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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덕 장관 "북한 '너 죽고 나 죽자' 결심 전엔 전쟁 안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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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덕 초대 통일부장관 인터뷰] ① 전쟁위기설

<시민언론 민들레>가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92)을 만났다. 남북 간 포사격으로 새해를 열고,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국내외에서 제기되는가 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선대 수령의 유훈을 깨고 '두 개의 국가론'을 내놓았다. 정세를 읽기 어려운 나날이다. '전쟁위기설'이 제기되는 심상치 않은 정세에 혜안을 접하기 위해 인터뷰를 청했다.

그러나 산은 높고, 골은 깊었다. 강 장관은 전쟁 위기 설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두 국가론'에 가린, '두 민족론'과 북한 지도부의 '사고' 및 공산주의 혁명 이론과 주체사상에 대한 이해, 주변국 관계, 통일·안보 부처의 역할, 동포 정책 등에 관한 깊은 시각을 전해 주었다. 60여 년 동안 북한을 중심에 두고 세계를 읽어 온 그의 GPS는 명료했다. "우선 '터널 비전(tunnel vision)'을 피하고, 전략적 사고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음식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 자료실에서 4시간가량 진행됐다. 이후 세 차례의 전화 통화로 보완했다. ① '전쟁 위기'를 보는 관점, ②북한을 읽는 관점 ③ 주변국을 보는 관점 등 세 차례로 나눠 그 대강을 전한다.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자료실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 장관은 일본의 제자들이 매달 보내오는 북한 관련 일본 자료가 도착했다면서 반가워했다. 2024.2.1. 시민언론 민들레

"북한이 '너 죽고, 나 죽자'는 결심을 하기 전에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이분법으로 접근하면 전체를 놓친다. 전면전이나 군사적 도발보다 비군사적 도발, 즉 대남 테러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

강인덕 장관은 한반도 위기설과 관련, 북한과 한미의 군사적 역학관계를 근거로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김정은의 전쟁 결정설을 주장한 미국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근거로 제시한 북한 안팎의 사정에 관한 분석은 비슷했다. 그러나 결론이 달랐다. 강 장관은 칼린-헤커가 주장한 것처럼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 전면전은 물론, 미사일이나 포를 쏘는 방식의 국지전을 벌일 가능성도 작게 보았다.

강 장관은 북한의 향후 행동을 분석하는 근거를 과거 경험에서 꺼내왔다. "북한은 인천공항 활주로에 미사일을 몇 발 떨어뜨린다고 우리가 굴할 것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쪽은 우리의 재래식 전력이 강하기 때문에 대응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비군사적인 도발, 즉 테러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는 까닭이다.

"100배, 1000배 대응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태세에 대해서는 "억제력은 필요하지만, 북한 주민이 입을 피해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될 무기를 북러 간에 거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의 주장을 무조건 받아들일 게 아니라)영관급 장교들과 국방 전문가 수십 명을 우크라에 보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문제"라며 "재래식 무기가 현대전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분석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자료실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2.1. 시민언론 민들레

-두 달 새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두 번 나왔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작년 말에, 또 1월 11일에는 미국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38노스' 기고문에서 주장했습니다.

"전면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북한이 '너 죽고, 나 죽자'는 결심을 하기 전에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핵무기로 공격한다면, 남쪽이 전부 파괴된다고 해도 미국이 잔여 핵전력으로 북한을 파괴할 거다. 핵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를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도 없다. 칼린은 '지금 전쟁이 가능하다'는 말인 것 같은데 그건 김정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거다. 공산주의 혁명 이론은 최종적으로 힘의 관계다.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기 전에 폭력(무력) 사용은 굉장히 어렵다고 본다."

-로버트 칼린은 1974년 중앙정보국(CIA) 정보분석관으로 출발해 50년째 북한을 읽고 있습니다. 

"중정 북한 국장, 심리전 국장을 하면서 제일 못마땅한 게 북한에 대한 보도를 AP통신, 로이터 통신을 통해 접하거나, 베이징 발 뉴스로 접하는 거였다. 내외통신을 만든 이유다. (한국 언론은 아직도 북한 보도를 하면서 외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해 CIA 사람들과 회의할 때 늘 강조했다. '북한은 우리가 잘 안다. 같은 민족이고, 언어, 사회문화가 같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겉은 잘 보는 데 안을 잘 못 보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말했다."

-북한의 국지 도발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명을 살상하지 않더라도 인천공항 활주로에 미사일이나 포를 쏘아 남쪽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하려 한다는 거죠.

"미국이 반대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보복 공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사일을 쏜 것 자체가 전쟁이다. 전쟁에는 전쟁으로 답해야 한다. 1·21사태 뒤 6사단인가, 7사단 지역에서 휴전선 위에 탱크를 올려놓고 직사포를 쏘았다. 우리가 보복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현 정부의 정치적 기반이 어떻게 되겠나. 연평도 포격 사건 다시 군의 대응도 문제였지만,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명박)도 문제였다. 그러나 북쪽은 우리의 보복 공격이 초래할 위험을 알고 있을 거다. 미사일 몇 발을 쏜다고 우리가 굴할 것이라고 보지 않을 거다. 군사적 공격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연구원은 김정은이 핵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남한을 제한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핵 사용을 위협하면, 미국이 확전을 피하기 위해 협상으로 종결될 것이라고 북한이 계산할 거라는거죠.

"그럴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위기 확산이 자신들의 국가 이익에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언제든지 개입한다. 8·18 도끼 만행 사건 때를 돌아봐라. 미군 장교가 도끼에 맞아 죽었는데도 보복 공격을 안 하지 않았나. 내가 북한만 바라보는 '터널 비전'을 피하고, 미국도 같이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게 그 때문이다. 다만, 미국이 반대할 때 우리 군이 대통령을 신뢰하고 보복 공격을 가할지 걱정이다. 과거(박정희 정권)처럼 군과 대통령 간에 절대적인 신뢰가 없는 것 같다."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자료실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2.1. 시민언론 민들레

-북한은 각급 단계에서 전쟁 준비를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전쟁이냐, 평화냐. 이런 양분법으로는 대응이 안 된다. 그게 바로 '터널 비전'이다. 중간 과정에서 벌어질 여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군사적, 외교적으로 대책을 궁리하는 게 전략을 담당하는 부처의 책임이다. 구상하는 부처와 실천하는 부처의 차이가 거기에 있다."

-중간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군사적 도발이 일으킬 리스크를 북쪽이 중히 여긴다면, 비군사적인 방법일 수 있다. 바로 테러 같은 거다. 북쪽이 잘할 수 있고, 얼마든지 자원자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기습, 랭군(양곤) 사태, 대한항공기 폭파, 국립 현충원 폭탄 장착 등 많은 경험이 있다. 남쪽에서 폭발물을 제조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비군사적 도발이 더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다."

-1970~1980년대와 달리 북한이 핵을 보유했기 때문에 문제가 과거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핵전쟁을 하려면 능력과 의지를 동시에 발동해야 한다. 핵 공격을 하면 남쪽뿐 아니라 북쪽도 같이 무너진다. 결정적인 순간 전에 핵 공격은 못 한다. 미국이 우리에 대한 보증을 어떻게 할 것인 지에 따라 북한은 전쟁 개시를 계산할 거다. 문제는 북쪽의 핵무기에 대한 확장억제를 어떻게 하느냐는 점인데 불확실성이 있다. 우리의 핵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독자 핵무장이 어렵다면, 핵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가장 강한 방법은 여론이다."

-2022년 말에 펴내신 자서전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2권에서 중앙정보 분석관의 자질로 강조하셨습니다. '터널 비전'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적대국인 북한만 보지 말고, 우방국가와 우리 국가 이익의 훼손 문제도 함께 봐야 한다. 안보를 맡은 이들의 책임이다. 안보를 하다 보면 늘 상대방만 보게 되는데 그러면 안 된다. 그걸 절실히 느낀 게 1·21사태 직후였다. 미국의 태도가 미지근했다. 이틀 뒤 미 첩보선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자 미국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터널 비전'은 어두운 터널에서는 출구만 밝게 보이고 주변이 온통 어둡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느라 전체를 보지 못하는 시야를 설명하는 말이다.)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자료실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2.1. 시민언론 민들레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에 올인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국익을 놓고 보면 미국과 충돌하는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용산 미군기지를 가볼 때마다 청나라 때부터 내려온 기지니까 '우리 땅인데 우리 땅이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다. 우리나라의 안보라는 큰 전략적 관점에서 미국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우리 국익에 반하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협상을 하자고 해야 한다. 지난 정부 시절, 한 일본 친구가 한국이 워싱턴에서 로비 자금을 가장 많이 쓴다고 하더라. 1억 5000만 달러라고 했던가? 로비 활동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들은 미국 언론과 잘 연결해 여론화하면 교섭의 힘이 될 수 있다. 전략, 전술적으로 잘 궁리해야 한다."

-북러 군사협력과 관련해 미국은 줄곧 북한의 포탄, 미사일 제공설을 주장하지만, 견고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영관급 장교들과 국방연구소 전문가들을 왜 우크라이나에 보내지 않는지 모르겠다. 수십 명이 가서 북한 무기 문제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가 현대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상 작전은 이렇게 해야겠구나, 무기는 이렇게 사용해야겠구나, 분석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미사일은 발사했다고 다 파괴되는 게 아니다. 잔해를 놓고 북한산 여부를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의 호전적인 발언도 불안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재작년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에 "100배, 1000배 대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우리는 북한을 보면서 이걸 자꾸 잊는다. 공산당만 존재하고 인민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한다. 강한 억제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인민대중이 우리의 적인가? 100배, 1000배 보복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김정은과 그 일당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인민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북한 인민대중에 대한 배려를 염두에 두고 모든 발언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전략적,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대북 정책의 범위는 대단히 넓다."

강인덕 장관 약력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 제1 고급중학교(고보)를 졸업한 뒤 전쟁 시기와 전후 두 번 입대했다.  군복무 중 한국 외대 러시아어과를 1회로 졸업했다. 1950년 대구에서 학도의용대에 자원했고, 1957년 해병 장교학교에 다시 입대했다. 2년 뒤 해병대사령부 전략분석관으로, 5·16 쿠데타 뒤에는 중앙정보부로 옮겨 북한 정보를 다루기 시작했다. 16년 동안 중정 해외정보국장·북한 국장·남북조절위원회 위원·심리전 국장을 역임했다. 1972년 11월 방북,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1979년부터 19년 동안 극동문제연구소 이사장과 소장을 지낸 뒤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에 발탁됐다. 지난 1월 '김정은 전쟁 결정설'을 주장한 로버트 칼린이 1974년부터 50년째 '영어'로 북한 원전을 읽었다면, 강 장관은 60여 년 동안 '한글'로 읽어 왔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일본 세이가쿠인 대학 초빙교수를 지냈고, 이후 현재까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석좌교수로 있다. 2022년 자서전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1·2>에 '편조백방(遍照百邦), 투시백년(透視百年)의 기세로'라는 부제를 달았다. '세상을 두루 살피고 100년을 투시한다'는 뜻으로 후배들에게 던진 충고로 보인다. 요즘도 매주 이틀 학교로 출근, 북한 자료를 읽고 있다. ☞ 강인덕 장관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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