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1, 조현 제42대 장관 취임사
사랑하는 외교부 동료 여러분, 그리고 재외 공관원과 가족 여러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위대한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탄생시킨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한달여 지났습니다.
저로서는 40년 넘게 몸 담았던 외교부에 3년 만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대전환을 겪고 있는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 외교안보 환경이 더욱 엄중해지는 시기에 외교장관직을 맡게 되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국익을 중심에 두고 합리성, 중도와 효율을 바탕으로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외교를 추진해야 합니다. 국회의 초당적 지지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외교사안이 국내정치에 이용되었고, 실용과 국익이 주도해야 할 외교영역에 이분법적 접근도 많았습니다. 외국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도 있었습니다.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지는데도 끝까지 올인하였습니다.
외교부가 MBC를 제소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외교부를 대표하여 MBC에 사과드립니다. 급기야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직 대통령이 민주주의 전복을 시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에서 그간 외교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데에 외교부를 대표하여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직문화와 업무관행을 확실히 바꾸어 나가겠습니다.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찾되, 앞으로 지난 정부 탓은 하지 않겠습니다.
한편, 불가피하게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던 직원들에게는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외교적 뒷수습을 하느라 애쓰셨습니다. 또한, 지난 몇 년간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업무에 매진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이제 우리는 정상으로의 복귀를 넘어 하루 속히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전환의 위기를 국익 극대화의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급변하는 국제정치 현실을 냉정히 판단하고,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구현해야 합니다.
먼저, 지정학적 불안정과 긴장이 심화되는 이 시기에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이를 위해 한미간 긴밀한 공조하에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과 대화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단계적-실용적 접근법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에 실질적 진전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주요 주변국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외교다변화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심화하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우리 안보와 평화, 번영을 위한 전략적 지평 확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닙니다.
또한, 당면한 경제안보-통상 위기를 극복할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안보-경제-과학기술의 3대 축이 연동된 새로운 국제정치경제 질서에서는 우리의 업무체계와 인식의 틀에 깊이 자리잡은 정무와 경제간 칸막이를 허물어야 합니다.
아울러, 외교부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민생에 기여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합니다. 재외국민에 대해 보다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하고 편익을 증진하면서 동포사회와 연대를 강화하는 과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총체적인 외교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외교역량은 일차적으로 여러분 개개인으로부터 나옵니다. 따라서 저는 직원 모두가 전문성과 역량을 키우고 조직문화를 개선할 수 있도록 외교체제의 혁신에 특별히 더 신경을 쓸 것입니다.
갓 입부한 직원부터 장기 해외근무자까지 모두에게 교육-훈련의 기회를 늘리겠습니다. 직급별, 기수별, 채용경로별 경계에 갇히지 않고, 인재들이 적재적소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하겠습니다. 직급이나 직위와 무관하게 본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도록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장려하겠습니다.
직원들이 담당업무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임하되, 혹시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책임은 위쪽에 더 많이 두도록 하겠습니다.
본부와 공관이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공관장에게는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을 주고자 합니다. 재외공관장들은 양국관계의 모든 영역에서 통합적 조정역할을 해야 합니다.
과거 제가 차관 시절에도 이러한 외교체제의 혁신을 적극 추진하였습니다. 당시의 경험을 지렛대 삼아서 이번에는 보다 확실히 해 나가겠습니다.
외교부 밖에서도 우리의 외교역량을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통합된 지지는 우리 외교의 큰 힘이자 국력 자체입니다.(the wisdom of crowds) 저는 인사청문회에서 향후 외교정책을 구상하고 추진하면서 민의의 전당인 국회와 긴밀히 소통하고 협의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또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전문가들로부터 지혜를 구하고 지지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국내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만나 경청하고 협의하는 노력을 배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동료 여러분, 저는 지난 3년간 청년층을 상대로 강의와 강연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제 강의를 들었던 분도 있습니다. 당시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언급했던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격식보다는 실질적 내용을 우선시 해 주십시오. (substance over protocol) 꼭 필요하지 않은 문서, 절차, 격식은 줄입시다. 여러분 각자가 우리나라의 귀중한 외교자산입니다. 시간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거시적이고 전략적 사고를 기르는데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둘째, 독립적인 사고의 주체로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 밝혀 주십시오. 상사의 입장이나 지시를 무조건 따르고 분위기를 고려하여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것도 하나의 아첨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과학적 지식을 가까이하고, 자기의 이성적 판단을 믿으십시오. 21세기 첨단 과학기술 강국의 외교관에게는
데이터와 정보에 기초한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태도가 필수입니다. 여러분 모두 합리성에 기반한 의사결정 습관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외교부 동료 여러분, 새 정부는 초유의 상황에서 출범하였고, 외교부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기대는 매우 큽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여러분 모두 사명감과 주인 의식을 갖고 업무를 추진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 또한 이 모든 과정에 함께 하겠습니다. 앞장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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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제41대 장관 이임사(0721)
사랑하는 외교부 동료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과 작별해야 할 시간입니다. '헤어질 결심'이 필요했던 것도 아닌데 두달 가까운 오랜 시간 동안 장관 아닌 장관으로 남아 있게 되어 참 민망했습니다. 지혜롭게 잘 보좌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로 중도하차(中途下車) 하게 된 미완(未完)의 정부 외교장관으로서 유종(有終)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이 크지만, 여러분과 함께 한 지난 1년 반의 시간은 한껏 고양(高揚)된 국가적 위상을 온몸으로 느끼며 심신(心身)의 고달픔을 잊고 일에 몰두한 영광과 보람의 시간이었습니다.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계엄-탄핵 정국과 그 이후의 시간도 그 점에 있어서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민주적 복원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와 기대에 변함이 없음을 외교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며 자신감을 회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권한대행체제 하의 비상시국이었고 정상외교가 작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교수장으로서 우리 외교를 책임지며 이끌어야 했던 시기였기에 위기 관리자로서의 책임과 보람은 오히려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한미동맹을 흔들림없이 지키고, 일본,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뮌헨안보회의, G20-나토 외교장관회의 등 다자무대에서 훼손된 국가이미지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일본, 폴란드, 프랑스, 베트남 등 인태지역과 유럽의 전략적 협력국들을 차례로 방문하여 정상외교의 빈 공간을 메울 수 있었던 것도 큰 보람이었습니다. 4월초에는 시리아를 전격 방문하여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작년 2월 쿠바와의 수교에 이어 재임기간 중 우리외교의 오랜 숙원과제였던 유엔 전회원국과의 수교완결이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우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운명처럼 다가온 위기의 순간과 이후 국무위원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무거운 짐이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달으며 고군분투(孤軍奮鬪)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절대고독(絶對孤獨)의 의미를 절감해야만 했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제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여러분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응원의 메시지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재외공관의 동료와 외교부 출입기자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마음 속 깊이 감사하고 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동료 여러분, 우리 삶 속에서 위기의 순간은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비수처럼 예고없이 불쑥 찾아옵니다. 어느(一) 날 저녁(夕) 비수(匕)처럼 날아오는 것이 죽음이라는 죽을 사(死)자의 파자(破字) 의미가 말해 주듯이 말입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를 대비하는 공직자의 마음과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늘 무거운 짐을 벗는 제 마음이 마냥 홀가분하지만은 않은 것은 지금 우리가 목도(目睹)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직면하게 될 대외 환경이 너무 엄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직무에 임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기회로 바뀔 수도 있고 나라의 안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마시고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길 바랍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지정학적 대격변기 속에서 우리 외교가 국가안보를 지키고 번영의 토대를 굳건히 다져나가기 위해서는 눈앞의 위험과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며 긴 호흡으로 더 크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국제질서의 균형추가 흔들리고 기존질서의 균열이 커질수록 우리와 같은 중견국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커진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국제질서는 더 이상 강대국들의 노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다극체제로 이미 전환되어 가고 있습니다.
강대국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전략적 운신의 폭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확고한 원칙을 토대로 정책의 예측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여 나가야 합니다. 실용(實用)은 원칙(原則)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섰을 때 비로소 신뢰와 설득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이 막중한 과제들을 여러분들에게 맡기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긴 하지만, 여러분들의 훌륭한 선배이자 저의 가까운 동료인 조현 신임 장관님의 지혜와 경륜을 믿기에 떠나는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조현 장관님의 리더십 아래 외교부 모든 식구가 하나가 되어 밀려오는 높고 험한 파고를 슬기롭고 담대하게 헤쳐 나가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저는 이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뒤에서 조용히 그러나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가끔씩 소식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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