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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선언 3주년]가까워진 남북…‘核고개’에 막혀

떨어진 반쪽

by gino's 2012. 2. 2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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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3주년. 최근들어 회담의 성사과정을 놓고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남과 북이 반세기 적대를 청산하고 화해의 연대기를 시작했다는 그 역사적 의미는 무엇으로도 훼손할 수 없다. 회담 이후 남북간의 인적·물적교류가 급속하게 증대하고 남북 경협도 중단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전한 신뢰구축, 긴장완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회담이 남긴 것=2000년 6월15일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3년. 김대중(金大中)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손을 마주 잡는 순간 오랜 적대관계는 멀지않아 종료될 것으로 기대했다.

당국 및 민간차원의 넘나들이가 잦아지면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이산가족 상봉이 계절 행사처럼 치러졌고, 허리가 잘렸던 경의선과 동해선의 연결공사가 시작됐다. 금강산은 더이상 금단의 영역이 아니었다. 남북관계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남북간 긴장완화는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진전됐으며,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적·물적 교류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남측 일각의 ‘대북 퍼주기’ 논란과 지난해 꽃게잡이철 두번째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정신은 면면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월드컵에서는 태극전사들의 활약상에 남북이 따로없이 환호성을 터뜨렸고,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북측 응원단이 ‘북녀(北女) 신드롬’을 낳았다. 적어도 남북간 극악한 상호비방과 불신의 벽이 낮아진 것만해도 적지 않은 성과다. 북한은 남북 대화창구를 닫았던 93~94년 1차 핵위기 때와 달리 대화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6·15선언과 함께 시작됐다.

◇회담 이후 명암=지난해 10월 불거진 북한 핵위기는 ‘햇볕’이 덥혀온 통일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반도 남쪽에선 대북송금 특검이 진행되면서 정상회담의 주역들이 줄줄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고 있다.

오늘(14일) 치러지는 경의·동해선 철로연결 행사는 이처럼 어수선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세기 동안 끊겼던 민족의 혈로를 잇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간소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불길한 징조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비롯됐다. 북한의 선(先) 체제보장과 미국의 선(先) 핵포기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북·미는 북핵위기 8개월 동안 고작 한차례 대화석상에 마주 앉았을 뿐이다. 그 사이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시계를 뒤로 돌렸고,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악의 축’이자 ‘선제공격대상 1순위’로 규정하고 있다.

북핵위기와 지난해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악화된 한·미관계의 이중 부담을 안고 출범한 새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대북정책과 관련, 김대중 정부의 부채와 자산을 모두 물려받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 ‘자산’을 불리기보다는 ‘부채’의 뒷갈망에 휘둘리는 인상이다.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다. 대화와 협력은 활발하면서도 정작 군사·정치적 신뢰관계는 아직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과 이벤트는 함께 하면서도 민족의 생사가 걸린 북핵문제는 남북대화의 정식 의제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희망과 절망,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가운데 6·15선언이 불 밝힌 한반도 평화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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