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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한반도 위기설 와중에 '중국'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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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보는 중국의 관점 ①]

"(남북 서해 포사격) 각 측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을 취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각 측은 정세 악화를 피하고, 의미 있는 대화가 재개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길 바란다." 1월 5일,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

"(북한의 ICBM 발사) 한반도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군사적 억제력을 통한 압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역효과를 내고 갈등을 더 격화시키고,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다. 대화와 협상만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길이다." 2023년 12월 18일, 왕원빈 대변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 있는 파일롤리 에스테이트에서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날 각자의 현직 취임 이후 두 번째 대면 회담을 했다.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기후변화 대응 공동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의견을 교환했다. 2023.11.15. 로이터 연합뉴스

조용한 중국

'중국'이 사라졌다. 남북 지도자가 잇달아 험악한 말을 주고받고, 신년 벽두부터 서해 포사격을 주고받아도 조용하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이 올해 분쟁이 우려되는 세 지역으로 아프가니스탄과 대만과 함께 한반도를 꼽은 러시아와도 사뭇 다른 태도다. 한반도 안팎의 정세 변화 및 위기 조짐에 중국이 침묵 또는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가 탈탈냉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가운데 중국 지도부는 '위기의 한반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왕원빈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남북의 서해 포사격(1월 5일)과 북한의 ICBM 발사(2023년 12월 18일)에 대해 내놓은 논평은 앞으로도 계속 듣게 될 중국의 입장이자, 러시아의 입장이다. 그 원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작년 3월 21일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내놓은 공동방안이다. 두 정상은 '새시대를 위한 조정(coordination)의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을 선언하면서 "한반도와 관련된 각 측은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국면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력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대화와 협상만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북중, 북러, 러중 관계는 각각 결이 다르다. 미국과 상호의존하는 중국의 입장 때문이다. 러중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교역액이 2000억 달러가 넘었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판로가 줄어든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사들이면서 늘어난 교역량이다. 중국은 그러나 러시아와 군사, 전략적 협력관계를 한사코 꺼린다. 서방은 중국이 일부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제품을 러시아에 공급한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지만, 무기나 군수물자는 제공하지 않는다. 핵무기 문제에서는 아예 엇갈린다.

중국을 중심으로 본 한반도 주변국 관계. 중국은 러시아, 북한, 미국, 남한 중 어떤 나라와도 군사적, 전략적 협력을 하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고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엄포를 몇 차례 내놓은 것과 달리, "핵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2023년 2월 21일 공표한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 개념 문서'에서다. 모스크바 러중 정상회담 한 달 전이다. 러시아와 함께 미국 일방주의 국제질서를 대신할 다극화 질서를 주장하지만, 군사협력은 한사코 피하고 있다. 미국과 전략적 경쟁을 하면서도 상호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중러 삼각관계?

북중 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주의 형제국 간 유대를 강조하지만, 군사협력은 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에서다. 양다리가 아니라 일종의 문어발 외교다.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뿐 아니라 한국, 미국과도 경제관계를 유지하지만, 군사적, 전략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 신중국 건설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을 부강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백년의 마라톤을 계속하는 게 지상 목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말과는 달리 한반도 정세의 흐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백년 숙원을 달성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국경 접근 여부, 대량 난민 발생, 북한 대량살상무기(WMD) 처리가 걸려 있다. 신중국 건설(1949.10.1) 1년도 되지 않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이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한반도 위기 '관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근본적인 해결에 소극적인 입장으로 일관했지만, 북중 국경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한반도 안팎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좀체로 나서지 않는다. 왜 그럴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8월 8일 자신의 뉴저지 베드민스터 골프장에서 북한에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017.8.8. AP 연합뉴스

2017년 한반도 위기 때 중국이 보인 행동을 톺아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 문제를 미국으로 가는 '다리'로 여겨 온 게 중국이다. 이 점, 중국에 일종의 기회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2017년 1월 출범과 동시에 대중 무역전쟁을 시작했지만, 한반도 위기가 불거지면서 "중국과의 큰 거래로 풀겠다"며 호흡을 조정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까지 북중미 삼국 간에는 묘한 패턴이 형성됐다. 한반도 전쟁 위기가 깊어지면 미중이 접근하고, 북미관계가 발전하면 미중 관계가 악화했다.

한반도 문제를 보는 중국의 속내도 드러났다. 중국의 최우선 순위는 문제 해결이 아니다. '현상 유지'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거나, 북미가 급속히 가까워지면 현상유지가 흔들린다. 전자의 경우 중국은 미국과 적극 협력했지만, 후자의 경우 북한에 적극 다가갔다.

중국엔 미국으로 가는 '다리'

트럼프가 '화염과 분노'에 이어 북한의 '완전한 파괴'를 다짐하고, 김정은이 '괌 포위사격'을 위협하면서 위기가 고조되자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2017년 8월 13일 자 월스트리트 저널 공동기고문을 통해 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와 한반도의 급속한 통일에 관심이 없으며, 특히 주한미군은 비무장지대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북한과 중국을 모두 안심시키는 메시지였다. 사흘 뒤 중국은 베이징을 방문한 조지프 던포드 미 합참의장을 이례적으로 북중 국경을 관할하는 랴오닝성 선양의 북방전구지휘부에 초청해 유사시 군당국 간 소통을 강화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미중이 함께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던 2017년 8월 16일 조지프 던포드 미 합참의장(왼쪽)이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중국 인민해방군 북부전구 사령부를 방문, 쑹푸쉬안 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17.8.16. AP 연합뉴스

미중은 2015년 8월 한반도 위기 때도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 목함지뢰 사건 뒤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박근혜 정부가 48시간 내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박근혜 정부는 확성기 철거는커녕 '선조치 후보고'를 지시, 긴장이 높아졌다. 미국은 진행중이던 한미 군사연습을 중단하고 박근혜 정부를 설득했고, 중국은 선양 군구의 병력을 북중 접경지역으로 이동시켜 북한을 압박했다.

반대로 싱가포르 회담으로 북미 관계가 급진전하자 중국은 북한에 다가갔다. 북한을 '완충국가'로 남겨두려는 중국의 구도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담을 전후해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과 다섯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전략적 소통'을 다짐했다. 김 위원장이 2011년 12월 등극한 뒤 7년 가까이 외면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지극히 파격적인 행보였다.

북한의 대러, 대중 이중주

중국의 한반도 행동 패턴으로 미뤄 보면, 중국의 침묵은 현 상황이 한반도가 전쟁 전야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가 11월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지 않는 한, 트럼프-김정은이 '러브레터'를 주고받던 2018~2019년과 달리 북미 관계가 진전될 가능성도 없다. 중국으로선 굳이 나설 절박한 동기가 없는 셈이다.

북한이 21일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 관철을 독려하는 선전화. 2024.1.21.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의 우선순위도 달라졌다. 김 위원장이 코로나19 정상외교 동면 뒤 처음 방문한 곳은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였다. 2024년이 북중 수교 75주년이라며 외교적으로 각별한 수사를 날리지만, 이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18일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 외교부장을 만난 건 외무성 부상 김명호였다. 반면에 최선희 외무상은 지난 16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라브로프와 회담을 갖는 한편, 푸틴을 크렘린궁에서 예방했다. 북중, 북러 외교의 형식과 내용에서 모두 차원이 달라졌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북러 외교장관 회담에 대한 질문에 "러시아와 북한의 양자 간 교류"라고 짧게 답했다. 북중 고위급회담 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알려줄 게 없다"고 말해 별다른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역시 비슷한 듯 다른 북중러의 행보다.

물론 중국의 한반도 침묵이 북러관계 때문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미국 변수'와 '한국 변수' 및 중국의 외교전략 때문이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결코 혼자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라면서 "한반도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과 접점을 찾는 게 더 유효한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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