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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왜 느닷없이 '한덕수 대권론'을 띄울까?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5. 4. 11.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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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다. 중앙일보가 연일 '한덕수 대통령' 띄우기에 발벗고 나섰다. 지난 10일 종이신문 1면 머리기사로 "'대선에 나갈 것인가' 트럼프, 한덕수에 묻다"라는 가십을 올린 게 신호탄이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12.19 [대통령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국제적으로 정상 간 통화내용을 공개하는 데는 굳어진 관행이 있다. 각각 자국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필요한 대목만 공개한다. 공동 주어와 단독 주어를 섞는다. 통화 내용을 전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실의 8일 자 보도자료나 트럼프 대통령의 X 계정(트루스 소셜) 글에 없는 내용이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담긴 '팩트'는 익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트럼프가 통화 중 '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물었다"는 것과 대행이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서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는 단 두 문장이다. 이런 말이 오갔다면 먼저 두 사람이 말한 배경과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나아가 이를 띄운 중앙일보의 의도에 확대경을 들이대게 된다. 중앙일보 11일 자는 "한덕수 대행, 관리자냐 선수냐 빨리 입장 정해야"라는 제목의 촉구성 글을 머리 사설로 올렸다. 1면 머리기사로 댓바람에 이슈를 띄운 뒤 다음 날 사설로 뒷받침하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트럼프가 이런 말을 꺼낸 것은 한국 정치의 동향에 대해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군가 귀띔을 해주었다는 말. 중앙일보는 역시 익명의 소식통의 말을 빌려 "트럼프팀에서 주요국의 큰 뉴스들을 번역해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두툼한 보고서를 읽는 스타일이 아니다.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해 한국의 정치 동향을 누군가 보고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이 정도 언급에는 큰 무게를 싣지 않는다. 첫 대화 상대에게 친밀감을 표하거나, 인사치례로 할 수 있는 말이다. 자국 국익에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선수들' 답게 굳이 일방의 주장을 내놓고 부인하지도 않는다. 노골적으로 상대국의 내정에 간섭할 의도가 없거나, 있더라도 무겁지 않다. "나도 알고 있다"는 정도다. 보도에 따르면 단문단답으로 끝난 게 그 방증이다.

중앙일보의 10일 자 1면. 2025.4.10. 시민언론 민들레

더 중요한 팩트는 대행의 답에 담겨 있다. 중앙일보의 보도 의도가 담긴 말이기도 하다. 대행은 본인에게 대선 출마 요구와 '상황'이 있음을 인정한 뒤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대선 출마 의향이 없지는 않다는 지극히 관료스러운 답이다. '상황'은 대통령 파면 뒤 궐위 사태를 말할 터. 대행은 "결정한 것은 없다"는 여운을 남겼다. 가십을 1면 머리기사로 올리는 건 정상적인 상황에서 기성 매체가 피하는 선택이다. 최고의사결정권자를 포함해 매체 전체의 의도 또는 의지가 담기지 않았다면 설명할 수 없는 '파격'이다. 중앙일보는 하루 정도 반응을 보다가 다음날 사설에서 의도를 구체화했다.

사설은 "정부 수반의 출마설 자체가 대선 공정관리에 흠집이 될 소지가 있다"라면서 "중립적 대선 관리와 대미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정부의 역할"을 짐짓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대선 관리자를 할 것인지, 선수로 뛸 것인지 서둘러 입장을 정리하라"고 촉구했다. 대선 주자가 되려면 하루빨리 결정하라는 말과 다름 없다. 중앙일보의 '대통령 만들기'는 1면 머리기사와 사설에 머물지 않는다. "한덕수, 무소속 출마 뒤 국민의 힘과 단일화 땐 흥행 도움" "한덕수 '정치의 길' 갈까" (10일 자), 11일자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 전면 인터뷰에서는 대행의 '(마은혁) 임명 보류는 헌재 말대로 잘못'이라는 말은 소제목 6개의 하나로 파뭍고, "한쪽 쏠린 헌법재판관 거르려면 독일처럼 국회 3분의2 찬성 필요"라는 말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임명을 자의적으로 미룬 대행을 두둔하는 인상을 심은 것. 이쯤해서 중앙일보의 입장을 톺아 볼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공화당 전국 의회 위원회 만찬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25.4.8. [CNN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중앙일보는 항상 보수 편이되, 약간 진보를 섞는 편집을 해 왔다. 민주당과 DNA가 다른 점은 바뀐 적이 없다." 중앙일보 식으로 '익명의 소식통'을 활용하자면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대통령 윤석열이 마뜩치 않으면서도 대놓고 반대 논조를 펼치진 않았다. 중앙일보 행사에 윤이 불참한 건 물론 축사도 보내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 작년 4월 총선을 기점으로 종종 노골적인 '반윤' 논조를 보이다가 최근 '윤 퇴출'에 찬성했다. 탄핵기각 가능성과 관련해 "편집국에 입단속 지시가 하달됐다"는 말도 들렸다.

중앙일보 DNA에 '정통한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4일 윤 퇴출 이후에도 고민이 계속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세로 떠오른 가운데 마땅한 보수 후보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쪽에서 흘러나오는 '한덕수 차출론'에 귀가 솔깃했음직하다. 때마침 트럼프가 던진 한마디를 1면 머리기사로 올리고, '한덕수 대권론'을 본격적으로 유포하게 된 저간의 사정이 우러난다. 타이밍이 들어맞았다.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10일 오전 터뜨렸다. '가십 머리기사'로 갈 곳 잃은 극우와 보수의 기댈 언덕이 되고 있다. 혹여 '킹 메이커'가 되고 싶은 거라면, 언론의 정도가 아니다. 1980년대 '밤의 대통령'이 연상된다.

반응은 엇갈린다. 중앙일보 사설에 따르면 국힘당에선 찬성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출마는 어림도 없다"면서 재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대행과 고교 동창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그를 잘 안다. 워낙 그냥 전형적인 공무원으로 안 할 거라고 본다"(11일, SBS 라디오)고 했다. 그러나 대행의 잇따른 '대통령 행세'는 추측을 키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국회가 선출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및 대통령 몫의 다른 헌법재판관 두 명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대국민 말씀.' 2025.4.8. [총리실 누리집 캡처] 시민언론 민들레

대행은 8일 하루 트럼프와 통화만 한 게 아니다. 마은혁 헌법재판관과 마용주 대법관을 임명했다. "여야의 합의"를 운운하며 임명 거부해 온 마 헌법재판관을 새삼 임명하면서 아무런 설명도 붙이지 않았다. 그냥 임명했다. 동시에 18일 임기가 끝나는 문형배 헌재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그냥 임명했다. 무슨 구국의 결단인 양 '국민께 드리는 말씀'의 형식을 빌었다. "사심 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슬기로운 결정을 내리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우겼다. 형용사가 겹칠수록 진심과 거리가 멀어진다.

민주당과 시민사회의 비판이 거세질수록 '이재명 대세론'이 싫은 극우와 보수의 환호성도 커진다. '한덕수 출마 확신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CBS 라디오에 "출마가 거의 확실하다. (트럼프의 질문에)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걸 보면 '한덕수 플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정치인과 다르다. 종종 막말을 내뱉는다. 그렇다고 '장님무사'는 아니다. 트럼프-한덕수 통화가 있었던 8일 한국과 일본 관세 협상단이 미국으로 출발하고,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다음 주 방미일정이 발표됐다. 트럼프는 이날 저녁 공개연설에서 "이들 나라(정상)들이 전화를 걸어와 내 엉덩이에 입 맞추면서…(kissing my axx…) 어르신(sir), 제발 제발 타협해 주세요(please make a deal, please)'라고 하소연했다"고 떠벌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누가 되건 자신의 일방적 관세 폭탄 부과에 중국처럼 감히 맞대응할 리 없다고 확신하기 전에는 할 수 없는 막말이다. 불행히도 동아시아 분단국에는 트럼프의 한마디에 "미국의 힘이 실렸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꽤 있다. 언론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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