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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대교 이어 노르트스트림 폭파 배후도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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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6일 발트해에서 발생한 노르트스트림1·2에 대한 테러 공격의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는 분석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이를 시인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국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도 '적전 분열'을 우려해 언급을 피하고 있다.

작년 9월 폭발 사고가 발생한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그러나 러시아 가즈프롬과 유럽 기업들이 컨소시엄 형식으로 소유한 파이프라인의 파괴와 이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유럽 각국이 피해를 입은 만큼 파괴 주체에 관한 조사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선 비용만 수억 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스웨덴 당국은 사건 발생 직후 노르트스트림1·2 가스관 4개 중 3개에서 가스가 누출된 것은 의도적인 폭파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스관 2개는 공해상이지만 스웨덴과 덴마크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지난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6일 미국 정보당국이 우크라이나군의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 폭파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파악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분석했다. 포스트는 미 공군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소속 잭 더글러스 테세이라 일병이 지난 4월 유출한 펜타곤 기밀문건을 토대로 현재까지 우크라이나군의 소행임을 드러내는 가장 구체적인 증거라고 강조했다.

문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 6명은 가명으로 발트해 연안의 독일 바르네뮌데 항구에서 요트 안드로메다 호를 빌렸다. 이후 잠수장비를 이용해 수심 73m의 해저에 폭탄을 장치한 뒤 포착되지 않은 채 빠져나갔다. 이중 최소 1명은 우크라이나 현역 군인이다. 독일 수사당국은 안드로메다호 선실에서 가스관 폭발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폭발물 잔류물질을 찾아냈다. 이들은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에게 직접 보고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각국의 비난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당초 6월 5~17일 실시됐던 나토의 발톱스(BALTOPS 22) 해상 훈련 직후에 범행을 계획했지만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작전을 연기했다.

독일 산업지역인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스트림1 파이프라인 시설. 지난해 8월 30일 촬영된 사진이다. 2022.8.30. 로이터 연합뉴스

독일을 포함한 유럽 국가 정보당국이 가스관 폭파 작전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한 것은 이즈음이다. 익명의 우크라이나인의 제보였다. 이들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첩보를 공유했고, 독일 정보당국은 6월 말 베를린의 독일연방의회 의원들에게 이 내용을 브리핑했다.

노르트스트림 파괴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판단, 수사에 나선 독일 당국에 따르면 실제 폭파 행동은 당초 계획과 일치한다. 우크라이나 배후설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영·독·폴란드·스웨덴·덴마크 언론의 공동탐사보도 팀은 지난 5월 22일 독일 연방범죄수사청(BKA)이 안드로메다 호에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우크라이나인 남녀 6명이 폴란드 회사 명의로 요트를 대여했으며, 가스관 폭발 당시 보른홀름 북동쪽 크리스티안소 섬에 정박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타임스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요트를 빌린 곳을 독일 로슈토크로 적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와 관련한 포스트의 질의에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았다. 포스트는 최근 미국 정보당국이 입수한 전화 도청 테이프를 근거로 친 우크라이나 인물 또는 단체가 노르트스트림 공격 가능성을 의논한 대화 내용을 보도했었다. 그러나 나토 당국자들은 러시아에 대항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동맹의 균열을 우려해 "노르트스트림을 언급하지 말자"는 묵계가 이뤄지고 있다고 포스트는 전했다.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 고성능 해저 폭탄이 아니었다면 파괴되지 않았을 견고한 관이다. 위키피디아가 공개한 사진이다.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포스트와 더 타임스를 비롯한 유럽언론이 보도한 내용은 미국 탐사보도 전문기자 세이무어 허쉬(85)가 지난 2월 8일 유료 블로그 서브스택 기사에서 전한 내용과 다소 차이가 있다. 허쉬는 노르트스트림 폭파가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로 미해군 심해잠수부대원들이 지난해 6월 발톡스 훈련기간에 C4 폭약을 매설했고 3달 뒤 노르웨이군 항공기가 원격으로 폭발시켰다고 보도했다. 아드리안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같은 날 "완전한 거짓이자 허구"라며 일축했었다.

사건의 전모는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노르트스트림 파괴로 전략적, 경제적 이득을 얻은 측과 피해를 입은 측은 분명하다. 노르트스트림은 러시아 천연가스가 우크라이나를 경유하지 않고 서유럽으로 직접 공급된 첫 번째 파이프라인으로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사 왔었다. 2011년 개통한 노르트스트림1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서유럽 가스 수요의 45%를 공급했다. 약 20억 유로의 건설비가 들어간 노르트스트림2는 2021년 완공됐지만 미국의 반대로 사용되지도 못한 상태였다.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이 지분 51%를 소유하고 있고,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에너지 기업들이 각각 수십억 달러씩 투자한 합작회사가 운영한다. 러시아뿐 아니라 나토 회원국 기업들이 피해를 본 것이다. 노르트스트림은 우크라이나 전쟁 뒤 가스 공급을 중단했었지만, 폭발 소식이 불안심리를 유발하면서 서유럽 가스값이 8~12% 급등,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피해가 전가됐다.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지난 3월 5일 바흐무트 인근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해 참호로 대피하고 있다. 바흐무트 전투는 1차대전을 방불케한 참호전으로 치러져 인명 희생이 많았다. 2023. 3. 5. AP 연합뉴스

러시아 천연가스·원유 파이프라인은 냉전 시대에도 유럽에 에너지를 공급해왔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우크라이나 전쟁 뒤 러시아~우크라이나~유럽으로 이어지는 드루즈바(Druzhba) 파이프라인이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하루 평균 30만 배럴의 원유와 연간 400억㎥의 가스가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유럽에 전달됐다.  파이프라인 가동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러시아뿐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전(2019년) 계약에 따라 내년까지 모두 70억 달러의 통관료를 받는다. 연평균 10억~15억 달러다. 유럽연합(EU)은 튀르키예를 경유하는 튀르크스트림 파이프라인을 포함해 러시아 천연가스의 유럽 유입을 봉쇄했지만,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파이프라인과 헝가리로 향하는 파이프라인은 예외로 두고 있다. 전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윈·윈(win·win)하는 유일한 거래다. ‘드루즈바’는 러시아어로 '우정'을 뜻한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파괴는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서방 각국도 비난하고 있는 파괴 공작(sabotage)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전쟁터와 무관한 대규모 인프라 파괴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과 지난해 10월 8일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전장(全長) 19km의 케이치대교(크림대교), 지난 6월 6일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카오우카댐이 잇달아 폭파됐다. 그중 최소한 2곳의 파괴공작의 배후로 우크라이나가 지목되는 것이다. 러시아가 발전소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기간시설에 미사일 공격을 본격화한 것은 노르트스트림 및 케이치 대교 폭파(아래 사진) 뒤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케이치대교 폭발 사건 뒤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의 '테러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수도 키이우, 르비우, 자포리자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84발의 순항미사일과 자살 드론 공격을 가했다. 러시아 점령지 내에서 벌어진 카호우카댐의 폭파 배후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먼지가 가라앉고 난 뒤 어느 쪽이건 파괴 주체에 대한 비난은 피할 수 없어보인다. 동시에 전쟁의 정당성도 잃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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