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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 바이든 금메달 기시다 은메달, 동메달은 없었다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8. 2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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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로 덮이고 있지만, 한미일이 지난 18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도출한 결과는 한반도 안보에 긴 파장을 예고한다. 금메달은 당연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차지다. 회의 장소를 결정하고, "미국 외교의 오랜 꿈을 달성(뉴욕타임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8일 미국 매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마치고 함께 걸어가면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있다. 2023.8.18. AFP 연합뉴스 

탈냉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늘 아픈 손가락이었던 한·일의 갈등을 뛰어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 덕분이다. 한창 대선 유세 중인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선거에 써먹을 만한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해결은커녕 봉합에 그친 만큼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과가 될지는 불투명하지만, 재선에 성공해도 4년 뒤 백악관을 떠날 그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임기가 13개월 남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역시 '캠프 데이비드 정신'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만하다. 신년 벽두부터, 아니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그의 동아시아 안보 구도 그리기 작업이 일단락됐기 때문이다.·

캠프 데이비드 회의의 동기이자 결과물인 한·일 화해와 관련해 기시다는 이미 사상 최대의 '외교 흑자'를 기록했다. 한·일 관계를 경색케 했던 강제징용 문제를 일거에 풀었지만, 아무것도 내준 게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통 큰 양보' 또는 한국외교사에 길이 남을 '퍼주기' 덕분이다. 지난 15일 광복절(일본에는 패전일)은 승리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과거를 버렸지만, 일본은 과거를 챙기면서도 한·일 '화해 협력의 그림'을 만들어낸 덕분이다. 역대 어떤 일본 총리도 누리지 못한 행운이자, 횡재였다. 한미일 정상이 모인 자리에서 기시다에게 '은메달'을 수여한 건 바이든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산책로를 걸어가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다. 바이든은 산책 도중 가운데에서 걸으면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윤 대통령의 어깨에 번갈아 손을 올렸다. 등에 손을 대기도 했다. 차이가 있다면, 바이든이 기시다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윤 대통령은 딴 곳을 쳐다보았지만, 초등학교를 나와 영어가 유창한 기시다는 바이든과 윤 대통령 쪽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들었다는 점이다. 세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특정국 정상의 시선은 늘 중요하다.   2023.8.18. EPA 연합뉴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지정학적 변곡점에서 한미일 정상회의의 의미를 묻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느닷없이 기시다 상찬을 늘어놓았다. 바이든은 기시다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이 동아시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규정한 기시다의 리더십을 거듭 강조했다. "기시다의 관련 발언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샹그릴라 안보대화에서 나온 것. 바이든은 "처음부터(from day one) 일본의 리더십이 중요했다"면서 기시다가 러·우 전쟁의 결과가 '유럽을 넘어' 동아시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포착했다며 극찬했다. 3국 정상이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한 정상이 특정국 지도자만을 콕 찍어 상찬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대한민국 대통령은 멀뚱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이든이 말한 대로 이번 정상회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번영과 '그 너머'에 걸친 3국 협력이었다. 한반도는 덜 중요했다. 러·우 전쟁을 빌미로 인·태 지역의 안보 지형을 바꾼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기시다는 바로 그 점을 대신 강조해줌으로써 미국의 의도를 확산한 공로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을 미리 간파해 확성기로 떠드는 것은 일본 외교의 오랜 관행이다. 태평양전쟁 패전 뒤 '푸른 눈의 쇼군(將軍)'의 지배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윤석열 옆에 둔 채 기시다 상찬한 바이든

중요한 점은 일본의 국가적인 이해다. 일본은 쇼군의 구미에 맞는 발언을 하면서 자기 이익을 챙긴다는 점이다. 역대 일본 자민당 총리들이 꿈꿔온 가장 큰 현안은 평화헌법의 한계를 넘어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일본이 미국의 비위를 맞출 때마다 이 목표는 가까워졌다. 바이든이 미국 외교의 오랜 꿈을 이뤘다면, 기시다는 일본 외교의 오랜 꿈을 앞당겼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 미국 매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 야외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끝무렵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뒤에서 서로 악수를 하고 있다. 2023.8.18. 로이터 연합뉴스

기시다의 안보 구도는 지난해 12월 채택한 국가안보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 정비계획 등 3대 안보문건이 출발점이다. 국가안보전략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우선 전수방어의 족쇄에서 '적기지 반격 능력'을 확보했다. 두 번째는 일본의 국가위협 인식의 우선순위를 바꾼 것이다. 2013년 이후 일본 국가안보전략에서 최대 위협이었던 '북한'을 중국에 이은 두 번째 위협으로 조정했다. 중국→북한→러시아 순이었다. 위협 인식의 측면에서 한미일 정상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프놈펜 성명'과 이번에 채택한 정상회의 공동성명(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프놈펜 성명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가장 앞에 배치했다. 한국으로 하여금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를 내놓도록 한 근거로 쓰였다. 두 번째 위협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방사성 폭발물(dirty bomb)을 사용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반박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반대에 방점을 놓았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위기는 세 번째 위협이었고, 그나마 '중국'을 명시하지 않았다. 캠프 데이비드 공동성명은 그러나 지역별 위협 인식을 남중국해·대만해협→북한→러시아 순으로 조정했다. 일본 국가안보전략이 적시한 위협 순위와 정확히 일치한다. 일본으로선 자신들의 국가위협 순위를 한미일의 위협 순위로 확대, 조정한 것이다.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서인지 대만해협에서는 평화를 강조하는 데 그친 대신, 남중국해 항행 및 비행의 자유를 위협하는 주체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을 명토박았다. 멀리 보면 캠프 데이비드의 무대감독은 바이든이었지만, 각본을 쓴 사람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의 뇌리에서 '아시아·태평양'을 '인도·태평양'으로 대체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동메달은 없었다

일본이 이리 한·일 관계와 일본의 국가안보상의 목표와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거시적 목표를 달성한 반면에, 한국이 얻은 게 무엇인지는 묘연하기 짝이 없다. 한미일 안보협의체의 척추인 '협의 공약'을 뜯어보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 안보 협의의 핵심은 유사시 정보공유·메시지 동조화·대응조치 조율의 세 가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8일 워싱턴 사전 브리핑에서 '협의할 의무(duty)'가 아닌, '협의할 약속(commitment)임을 한껏 강조했다. 하지만 결코 대등하지 않은 한·미 동맹의 위계질서라는 현실에선 하나마나한 소리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를 "유사시 도전·도발·위협의 강도에 달린 문제"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가장 낮은 단계의 합의라고 해도 후견국이 압력을 가하면 피후견국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일·중 간 갈등의 무대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釣魚島)와 대만해협이다. 두 곳에서 도전·도발·위협이 발생했을 때 강도가 약하다면, 협의에 불참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미·일이 그 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한다면 협의가 강력한 '의무'가 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검찰이 수사하다가 여의찮으면 '별건 수사'를 하듯 강대국은 반드시 별건으로 압력을 넣을 것이고, 그 경우 비강대국은 굴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말한다. 이 역시 기시다의 '은메달'에 담긴 굵직한 성과이다.

한국, 미국, 일본은 3년 만인 14일 워싱턴D.C에서 한미일 안보회의(DTT)를 개최하고 미사일방어훈련과 대잠수함전훈련 정례화에 합의했다.이달 4일 제주남방 공해상에서 열린 한미일 해상 훈련 모습[해군 제공] 2023 04 15 연합뉴스

정작 북한의 도전·도발로 한반도 안팎에 안보 상의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일본이 내놓을 건 별로 없다. 유엔사 후방기지 7곳에서 미군 및 유엔군 증원군의 집결, 파견을 방해하지 않는 것뿐이다. 군사행동에 나선다고 해도 지극히 제한적이다. 기껏해야 "대잠수함전이나 기뢰 제거, 기뢰 탐지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공격하지 않는 한 일본의 관심은 전쟁 자체가 아니다. 아베 신조가 한반도에 전운이 짙었던 2017년 중의원에 출석해 강조한 것은 한반도로부터 유입되는 난민 스크리닝(심사) 및 수용 시설의 마련이었다. 북한의 공격에 대한 대비는 한·미 동맹만으로 충분하다. 오히려 넘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미일 동해 합훈에서 자위대는 무엇을 노릴까

한국은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일본에 실시간 제공키로 한 지난해 프놈펜 약속을 더욱 강화키로 했다. 여기에 육해공·수중·사이버 공간에서 정례화하기로 한 한미일 연합훈련의 장소도 우리에겐 문제가 된다. 육상 자위대 병력의 한반도 상륙은 아직 상상하기 어렵지만, 특히 해상과 공중훈련에서는 불필요한 갈등에 연루될 여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동해에서 한미일이 합훈을 한다면 이중의 딜레마에 빠진다. 일본은 독도·센카쿠/댜오위다오·쿠릴열도 2개 섬을 한국, 중국, 러시아와의 영유권 분쟁지역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동해 합훈에서 북한의 위협만 감안하겠지만, 미·일은 러시아를 포함한 미래 작전을 시험할 것이며, 특히 자위대는 독도를 염두에 두고 정보수집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합훈에 참여함으로써 한국은 졸지에 두 개의 안보상의 딜레마에 처한다. 서해·대만해협 인근 해역·남중국해에서 해상‧공중 합훈을 한다면, 필연적으로 중국의 반발을 부른다. 이 역시 한국이 합훈에 참여하지 않으면 고민할 필요가 없을 분쟁들이다. 얻은 것 없이 부담만 안게 된 회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금메달과 은메달을 누가 목에 걸었는지는 분명하지만 당최 '동메달'이 안 보이는 연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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