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주도한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던 '집단 서방'의 주요국 정권이 붕괴를 앞두고 있다. 바로 23일 총선을 앞둔 올라프 숄츠 총리의 독일이다.
우파 포퓰리즘 AfD 원내 2당 예상
각국 언론은 우파 포퓰리즘 독일대안당(AfD)의 부상이라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지만, 결과만 보고 '과정'을 외면하는 격이다. 숄츠 내각의 해체는 우크라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은 이유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인자(INSA)의 마지막 조사 결과 중도 우파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이 29.5%로 선두를 지키고 있다. 이어 독일대안당(AfD)이 21%를 기록, 원내 제2당이 예상된다. 숄츠 총리의 사민당(SPD)은 15.0%로, 3위로 밀려났다. 이어 SPD와 집권 내각을 구성해 온 녹색당(12.5%), 좌파당(7.5%) 순이다. (연합뉴스)
우파 자유민주당(FDP)은 5%로 4.5%의 좌파 포퓰리즘 정당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과 함께 원내 진출이 불투명하다. 선거법상 정당 득표율 5% 또는 지역구 당선자 3명 이상을 내야 연방의회 의석을 배분받기 때문이다. 두 당이 모두 원내 진출하는 것을 전제로 SPD와 녹색당, 좌파당, BSW 등 진보 정당의 지지율은 40%에 못 미친다.
총선 민심은 작년 말부터 큰 변화가 없다. 숄츠 내각을 '신호등 내각'이라고 부른 이유는 사민당과 녹색당 등 진보 성향 정당이 2021년 총선 뒤 대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FDP와 손을 잡았기 때문. 신호등 내각은 숄츠가 지난 11월 FDP의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을 해임하면서 무너졌다.
'대연정' 가능성
전통적으로 독일에서는 중도 좌파 사민당과 중도 우파 기민당-기사당이 결합하는 '대연정'이 성사돼야 정권의 안정성이 확보된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16년 집권이 가능했던 것도 2005년과 2013년 총선 뒤 대연정을 이룬 덕분이었다. 이번 총선 뒤 숄츠가 총리 자리를 지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난 17일 TV토론에서 숄츠와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는 모두 숄츠의 유임 가능성을 낮게 봤다. 숄츠는 "나는 총리로 남고 싶고, 메르츠가 총리를 원한다"고 말했고 메르츠 역시 "우리 둘 다 그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본다"고 답했다.
중도우파 연합이 사민당과 대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극우 성향으로 의심받는 정당 AfD와 협력을 꺼리기 때문이다. 남부 바이에른을 지역적 기반으로 하는 기사당의 마르쿠스 죄더 대표는 "숄츠 총리를 제외하면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독일 연방의회(분데스타크)의 정원은 630석으로 이 중 316석을 얻어야 내각 구성이 가능하다. 2021년 총선에서 각각 25.7%(206석), 14.7%(118석)를 득표했던 사민당과 녹색당의 퇴진은 예견됐던 일이다. 10.4%(83석)였던 AfD는 의석을 두 배 이상 늘릴 것으로 점쳐진다.
AfD의 부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몰고 온 극우 포퓰리즘의 돌풍과 운명을 같이 해왔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취임한 2017년 총선에서 원내 제3당(94석)으로 분데스타크에 진출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뒤 치른 2021년 총선에선 원내 제5당으로 성장세가 주춤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한 이번 총선에선 제2당 자리를 넘보고 있다. 트럼프가 장악한 공화당과 AfD는 자매정당이라고 할 만큼 반이민, 지구온난화 부인,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추구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대한 반감도 공유한다.
AfD 세력 확대 도운 우크라 전쟁
트럼프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주도해 온 국제기구를 부정한다면, AfD는 다른 유럽 포퓰리즘 정당과 마찬가지로 유럽 통합에 반대한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14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독일 기성정치권이 특정 정당을 배제해 온 '방화벽'을 두고 반민주주의적이라고 비난, 사실상 AfD를 옹호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밴스 부통령은 취임 첫 독일 방문이었지만 숄츠와 단독 회동하지 않은 채 알리스 바이델 AfD 대표와 만나는 장면을 연출했다.
유럽연합(EU)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에서 극우 또는 우파 포퓰리즘의 발흥은 기성 제도권이 주도해 온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폐해가 드러난 결과다. 좌건, 우건, 기성 엘리트들이 주도한 세계화의 질서 속에서 희생을 강요받아 온 기층 민중의 분노와 증오를 토양으로 한다. AfD는 2013년 창당 뒤 파시즘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면서 우파 정당으로 변신해왔다. 독일연방헌법수호청은 '극단주의 의심 정당'으로 분류하고 있다. 독일에선 극좌, 극우를 막론하고 '극단주의 정당'이 존재할 수 없다. 국내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이 '극단주의' 증거를 확보하면 정당 해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민연합(RN) 지도자 마린 르펜은 세 차례 대선 후보로 나서서 2012년 1차 투표 3위(17.90%)→2017년 결선투표 33.9% 득표→2022년 결선투표 41.45% 득표를 기록, 갈수록 기세를 보인다. AfD가 상대적으로 늦게 지분을 넓혀 온 것은 나치즘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강한 전통 때문이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게 우크라 전쟁이었다. 마비 상태에 빠진 독일 경제를 현대화, "라인강의 기적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다짐한 숄츠 내각은 출범 두 달 만에 우크라 전쟁을 맞아 이중의 부담을 치러 왔다. 2022년 국내총생산(GDP) 1.4% 성장에 그쳤다가 이후 2년간 내리막길을 걸어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수준이 됐다. 최악의 악재는 에너지 가격 인상.
무엇보다 러시아산 저렴한 에너지로 독일에서 상품을 만들어 중국에 팔아 온 독일 경제의 3박자가 흔들렸다. 노르트스트림 1에 이어 2017년 1월 트럼프 1기 행정부 취임 무렵 완성된 노르트스트림2는 사용도 못 하고 폐쇄됐다. 우크라전 개전 뒤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보다 2~3배 정도 비싼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대체 수입하고 있다. 독일은 유럽연합(EU) 주요국 가운데 대표적인 수출주도 경제이다. 트럼프 1기-바이든-트럼프 2기로 이어지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독일의 대중국 수출에 지속적인 악재다. 2022년 3월 5%였던 실업률은 2024년 12월 6.1%로 악화됐다. 에너지값을 비롯한 물가 인상과 재정지출 감소, 실업률 악화는 민생경제를 힘들게 한다.
'윤석열의 한국'도 추종한 길
여기에 우크라 직접 지원은 추가 부담이었다. 독일은 2023년 10월 현재 총 240억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국가별로 750억 달러의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지원국이다. 국방예산도 꾸준히 늘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따르면 2022년 GDP 대비 1.44%(556억 유로)였던 것이 2025년 2%에 육박하는 1.95%(83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 부분이 F-35를 비롯한 미국산 무기 구매에 들어간다. 미국이 강조하는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에 맞추기 위해서다.
올라프 정권의 위기는 우크라전 개전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러시아 포위 전략에 충실했던 집단 서방이 공유하는 문제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우크라에 대한 막대한 지원과 경제적 부진이 겹치면서 정권 기반이 허약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겉으로 가치를 내세웠지만, 기실 "세계는 미국의 번영에 복무하라"고 다그쳤던 바이든 행정부의 근린궁핍화정책이 동맹국에 끼친 폐해다. 정치적 리더십이 흔들리고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면 극우 포퓰리즘이 발호하기 좋은 토양이 조성된다. 분노와 증오의 에너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AfD의 약진이 그 방증이다. 숄츠는 밴스의 극우 옹호 연설을 비난했지만, 지난 4년 동안 그 토양을 조성해 온 본인의 정책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트럼프가 '우크라 피로증'을 호소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모았듯이 AfD 지지층은 우크라 지원에 반대한다.
'윤석열의 한국'은 '숄츠의 독일'에 비해 우크라전으로 인한 재정 부담이 크지 않았다. 독일 키엘 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10월 현재 한국은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2억 3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를 중심으로 2023년 629억 원, 2024년 5200억 원을 우크라 지원 예산으로 편성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에 올인하면서 대중, 대러 관계 악화에 따른 피해가 컸다. 미국 주도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 한편, 독자 제재로 수천 개 품목을 수출 통제했다. 독자제재가 러시아에 가한 타격은 미미했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에 끼친 피해가 컸다. 전쟁 뒤 대중국 수출 부진 및 물가 인상에 따른 어려움은 독일과 다르지 않다. 우크라전 개전 이후 바이든 전략에 '닥치고 추종'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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