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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은 왜 포퓰리즘을 두려워하나

포퓰리즘 산책

by gino's 2017. 4. 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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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랑스 대선에 출마한 후보 11명. 윗열 오른쪽에서 두번째의 프랑수아 피용과 아랫열 왼쪽 두번째부터의 마린 르펜, 에마뉘엘 마크롱, 장 뤽 멜랑숑 등 4명이 주요후보이다. EPA연합뉴스

■“늑대가 온다” 유권자를 겁박하는 ‘선거판의 양치기들’ 
어차피 선거판에는 양치기들이 판을 친다. 서로 다른 후보가 당선되면 “국가가 위협에 빠진다”고 위협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내세운다. 프랑스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후보들마다 자신 만이 풍전등화에 처한 국가를 살릴 수 있다면서 다른 후보들을 위협의 원천으로 지목한다. 극우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48)은 무슬림 이민자들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프랑스적인 삶은 물론 프랑스 문명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며 위협하고 있다. 중도 ‘전진(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39)과 중도우파 ‘공화주의자들’의 프랑수아 피용(63)은 포퓰리즘 정권의 위험성과 경제파탄 가능성을 집중 부각한다. 마크롱은 “르펜이 당선되면 프랑스 문화의 다양성이 위협받는다”고도 경고한다. 극좌로 분류되는 좌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뤽 멜랑숑(65)은 “르펜과 마크롱, 피용 중 한명이 당선되면 (프랑스 민중이)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선거판에 뛰어든 후보나 운동원이 아니면서도 유독 포퓰리즘을 정조준해서 비판하고 있는 부류가 있다. 다름 아닌 국제 자본시장이다.

극우주의 성향의 주간지 미뉫의 4월12일자 표지. 멜랑숑의 사진과 함께 ‘ 웅변가, (장 마리)르펜이 후계자를 찾았다. 그 이름은 멜랑숑이다’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민족전선(FN)의 명예대표인 장 마리 르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역으로 멜랑숑에게 들씌운 격이다.

극우주의 성향의 주간지 미뉫의 4월12일자 표지. 멜랑숑의 사진과 함께 ‘ 웅변가, (장 마리)르펜이 후계자를 찾았다. 그 이름은 멜랑숑이다’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민족전선(FN)의 명예대표인 장 마리 르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역으로 멜랑숑에게 들씌운 격이다. 


■포퓰리즘의 위험성 경고하고 나선 자본시장의 이중성 
자본시장은 예민하다. 또 민첩하다. 조금이라도 호재의 가능성이 보이면 그 틈새에 돈을 밀어넣고 이자를 챙긴다. 물론 악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한껏 불안을 부추키는 한편으로 베팅(돈걸기)을 도모한다. 일견 합리적인 예측에 입각한 투자의 정석일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불안을 또 다른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시장의 악마성’이 엿보인다. 좌·우 포퓰리즘이 구질서를 흔드는 프랑스 대선을 보는 자본시장의 태도에도 돈냄새가 물씬 풍긴다. 

유럽 자본시장의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던 후보는 프랑수아 피용 후보(63)이었다. 가족 스캔들로 그가 주춤하자 이번엔 사회당 출신의 중도 마크롱(39)의 당선을 고대하고 있다. 둘 다 친 유럽통합론자들이기 때문이다. 르펜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줄곧 유지하는 동안에도 자본시장이 다소 여유가 있었던 것은 피용이나 마크롱이 르펜과 함께 결선에 나간다면 르펜의 당선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예상에 근거한다. 멜랑숑이 여론조사에서 피용과 3, 4위를 다투자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포퓰리즘 후보의 당선을 전제로 자본시장의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프랑스 주식과 채권은 물론 유로화의 급락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비용이 요동을 칠 것이다. 투자자들은 프랑스 국채를 서둘러 내다 팔 것이 분명하다. 이는 같은 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내 다른 국채에 연쇄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2011년 유럽 국가들의 국채위기 때 벌어졌던 일이다. 

■“고위험, 고배당(High risk, high return)” 대선판도 투자대상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은 선거 리스크를 가늠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잣대다. 지난 4월18일 프랑스와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 격차는 0.73%포인트였다. 그나마 다음날 0.69%포인트로 좁혀졌지만 지난 3월 프랑스 국채가 독일 국채 대비 0.57%포인트의 수익률을 더 기록했을 때 보다 여전히 악화됐다. 대선 리스크가 희박했던 지난해 9월에는 0.22%포인트에 불과했다. 시장의 우려는 이미 유로존 안에서 프랑스 경제 보다 맵집이 약한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등 ‘주변부경제(peripheral economies)’의 국가부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4월20일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이 4월20일 전한 프랑스와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 격차. 격차가 벌어질 수록 프랑스 국채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월 중도우파 프랑수아 피용의 스캔들이 커지자 마린 르펜의 득세를 우려해서 0.80% 가까이 치솟았다가 잠시 주춤하더니 좌파연대 장 뤽 멜랑숑이 막판 선전을 한 4월 이후 다시 벌어졌다.              블룸버그 통신 홈페이지                         
블룸버그 통신이 4월20일 전한 프랑스와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의 수익률 격차. 격차가 벌어질 수록 프랑스 국채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월 중도우파 프랑수아 피용의 스캔들이 커지자 마린 르펜의 득세를 우려해서 0.80% 가까이 치솟았다가 잠시 주춤하더니 좌파연대 장 뤽 멜랑숑이 막판 선전을 한 4월 이후 다시 벌어졌다. 블룸버그 통신 홈페이지


르펜·마크롱·멜랑숑·피용 등 4마리의 말이 달리는 경마는 더 복잡한 경우의 수를 낳는다. 멜랑숑의 급부상이 불확실성을 짙게 하면서 통계학적 변수를 키우기 때문이다. 멜랑숑은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르펜과 달리, 유로의 존속을 인정하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공공부채 규모를 제한하고 있는 ‘안정과 성장 협약’의 총체적인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시장은 “르펜이나 멜랑숑의 당선은 프랑스와 유럽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음을 올린다. 둘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유로존 경제의 기존 질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퓰리즘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이 적다는 전망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이들이 당선되더라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처럼 어느 정도 현실에 적응하는 수순을 밟게될 것이 뻔하다. 기성정치권의 중도 좌우파가 장악하고 있는 프랑스 상·하원도 브레이크로 작동할 것이다. 멜랑숑의 경제자문역인 자크 제네로의 예상처럼 멜랑숑과 르펜이 결선투표에 진출하면 시장은 과잉반응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고, 그 걱정을 수치화해서 투자대상을 옮겨다니는 것은 자본시장의 태생적 특성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선거가 예상대로 유럽통합주의자의 승리로 끝난다면 이러한 수치는 곧바로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 결과에 따라 벌거나 잃는 베팅의 결과가 배당된다. ‘카지노 자본주의’에 선거는 꽤 쓸만한 투자대상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선 1차투표를 사흘 앞둔 4월20일 2012년 사르셀의 한 유대인 잡화점을 수류탄으로 공격했다가 체포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파리 시내 법원에서 재판을 앞두고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다. 파리/EPA연합뉴스

프랑스 대선 1차투표를 사흘 앞둔 4월20일 2012년 사르셀의 한 유대인 잡화점을 수류탄으로 공격했다가 체포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파리 시내 법원에서 재판을 앞두고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다. 파리/EPA연합뉴스


■자본의 결론은 “더 일하고, 덜 받아라” 

최대 아이러니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국제 자본시장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른바 주류언론들이 프랑스에서 좌우 포퓰리즘이 위세를 떨치게 된 배경을 현지 르포와 인터뷰, 분석기사 등으로 다른 어떤 매체보다 충실히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론은 변화를 생래적으로 거부하고, ‘지금 이대로’이다. 특히 “덜 일해도 봉급을 더주겠다”는 멜랑숑의 공약을 놓고 존 비노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는 “그렇지 않아도 기진맥진한 프랑스 경제를 혼수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노동시간을 줄이되 최저임금을 높이겠다는 멜랑숑을 악마화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우려를 퍼뜨린다. 자본시장이 강조하는 ‘지금 이대로’는 현상유지가 아니다. “(노동자들이)더 일하고 덜 받으면서 언제든지 구조조정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노동시장의 탄력성’이나 ‘노동시장 개혁’ 등의 전문용어로 민낯을 가렸을 뿐이다. 세계화가 본격화한 1980년대 이후 모범정답이기도 하다. 자본시장이 중도 마크롱과 중도우파 피용의 대선 승리를 바라는 이유는 자본이 원하는 개혁을 수행할 모범생들이기 때문이다.


좌우 포퓰리즘이 기세를 떨치게 된 배경을 이해하면서도 ‘지금 이대로’를 강조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노동개혁을 필두로 성장주의 경제정책을 향후 5년간 더 밀고 나간다면 오히려 포퓰리즘의 바람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마크롱의 중도 노선이 독일 처럼 신자유주의 개혁에 성공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소호흡기를 끼고 체제를 연장할 가능성이 더 짙다. 1990대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개혁이 결실을 맺고 있는 독일에도 포퓰리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마크롱과 피용은 세계화와 유럽통합의 희생자들을 부양하기 위한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지금 이대로’의 선을 크게 넘지 못한다. 포퓰리즘의 발흥은 이미 세계화의 톱니바퀴 속에 빨려들어간 각국 사회가 앓고 있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각각의 국가 차원에서 출구를 찾기 전까지는 세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211020011&code=970205#csidx536878d66ec35c8b5e87ba527a809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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