를 명시했다. "협의 공약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나 미·일 안보조약의 공약을 대체하거나 침해하지 않으며, 국제법 또는 국제법상의 권리 또는 의무를 창설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3자 협의가 양자 동맹의 하위개념일 뿐 아니라 협의 공약이 어떠한 국제법·국내법 상 권리나 의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경계를 분명히 했다.  "유사시 협의를 하겠다"는 약속을 담았을 뿐 자동개입 조항이 담긴 한미·미일 군사동맹을 대체하지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유사시 협의 의무'와 '자동 개입'은 모두 한미·미일 동맹에만 각각 귀속된다.

안보 대처, 남중국해→대만해협→한반도 순

공동성명은 큰 틀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과 일본이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성명은 우선 격변의 시대에 3국 간 파트너십을 가능케 한 한·일 관계의 개선을 먼저 평가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용기 있는 리더십'을 평가하고 "한미동맹과 미일 동맹으로 이어진 각각의 양자관계는 물론, 3자 관계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확인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 미국 매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의 대통령 전용숙소인 아스펜 건물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3.8.18. 공동취재 연합뉴스

공동성명은 "한미일 5억 명 국민이 안전하고 번영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 공동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곧이어 "한미일 협력은 우리 국민만을 위해 구축된 파트너십이 아닌, 인·태 전체를 위한 길"이라고 선언했다.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challenges)·도발(provocations)·위협(threats)에 대한 협의의 정신을 강조했다. 정보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동조화하며, 대응조치를 조율하기 위해서라면서 이를 위해 3국 간 최소 연 1회의 정상회의와 각급 단계의 회의체 가동을 강조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기왕의 한미·미일 동맹의 회의체와 3국 회의체의 관계다. 기왕에 한‧미, 미‧일이 가져왔던 외교 및 국방장관 간의 전략회담(2+2)을 '보완'하는 역할을 3국 회의에 부여했다. 재무장관 및 상무·산업 장관 간의 회의도 신설키로 했다. 도전·도발·위협에 맞서 안보파트너십을 발휘할 지역은 남중국해→대만해협→한반도 순으로 배치됐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과 태평양 도서국들의 '태평양 방식'을 존중한다고 재확인한 뒤 남중국해 항행 및 비행의 자유를 거듭 강조했다.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 "대만해협에 대한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적었다. 위협의 실체로 '중화인민공화국'을 명토박았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는 규탄·우려·지지하며 기존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8일 미국 매릴랜드주의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을 좌우에 둔 채 3국 정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8.18. 로이터 연합뉴스

북한 사이버 활동 대처 3자 실무그룹

북한의 전례 없는 횟수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군사행동을 강력히 규탄하고, 무기 개발의 자금원인 사이버 활동에 대해 우려한 뒤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3자 실무그룹 신설을 발표했다. 북한과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재개한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북한 인권 개선 및 납북자·억류자·미송환 국군포로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뒤이어 대한민국의 '담대한 구상'의 목표와 함께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은 전무했다. 그 대신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확인했다.

공동성명은 "한·일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철통같다"고 강조한 뒤 3국의 조율된 역량과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3자 (군사)훈련을 연 단위로 여러 영역에서 정례화한다고 밝혔다. 이달 중순 미사일 경보정보 실시간 공유를 위한 해상 탄도미사일 방어 경보 점검훈련을 실시했음을 적시하면서 증강된 탄도미사일 방어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 안보와 관련해서는 국제 공급망 교란에 대한 정책 공조 및 경제적 강압에 맞서기 위한 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 시범사업 출범 및 '회복력 있고 포용적인 공급망 강화 파트너십(RISE)의 발전을 다짐했다. 또 첨단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미국 상무부와 법무부가 올해 초 창설한 '혁신기술 타격대(the Disruptive Technology Strike Force)'의 활동에 한·일이 협조하며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한 수출통제에 협력기로 했다.

 

한국, 미국, 일본은 3년 만인 14일 워싱턴D.C에서 한미일 안보회의(DTT)를 개최하고 미사일방어훈련과 대잠수함전훈련 정례화에 합의했다.이달 4일 제주남방 공해상에서 열린 한미일 해상 훈련 모습[해군 제공] 2023 04 15 연합뉴스

경제 협력을 위해서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공동 연구개발·인력 교류와 함께 개방형 무선접속망(RAN) 및 우주 안보 협력을 위한 대화를 강조했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협상의 성공과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개도국 인프라 및 금융지원을 위해 채택한 글로벌 인프라·투자 파트너십(PGII)에 참여할 것을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계속적인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시아 제재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경감 노력을 확인했다. 한국과 일본의 살상무기 지원은 포함하지 않았다. 

한·일 핵개발 원천 봉쇄한 '원칙'

'캠프 데이비드 원칙'은 공동성명에 담긴 합의 내용이 도출된 국제법적인 가치와 원칙을 새삼 확인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나의 문서로 묶자면 공동성명의 서장쯤에 해당한다. '원칙'은 공동의 가치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계속 증진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힘에 의한 또는 강압에 의한 그 어떠한 현상 변경 시도도 반대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유엔 헌장의 원칙, 특히 주권·영토보전·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무력 사용에 관한 원칙을 수호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공동성명에 담기지 않은 내용은 핵확산금지조약(NPT) 당사국으로서 비확산 공약을 지키겠다는 서약이 단연 눈에 띈다. 4·26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워싱턴 선언'에 담긴 내용으로 한·일이 독자 핵 개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지조항을 다시 명문화했다. 이는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집단안보 체제와 달리 한미일 3자 협의는 미국의 핵우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동맹이 아닌 협의체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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