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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칼럼/한반도 칼럼

by gino's 2015. 1. 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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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 무덤에 침을 뱉을 이완용이 서울 옥인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1926년 2월11일이다. 매국노가 죽었으면 춤을 춰도 시원치 않았을 텐데 많은 이들이 슬퍼했다고 한다. 그중 이 왕가의 후손들도 끼어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역사학자 김윤희가 쓴 <이완용 평전>을 보면 을사5적의 수괴쯤으로 꼽히는 이완용은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됐었을지언정 자신의 ‘조국’에 투철했다. 그의 조국이 순국선열의 조국과 달랐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조국과 달랐을 뿐이다. 왕조시대의 인간이었던 그의 조국은 고종과 이 왕가였다. 태국 군부에게 태국 국민이 아닌, 왕실이 조국인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을사늑약에 단 한마디 명확한 반대의견을 표하지 않은 채 ‘모름지기 모양 좋은 협상’만 걸기대했던 허약하고 교활한 고종의 조국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자신의 나라로 보았지, 백성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완용은 이 왕가에 대해 훨씬 박한 대우를 하려는 식민당국에 맞서 그 후손들의 지위와 생활수준을 지키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왕가의 후손들이 그의 죽음을 애달파한 이유다. 또 그들에게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은 죗값을 고종을 대신해 치러온 은인이 아니었던가.

한동안 잊었던 이완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새삼 되새길 계기가 지난해 두번 있었다. 지식인 이완용이 댓바람에 친일파가 된 것은 아니었다. 두가지 논리로 무장했다. 그 첫번째는 을사늑약의 반대자들을 두고 “가령 저들처럼 충성스럽고 의로운 자들이 나라 안에 있었다면 쟁집(爭執)했어야 하고, 쟁집해도 안되면 들고 일어났어야 하고, 들고 일어나도 안 되면 죽었어야 했다”면서 반대론자들의 무행동을 비판했다. 나아가 “국가로서 독립할 실력이 없이 독립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른바 자강론 또는 준비론을 사회에 침윤시켰다.

그 준비론의 세례를 듬뿍 받은 윤치호의 일기가 총리에 지명됐던 문창극씨에 의해 되살아났다. 이완용이 친미파들의 거점인 ‘정동파’의 핵심이었으며, 주미공사관 참찬관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에 기대어 준비를 하자는 구한말의 준비론은, 전시작전통제권 무기한 연기 결정 과정에서 모자를 바꿔 썼다. 이번엔 미국에 기대어 준비를 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고, 기어코 승했다. 그들에게 조국은 늘 일본이나 미국의 품 안에서나 구현을 기대할 수 있는, ‘미생’에 지나지 않는다.

오후 6시 정각 서울시청 앞 애국가가 힘차게 울려퍼지며 하기식이 거행되자 길을 가던 시민과 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영화 <국제시장>에서 산업화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게 조국은 두려움의 원천이었다. 자격이 부족한 덕수와 덕구가 파독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면접시험 도중 생뚱맞게 부른 애국가 덕이었다. ‘애국심 투철’이라는 이유로 뽑혔다. 영화다운 설정이다. 하지만 그 당시 국가는 실제로 부부싸움 도중에라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야만 하는 무서운 존재였다. 그렇지 않다면 국제시장 상인 부인이 전쟁터로 돈을 벌러 가겠다는 남편을 말리다가 주위의 시선을 뿌리치지 못하고 의례를 하는, 초현실주의적 풍경이 벌어졌겠는가.

주인공 덕수가 눈 내리는 흥남부두에서 부친 및 막순이와 헤어지고, 지하 1000m의 막장에서 동료 78명을 잃어야 했을 때 국가는 곁에 없었다. 그들이 벌어온 외화를 숫자로 계산하고 산업화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존재가 있었을 뿐이다. 덕수의 조국은 국가가 아니었다. 가족이었다.

이를 두고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면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국가를 지목하는 분이 있는 것을 보면 광복 70주년이 되도록 우리는 여전히 제대로 된 조국에 대한 정의조차 갖추지 못한 것 같다. 남도, 북도 모두 조국이라고 믿게 된, 여행을 좋아하는 한 50대 재미동포 아줌마를 강제추방하는 것을 보면 분단 70주년을 극복하지 못하는 처지가 처량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조국이 있다. 하지만 사람을 중심에 세우지 않는 조국에 대해서는 마땅히 쟁집하고, 그래도 안 되면 들고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일제 잔재가 말끔히 씻긴 광복 100주년을 맞을 자격이 있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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