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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몬도 미 상무장관 방중 뒤 제기되는 미중 11월 샌프란 정상회담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9. 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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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게이지먼트(engagement, 직접 상대)는 한국어 해석이 묘연한 단어다. '포용'이나, '관여' 역시 정확하지 않다. 전시엔 교전을, 평화 시엔 적극적 상대(대화)를 말한다. 두 개의 개념을 한꺼번에 담으려면 서로 싸우건, 대화하건 상대의 눈을 쳐다보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적성국이나 전략적 경쟁국을 인게이지 하는 건 미국 외교의 오랜 전통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28일 왕웬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회담을 갖기 위해 베이징의 중국 상무부 회담장으로 가고 있다. 2013.8.28. 로이터 연합뉴스

인게이지먼트의 필요성 

군사적 충돌의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상대 의도를 오해, 오인함에 따라 빚어지는 우발적 충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도 미·러가 군사 핫라인을 유지하는 것도 인게이지먼트의 일환이다. 우발적인 충돌을 막는 게 1차적 목적이다. 그런데 미-중 군사 핫라인은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뒤 작동되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 안보의 숨은 뇌관이다. 

지난해 11월 발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국 간 소통을 강화하기로 한 건 서로 화해하자는 말이 아니었다. 경쟁을 계속하되 종종 만나 눈을 맞춰보자는 인게이지먼트 제안이었다. 그마저도 지난 2월 미국의 스파이 풍선 소동 탓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예정됐던 방중이 늦춰지면서 6월에나 본격 시작됐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지난달 방중(27~30)을 끝으로 블링컨에서 시작, 7월 재닛 옐런 재무장관(6~9),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16~19)에 이은 미국 고위급 인사 4명의 방중이 모두 끝났다. 마지막 러몬도 장관의 방중은 결이 달랐다. 블링컨-옐런-케리가 모두 '대화를 위한 대화'에 만족한 채 빈손으로 귀국한 것과 달리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했기 때문이다. 미 상무장관으로는 5년 만의 방중이었다.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외교장관도 30일부터 방중, 대화 분위기를 이었다.

러몬도는 지난 28일 왕웬타오 상무부장과의 회담에서 4개의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 내년 초부터 차관급 실무그룹을 구성, 한 해 최소 2차례 만나 교역 및 투자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상무장관들은 또 대면 회담을 최소 1년에 1번 갖기로 했다. 가장 인상적인 협의체는 '수출통제 시행정보 교환회의'였다. 미·중은 모두 곧바로 실행 의지를 보였다. 합의 다음 날 베이징의 중국 상무부에서 양국 차관보급이 참석한 가운데 첫 회의를 가졌다. 인허가 과정에서 자국 기업의 비즈니스 기밀 보호를 논할 전문가들 간의 기술적인 협의체도 만들기로 했다.

30일 중국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찾은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린다벨 의상을 입은 중국 소녀를 껴안고 있다. 린다벨은 상하이 디즈니랜드 상징이다.

러몬도 방중이 다른 점 

미 상무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합의내용을 상세하게 전했다. 러몬도의 발언 내용을 소개했지만, 중국 측이 표명한 우려는 소개하지 않았다. 수출통제와 관련 바이든 행정부의 '좁은 마당, 높은 담장(small yard, high fence)' 방침을 확인하면서 미국 국가안보를 명확히 저해하는 좁은 분야에서, 높은 담을 쌓는 것임을 강조했다. 수줴팅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31일 브리핑에서 "양국 상무장관 회담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한 뒤 양국 상무부가 다층적 소통 채널을 구축하고, 경제와 무역 부문에서 소통을 강화키로 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양측은 또 제14차 미·중 관광업계 지도자 회의 개최도 합의했다.

러몬도는 방중 기간 상충되는 메시지를 던졌다. "국가안보를 침해하는 문제에 타협하거나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미·중 경제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은 없다"고 말했다. 등 치고, 배 만지는 화법이다. 왕 부장은 미국 측의 '좁은 마당, 높은 담장' 전략에 대해 "국가안보 개념을 과도하게 확장하는 건 양국 교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러몬도는 30일 상하이에서 온라인 특별브리핑을 갖고 "향후 몇 달간 중국 측의 행동을 지켜보겠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에서 러몬도를 만난 리창 총리는 "미국이 중간쯤에서 중국과 타협, 보다 실질적이고 유익한 조치를 취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의 행동을, 중국은 미국의 행동을 기대하는 셈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 3일 워싱턴에서 열린 워싱턴 내셔널스와 시카고 클럽의 야구 경기에 앞서 시구하고 있다. 2023.5.3. AP 연합뉴스

러몬도는 방중 기간 1000여 개의 미국 기업이 진출한 상하이를 찾아 미국 상공회의소 회원사들로부터 고충을 들었다. 인텔과 마이크론, 보잉, 비자 및 마스터 카드 등 미국 기업들의 비즈니스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당국의 보조금 지급과 인허가 과정에서 미국 기업 기밀 획득, 미국 기업 사무소 급습, 지적재산권 침탈 등을 문제 삼아왔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보복관세와 차별적인 보조금의 철폐를 요구해왔다.

미·중 갈등은 군사 부문은 물론 경제 부문에서도 되돌아가기 어려운 선을 넘은 지 오래다. 러몬도는 '반도체 과학법'으로 미국의 대중 반도체 기술 통제를 주도하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팅 기술 및 대중 투자 제한도 지휘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제조장비 및 기술의 수출통제 조치에, 갈륨과 게르마늄 등 반도체 원료 통제로 맞불을 놓고 있다. 중국인 해커들은 방중 직전 러몬도의 이메일계정을 해킹하기도 했다.

미·중 전략적 경쟁의 견고한 구조 

그럼에도 러몬도의 방중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양측 모두 최소한 교역 및 투자 부문에서나마 일시적인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 경제적 갈등은 양국 모두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미·중 교역은 20년 내 최저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하다. 올 상반기 미국 수출의 13.3%를 점했다. 지난해 중국의 미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FDI)는 전년에 비해 48% 추락했다.

미 상무부가 러몬도 방중기간 보도자료에 "수출과 외국기업 지사들의 FDI가 미국 에 일자리를 준다"는 '수출 및 투자증진' 문안을 포함한 것은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수출은 1070만 일자리를(2016), FDI는 680만 일자리를(2015) 각각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허리펑 중국 부총리(오른쪽)가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23.8.29. EPA 연합뉴스

코로나19와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미·중 관계는 계속 악화되고 있지만, 지난해 교역액은 6906억 달러(약 870조 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 저널) 미·중 디커플링이 계속 진행 중이지만,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여전히 서로 무시할 수 없는 교역상대국임을 말해준다. 미·중 모두 그 과정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잠정적으로나마 이득을 최대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 역시 코로나19 이후 회복이 더딘 형편이다. 올해 미국의 대중 FDI는 지난 7월 말까지 9.8% 줄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분기 2.2%에서 2분기에는 0.8%로 주저앉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여름 석 달 동안 미국 고위급 4명의 잇따른 방중이 종료됨에 따라 그동안의 대화 노력을 재평가하고 향후 행보를 결정할 때가 됐다. 바이든 행정부가 당초 소통 강화 약속을 이행한 것은 관계 악화 와중에도 대화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조슈 로진이 31일 자 칼럼에서 "러몬도의 중국 여행은 중국을 인게이지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주장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의 시점이 왔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왜 11월인가

인게이지먼트는 데탕트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화해가 아닌, 일시적인 상대 또는 접촉일 뿐이다. 다만 시진핑 주석이 오는 9~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불참키로 한 것은 대미 인게이지먼트의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판단에서일 거다. 미국 측도 준비가 안 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러몬도가 "향후 몇 달간의 변화"를 거듭 강조한 것으로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각국 언론은 러몬도 방중을 전하면서 11월 15~1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짚고 있다. 로진은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빌어 바이든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시 주석을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8일에만 해도 러몬도의 방중이 양국 관계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던 차이나 데일리는 31일 사설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을 지킨다면 긍정적"이라며 논조를 바꿨다. 그러면서 "미국의 이러한 행동이 11월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할 분위기로 이어진다면 긴장을 완화하고, 실용적 협력을 해나갈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CMP는 "지정학 전문가들은 러몬도의 방중이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향한 또 하나의 발걸음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정상회담을 갖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22.11.14.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상업적인 고려뿐이 아니다. 미·중 갈등을 일시적으로 늦출 정치적 수요는 미국 쪽에 더 있다. 11월이면 바이든에겐 내년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이다. 올해 들어 부쩍 대선 유세를 늘리고 있지만, 11월 이후에는 사실상 선거에만 올인해야 한다. 중국과의 인게이지먼트로 경제실적을 높인다면 트럼프와 박빙의 판세를 보이는 선거판에도 도움이 된다. 바이든과 시진핑이 만난다면, 가장 중요한 의제는 미·중 군사 핫라인의 복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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