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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방류 반대? 북한 담화에는 왜 '인민 배려'가 없을까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7. 1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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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원자력기구는 환경평가기구가 아니다. 국제법의 어느 갈피에도 국제원자력기구가 특정한 나라와 지역에 대하여 핵오염수를 방류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나 문구가 없다."

베이징의 한 수산물시장에서 지난 8일 상인이 생선을 점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 방류를 사실상 승인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 발표 이후 일본 일부 현으로부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할 방침이다. 2023.7.8. EPA 연합뉴스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북한도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지난 9일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국토환경보호성 대외사업 국장'의 담화를 통해서다. 요지는 국내 시민사회와 중국, 18개 태평양 섬나라와 같은 논리에서 환경과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오염수의 무단 방류를 비난하고 있다.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계획 검토에 동원된 국제원자력기구(IAEA) 직원들이 100만 유로의 자금을 받고, 최종보고서 초안을 일본에 사전 전달했다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가 제기해온 의혹도 소개했다.

앞서 중국 외교부도 지난달 28일과 지난 3일 중국 외교부가 정례브리핑에서 이러한 의혹에 주목한 바 있다. 북한은 "인류의 보금자리이고 후손들의 삶의 터전인 푸른 행성을 핵오염수로 어지럽히려 드는 반인륜적, 반평화적 망동"이라면서 국제사회가 좌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는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 '인민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인류'를 거론할 뿐이다. '인류'와 '자국민'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오염수 해양 방류로 북한 주민이 겪게될 고통에 대한 우려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각국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무엇보다 자국민의 생업과 건강을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다. <민들레>가 비난에 그치지 않고, 제주와 신안, 통영, 강릉, 부안 등지를 돌며 어민들의 분노와 절박한 심정을 소개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성산포&nbsp;위판장&nbsp;한&nbsp;켠에서&nbsp;노점상을&nbsp;하는&nbsp;고숙자(83)&nbsp;씨는&nbsp;핵오염수&nbsp;바다&nbsp;투기로&nbsp;평생직장을&nbsp;어떻게&nbsp;유지할지&nbsp;걱정이다.&nbsp;&copy;&nbsp;이봉수

북한 일본과 IAEA, 이를 방조하는 한국과 미국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정작 오염수 방류가 북한 동해안 어민을 비롯해 주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IAEA가 깡그리 부인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이러한 의혹을 IAEA에 정식으로 질의했다. 중국은 특히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북한은 그러나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환경보호성 국장의 담화가 '정치적 성명'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강조해온 인민제일주의 정신과도 들어맞지 않는다.

지난 6일 발표한 러시아 외교부의 입장도 '사람에 대한 우려'가 바탕에 깔려 있다. 러시아 어민들은 물론, 일본 스스로 자국 어민의 생업과 환경을 고려해서라도 오염수 방류 외에 다른 대안을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은 원전 안전과 관련한 정보를 은폐함으로써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조장하고, 사고 이후에도 줄곧 불투명한 관행을 보여온 도쿄전력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어느 나라건 국민은 절실하다. 지난 5일 후쿠시마 제1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 본부 앞에서 핵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7.5. EPA 연합뉴스

문제는 북한의 입장이 '네 눈의 티끌'만 드러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내 눈의 들보'를 새삼 부각시킨다는 게 우리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이다. 자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보다 정치적 입장을 강조하는 건 북한에 앞서 대한민국 정부가 '솔선'하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세계를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주의 세력으로 양분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같은 입장을 취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가치'를 강조한다. 그 가치의 핵심이 민주주의일 터,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치적 고려에 앞서 자국민의 생업과 안전, 미래세대에 물려줄 환경을 최우선으로 제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과학적·기술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는커녕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는 IAEA와 일본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기 급급한 인상이다.

전남 무안군 운남면의 한 염전에서 지난 6월 29일 천일염 출하 작업을 하고 있는 주민들. 천일염 사재가가 벌어지면서 작업량이 늘었지만, 일본의 오염수 방류 뒤를 생각하면 살아갈 길이 아득하다.&nbsp; 2023.6.23. 민병선 에디터

일본을 방문한 이른바 '시찰단'은 오염수 시료 채취를 포함해 안전성 규명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일본 측이 엄선해 건네준 자료만 받아보고, 그 설명만 듣고 왔다. 대통령실은 IAEA가 보고서를 공개한 다음 날 "발표내용을 존중한다"며 수용했다. 이 정도면 권위주의 정권에 비해서도 자국민을 고려하는 노력이 없음이 분명하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문제는 국제사회가 관심을 집중해야 할 글로벌 이슈이자, 자국민의 건강과 생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국내 이슈이기도 하다. 한·미·일과 IAEA에 대한 정치적 비난에 초점이 맞춰진 북한의 공식 담화와 그 정도 대처도 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은 얼핏 달라 보인다. 그러나 '국민 배려'가 없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남이나, 북이나 정치적 고려만 강조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이점, 또 다른 남북 동조화(coupling)가 아닐 수 없다.

4일 서울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라파엘 그로시 IAEA사무총장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합니다'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는 과학자들. 2023.07.04. 한승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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