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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반도 칼럼

아베, '적'이지만 멋지다

by gino's 2014. 8. 13.

[한반도칼럼]아베의 대북정책 성적표

 

 

청진회(淸津會). 일제시대 청진제철소(현 김책제철소)와 함흥비료공장 등에는 많은 일본인 기술자들이 근무했었다고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청진 인근에 뼈를 묻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만주지역의 일인들을 일단 청진으로 데려와 일본으로 실어나르다가 여의치 않아 발이 묶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래저래 청진 또는 함흥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거나, 그 주변에 묻힌 일인들이 꽤 된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가려 있었지만, 청진 일원의 조상묘지를 둘러보고 싶어하는 일인들의 희원 역시 북·일 간의 중요한 인도적 사안이었다.

 


태평양전쟁 기간에 북한 지역에서 숨진 일인은 3만4600명이고, 북에 남겨진 유골은 2만1600여주가 된다고 한다. 유족들로서는 후지산 자락에 북한에 묻힌 조상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을 세워놓고 하냥 그리워 해온 대상들이다. 사적 한(恨)일지언정 해결은 공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2012년 봄 북한이 일인들의 성묘를 허락할 뜻을 비치면서 이들의 묵은 한을 풀 계기가 찾아왔다. 같은 해 8월 중국 베이징에서 10년 만에 북·일 적십자회담이 열리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자문역인 이지마 아사오 내각관방 참여(사진)가 몇차례 북한을 들락거리더니 꿈이 영글었다. 지난해 말까지만 청진·함흥·평양 등지에 조상을 묻은 일인들의 성묘가 6~7차례 성사됐다. 그 핵심에 청진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고 한다.

 

 

 


두번째 일본 총리직을 수행 중인 아베는 “재임 중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의를 여러차례 내보였다. 말만 요란한 게 아니었다. 지난 5월 말 북한과 일인 납치자 및 행불자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스톡홀름 합의를 이끌어냈다. 북한 탓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대신 제재 일부 해제를 주고받았다. 청진회의 꿈이었던 북한 내 일인 유골 및 묘지에 대한 조사도 포함시켰다. 일인들의 자유로운 성묘 및 일본으로의 이장 문제까지 해결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 실마리는 확실하게 잡았다.

근년 들어 중국과의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이 불거지면서 주목도가 약간 떨어졌다지만, 납치자 문제는 여전히 일본 내 반향이 큰 이슈다. 일본 지도자 입장에서 해결에 매력을 느낄 만한 정치적 과제인 것이다. 여기에 이미 백골이 진토되었을 망자들의 유골과 성묘권까지 챙기려는 아베의 모습은 가상하다 못해 부러울 정도다. 적어도 분단 한반도에서는 지난 60여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정치적 성과다.

남북 간에는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 수만, 수십만 명의 한이 담긴 인도적인 사안들이 널려 있다. 아베와 아베의 일본을 사갈시하기에 앞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아베는 고작 10명 안팎의 납치자 문제 해결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 김일성부터 김정은까지, 또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그 누가 한 맺힌 인도적 사안 해결에 팔 걷고 나서거나, 해결에 근접한 적이 있었던가. 이 모든 것을 아베는 재집권 2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차근차근 풀어가고 있다.

물론 아베의 대북외교를 마냥 환영하기는 어렵다. 태평양전쟁의 전범국가이면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난징대학살이나 위안부 문제 등 주변국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한 일본은 결코 정상국가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베 역시 퇴행적 역사의식을 걷어내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균형 잡힌 지도자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국민의 인도적 숙원을 풀고 있다는 점에 국한해 본다면 아베의 대북 외교는 ‘적’이지만 멋지다.

박근혜 정부는 어제 북한에 대해 19일 이후 제2차 고위급 접촉을 제의했다. 이산가족 상봉과 다음달 인천 아시안게임에서의 북측 응원단 참석 문제가 탁자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접촉 시점이 묘하다. 교황 방한 일정(14~18일)을 피하면서도 한·미 양국군의 을지프리덤가디언 군사연습(18~28일)과 겹칠 가능성이 높다. 제안의 진정성은 교황이 떠난 뒤에나 밝혀질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정부가 이산상봉 제안을 또다시 1회용 국면전환카드로 활용한다면 인도적 사안에 관한 한 아베만도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김진호 선임기자>


 

입력 : 2014-08-11 20: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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