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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인물열전] '도로 보안사' 사령관 여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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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던 윤석열이 그 밑에 깔렸다. 거들던 김용현, 여인형은 이미 영어의 몸. '국민의 군대'를 동원해 국가를 도모하려던 이들이다. 부화수행(附和隨行), 줏대 없이 타인의 주장에 따라 행동한 이도 있지만, 막아선 이도 있었다. 12.3 비상계엄부터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요구안 가결까지, 그 과정에서 드러난 군상을 살펴본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지난 10월 8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한 모습. 2024.10.8. [JTBC 화면 캡처] 시민언론 민들레

"곧 세상이 바뀔 것이다." 방첩사령관 여인형(이하 여인형)이 한 말이다. 12.3 비상계엄 전 교대역 근처 회식 자리에서 이 말을 들은 참석자가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친위쿠데타를 암시하는 공적 의미와 사적 감정이 섞였다. 부 의원이 지난 16일 유튜브 매불쇼에서 공개한 메시지.

여인형은 10월 8일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 국정감사장에서 부 의원의 질의를 무시한 채 동문서답을 내놓았다. 방첩사의 국방 부문 예산 850억 원의 용처에 대한 자료요구를 거부한 채 정보, 수사기관의 특징을 고려해 계속 그렇게 (자료 거부를) 해왔고, 정보 부문 예산은 정보위에 충분히 제출한다는 것. 부 의원이 목소리를 높이자 "왜 고함을 치시냐"며 되레 눈을 부라렸다. 충암고 10년 선배 김용현은 "군복 입었다고 할 얘기 못 하는 게 더 병신"이라며 여인형의 망동을 독려했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이 "여인형 사령관이 하는 것 보면 전두환, 차지철 같아서 아주 좋습니다. 기세가 넘쳐요"라고 한마디 거들자, 김용현은 곧바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비아냥거렸다. 이미 '역심'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또 다른 증좌이다. 국회와 국민에 대한 '사후 모독'은 죄질이 더 나쁘다. 지난 7일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비상계엄을 TV 보고 알았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내뱉었다. 눈가에 여전히 독기가 보였다. 김용현과 이틀 상관으로 지난 14일 구속된 그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조사 과정에서 한 말을 인용구 안에 모으면 이렇다.

전 방첩사령관 여인형이 지난 10월 8일 국회 국방위에서 부승찬 더불어민주당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2024.10.8. [뉴스피디 동영상 캡처] 시민언론 민들레

"대통령이 작년 12월쯤 사적 모임에서 '어려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상조치밖에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올여름 '(계엄 동원부대의) 훈련이 부족하고, 군인들이 명령에 복종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며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만류한 적이 있다. 대통령은 지난 11월 페루 리마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 APEC에 불참하더라도 비상계엄을 단행하는 게 어떤지 김용현에게 의견을 구했다."

거듭 지적하거니와 이번 친위쿠데타의 특징은 반란의 주역들이 저마다 '입장문'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이들에게 여전히 한없이 관대하다. 여인형은 13일 "국민과 부하 직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면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포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군복을 벗은 김용현과 달리 여인형은 군복을 입은 채 고교 선배 대통령을 두게 됐다. 윤석열이 작년 12월부터 "계엄"을 들먹였다는 증언에 따르면 그 한 달 전 그의 방첩사 접수는 속내가 읽히는 1차 포석이었다. 2차 포석은 지난 9월 기어코 김용현을 경호처장에서 국방장관으로 이동 배치한 것.

이 글의 목적은 여인형의 파렴치한 반란 혐의를 새삼 거론하려는 게 아니다. 너무 오래 살아남은 방첩사의 치명적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여인형의 반란 모의 및 행동에 대해서는 수사 과정에서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윤오준 국가정보원 제3차장(왼쪽)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를 앞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인형 사령관은 12.3 비상계엄 당시 경찰과 국정원에 정치인과 언론인 등 주요인사의 위치 추적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대한민국은 비상계엄이 무효화된 지 사흘 뒤에도 국회에서 여인형 사령관이 다정하게 의논할 여유를 허용했다. 2024.12.7.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늑대를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引狼入室, 인랑입실).' 윤석열-김용현이 둔 친위쿠데타의 첫 포석이 방첩사령관이었지만, 기실 여인형이 아니라 누구라도 군사반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리다. 방첩사는 '대한민국 자유 수호 위한 끝없는 헌신'을 표방하지만, 국민의 자유와는 무관했다. 일관되게 군통수권자 1인의 자유를 위해 헌신해 왔다. 1979년 박정희 피격 뒤 계엄령하에서 일개 육군 소장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가능케 한 수단이자, 여인형이 12.3 계엄군이 자행한 국회와 중앙선관위 침탈에 모두 관여한 배경이다.

여인형은 "중앙선관위 서버를 복사하고 여의찮으면 통째로 반출, 검찰과 국정원에 임무를 넘기라(정성우 방첩사 처장 진술)"는 지시를 했다. 또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당대표를 비롯한 정치인과 언론인 등 14명을 체포, 수도방위사령부 B1 벙커에 감금하라(방첩사 김대우 수사단장 진술)"고 지시한 장본인이다. 일개 육군중장 따위가 민주주의 헌정의 척수인 선거와 국회를 모두 침탈하려던 것.

방첩사는 1950년 10월 육군 특무부대로 창설돼 27년 뒤 육해공군에 분산돼 있던 방첩, 정보, 수사 기능을 통합한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로 재편됐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쿠데타를 막기 위해 재창설한 것. 창설 이래 국가와 국민, 무엇보다 민주주의 헌정질서에 득이 된 적이 없는 조직이다. 보안사(1977.10~1990.12), 국군기무사령부(1991.1~2018.8), 국군안보지원사령부(2018.9~2022.10)를 거쳐 윤석열 정부 출범 뒤인 2022년 11월 방첩사로 바뀌었지만, 꾸준히 한국 민주주의에 '독소 기능'을 수행했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12.12 군사반란 당시 감청을 통해 국방부-계엄사로 이어진 지휘계통의 동태를 파악했고,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고백으로 정계와 노동계, 종교계 등의 민간인 사찰이 백일하에 드러난 뒤 '기무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러나 늑대의 DNA는 변하지 않았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계엄검토 문건이 다시 발견됐다. 촛불 덕에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가 기무사를 해체하지 않은 건 직무유기였다. '기무사 폐지론'을 뭉뚱그려 군 방첩과 군에 관한 정보의 수집, 처리 업무로 활동을 제한해 안보지원사로 개명하는 편법에 그쳤다. 정권 교체기마다 보안사/기무사/방첩사 요원들이 선거캠프에 접근해 "쿠데타 방지하려면, 또 군 통수권을 보호하려면 우리가 필요하다"라며 건넨 감언이설에 넘어간 대표적 사례였다.

2024년 12월, 온 국민이 목도하고 있는바 '도로 보안사' 역심(逆心)의 토양이 온존된 건 문재인 정부의 단견이 뿌린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당시 서랍에 넣어두었던 계엄이 실현됐고, 여인형은 스스로 전두환의 후예임을 공공연하게 내보였다. 기무사 시절 이후 내렸던 전두환, 노태우를 포함한 역대 사령관 사진을 보란 듯이 다시 내걸었다. 야당 의원의 전두환 비유에 "고맙습니다"라는 김용현의 망언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방첩사 관계자는 지난 10월 전두환, 노태우 사진 철거 의향을 묻는 <시민언론 민들레>에 "(철거하지 않는 게)기무사의 역사를 잇는다는 의미"라고 둘러댔다.

민가협 회원들이 국군 기무사 앞에서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사찰 폭로 1주년을 맞아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91.10.3. 연합뉴스

반란의 책사이자 행동대장을 해 온 방첩사의 존속은 우리 군의 방첩-정보-수사 기능을 왜곡시키는 폐단이기도 하다. 박정희의 보안사 창설 이전까지 국군의 방첩기능은 미국과 유사하게 육해공군이 각각 독자적으로 수행했었다. 미 육군 범죄수사대(CID)가 방첩 기능을 수행하고, 해군 첩보국(NCIS)이 해병대도 지원한다. 우리도 육군 특무부대와 함께 해군 방첩부대, 공군 제26특별(무)수사대 등이 있었지만, 보안사로 통합됐다. 각 군 방첩-수사 부대의 견제와 균형 또는 보완은 사라졌다.

이는 방첩사가 과연 본연의 임무인 방첩에 얼마나 성과를 냈는가를 보면 군 조직상 폐단이 드러난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의 선포 이유의 하나로 '중국인 간첩'을 지적했지만, 이는 명백하게 방첩사의 실책이었다. 지난 8월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블랙 요원들의 대규모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발생했지만, 여인형은커녕 당시 정보사령관 문상호에 대한 어떠한 문책, 경질 인사조차 하지 않은 건 윤석열 정부 국방부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삼정검 수치를 수여하고 있다. 2023.11.6. 연합뉴스

'도로 보안사'의 감청권은 12.12 군사반란 당시에 비해 다소 제한된다. 군의 유선전화는 여전히 감청하지만, 휴대폰은 훈련 또는 작전 지역에서만 감청이 허용된다. 12.3 비상계엄 와중에 여인형이 경찰청과 국가정보원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주요 인사의 위치정보 제공을 요청한 건 훈련 또는 작전 지역 외 휴대폰 감청권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송영무 장관의 국방부(2017.7~2018.9)가 강력하게 주장했던 기무사 폐지론을 청와대가 막았다. 발전은 성찰에서 온다. 하지만 기무사 존속을 주장한 누구도 성찰하는 모습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12.3 내란을 계기로 대통령령으로 두고 있는 방첩사를 역사의 쓰레기통 속에 던져버리고, 각 군의 방첩-정보-수사 기능을 복원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방첩사의 존속을 또 주장한다면 이는 단순히 육군중장 보직을 유지하려는 조직 이기주의에 그치지 않는다. '미필적 역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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