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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악한 북한 선수 웃긴 여자 역도 김수현의 유쾌한 '분단 넘기'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10. 1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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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성과를 거두고 있는 요인은 (…)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 어떻게 하나,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 꼭 보답해야 한다는 오직 이 한 가지 생각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지고 마음을 합쳐진 덕분이며, 고마운 스승들 덕분입니다."

2022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6㎏급 그룹A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김수현 선수(오른쪽)가 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북측 금·은메달리스트 송국향(가운데), 정춘희와 나란히 서 있다. 2023.10.5. 연합뉴스

지난 5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6㎏급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이 열린 샤오산 스포츠센터. 수상자는 모두 한반도인이었다. 북측 송국향과 정춘희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남측 김수현이 동메달을 받았다. 서두는 송국향이 '좋은 성적의 비결'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송국향은 첫 마디를 내놓은 뒤 18초 동안 복받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다소 기묘했던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에는 북·중 관계와 남북 관계 및 북한의 현주소가 응축돼 있었다. 한편 씁쓸하면서도 인상적인 장면이었다는 생각에 TV 중계로 접한 선수들의 말을 전한다. 단순히 화제성 뉴스로 소비하고 지나갈 게 아닌 것 같다. 결과는 웃음의 승리였다.

"제가 오늘 비록 금메달을 쟁취하기는 했지만, 이번 기록은 만족할 기록이 아닙니다. 저의 목표는 세계기록이었습니다. 정말 아쉽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중국 선수가 참가하지 못하였는데 오늘 이 경기에 같이 함께하였더라면 정말 더 재미있고, 더 멋있는 경기가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선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걱정됩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송국향은 체육인다운 소감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곧이어 인상 경기에서 부상을 입어 탈락한 중국 선수 랴우구이팡 걱정을 늘어놓는 게 의아했다. 국제 문제를 읽는 직업적 습관 때문인지, 중국과의 친선을 강조하려는 누군가가 기획한 발언으로 읽혔다. 이어진 정춘희의 발언에서 더 분명해진 생각이다.

"저는 먼저 오늘 중국 선수, 세계선수권 보유자인 로야방(랴오구이팡) 선수가 오늘 생일인데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아서 생일 축하 인사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생일을 축하합니다. (박수) 앞으로 로야방 선수가 회복이 돼서 정말 실력으로 경기를 하자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정춘희는 아예 은메달 수상 소감도 없이 랴오구이팡의 생일을 축하했다. 송국향(267㎏)과 인상 및 용상 합계에서 불과 1㎏ 차로 금메달을 놓친 아쉬움이나 그래도 4년 만에 나선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거둔 기쁨보다 앞세웠다.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은 보통 서로 축하하고 덕담을 나누는 자리다. 그러나 바로 옆 좌석의 남측 동메달리스트 김수현은 안중에 없었다. 중국과 중국인 관중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로 읽힌 까닭이다. 선수들의 말은 곧바로 통역돼 관중과 언론에 공개됐다.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뒤 공식적인 성명과 발표에서 중국과 '한 참모부'를 구성한다면서, 남측을 한사코 외면해 온 북측 당국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북한도 필요할 때는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한다. 지난 5월 제14차 세계군대여자축구선수권대회 주최국인 네덜란드가 북한팀에 방문비자를 발급하지 않자 북한 축구협회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가 본보기다. 담화는 "그 어떤 리유로도 체육의 정치화는 정당화될 수 없다"며 올림픽 운동의 근본 이념과 '체육을 통한 친선'이라는 대회 정신을 부정한 네덜란드 정부를 비난했다. (5월 28일 조선중앙통신) 그러나 남북 관계에서 스포츠와 정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기자회견에서는 '최고 존엄'을 입에 올릴 때마다 거의 반사적으로 감읍하는 북한 주민의 DNA도 엿보였다. TV 중계를 유심히 본 시청자들은 간파했겠지만, 송국향이 말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은 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실제였다. 교육과 생활을 통해 깊이 체화됐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남과 북이 화성과 목성만큼이나 다른 체제임을 깨닫게 하는 장면은 처음이 아니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북녀 응원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담긴 야외 현수막이 비를 맞고 있는 광경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끝내 끌어내렸다.

5일 중국 항저우 샤오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6kg급 그룹 A 경기서 동메달을 차지한 김수현 선수가 시상대 위에서 왼발을 번쩍들면서 자축하고 있다. 2023.10.5. 연합뉴스

집에 불이 나도 가족의 목숨보다 '최고 존엄'의 얼굴이 담긴 '1호 사진'부터 챙겨야 하는 북한의 일상이자, 북한 주민의 본능이다. 우리에겐 이상하지만, '최고 존엄'은 한반도 북쪽 거주민에게 늘 조건반사에 가까운 행동을 유발한다. 꼭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김수현은 그 모든 분계선을 단박에 뛰어넘었다.

"저는 세 번째 출전으로 드디어 메달을 따게 됐는데요. 중국 선수가 다친 것도 너무 걱정되고, 생일인 줄 몰랐지만 정말 축하하구요. 제가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걸 몰랐는데. 저도 많이 낮은 기록이지만 그래도 이리 대단한 선수들과 중국에서 같이 경쟁도 하고 이렇게 응원도 받으면서 경기할 수 있어서 너무 정말 기억에 남을 경기인 것 같고.

또 제가 '북한' 선수 중에 림정심 언니를 정말 좋아했는데 정심이 언니보다 더 잘하는 선수 두 명이 같이 경기를 하게 돼서 앞으로 저도 더 목표가 높게 잡히면서 이 친구들만큼 더 잘해서 또 같이 이렇게 시상대에 같이 올라가서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는 그런 경기를 위해서 '한국' 가서도 똑 부러지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이 와서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중국 선수 생일 축하합니다. (웃음)"

중국 선수의 부재를 의식하지 못했던 김수현은 송국향과 정춘희의 말이 의아했을 거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북측 선수들을 인정하는 동시에 중국 선수를 배려했다. 동메달을 딴 기쁨과 선수로서의 야무진 각오도 내놓았다. 좌중을 일거에 흐뭇하게 했다. 북측 선수들도 웃음을 참으려고 어깨를 들썩여야 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농구와 여자축구 경기 뒤 북측이 엄중히 제기했던 국명 시비도 없었다. 북측의 누구도 "우리는 '북한'이나 '북측'이 아닌, DPR 코리아"라고 대거리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경기에서 졌지만, 회견장에선 김수현의 완승이었다.

그가 남측 취재진에게 누설한 '비밀' 역시 기분 좋은 후일담이다. 4위 기록으로 결선에 오른 그는 용상 경기를 앞두고 긴장했다고 한다. 그 때 "북한 코치 선생님이 몰래 다가와서 '수현아, 너한테 기회가 왔다. 너 될 거 같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라'고 얘기해주셨다"고 털어놓았다. 대회 내내 북한 선수, 임원들의 굳은 표정과 남측에 대한 야멸찬 말투가 불편함을 주었다. 그런데 김수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 사이에 흐르던 따뜻함을 전해 주었다.

송국향과 정춘희 등 북한 선수들은 도쿄 올림픽을 비롯한 그동안의 국제대회 불참 탓에 내년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다. 서로 재회할 날이 기약없다. 남북 관계 전망은 더 암울하다. 북은 앞으로도 "핵보유는 자위권"이라며 각을 세울 것이고, 남은 "힘에 의한 평화"를 운운하며, 서로 전선을 확대할 것이다. 그러나 김수현이 캐낸 웃음의 광맥은 작은 희망을 준다. 거창한 정책이나 기획, 작전이 아닌 개인기로 이뤄낸 유쾌한 '접촉'이었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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