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칼린과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서울을 방문했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연단에 섰다. 강연 및 대담 주제는 '코리아에서 핵 재앙 예방하기'. 그토록 오랜 세월 북한을 읽은 그들이건만 북한이 이제 '미지의 신대륙'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절망과 좌절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희망을 말했다. 그 대강을 전한다.
언제부터인가 적지 않은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은 미래 예측을 겸업한다. 나름대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과감하게 "~일 것이다"라는 예언을 내놓는다. 과학적 분석과 거리가 먼 경우가 허다하다. 허언으로 귀결돼도 굴하지 않는다. "~해야 한다"는 당위론자들의 위세도 여전하다. 북한과 무릎을 맞대고 끝없이 대화를 나눠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 많다. 오랜 세월 희망에 환호하고, 절망에 탄식했던 경험도 적다. 그럼에도 굳세게 당위를 놓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 아닌, '보고 싶은 북한'을 보기 때문이다.
칼린과 헤커가 다른 점은 속단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북한'을 정말 모른다며 언젠가 다시 마주 앉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털어놓는다.
칼린은 현재의 한반도 안보상황이 지극히 불안하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과거 전략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긍정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기에 벼랑 끝을 넘어서지 않았지만, 이제는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북한의 새 전략이 부정적인 목표만 있다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부연했다. 이어 한반도는 "우리가 억제하면 북한이 도발하고, 북한이 위협하면 우리가 군사적 옵션들을 과시하는 역학구도(dynamics)에 갇힌 상태"라고 규정하면서 "안정적이지 않을 뿐더러 장기 전략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스라엘이 10‧7 하마스 공격으로 깨달았듯이 '억제'는 먹히지 않는 순간까지만, 먹힌다"라면서 "바로 그렇기에 '억제 이상'의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말끝마다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동아시아 분단국 '1호 영업사원'과 사뭇 다른 현실 인식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 헤커는 "기술적으론 7차는 물론, 8차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2017년 9월 이후 자제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중국의 반대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짚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한다면, "실용적으론 스커드와 노동 등 단거리 탄도미사일용 핵탄두를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정치적으론 미국을 겨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단거리 탄도미사일용 핵탄두는 과거 두 차례 고농축우라늄(HEU) 탄으로 핵실험을 했지만, 완벽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ICBM과 달리 단거리 미사일은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헤커는 "핵실험은 필요한 측정을 하고, 그 결과를 핵탄두에 반영하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지금까지 미국이 1054회, 러시아가 715회, 프랑스가 210회, 영국과 중국이 각각 45회나 한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핵확산과 핵테러리즘에 반대하는 국제적 책임을 다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신뢰를 잃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715회의 핵실험에서 얻은 정보를 나눠준다면 북한은 7차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칼린과 헤커는 모두 북한이건, 미국이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극히 적게 봤다. "북한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거나, 미국이 먼저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핵무기를 사용하겠지만 그전까지 강압 목적으로만 활용할 것"이라는 말이다. 또 "미국은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핵무기를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했다. "핵무기 없이도 북한을 지도에서 지울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헤커는 "북한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기를 원치 않는다"라면서 "사용할 준비만 갖춰놓는 게 그들의 전략"이라고 자신했다.
칼린은 '북한이 대화에 나오지 않는 데 어떤 외교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이 문을 잠궈 놓고 있으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북한은 언젠가 다시 대화에 나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북한과의 외교에 앞서 "미국이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한 뒤에나 핵군축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헤커는 한국 내 일각에서 제기되는 독자 핵무기 개발에 대해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면서 "핵무기를 만드는 순간, 북한과의 핵무기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이 진행 중인 전술핵(B-61폭탄) 개량 사업에 한국이 비용을 대고, 전술핵 100개를 한국 전용으로 확보하자는 아산정책연구원-랜드(RAND)연구소의 최근 제안을 일축하면서 "북한을 상대하는 데 핵무기는 정말 필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칼린과 헤커는 지난 8일 각각 짧은 강연 뒤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와 3자 대담을 했다. 주로 문 교수가 묻고, 칼린과 헤커가 답하는 방식이었다. 질문도, 답변도 거침이 없는 '대가들의 항연'이었다. 북한이 1990년대 초부터 2019년까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얼마나 집요하게 추구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현 흐름의 심연은 물론, 전조(前兆)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기본 전제였다.
칼린-문정인-헤커 대담록
-문) 강연의 주제가 핵 재앙이다. 먼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것으로 보는가.
-헤커) 기술적인 관점에서 북한은 7차는 물론, 8차 핵실험도 할 거로 본다. 지금까지 6차 핵실험을 하면서 많이 배웠을 것이다. 미사일 발사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똑같은 핵탄두를 여러 가지 미사일에 다 장착할 수는 없다. 태평양 너머 장거리 미사일(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정상 탄도로 발사한 적도 없다. 측정할 게 많이 남아 있다. 측정하고, 그 결과를 핵탄두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핵실험은 2017년 9월 3일에 있었다. 진작 필요가 있었을 텐데 아직 하지 않은 이유는 모른다. 다만 몇 차례 방중 기회에 중국인들이 북한의 핵실험에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보았다. 해서 중국이 북한에 "무슨 행동을 해도 좋지만, 핵실험만은 안 된다"라면서 제동을 걸지 않나 추측할 뿐이다. 6차 핵실험은 특히 규모가 컸기 때문에 접경지역의 중국인들이 많이 놀랐다.
-문) 북한이 중국의 말을 경청한다고 생각하나? 또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 정부는 핵실험은 금지선(red line)을 넘는 것이라고 한다.
-칼린) 레드라인? 웃기는 말이다. 레드라인이 뭔지도 이해가 안 된다. 이미 6차례 했다. 7차례 한다면 분명 안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다. 북한이 정상 탄도로 태평양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게 더 큰 우려일 거다. 미국에서 난리가 날 것이 때문이다. 추가 핵실험은 그 정도 충격이 안 된다.
-문) 북한이 제재를 받게 될까.
-칼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가 들어간 상자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내뱉은 말을 어떻게 주워 담을지 궁금하다) 레드라인은 없다. 그들이 중국 말을 듣는다고? 아이들이 부모 말을 들을 거라는 생각과 다를 게 없다. 몇 년 뒤 독립할 아이들이 왜 부모 말을 영원히 듣겠나. 김정은은 시진핑에게 이미 "우리는 압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면 되받겠다"고 말했을 거라고 본다.
-문)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라고 보나.
-헤커) 내가 책임자라면 실험을 통해 확인할 게 많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스커드와 노동 등 단거리 탄도미사일용 소형 핵탄두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북한은 최소한 두 번의 핵실험에서 고농축우라늄(HEU)탄을 사용해 단거리 미사일용 탄두를 점검했다. 그러나 두 번의 핵실험에 만족하지 않을 거다. 정치적 측면에선 ICBM 능력을 입증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에 "봐라, 우리가 너희를 위협에 놓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 할 거다. 그러나 아직 그들이 ICBM에 적재할 만큼 작은 탄두를 개발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대기권 재진입 시 탄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온도 및 압력 상승 등의 요인도 봐야 할 것이다. 소형 탄두가 가능하다면 ICBM용 핵실험을 할 거라고 본다.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이미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다. 핵실험에 대해 말하자면, 미국은 1054회, 러시아는 715회 했다. 프랑스 210회, 중국은 45회 했다. 영국은 45회 했는데 그중 24회를 미국과 했다. 인도, 파키스탄, 북한이 각각 6번 했다. 중국 과학자들은 더 많은 핵실험을 원하겠지만, 정부가 막고 있을 거다.
-문) 밥(칼린), 북한이 핵 독트린을 수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핵 무력의 제2의 사명("핵무기의 제2의 사명은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다")과 전술핵 배치도 언급했다. 지난 6월 공개된 미 국가정보평가(NIE) 보고서는 북한이 강압, 공격, 억제 등 세 가지 목적 중에서 강압적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나.
-칼린) 북한이 한국과 미국, 어쩌면 중국이 북한을 지도에서 지우려고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평가에는 동의한다. NIE의 다른 평가는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이 벽에 몰려 결전을 결심하고, 우리가 죽기 전에 일본부터 지워버리겠다고 나서는, 극한 상황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문) 우리 정부는 서해나, 비무장지대에서 남북한 간 우발적 군사충돌이 발생한다면 100배, 1000배 보복하겠다고 한다. 한미는 가공할 재래식 전력을 갖고 있다. 재래식 화력 교전이 벌어지면 북한이 존립에 위협을 느껴서 핵무기 사용 유혹을 받지 않겠나.
-칼린) 바로 그 때문에 북한의 새 전략이 과거 전략처럼 내부 장착(built-in) 브레이크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과거엔 (북미 관계 정상화처럼) 긍정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기에 벼랑 끝 너머로 가지 않았다. 새 전략이 부정적인 목표만 갖고 있다면,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평양을 건설하는 데 너무 많은 돈을 들였다. 진열장(showcase)이다. 1950년대 평양이 어떻게 파괴됐는지 잘 알고 있다. 매년 주민들에게 당시 파괴상을 필름으로 보여준다. 북한이 그러한 파괴를 다시 겪고 싶어 한다고는, 정말 생각치 않는다.
-헤커) NIE 관련 질문으로 되돌아갔으면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강압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지만, 사용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전술핵 배치를 비롯한 북한의 공식 발표는 대부분 우리를 겨냥한 수사라고 본다. 진짜 중요한 내용은 비밀로 하지, 공개하지 않는다. 핵무기를 야전에서 연습하고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핵무기는 지극히 위험하다. 미국도 아주 심각한 핵무기 사고를 겪었다. 스페인과 영국에서 플루토늄 누출 사고가 있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여기저기 옮긴다면 미친 짓이다.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를 해놓는 게 북한의 전략이라고 본다. 그들 역시 위험을 알기 때문이다.
-문) 미국이라면 절대안전(fail-safe) 테스트 절차를 거치겠지만, 북한에 대해 우리가 안전 절차를 거치도록 할 방법은 없지 않나.
-헤커) 북한이 실제로 어떻게 안전 조치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도 미국에서 벌어진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
-문) 핵 재앙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짧게 말해주면 좋겠다. 밥은 '억제(deterrence)'가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억제가 잘 먹혀온 것 같다.
-칼린) 억제는 먹히지 않는 순간까지만 먹힌다. 이스라엘이 (10‧7 하마스 공격으로) 깨달은 사실이다. 우리가 '억제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북한이 공격을 안 한다는 근거로 억제가 먹힌다고 가정한다면, 바보짓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렇다. 우리가 억제하면, 그들은 도발한다. 그들이 위협하면, 우리는 몇 가지 군사적 옵션을 내보인다. 우리가 그들을 겁주려 하면, 그들은 우리가 겁주는 것을 멈추도록 거꾸로 겁을 준다. 복잡한 문제다. 우리가 그들을 밀면, 그들은 우리를 다시 민다. 그게 바로 우리가 처해 있는 동학(動學, dynamics)구도이다. 안정적이지 않을뿐더러 장기 전략으로 좋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할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문) 억제가 불안정하다고 했다. 그래서 외교건 뭐건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를 보검처럼 여긴다. 한미 양국이 최근 강조한 확장억제가 믿음직하지 않고, 되레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말인가.
-칼린) 나는 확장억제를 아주 다르게 생각한다. '억제'나 '핵우산'이라는 표현 자체를 안 좋아한다. 동맹 이상의 문제다. 동맹은 한국을 안전하게 하는 동시에 미국이 글로벌 안보를 위해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은 오랜 세월 꽤 큰 민주주의의 불빛이었고, 성공의 불빛이었다. 그러나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는 "우리가 핵무기로 지켜주니까 한국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틀린 말이었다.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만큼, 미국도 한국이 필요하다. 맞다. 미국은 더 큰 군대를 갖고 있다. 핵무기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우리는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가 필요 없다. 핵무기 없이도 북한을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북한 정권을 없앨 수도 있다. 대체 핵무기를 쓸 이유가 뭔가.
-문)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확장억제를 약속했다. 그럼에도 한국 일각에서는 확장억제는 미국 핵무기이지, 우리 것이 아니라면서 자체 핵무장을 하거나, 언제든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국가(nuclear latency)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최근 발표된 아산정책연구원-랜드(RAND)연구소 공동 보고서(10월 30일 자)는 미국의 더 강한 보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진행 중인 전술핵무기(항공기 투하용 B-91탄) 현대화 비용을 한국이 지원, 최소 100개의 핵폭탄을 한국 전용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논의를 어떻게 보나.
-헤커) 끔찍한 생각이다.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의 하나가 바로 한국의 핵무기 보유다.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매우 위협적인 핵무기고를 갖고 있다. 한국이 핵무기를 제조하는 순간, 북한과의 핵무기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막대한 예산이나 장비, 시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필요한 문제다. 삼성, LG, 현대가 모두 핵무기 제조에 동원돼야 한다. 왜 그런 짓을 하는가. 한국은 이미 미국도 따라갈 수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로를 만들고 있다. 미국이 새로 건설하고 있는 원전 2기의 핵심부품은 한국제다. 한국은 물론,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다. 그런데 대체 그런 짓을 왜 하려 하나.
-문)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한국이 만들 수 없으니 미국 핵폭탄 100개에 대한 독점사용권을 갖자고 한다. 아산과 랜드가 낸 보고서다.
-헤커) 솔직히 크게 실망했다. 랜드는 미국 내에서 인정받는 연구소의 하나다. 그런데 몇 달 전에도 북한이 100개의 핵무기를 만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미는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핵무기가 필요 없다. 상황이 안 좋아진다면, 언젠가 중국을 상대하는 데 필요할 수는 있다. 북한엔 필요 없다.
-문)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나 미국 전술핵의 재배치가 필요 없고, 현재로선 확장억제가 유일한 선택이라는 말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어떤 외교적 선택지가 있겠나.
-칼린) 우리는 지금 '신대륙'을 마주하고 있다. 과거 북한의 전략적 개념 속에서 어떤 외교가 있었고, 어떻게 먹혔는지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외교가 계속 먹힐지는 모른다. 북한은 과거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목적을 위해 여러 방식의 외교를 구사했다. 핵 프로그램을 협상 칩으로 쓴다면, 얼마나 유용할지도 계산했다. 북미 관계 정상화가 더 이상 북한의 목적이 아니라면, 뭐가 필요한지 그것부터 찾아내야 한다. 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해야 한다.
-문) 북한이 안 나오지 않나. 그들은 중국과 러시아와만 대화하고 있다.
-칼린) 가끔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북한이 전화를 안 받고 문을 잠가 놓았다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주 조심스러워야 한다. 다만 우리가 대화할 준비가 됐음을 북한에 알릴 필요는 있다. 북한이 언젠가 대화에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헤커) 두 개의 흐름이 교차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밥이 말했듯이 북한은 대미 관계 정상화를 더 이상 추구하지 않고 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맥락에서 러시아가 갈수록 무책임한 핵보유국이 되어 간다. 소련은 미국과 극심한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몇 가지 사안에서 공감대가 있었다. 비확산 책임도 분명했다. 미국과 함께 핵실험을 제한하기도 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일원으로 국제사회와 협력했다. 개인적으로 핵 테러리즘을 막기 위해 소련 전문가들과 함께 일한 적도 했다. 이제는 이 모든 게 흔들린다. 러시아는 1994년 부다페스트 의정서로 우크라이나에 안보 보장 약속을 했다. 비확산을 토대로 한 공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크라이나 원전 운영자에게 총을 겨눈다. 신뢰가 사라졌다. 러시아와 북한의 핵 협력이 걱정되는 이유다. 러시아가 715회의 핵실험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전달해준다면 북한은 7차 핵실험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문) 과거 경험에서 어떤 외교가 먹힐 거라고 보나.
-칼린) 북한이 여전히 원하고 있는 한 가지는 완전한 주권 국가로 대우받는 것이다. 스스로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여전히 나머지 세계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주권 국가이자, 세계 무대에서 합법적인 행위자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들의 행동이 무엇이건, 그들 마음 속에 있는 희망이다. 바로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 중의 하나다. 워싱턴에 있는 이들은 이를 악물고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원치 않더라도 북한을 국가로서 승인, 국제질서 속에서 책임과 편익의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런 다음, 북한을 상대로 "세계에 입증해야 할 게 있다"고 말해야 한다.
-문) 핵 가진 북한을 승인하자는 말인가. 완전한 비핵화 뒤 북한을 승인하느냐, 핵을 핵을 갖고 있는 북을 승인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다. 일단 승인한 다음에 핵무기 통제 및 감축 협상을 하자는 말인 거 같은데…. 한국은 어떤가. 우리는 핵보유국이 아니기에 북한과 어떤 (핵 군축)협상도 할 수 없다.
-칼린) 바로 그런 문제의 해법을 찾으라고 우리는 외교관들에게 많은 봉급을 주고 있다.(웃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핵국가인 한국이 핵보유국들과 협상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 많은 한국 외교관들은 동맹과 억제를 선호한다. 미국 전술핵의 이전과 핵공유, 그게 안되면 독자적인 핵 보유를 더 원하는 게 한국 외교관의 태도인 것 같다.
-헤커) '최종상태(end state)'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여야 한다. 북한을 영구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협상은 안 된다.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처럼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자는 사람도 있지만, 놓인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인도, 파키스탄은 서로 핵무기를 겨누고 있을 뿐이다. 한반도에선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가 관여돼 있다.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전 밥 칼린과 '최종상태=한반도 비핵화'를 두고 방안을 찾아봤다. 10년 동안 중단(hold)-역행(roll back)-해체의 3단계를 제안했다. 북한이 1년 내 핵무기 개발을 멈추고, 최장 5년 동안 기존 조치를 뒤로 물린 뒤, 핵무기 해체에 착수하는 방안이다. 15년이 걸릴 수도 있다. 어떻게 검증할 것이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 핵무기를 한미 민간기업이 참여해 민수용 소형모듈원자로(SMR)로 전환하는 '협력적 전환(Cooperative Conversion)'도 가능하다. 미 행정부 관리들과도 논의한 문제다.
-문) 한국 내에선 북한의 핵무기는 물론, 민수용 핵 개발도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있다.
-헤커) 어떻게 민수용 핵 개발을 금지한다는 말인가. 마침 오는 12월 8일이 바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평화를 위한 핵(Atom for Peace)' 연설 70주년이다. 평화적으로 핵을 이용하려는 국가들과 의료용 및 발전용 핵기술을 공유하자는 제안이었다. 북한이 원전을 가질 수 없다고? 참으로 터무니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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