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전단과 오물풍선,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벼랑 끝으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가 숨 고르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12일 현재 탈북자단체의 추가 전단 살포가 없었고, 8~9일 또다시 오물풍선 띄운 북한 역시 10일 새벽부터 잠잠한 상태. 합동참모본부는 정부가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를 결정한 4일 대북 확성기를 틀었지만, 2시간만 방송했다. 상황 악화의 3축이 모두 잠잠해짐에 따라 모처럼 찾아온 정적이다. 북·러 정상회담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태풍 전의 정적을 방불케 한다.
대북 전단-오물풍선-확성기 '긴장 고조 3축' 잠잠
정부는 9·19합의 효력정지 결정 하루 전인 3일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국에 사전 설명했지만, 나라마다 반응의 결이 달랐다. 한반도 위기 고조에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지만, 미국은 북·러 군사협력을, 러시아는 미국의 정책을 각각 위협의 원천으로 지목했다. 이달 중순 첫 한·중 외교·안보 대화를 앞둔 중국은 당사국들의 자제를 촉구하는 데 그쳤다.
무엇보다 미·러 간 무한 대치 구도가 바뀌지 않고 있다. 남북 간 현재의 정적이 지속적인 안정으로 이어질지, 또 다른 위기 국면을 앞두고 태풍 전의 정적이 될지 주목된다. 지난 4일 긴장 고조의 정점을 찍었던 상황을 돌아보고, 내다볼 시점이다.
연초부터 공격적인 언어로 남북 관계를 자극했던 북한의 김여정 당중앙위 부부장은 9일 담화에서 다소 차분한 말투를 유지했다. 그는 "한국이 국경 너머 대북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병행한다면 우리의 '새로운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이 더 이상 대결 위기를 불러오는 위험한 짓을 당장 중지하고 자숙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라면서 다소 점잖은 어투를 유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북한이 당분간 안정적인 국면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내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작년엔 이틀 전 공식 발표
이와 관련, 평양 김일성 광장에 대형 구조물이 설치되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12일 보도가 주목된다.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고위급 인사의 방북을 앞두고 김일성 광장에 구조물을 설치했던 관행으로 미루어 내놓은 관측이다. 같은 날 일본 NHK 방송은 방북이 다음 주 초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이어 베트남을 방문한다. 러시아 언론 베스도모스티는 10일 푸틴이 6월 중 북한과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발표만 남긴 것으로 보인다. 2000년 방북 이후 24년만이다.
작년 9·13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에서 열렸던 북·러 정상회담의 경우 이틀 전 "수일 내"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발표됐다. 작년과 다른 점은 미국 쪽이 잠잠하다는 것. 뉴욕타임스는 한·미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정상회담 9일 전(9·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러 정상회담을 보도했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보도를 신호탄으로 북·러 군사협력을 기정사실화 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까지 중앙아시아 3국 순방을 할 예정. 푸틴이 다음주 방북한다면 마지막 방문국인 우즈베키스탄에서 관련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정부가 지난 1월 8일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이미 전면 효력정지를 선언했던 9·19 남북군사합의를 공식 폐기한 것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강한 우려를 내놓았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의 9·19 합의 파기 및 군사분계선 인근의 육·해·공 훈련 재개 방침에 대해 "최근 몇 달 동안 반도에서 긴장이 계속되고 당사국 간에 적대성과 대치가 증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라면서 각 측의 자제를 당부했다. 대북 전단이나 오물풍선, 대북 확성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려와 함께 신원식 국방장관을 겨냥해 "근거 없는 러·북 군사협력 주장"을 강하게 비난했다.
"신원식의 근거 없는 루쏘포비아 발언"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7일 브리핑에서 한반도 상황 악화와 관련해 A4 2쪽 분량의 입장문을 통해 "한국의 움직임은 긴장과 위험한 사건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라면서 미국에 휘둘리지 말고 '전략적 독립성'을 갖는 게 좋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그는 특히 한미가 오는 8월 을지 '자유의 방패' 연합연습에서 예정된 대북 핵무기 공격 훈련의 위험을 집중 부각했다. 또 한미일 국방장관이 2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합의한 사상 첫 3국 육·해·공·가상공간 통합연습 '자유의 모서리(Freedom Edge)'를 직격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이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전략적 통제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한미일은 주로 북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제기하는 위협에 맞서기 위한 연습이라고 주장한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특히 신 장관이 지난 1일 샹그릴라 회의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를 위반함으로써 국제사회를 배반하고 북한 무기를 제공받고 있다"고 말한 것을 두고 '러시아 혐오(Russophobic) 발언'이라면서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 신 장관이 러·북 군사기술 협력이 한반도 긴장을 악화시킨다고 한 말에 대해서도 "늘 그렇듯이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자하로바는 "신원식의 발언들은 한국 정부가 양자 간 접촉에서 최소 한 번 이상 공언한바, '대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실용적 접근을 하고 있다'는 말의 신빙성을 의심케 한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최근 전개되는 일들을 뒷짐 지고 바라만 볼 수 없다"라면서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위협에 대해 필요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계속되는 남북한, 미-러 무한 대치
미국은 상황 악화의 원인을 북한과 러시아에 돌렸다. 미국 국무부는 10일 워싱턴에서 한국, 일본 특파원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갖고 상황 악화의 원인을 북한에만 돌렸다.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긴장을 완화할 것과, 분쟁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중단할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탈북자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서도 "우리는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정책적으로 옹호한다"면서 "북한 주민들이 북한 체제가 통제하지 않는 독립적인 정보에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사실상 지지를 표명했다.
국무부의 관심은 조만간 열릴 북·러 정상회담에 집중됐다. 북·러 군사협력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서 러시아의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준수를 거듭 촉구했다.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위협의 원천으로 러시아가 미국의 동맹정치를 지목한 것과 달리 미국은 러시아와 북한을 꼽았다. 남북한과 미‧러가 모두 무한 대치하는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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