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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산책

이탈리아는 어떻게 유로 포퓰리즘의 전위에 섰나

by gino's 2019. 4. 16.

 

오는 5월 말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각국의 포퓰리스트 정당들과 선거 연합을 주도하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8일 밀라노에서 유럽의회 포퓰리스트 교섭단체인 ‘자유와 직접민주주의의 유럽(EFDD)’의 멤버인 독일, 핀란드, 덴마크 극우 포퓰리즘 정당 대표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밀라노 | 로이터연합뉴스

연민보다는 증오, 연대보다는 차별, 포용보다는 배제가 현실정치에서 힘이 세다. 포퓰리즘 시대에 더욱 선명해진 현실정치의 속성이다. 또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분노는 아무리 정당해도, 증오를 이기지 못한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포퓰리즘 연정을 이룬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이라는 두 개의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당이 던지는 함의는 알프스 산맥을 훌쩍 뛰어넘는다. 올해 유로 포퓰리즘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한 지붕 두 가족의 포퓰리즘 연정

작년 오성운동의 극우연정 파트너가 된 북부동맹, 1년 만에 제1당 부상
5월 유럽의회 선거도 약진 전망…중심에 선 ‘반 이민 선동가’ 살비니
“의석 3분의 1 확보 가능” 기성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과 세 규합 서둘러
스스로 “시민운동” 앞세운 오성운동은 결이 다른 별도의 연대 모색

현 이탈리아 연정이 출범한 것은 지난해 6월이다. 총선 득표율은 오성운동(32.7%)과 민주당(22.9%), 북부동맹(17.4%), 포르차(전진) 이탈리아(FI·17.4%) 순이었다. 이 중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이 손을 잡고 연정을 꾸렸다. 이른바 ‘변화의 정부’다. 득표율에 따라 오성운동에서 주세페 콩테가 총리, 루이지 디 마이오 당대표(32)가 부총리 겸 경제·노동·사회 장관을 맡고, 북부동맹에서 마테오 살비니 대표(46)가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맡는 방식으로 권력을 나눴다.

하지만 연정 출범 이후 두 정당의 세는 역전됐다. 올들어 지난 3월 말까지 치러진 3번의 지방선거에서 오성운동은 참패하고, 북부동맹이 주도한 중도우파 연합은 압승을 거뒀다. 지방선거가 있었던 바실리카타주(3월), 사르데냐주(2월), 아브루초주(2월)는 모두 ‘성난 남부’다. 이탈리아 남부는 높은 실업률과 낮은 산업기반, 북아프리카를 넘어오는 이민자들의 문제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북부동맹과 중도우파를 표방하는 ‘전진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형제들’ 등으로 이뤄진 우파연합이 선거를 모두 휩쓸었다. 특히 북부동맹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30%를 넘는 지지율로 제1당으로 부상했다.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분노’와 ‘증오’의 승부

포퓰리즘은 나라마다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반세계화와 반엘리트, 반기성제도가 공통된 출발점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반자유무역협정(FTA), 반기성권력의 흐름도 겹친다. 유럽연합(EU)의 통합과정은 세계화 속 또 다른 세계화였기에 유로 포퓰리즘은 반세계화와 함께 반유럽통합을 외친다. 하지만 유로 포퓰리즘을 속성재배한 숙주는 단연 반이민 정서다. 2015년 시리아와 북아프리카에서 대규모 난민이 몰려들면서 유럽 정치지형을 흔들었다. 미국과 유럽의 반이민, 반이슬람 정서는 정확하게 증오와 차별, 배제로 구체화된다. 증오와 공포는 동전의 양면이다. 여기에 소수 무슬림 이민자들이 기독교 전통을 위협한다는 공포를 선동하면 폭발력이 커진다. 이탈리아에서 이러한 특성을 골고루 갖춘 극우 포퓰리즘 정당은 북부동맹이다.

 오는 5월 말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각국의 포퓰리스트 정당들과 선거연합을 주도하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오른쪽 두번째)가 지난 8일 밀라노에서 유럽의회 포퓰리스트 교섭단체인 ‘자유와 직접 민주주의의 유럽(EFDD)’의 멤버인 독일, 핀란드, 덴마크 극우 포퓰리즘 정당 대표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밀라노/로이터연합뉴스

오성운동 역시 반유럽, 반세계화, 반기성제도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포퓰리즘 정당이다. 불법이민에 반대하지만, 상대적으로 반이민 정서가 미지근하다. 반부패, 반빈곤을 우선한다. 반대로 북부동맹의 살비니 부총리는 이민자 문제를 다루는 내무장관을 겸하면서 강한 행동과 선동으로 반이민 정책을 펼쳐왔다. 지난해 6월 취임하자마자 “튀니지는 범죄자들만 이탈리아로 보낸다”고 말해 외교적 잡음을 일으켰다. 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들(MSF)과 지중해 SOS가 난민 600명을 싣고 온 선박의 이탈리아 입항을 막았다. 같은 달 집시를 불법이민자로 규정하고, 집시 인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역풍을 맞았다. 2018년 나이지리아 이민자에게 살해된 이탈리아 젊은 여인 파멜라 마스트로피에토의 이름을 자주 거론하면서 증오를 부추긴다.

오성운동은 부패한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출발점이다. 기본소득(시민소득) 제도를 도입하고, 연금 수령 연령을 낮추는 한편 감세정책을 시행했다.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온라인 의견 수렴 플랫폼 ‘루소’에서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반부패 운동인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의 전통이 살아 있는 이탈리아 유권자들이 작년 총선에서 오성운동을 제1당으로 만들어주었던 요인이다. 하지만 분노는 살비니가 부추긴 증오를 이기지 못했다. 오성운동은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모은 ‘포괄 정당(Big Tent)’의 약점도 갖고 있다. 반이민을 포함한 주요 현안에 대한 모호한 입장 탓에 선명한 극우 포퓰리즘의 북부동맹에 밀린다.

똑같이 반유럽을 지향하지만, 오성운동이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못하도록 한 EU의 재정정책 반대에 집중하는 데 비해 북부동맹은 반이민 및 난민정책에 화력을 집중한다. 지난달 23일 이탈리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콩테 총리 및 디 마이오 부총리와 맺은 투자협정 조인식에 살비니는 불참했다. 주요 7개국(G7) 국가 중 처음으로 중국의 일대일로(BRI) 투자자본을 받아들인 정부 노선과 사뭇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이 드물게 일치하는 것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혐오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경모한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8월 유로 포퓰리즘의 확산을 ‘나병’의 확산에 비유한 마크롱은 동네북이 된 지 오래다. 디 마이오 부총리는 “이민자들을 뒤에서 내치는 위선자야말로 진짜 나병”이라고 비난했고, 살비니는 마크롱을 ‘수다쟁이’로 비하했다.

5월23~26일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 포스터.

 

■북부동맹과 오성운동이 주도하는 ‘포퓰리즘 국제연대’

올해 유럽에서 떠오르는 스타는 단연 북부동맹의 살비니다. 유럽 의회가 오는 5월23~26일 선거를 앞두고 28개 회원국의 국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3월 발표한 득표 예상에서 북부동맹이 전 유럽에서 가장 약진할 것으로 점쳐졌다. 전체 705석(영국의 불참 전제) 가운데 독일 기민당(29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의석(27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탄력을 받은 살비니는 유로 포퓰리즘의 새로운 규합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8일 밀라노에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핀란드 극우정당 ‘진짜 핀란드’, 덴마크 인민당 대표들을 초청해 유럽의회 선거 뒤 반이민 포퓰리즘 정당들을 묶어 ‘유럽 인민과 국가 동맹(EAPN)’을 출범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정당들의 연합이 장악한 EU의 ‘브뤼셀 벙커’에서 지분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더욱 강력한 반이민 정책과 유럽의 정체성 보호가 목적이다. 프랑스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RN·국민전선의 후신)과는 지난 5일 파리에서 회동, 유럽의회 선거에서 ‘상식의 혁명’을 달성하자며 연대를 다짐했다. 살비니는 지난 1월 바르샤바를 방문, 폴란드 집권 ‘법과 정의당(PiS)’과 협력을 모색하기도 했다.

물론 살비니의 꿈이 실현되기에는 몇가지 장애가 있다. 반이민·반EU·반제도에는 공감하지만 PiS와 헝가리 집권 피데스는 기독교의 뿌리를 중시하는 반면, RN은 아무리 극우라도 프랑스 정당이다. 내놓고 정교분리를 주장할 수 없다. 북부동맹과 RN 등은 친러시아 성향이 뚜렷하지만 PiS는 러시아를 경계한다. EU 이민정책에서 살비니가 이탈리아의 부담을 나누려고 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덴마크 인민당의 앤더스 비스티센은 그러나 “우리를 분리하는 것보다 연합하게 하는 것이 더 많다”면서 포퓰리즘 연합의 실현을 장담했다.

지난 4월5일 주요 7개국(G7) 내무장관 회의차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겸 내무장관(왼쪽)이 바쁜 와중에도 프랑스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을 만나 회동을 가졌다. 사진은 르펜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려놓은 것이다.

살비니의 시도는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EU의 이민정책과 재정정책에 반대하는 포퓰리즘 정당들로 전체 유럽의회 의석의 3분의 1을 확보, EU 집행위원회 고위직 인선 및 정책 결정에서 지분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중도파가 주도해온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민정책과 엄격한 재정정책에 변화를 꾀한다면 EU는 변곡점을 맞을 수밖에 없다.

유럽의회 자체 조사에서 포퓰리즘 정당은 705석 중 150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여기에 포르차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로회의론 성향의 우파정당들이 가세하면 실현 가능한 목표다. 올해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중도우파정당연합(EPP)의 의석 점유율이 26.7%에서 2.3%로, 중도좌파정당연합(S&D)은 20.1%에서 4.7%로 각각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빈 의석의 상당 부분은 각국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이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 “살비니가 토론의 방아쇠 당겨”…‘결전의 무대’에 각국 이목집중

오성운동 역시 별도의 포퓰리즘 정파 및 정당들의 연대를 도모하고 있지만 결이 다르다.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오성운동은 ‘정당’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스스로 시민운동임을 내세운다. 올들어 유럽에서 이러한 특성과 가장 비슷한 현상은 반기성제도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이다. 디 마이오 부총리 겸 오성운동 대표는 지난 1월 노란 조끼 지도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는 한편 유럽의회 선거연대를 제안했다. 폴란드의 록 뮤지션 파벨 쿠키즈가 주도하는 극우 정치운동 ‘쿠키즈(Kukiz)15’와 핀란드 정치운동 단체 ‘지금 운동(Movement Now·Nyt)’, 크로아티아 극우정당 ‘인간방패(Zivi zid)’ 등과 유럽의회 선거연합을 도모하고 있다. 북부동맹이 기성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과 연대한다면, 오성운동은 새롭게 형성되는 운동세력과 힘을 합하는 것이다. 유럽 각국의 포퓰리즘 정당 및 정치인들은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온라인 공간에서 공적 담론을 압도하고 있다.

이탈리아발 유로 포퓰리즘의 두 가지 흐름이 각국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평균 투표율 40%대의 유럽의회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살비니는 분명 유럽이 찾는 지도자가 아니다. 하지만 (‘유럽의 미래’를 묻는) 토론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분명하다.”(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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