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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통일부 장관에게 봉급을 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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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가 무슨 뜻인가) 우선 윤석열 대통령이 추구해 온 가치외교의 금자탑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미국과 일본이 최초로 지지를 표명했다. 국제 정치질서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주어진 국제질서 속에서 평화 통일을 추진해 왔지만, 단순히 국제질서의 소비자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함께 국제정치 질서의 생산자가 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세번째로 한미일의 강력한 협조체제가 형성됐다. 1951년 미일 동맹, 1953년 한미동맹 형성 이후 70년의 장기간 평화가 왔다. 캠프 데이비드는 이걸 넘어서 한미일이 강력한 협조체제로 100년의 평화로 가는 중요한 계기였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1815 비엔나 회의서 유럽의 협조체제가 1914년까지 100년의 평화 가져왔다. 그 과정에, 그 핵심에 한반도 통일이 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길 포시즌스 호텔서 4대 연구원장과의 좌담회에 앞서 연설을 하고 잇다. 2024.2.5. 통일부 UNITV 캡처

군사협력이 가치외교라는 억지

이 주장에 따르면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는 가치외교에 금자탑이다.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3국이 주로 군사협조를 강화키로 한 회담이 어떻게 가치외교로 연결되는 건지 묘연하다. 화자는 그런데 그 금자탑이 캠프 데이비드 회의였다고 우긴다. 미일이 그 자리에서 사상 최초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는 말도 견강부회다. 그 말이 성립되려면, 대한민국은 수십 년 동안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하지 않는 나라와 동맹이었다는 말이다.

'백미'는 마지막이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이 강력한 협조체제를 다짐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게 한국전쟁 이후 70년의 평화를 100년의 평화로 연결시키는 중요한 계기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그 과정과 그 핵심에 '통일 한반도'가 있다면, 향후 30년 안에 통일이 된다는 건대 그러면 미일이 평화 통일을 시켜준다는 건가?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바탕 늘어놓은 장본인은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길 포시즌스호텔에서 연 '통일부 장관 · 4대 연구원장 신년 특별좌담회' 제3세션에서 누군가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사회자는 질문자를 밝히지 않았다) 지난 세기 고위 공무원들이 독재자에게 맹종하던 시절에 보던 '짬짜미 행사'를 연상시켰다.

작년 8.18 캠프 데이비드 회의 공동성명이 가장 강조한 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었다. "한미일 협력은 (단지 우리 국민들 만을 위해 구축된 파트너십이 아닌) 인도-태평양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못박은 이유다. 아세안과 태평양 도서국, 대만해협, 남중국해, 우크라이나 등 만방의 평화와 안전을 걱정한 뒤에나 한반도를 배치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공약을 재확인하고 △핵, 미사일 프로그램 포기 촉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탄도미사일 발사,재래식 군사행동 강력 규탄 △불법 사이버 활동에 우려 표명 △북한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 재개 △북한 내 인권 증진 △납북자, 억류자,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 즉각 해결 등을 나열한 단락 끝에 나온 한 구절이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담대한 구상의 목표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 이 구절에 꽂힌 건 자유다. 그런데 나가도 너무 나갔다.

대북, 대국민 심리전

'100년'을 강조하기 위해 한미일 합의를 두고 1815년 빈 회의 이후 1차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100년의 평화를 가져온 유럽 국가들의 협조체제에 비유했다. 회의 결과 문서 중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은 “한미일 공약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조약에서 비롯된 공약을 대체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 "국제법 또는 국내법 하에서 권리 또는 의무를 창설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는다"라고도 명시했다. 그런데 어떻게 '빈 체제'와 같은 반열에 놓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국제정치학 박사'의 해석이다.

이날 김 장관 발언의 경악할 대목은 이른바 '자유의 북진'이다. 그는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0여 회나 쓴 '자유'를 구현하기 위해 통일부는 4가지 정책목표를 갖고 있다면서 △강력한 대북 억제-단념-대화(3D) △서방과 북핵해결 노력 △북한 주민의 기본권적 자유 확보를 앞세웠다. 이어 '자유의 북진'을 선포했다. "내부에 혼란이 발생할 경우 북한은 외부 도발로 만회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정부는 새해 자유의 북진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북한 내부 혼란에 대비하겠다는 건지, 혼란을 부추기겠다는 건지 분명치 않다. 탈북민 심층면담 결과라면서 "북한 내부에 비록 더디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에서 의도가 선명해진다. '기대하는 변화'는 체제 전복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체제 전복 뒤 혼란과 피해도 미국과 일본이 해결해주는 건지 묻고 싶다.

이날 김 장관이 노린 건 일종의 심리전 효과다. 북한 내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를 유발하기 위해 방송 등을 통해 대북 심리전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펼쳤다. 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이 우리 국민에 안보 불안을 조성하고 4월 총선을 노린다"면서 그 정치심리적 측면에 대응해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 통일'을 담은 헌법 4조에서 '민주주의'를 슬쩍 빼고 "'자유 통일'은 헌법적 책무'"라고도 강변했다. 역시 대통령의 어록에 충실한 해석이다.

"통일부 장관은 통일 및 남북대화ㆍ교류ㆍ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정부조직법 제31조에 명토 박힌 그의 업무다. 이 일을 하라고 국민이 봉급을 주는 것이다. '힘에 의한 평화'니 '대북 심리전'이 어디에서 튀어나온 업무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념 감별사' 자청

'김영호의 통일부'는 법적 의무를 자의적으로 축소, 개편했다. 장관 취임 한 달 뒤인 작년 8월 입법 예고를 통해 조직을 바꾸면서 교류협력국과 남북회담본부, 남북출입사무소,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을 폐지하고 인원 81명을 감축했다. 4개 부서는 '남북관계관리단'에 통합돼 남북대화 전략 개발과 교류협력제도 개선을 위주로 운영된다고 한다. 작년 7월 28일 자로 취임한 김 장관 임기에 생긴 일이다. 관련법 개정이라는 절차 민주주의는 깡그리 무시됐다.

최근엔 '역사 감별사' '이념 감별사' 역할까지 떠안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25전쟁은 크고 작은 군사충돌이 누적된 결과"라고 말한 데 대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과거 일부 수정주의 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전쟁의 기밀자료는 대부분 공개됐다. 한국전쟁 발발 전 남과 북이 각각 수십 건의 국지전을 도발한 것 역시 역사적 사실이다. 작년 9월 5일 국회에서는 '헌법 정신'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매'를 벌었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에서 얘기하는 국민 주권론이라는 것은 주권의 소재와 행사를 구분하고 있다"면서 "국민이 주권을 소유하지만, 대표(대통령과 국회의원)를 뽑아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했다. "국민 5000만이 모두 주권자로 권력을 행사한다면 무정부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는 궤변이 탄생한 배경이다. '철 지난 뉴라이트 세력'이라는 지적(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차치하더라도 주권자 국민과 권력의 피위임자의 관계를 잊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표는 '국민의 종, 국민의 하인'으로 주인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고의적으로 제외했다. 위임받은 권력을 주인의 뜻과 무관하게 행사해도 된다는, 역심(逆心)에 다름 아니다.  대체 '손 아래 대통령'을 모시고, 어떤 새 역사를 창조하고 싶은 것일까? 

유튜브 채널 ‘김영호 교수의 세상읽기’ 갈무리

'장관 김영호'의 사고를 들여다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은 필요 없다. 대통령의 어록과 겹쳐보면 '원전'이 금세 확인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작년 4월 5일 대북, 대국민 '심리전'을 강조했다. 최근 수사 결과를 들먹이며 "국내 단체들이 북한 통일전선부 산하 문화교류국 등의 지시를 받아 간첩행위를 한 것으로 발표되는데, 우리 통일부도 국민이 거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홍보라든지, 대응 심리전 같은 걸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북한 인권 실상을 공개하고 그 진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게 국가안보를 지키는 일"이라고도 주장했다. 앞으로도 통일부 장관의 입에서 변용돼 무한반복될 말이다.

국민들 사이에 불안을 조성하는 건 북한뿐 아니다. 한반도 안팎의 모든 사안을 4월 총선과 연결시켜 국민적 불안에 기생하려는 정치적 노림수가 또 다른 불안감 또는 불쾌감을 준다. 애당초 통일부는 '심리전'을 하라고 만든 부처가 아니다. 잘못 맡긴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밑천이 금세 드러난다. 좌담회 도중에도 70뷰 안팎이던 특별좌담회의 통일부 UNITV 유튜브를 본 횟수는 11일 밤 현재 541뷰이다. 국민적 다행이자, '심리전'의 참담한 실패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가운데)과 한석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박철희 국립외교원장, 박영호 국방대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장(왼쪽부터)이 5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특별좌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4.2.5.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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