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의 세계읽기]아시아 순방 나선 트럼프의 '아드레날린'은 하이킥

아시아 순방의 첫날인 5일 일본 도쿄 인근의 요코다 미공군기지에서 미군 병사들과 악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11월8일(대선 1주년) 큰 축하파티를 할 생각이다. 당신들도 모두 함께 기념했으면 좋겠다.” 아시아 순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드레날린이 최고조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도쿄를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수행기자단을 찾아와 한바탕 너스레를 풀어놓았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생각의 구조(mindset)를 알려면 그의 장광설을 날것 그대로 듣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날 기자간담회의 주제는 ‘돈과 힘’이었다. 미국 증시의 호황과 늘어나는 일자리, 외국에 미제 무기를 팔고 불공정 무역을 바로잡아 생길 미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돈’이고, 국방예산 대폭 증액에 따른 강한 미군과 쫓겨가는 이슬람국가(ISIS), 북한문제 대응 등을 대표하는 것이 ‘힘’이다. 트럼프가 고희를 넘긴 나이(71세)에도 끊임없이 장광설을 내놓는 에너지의 원천도 ‘돈과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돈과 힘’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하고, 이를 위해 일하는 자신을 끊임 없이 강조하고, 반복하는 것이 트럼프 정치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는 ‘돈과 힘(富强)’과 주제는 같지만, 변주의 결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일본 도쿄 인근 요코다 공군기지에서 5일 병사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양복 상의 대신 공군점퍼를 걸쳤다. AP연합뉴스

■“나는 최고의 대통령. 돈에 관한 한 위대했다.”…자화자찬으로 일관한 기내 회견

트럼프는 사상 최고의 주식시장과 17년만에 가장 낮은 실업률, 급속히 재건되는 미군, 중동에서 사실상 패퇴한 이슬람국가(ISIS)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결코 가져보지 못한 최강의 숫자들을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대회를 마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권력기반 강화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엉뚱하게 자신의 업적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다. 그 공을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렸다. 트럼프는 “미국 증시가 저리 성공적인 것은 나 때문”이라면서 “나는 돈에 관한 한 위대했다. 내 일에 관해서도 위대했다. 나는 늘 잘해왔다.”고 자신했다. 트럼프는 이어 “생각해보라. (취임 이후 증시에서) 5.5조달러의 시장가치가 불었다. 또 이슬람국가와 의회승인을 방금 받은 국방예산을 보라”고 자화자찬했다. 트럼프가 말한 증시 호황은 지난 3일 다우존수산업평균지수와 대형주 중심의 S&P500,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등 뉴욕증시의 3대 지수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을 말한다. 트럼프는 “우리 시장이 저리 좋아지고, 우리 방위산업체들이 저리 잘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동맹국들에게 우리 장비(무기)를 사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부부가 5일 저녁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아키에 부부와 함께 도쿄 시내 긴자 우카이 테이 식당에서 비공식 만찬을 들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는 이어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상대로 예상외의 승리를 거둔 지난해 대선일) 11월8일이 거의 정확하게 1년이 된 것이 믿어지는가”라면서 “나는 (1주년을) 큰 축하파티를 열 생각이다. 여러분도 함께 축하하자”고 거듭 제안했다. 트럼프는 특히 “이슬람국가는 이제 아프리카나 다른 장소로 쫓겨가고 있다]라면서 “우리는 ISIS를 다루는 데 있어 지난 (오바마)정권의 8년 보다 더 성공적이었다”고 되풀이 강조했다. 수행기자들은 북한과 시진핑 주석, 순방의 목표 등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졌지만, 트럼프는 자기 자랑에 도취된 답을 내놓았다. 그는 12분 동안의 언론좌담을 마치면서 다시 “봐라. 나는 (취임 이후)매우 성공적인 대통령이었다. 숫자들을 봐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봐라. 일자리를 봐라. 작년 11월 8일 이후 150만개의 일자리가 생겼다”고 자랑했다. 오는 8일은 공교롭게 트럼프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연설을 하고 국립묘지에 헌화한 뒤 베이징을 향해 떠나는 날이다. 그가 축하파티를 어디서 할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25년 단위로 정리하는 세계관, 북한과 공정무역 

트럼프의 세계관은 ‘25년’을 단위로 정리된다. 그는 ‘아시아 순방중에 북한과 관련해 거친 말을 계속 내놓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중요 문제이지만 우리는 지난 25년 동안 온통 허약했다. 그래서 매우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매우 집중할 문제는 교역이다. 지난 25년 동안 세계의 이쪽(아시아)과 교역을 잘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는 공정하지만, 상호 호혜적인 교역을 논의할 것”이라고 반복했다. 

트럼프는 자화자찬 중간중간 북핵과 교역문제를 거론했다. 전체 대화의 극히 일부분이다. “순방의 큰 초점은 명백하게 북한이다. 하지만 매우 매우 큰 초점은 공정무역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목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 결정을 곧(very soon) 내릴 것”이라고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일 첫날인 5일 일본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 골프클럽에서 라운딩을 하고 있다. 트럼프 트위터 동영상

■최대 아이러니는 ‘진주만→도쿄’ 방문 코스 

5일 도쿄 인근 요코다 주일미군 공군기지에 도착한 트럼프는 병사들을 상대로 연설을 한 뒤 곧바로 골프가방을 챙기게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CC에서 라운딩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도쿄의 철판요리 집으로 옮겨 와규 스테이크로 비공식 만찬을 들었다. 트럼프는 아베 총리와의 비공식 만찬에서 “우리(미국)와 일본이 지금보다 더 가까웠던 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골프와 쇠고기 식사로 즐거운 장소와 트럼프가 바로 직전 공식일정을 소화한 장소가 아이러니라는 점이다. 

워싱턴을 떠나 하와이에서 1박2일을 보낸 트럼프는 금요일인 지난 3일(현지시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기습공격한 진주만을 찾았다. 미군 2403명이 죽고, 1178명이 다친 1941년 12월7일의 진주만 기습은 미국인들이 영원히 잊지 못하는 충격과 패배의 현장이다. 트럼프는 당시 일본군에 침몰됐던 애리조나호 함상 추념관을 찾아 흰색 화환을 놓았다. 트럼프는 애리조나 추념관에서 어떠한 공식 발언도 내놓지 않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방문한 태령양사령부 지휘관들에게 “이제 우리는 진주만을 짧게 방문할 것이다. 그것에 대해 읽고 말하고 듣고 공부했던 진주만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읽고, 듣고, 공부했다는, 진주만의 애리조나호 추념관을 찾은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와 함께 지난 3일 일본군의 기습공격이 이뤄졌던 하와이 진주만의 애리조나호 추념관에서 흰꽃을 바치고 있다. 트럼프 트위터 동영상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외국인이 역사를 동원해 무언가 가르치려는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 역사를 말하면 많은 미국인들은 경청하지만, 대부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기자가 접한 미국인 친구들의 충고였다. ‘역사로서의 과거’ 보다는 ‘결과로서의 현재’를 중요시 하는 것이 미국식 사고방식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트럼프의 진주만→도쿄 일정은 지독한 패러독스가 아닐 수없다. 한국 역사를 대입해보면, 조선 임금이 중국(청나라) 황제 앞에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는 남한산성 삼전도를 찾아 화환을 놓고 묵념한 뒤 곧바로 베이징으로 날아가 스테이크를 씹으며 “한국과 중국이 지금 보다 더 가까웠던 적은 없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정의 조합을 꿰뚫는 트럼프 정치의 메시지는 애국, 그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맹목적 애국인 것 같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060956001&code=970100#csidx3e3fcac2f0f7426a9d542ecdb2c7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