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핵 가진 북한'과 끝없는 대치 예고한 미국 정보평가(NIE)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7. 8. 11:01

본문

https://www.dni.gov/files/ODNI/documents/assessments/NIC-Declassified-NIE-North-Korea-Scenarios-For-Leveraging-Nuclear-Weapons-June2023.pdf

 

지난 6월 22일 미국 국가정보국(DNI)이 공개를 결정한 국가정보협의회(NIC)의 북한 핵무기 관련 국가정보평가(NIE)는 한반도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제목은 '북한 : 2030년까지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 'NIC는 CIA를 비롯한 미국 16개 정보기관의 협의체로 정보평가를 조율해 행정부 정책 입안에 필요한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집단 지성이 구현된, 가장 권위 있는 정보평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1980년 이후 43년 만에 나온 것으로 탈냉전 시기를 건너뛰었다. 작성 시점은 올해 1월이다.

 

NIE 표지. 공개는 6월 22일 했지만, 기밀 해제 결정은 6월 15일에 이뤄졌다. 

 

강압 목적, 공격 목적, 방어 목적 별 가능성 및 동맹과 우방에 가할 위협의 수준을 5등급으로 평가했다.

강압·공격·방어 목적의 3가지 시나리오

보고서 내용을 요약하면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위협에 처하거나, (유사시) 재래식 무기나 화학 무기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기까지 핵무기를 '공격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순전히 억제용으로만 갖고 있을 가능성도 적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에 '강압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NIE 보고서를 계기로 한반도 안보 상황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아래 NIE 상세 내용 참고)

안보 위협을 평가할 때는 먼저 평가하는 주체의 인식을 살펴야 한다. 미국 정보당국이 북한의 의도는 100% 파악할 수 없지만, 미국의 의도는 잘 파악한 상황에서 정보평가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핵무기 선제사용을 공표한 나라다. 2017년 한반도 전쟁 위기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핵무기 선제사용 독트린을 토대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및 '북한의 절멸'을 경고했다. 미국 정보당국이 북한이 공격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것은 역으로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로 공격할 의도가 없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이 핵무기로 북한을 선제공격할 의도가 없으므로, 북한 역시 핵무기를 공격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장으로 따지면 앞부분의 '미국이 북한을 (핵) 공격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절이 NIE에 빠진 것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 교수)

 

북한 미사일 발사 [조선중앙TV 화면] 2023 0310 연합뉴스

핵을 이고 살게 될 미래

북한이 국가적 명운을 걸고 많은 재원을 투자한 핵무기를 방어 목적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적다는 NIE 판단은 다분히 상식적이다. 순전히 억제력 확보에만 만족하려고 국가적 재원과 역량을 투자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0년 신년사(당 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보도문)에서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을 공언했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강압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미국에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계속 북한의 위협에 노출된 상태로 지내야 한다.

북한은 이미 올해 신년사 격인 지난 1월 1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보도문에서 핵무기 사용을 위협해 남한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의지를 밝혔다. 보도문은 '2023년도 핵무력 및 국방발전의 변혁적 전략'을 소개하면서 △또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체계 개발과 △전술 핵무기 다량 생산 △핵탄 보유량의 기하급수적 확대 △군사위성 첫 발사를 다짐했다. 자신들을 '주적'으로 명시한 남한을 '명백한 적'이라고 규정하면서 굳이 "초대형 방사포(다연장 로켓)가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NIE도 지적하듯이 북한의 핵무기의 양과 질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강압 외교나 강압 조치의 강도 역시 높아질 것을 예고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부터 한·일을 상대로 확장억제력 강화를 거듭 공언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워싱턴 선언'에 담겼듯이 핵무기 투발수단이 있거나(전략 폭격기나 전투기), 핵무기를 장착한 전략핵잠함(SSBN)의 한반도 전개나 '방문'을 늘리는 것 외에 방도가 없다. 북한이 갈수록 강압의 방법과 강도를 높이고, 한·미가 갈수록 전략자산의 전개를 늘리면, 한반도 안보 환경은 끝없는 불안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미국 전략핵잠함(SSBN) 메인 함.  위키피디아 

미국이 NIE를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 자체가 북핵 문제의 시급성이 덜하다는 인상을 한국에 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서울 불바다" → "남조선 불바다"

북한은 핵무기를 손에 넣기 전에도 숱한 도발을 했다. 1994년 3월 19일 판문점 남북 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단장이 '서울 불바다' 발언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한 군사 전문가는 북한 핵무기의 '강압 목적' 사용의 의미를 "과거 '서울 불바다'론에 비유하면 '남조선 불바다'론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핵을 갖고 노골적으로 강압하다가 자칫 미국의 선제 핵 타격의 빌미를 줄 수 있는 만큼 '부드러운 강압' 또는 '넛지(쿡 찌르기)' 수준일 것"이라는, 다소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NIE 보고서에는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보는 시각이 투영됐다. 보고서에 담기지 않은 내용에서 드러난다. 미국은 북한과의 '무한 대치' 외에 비핵화를 포함한 어떠한 대안도 감안하지 않고 있다는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강압 또는 공격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정책적 고려가 없어진 것이다. 이는 우리 역시 한반도 정책의 방향과 목표를 수정할 시점임을 말해준다.

마커스 갈로스카스 전 NIC 북한 담당관은 6월 28일 자 애틀랜틱 카운슬 기고문에서 NIE를 평가하면서 "북한 비핵화 원칙을 포기하거나, 대북 예방전쟁에 착수하는 대신, 갈수록 강한 무력으로, 더 강압적으로 나올 북한과 기나긴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범위를 넓혀보면, '장기적 대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 이후 글로벌 위협에 대해 설정한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의 국익에 타격을 입히기 전까지 최대한 장기간 끌어 러시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고갈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역시 우리 생애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장기적 대치'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전제된 전략이다. 냉전과 전혀 성격이 다르되, 장기간 대치를 통해 전략적 경쟁자 또는 현상변경을 꾀하는 수정주의 세력(러시아, 중국)을 고갈시키거나 냉전 처럼 상대(소련)를 해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세계 전략의 관성이 한반도 문제에도 적용된다는 말이다. 

 

초대형 방사포 증정식에 참석한 주민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당 간부들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1일 전송한 사진이다.  2023.1.1  연합뉴스 

NIE 보고서 상세 내용

NIE는 '강압(coercive) 목적'과 '공격 목적' '방어 목적' 등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북한이 2030년까지 증강될 핵무기의 가치와 목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검토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이중 핵무기 현황을 지금까지처럼 '강압 외교'를 지지하는 데 사용할 것으로 판단한 뒤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보유량과 성능이 높아지면서 갈수록 '위협적인 강압 행동'을 고려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짚었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와 북한의 핵무기 옵션이 미국과 동맹에 미칠 위협의 수준을 각각 높음(5)·중간높음(4)·중간(3)·중간낮음(2)·낮음(1) 등 5단계로 나누었다.

'강압적 목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위협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단 핵전력이 아닌 재래식 전력의 사용을 전제한다. 가능성은 높음(5), 제기하는 위협 수준은 중간(3)이다. 자신들이 보유한 핵무기의 존재 덕분에 한·미 양국의 보복에 따른 체제 위협을 최소화할 거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핵무기를 강압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동기는 세 가지 확신과 한 가지 체념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가정했다. △강압적 행동으로 정치적, 경제적 또는 군사적 이득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 △(한·미의) 외교적, 경제적 보복이 관리 가능 수준일 거라는 확신 △군사적 확전 가능성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확신이 추진 요인이다. 또 북한이 얼마 안 되는 외부의 생명선(경제협력)을 단념한다는 것을 전제 한다.

'공격 목적'은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 위협을 함으로써 남한을 지배하려는 의도다. 가능성은 낮음(1), 위협 수준은 높음(5)이다. 한반도 세력균형을 근본적으로 변경, 자신들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남한을 적화하거나, 군사적 균형의 추를 확실하게 북한 쪽으로 바꾸려는 결정이다. NIE는 공격 목적의 핵무기 사용에 6가지의 추진 동기가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한반도 현상 변경의 저변에 깔린 이해 △재래식 '힘의 균형'에 대한 확신 △완벽하게 입증된 전력화된 전략적 핵미사일의 성능 △지금 아니면 핵무기를 쓰지 못할 상황(Now or never)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미국과 동맹국들이 (추가 대응을)단념했다는 확신 등이다.

마지막으로 '방어 목적'은 북한이 핵무기를 강압 또는 공격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신뢰 구축 조치를 성실하게 추구하는 경우다. 순전한 억제력으로만 여기는 시나리오다. 가능성과 위협 수준이 모두 낮음(1)이다. △공격적 야망이 없거나 △억제력 자체로 만족 △체제 회복력에 대한 확신 △군축 대화 용의 △국제사회로의 통합 욕구 △경제적 기회 등 6가지 동기에서 비롯될 결정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