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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책으로 읽는 세계, 한반도

by gino's 2013. 7. 15.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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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국가야 망하든 말든, 미국 우파는 집권 후 ‘정치장사’로 163%의 고수익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토마스 프랭크 지음·구세희 이정민 옮김 | 어마마마 | 415쪽 | 1만9000원

정치는 사적 욕망의 공적 구현이라고 하지만 공적 욕망의 사적 구현이라는 역의 명제도 성립된다. 돈으로 환산되는 욕망이라면 더더욱 승부를 걸어볼 만한 게임이다. 공공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틈입해 공적 욕망의 한쪽에서 사적 욕망을 환금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사적 욕망은 규제 철폐·감세·민영화라는 공적 명분의 옷을 입고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한다. 까짓 정부나 국가 따위는 쫄딱 망해도 상관없다. 망하면 재정적자 보전을 명분으로 규제를 더욱 없애고, 민영화를 추진할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우파로서는 꽃놀이패를 쥐게 되는 셈이다. 수익률 163.536%의 남는 비즈니스. 미국 언론인 토마스 프랭크가 전하는 미국 보수우파의 정치장사 수익률이다.

이 책은 저자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등의 연속선상에서 미국 우파의 본질을 파헤친 결과물이다. 저자는 워싱턴 인근의 버지니아 라우든 카운티를 미국 우파 정치비즈니스의 실험실로 꼽는다. 2000년대 들어 교통문제와 부족한 학교, 세금 인상 등의 문제가 쌓여가자 일반 주민들은 감사위원회를 장악해 용도구역법의 건축 규제조항을 강화했다. 부동산 개발업자와 대지주들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테러리즘”이라면서 반발했다. 이들은 감사위원회를 상대로 잇달아 소송을 제기하는 동시에 공화당 라우딘 지부에 막대한 기부금을 희사하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3년 뒤 용도구역법을 개정한 것은 물론 시정을 부자들에게 넘긴다. 그들은 로비자금의 몇 배를 돌려받았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라우든 카운티의 변모는 미국의 변화를 축약해 보여준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지리멸렬해졌던 우파가 어떻게 변종 돌연변이로 되돌아와 미국을 접수했을까. 왜 보수우파가 집권하면 어김없이 재정적자가 늘어날까. 늙은 대통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 1984년 재선에서 대학생 표의 80%를 쓸어가고, 지금도 베이비붐 세대의 60%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유방임주의(lassez-faire) 우파가 된 건 어떤 이유일까. 저자는 우파의 권토중래는 종래의 '거만한 정통 우파'에서 '겉도는 아웃사이더'로 브랜드를 바꾸면서 가능했다고 진단한다. 조지 W 부시가 스스로를 ‘워싱턴의 반체제 인사’로 여겼듯이 우파는 자신들이 가장 경멸했던 좌파의 이미지와 전투적 행동양식을 차용함으로써 좌파를 이길 수 있었다. 적의 칼로 적을 치는 격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2006년 초대형 부패로 몰락한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이다. 히피문화와 반전운동이 휩쓸고 지나간 미국 대학가에는 1980년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보수우파의 홍위병 역할을 도맡은 신인류가 등장한다. 아브라모프가 이끄는 ‘레이건 유스’는 1981년 공화당 학생회를 장악한다.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 당시 이란에 대한 핵 공격을 촉구하며 ‘즉각 선제공격을!’이라는 구호가 상아탑을 도배한다. 청년 아브라모프는 한 인터뷰에서 “(반전세대가 장악했던) 캠퍼스의 급진파는 이제 우리”라고 선언했다.

과거 보수주의가 물리치고자 했던 것들이 이제 보수주의를 구성하게 됐다. 타도 대상이던 큰 정부와 진보주의, 워싱턴을 접수한 것이다. 그토록 비난했던 행정권과 사법권을 틀어쥐고, 그토록 혐오했던 큰 정부를 ‘그들의 정부’로 바꿔놓는다. 그 핵심은 냉소, 특히 정부에 대한 냉소였다. 냉소는 재정적자를 야기하는 정부의 비효율에 집중된다. 세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복지 예산에 낭비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진보정부를 무너뜨린다. 미국 우파의 모순은 그토록 비효율적인 공공예산을 혐오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집권 기간 동안 재정적자를 천문학적으로 늘린다. 미국 우파가 냉소를 살포하면서 온갖 음모론으로 역사를 새롭게 정의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떤 정부도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퍼뜨려 자신들의 부패를 정당화한다는 점 역시 미국 우파만의 습성은 아닌 듯싶다.

우파는 보통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냉소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정권을 잡으면 ‘기업 내 정부 영역’을 축소하고 ‘정부 내 기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부를 챙긴다. 규제철폐·감세·민영화는 세계 어디에서나 보수우파가 외치는 슬로건이자 무기이다. 보수 정치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사적 이익 사이의 체계적 연관성은 견고하다. 포브스는 ‘투자 대비 엄청난 수익을 원한다구요?’라는 제목의 2006년 1월 기사를 통해 로비 투자의 수익률을 163.536%로 산출했다. 물론 정치가 돈이 되는 장사라는 그들만의 복음이다.

그렇다면 보수주의가 몰락시킨 미국을 소생시키려면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될까. 저자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한다. 레이건 이전의 중산층 국가로 되돌아가려면 그동안 우파가 망쳐놓은 모든 제도들을 복원하는 연방기관의 전반적인 혁신이 더욱 중요하다. 기실 레이건이 뚫어놓은 세계화라는 신작로를 확장한 것은 빌 클린턴이었다. 우파 냉소주의의 본질을 깨닫고 그들이 세상에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정치인들에게만 맡길 수 없는 일이다. 좌파적 사회운동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돈더미 밑에서 질식할 수밖에 없다. “워싱턴(정치)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당신들의 기회는 이제 끝났다”고 단호하게 말해주라는 충고다.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입력 : 2013-07-05 19:24:10수정 : 2013-07-05 19: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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